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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가 진상용 원문보기 글쓴이: 샘터
주제로 본 1980-2010 오늘날의 미술
4강. 미술과 재현, 리얼리즘의 허구
2010. 04. 29. 물. 19:00-21:00
(사)철학아카데미.
조광제
오늘날의 미술과 재현
1. 허구로서의 재현
“당신은 새를 속였다. 그러나 나는 동료 예술가를 속였다.”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79)가 쓴 『자연사』(Natural History)에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의 두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그림 대결에서 파라시오스가 한 말이다. 제욱시스가 포도 그림을 너무나 여실하게 그린 나머지 진짜 새가 날아와 포도를 먹으로 했겠다. 그런 뒤, 의기양양하게 파라시오스에게 이제 그림을 덮은 커튼을 열어보라고 하자, 파라시오스는 이 커튼이 바로 그림임을 확인시켜 주고 난 뒤, 이 말을 했다는 것이다. 회화에서의 재현이 얼마나 핍진(逼眞)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화가들이 눈을 번연히 뜨고서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른바 3차원적인 장면을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시학』에서 비극이 인간 행동을 모방(mimesis)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모방에는 쾌감이 수반된다고 했고, 인간은 모방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했다. 모방 본능을 말하면서, 모방 본능이 성 본능을 비롯한 여러 본능이 충족될 때 쾌감을 수반하는 것처럼 쾌감을 수반한다고 한 셈이다. 이 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는 정작 화가가 왜 최대한 정밀하고 여실(如實)하게 사실을 모방한 그리고자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본능이라고 해버렸기 때문이다. 추정컨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신을 흉내 내는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창조자를 신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을 인간이 흉내를 내어 되풀이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초월에의 열망이 고대에서부터 있었다. 예컨대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영원회귀의 신화』라는 책에서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연말의 축제를 통해 신의 우주창조를 모방하여 되풀이함으로써 속된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돌입해 가고자 한 것을 기술하고 있다. 예술이 고대의 축제에서부터 발원했다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예술을 창작 혹은 창조라고 일컫는 데는 바로 이렇게 신적인 지위로 초월해 가고자 하는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진리를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없다고 하면 진리요,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라는 말을 했다. 진리는 진짜 존재하는 것과 정확하게 대응하고 일치할 때 성립한다는 진리에 대한 관념은 인간의 사유에서 기본적으로 유지된다. 존재하는 것과 대응하는 것은 인간의 관념, 인간의 언어, 인간의 이미지 창조 등이다. 한 치 빈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 진리의 세계로 진입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시간을 넘어서서 영원을 붙들고자 한 것이다. 이는 앞의 두 이유와 직결되는데, 진리는 결국 신적인 것이고, 신적인 것이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지각의 현실은 무상하게 생멸하는 것인데, 이를 고정된 형태로 붙들어 고정시킴으로써 영원한 순간 혹은 순간적인 영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처럼 이데아적인 형상을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경우,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전번 시간에 생각해 본 것처럼, 비가시적인 영역을 재현하고자 할 경우, 추상의 과정이 필수적이고 그에 따라 지각 현실에 대한 모방 열망은 추상적인 변형의 열망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미술사를 개략(槪略)해서 보자면, 위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대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지각 현실에 대한 모방 열망은 기독교가 지배함으로써 기독교 교리에 의한 상징에의 열망으로 바뀐다.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기독교의 교리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면서 묘사는 상징적인 장치들을 중심으로 간단해지고 공간은 파편화되어 평면적으로 얼기설기 나열된다. 기호로서의 회화가 주를 이룬 것이다.
르네상스에 시기에 들어서면서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진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창안하고 당시 미술 이론가인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가 수학적으로 정식화하고, 화가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가 맨 처음 그림으로 구현했다고 하는 원근법이 개발된다. 3차원적인 통일된 공간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확실한 기법을 개발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지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연다. 물론 내용은 대부분 실제로 지각되는 현실이 아니라 성서의 사건이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여기에 르네상스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그림을 그릴 때 과학적인 관찰을 한껏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또 스스로 실현함으로써 사실적인 묘사가 강화된다.
18세기 후반,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를 중심으로 한 신고전주의 회화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바탕으로 해서 한 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과 색채처리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전적인 사건을 내용으로 삼는다.
그런데 19세기가 열리면서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에 의해 눈으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실생활의 장면 외에는 그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피력하면서 이른바 사실주의가 시작된다.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지각 현실이 회화의 내용과 주제로 당당하게 올라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839년에 첫 전시회가 있었던 사진술의 발명과 확산은 사실주의를 지향하는 회화를 위기로 몰아넣게 된다. 사진술에 반발하면서 인상주의 회화가 등장하고 아울러 상징주의가 대대적으로 발흥하게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어서 20세기가 열리면서 입체파, 미래파, 러시아구성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회화사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이른바 본격 모더니즘적인 (high modernist) 아방가르드 미술이 대거 등장한다.
이 와중에 모더니즘적인 아방가르드의 대척점을 형성하듯이 하면서 새로운 사실주의, 즉 신사실주의(neorealism)에 입각한 회화들이 대거 등장한다. 독일의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미국의 프레시지오니즘(Precisionism, 정확주의), 소련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은 1차 세계 대전에 의한 처절한 상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그 이후 산업화의 과정을 묘사하기도 했다. 사실주의에 대한 열망,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모방해서 묘사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겠다고 하는 열망은 어지간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는 서서히 사회의 중요한 현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대중’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힘을 발휘한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그의 『구별짓기』에서 잘 밝히고 있듯이, 교양 수준의 구별 짓기에 있어서 일반 대중은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 한눈에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사실주의 그림들은 대중에게 한결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세계적인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추상표현주의가 득세를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1960년대를 거치면서 팝 아트를 필두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등장하면서 추상이냐 구상이냐 하는 문제, 혹은 재현적인 모방이냐 아니면 이상적인 창조적 구성이냐 하는 문제 등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된다. 이 와중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포스터모더니즘을 특징짓는 것 중 중요한 사항은 지각 현실의 세계와 이미지 세계 간의 착종이다. 이는 특히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초현실’(hyperrea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착된다. ‘초현실’은 지각 현실의 세계 자체가 이미 시뮬라크르(simulacre) 즉 모사(模寫)임을, 따라서 도대체 현실(실재, reality)은 없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현실(실재)은 순수 객관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말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즉 현실(실재)은 그 자체 가공되는 것이고, 가공된 현실이란 근본적으로 시뮬라크르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이를 극단화해서 적극적으로 반영한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계가 바로 미래의 인간들이 최고도로 발달된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가공해서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이 영화 <매트릭스>의 기본 아이디어이다.
이러한 ‘시뮬라크르로서의 현실’은 사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디지털-컴퓨터 기술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포토샵’을 통해 사진의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쉽게 가공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회화는 제아무리 정교하게 실재를 모사한 것처럼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려낸다 할지라도 회화의 본성상 굳이 그림 바깥의 지시물(실물)을 필연적으로 지시해야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회화는 본성상 외부 환경에 대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런 점에서 회화는 본성상 시뮬라크르(모사) 세계 자체를 시뮬라크르가 성립하는 원 실물로부터 독립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다. 사진은 본성상 모사된 사진 이미지가 항상 실물 즉 바깥 실재를 지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본래 사진은 시뮬라크르의 의미, 즉 실물(실재)에 대한 모사라고 하는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회화는 실재를 보지 않고서도 실재를 가장할 수 있다. (…) 이러한 회화적인 모방과는 달리, 사진에서 나는 사물이 거기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도무지 거부할 수 없다.” 하트니가 전하는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다.
그런데 디지털-컴퓨터 기술에 의해 사진마저도 회화처럼 바깥 실재에 대한 지시 관계를 빼버린 채 존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컨대 이제 사진은 바깥 실재와의 그 어떤 직접적인 관계나 연결이 없이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 정말 실물의 광경을 방불케 하는, 혹은 어쩌면 실물에 대한 사진보다 더 실물에 대한 사진인 것처럼 가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사진을 통한 사실주의, 즉 포토-리얼리즘이라는 것이 회화에서의 극사실주의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극사실주의적인 그림이 오히려 극단적인 시뮬라크르, 즉 그 자체로 바깥 세계와 전혀 무관한 독립된 일종의 특수한 허구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 되는 것처럼, 포토-리얼리즘에 의거한 사진 예술 역시 오히려 충분히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컨대 이제 재현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허구의 가공으로 바뀐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현대 미술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리얼리즘 회화, 그리고 전혀 새롭게 발달하고 있는 포토-리얼리즘의 사진 예술의 상황을 점검해 봄으로써 현대 미술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2. 관련 작가들
비자 셀민스(Vija Celmins, 1938-, 라트비아 출생, 미국 이민)는 주로 대양이나 우주 혹은 사막 등의 모습을 실감나는 방식으로 드로잉이나 에칭 그리고 회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해 낸다. 그녀는 자신의 실재적인 주제가 현실의 세계가 아니고 사진들임을 밝힌다. 그 사진들을 가공하듯이 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 방식은 극사실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흔히 쓰는 기법이다. 중요한 것은 회화를 통해 더욱 실감나는 사진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척 클로즈(Chuck Close, 1940-, 미국)는 마치 디지털적인 기술에 의거해 조작한 것 같은 방식으로 이미지를 유화를 통해 그려낸다. 디지털적으로 가공된 사진을 격자 형태로 잘게 나눈 뒤, 이를 자신의 거대한 캔버스에 하나씩 유화로 옮기는 것이다. 디지털적으로 가공된 사진을 회화적으로 다시 가공해 내었다는 점에서 강한 느낌을 준다. 이른바 픽셀이라는 개념을 회화적으로 구현해 보인 것이다.
비크 무니츠(Vik Muniz, 1961-, 브라질)는 재현적인 회화에 대한 대중적인 의식을 염두에 두고서 이를 사진적인 이미지 처리 기법 간의 묘한 관계들을 역이용한다. 무니츠는 고춧가루, 땅콩버터, 젤리, 설탕, 양초, 해체된 장남감 그리고 구멍 난 투표용지 등 온갖 기묘한 것들을 끌어 모아 그림을 그리듯이 배치해 놓고서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로 처리해서 감광정도가 강력한 인화지를 이용해 프린트 해 낸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진술이 얼마나 강력하게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나는 관객들이 나의 이미지들을 믿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이미지에 대한 그들 자신의 신념이 어느 정도인가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맬콤 몰리(Malcolm Morley, 1931-, 영국)는 사진의 이미지들을 완전히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형시킴으로써 신표현주의의 선구로서 힘을 발휘해 준 인물이다.
게르하르트 리터(Gerhard Richter, 1932-, 독일)는 ‘추상 회화들’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추상의 사실성과 리얼리즘의 추상성을 아울러 추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찍은 스냅사진이나 매스 미디어의 사진들을 활용해서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리터는 1977년에 있었던 테러 조직인 독일 적군파인 바데-마인호프 집단이 감방에서 자살한 사건을 마치 사진을 통해 보듯 할 수 있는 일련의 회화 작품을 제시한 유명한 사회 고발 작가이다. 사진이 지닌 것으로 여기는 진실성을 회화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그야말로 회화에서의 포토-리얼리즘을 성취한 것이다.
뤽 튀먼스(Luc Tuymans, 1958-, 벨기에)는 역사나 정치에서 찾아낸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해서 간명한 유화처리 기법으로 그 핵심만을 따내어 표현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도 취급하는데,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이를 바탕으로 유화를 그려낸다. 별다른 회화적인 복잡한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마치 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회화적인 대목들만을 따내어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엘리자베스 페이톤(Elizabeth Peyton, 1965-, 미국)은 튀먼스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소재로 삼아 암암리에 문화적으로 규정된 개인적인 인격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그런 가운데, 뚜렷한 포커스를 느끼게끔 한다.
제프 월(Jeff Wall, 1946-, 캐나다)은 슬라이드 사진을 만들어 벽면에 가득 차는 크기로 쏘아댄다. 그럼으로써 가상현실과 같은 실재감을 깊이 있게 연출해 낸다. 필요한 사진들을 끌어 모아 ‘라이트박스’(lightbox)라는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치 빈틈도 없이, 마치 그 장면을 직접 찍은 것처럼 완벽하게 통일시켜 하나의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그럼으로써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들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내는 것이다. <죽은 병사들의 이야기(1986년 겨울, 아프가니스탄의 모코르 근처 붉은 정찰부대의 매복공격이 있은 뒤)>(1992)라는 긴 제목이 붙은 작품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제프 월의 기량은 그가 여러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사진으로 재구성해 내어 보여주는 데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갑작스러운 돌풍(호쿠사이를 본떠)>(1993)은 유명한 작품이다.
피터 두와그(Peter Doig, 1962-, 스코틀랜드)는 스냅사진, 영화 스틸 사진, 엽서, 여행 브로셔, 그리고 가요 앨범 표지 등에 있는 이미지들을 활용한다. 그러면서 이를 몽상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그림으로 그려낸다. <100년 전에>(2001)라는 작품은 앨러먼 브라더스 밴드의 앨범 표지를 활용해 우울함과 고독을 여지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이차적으로 처리한 것, 즉 일반 대중들에게 사진 이미지를 원래의 실물로 여기게끔 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재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케이스비어(James Casebere, 1953-, 미국)는 실제 유명한 건물의 내부를 모델로 해서 미니어처를 만든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작품으로 제시한다. 다소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럴 경우, 이를 어떤 미술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 1964-, 독일) 역시 유명한 인물들이 묵었던 호텔 방과 같은 실내의 풍경을 사진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크게 프린트해 제시한다. <방>(1996)이라는 작품은 과학주의라는 종교를 창설한 인물인 론 허버드가 묵으면서 ‘디아네틱스’(Dianetics)라는 글을 썼던 방을 짜깁기해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짜깁기한 솔기들을 드러나도록 했다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사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 즉 사진은 진실을 보여준다는 믿음을 의심케 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진을 믿지 않을 수도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한다.
필립-로르카 디코르치아(Philip-Lorca Dicorcia, 1951-, 미국)는 “머리들” 시리즈(2000)를 통해 기이한 사진 작업을 한다. 뉴욕 도심지를 걸어가는 흔히 볼 수 있는 익명의 사람들을 극적인 인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카메라를 뉴욕 타임즈 광장에 설치해 놓고 그것과 함께 누구든지 어떤 구역 내에 들어오기만 하면 번쩍 하고서 자동으로 터지는 강력한 라이터를 설치해 놓았다. 이 라이터는 주변을 시커멓게 만드는 역할을 했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사진에 찍히는 인물은 마치 잘 조성된 스튜디오에서 포착된 것처럼 찍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디코르치아는 흔히 말하는 도큐멘터리 사진이 결코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리얼하다고 여기도록 배우고 익힌 일종의 관습에 의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해 베른트 베커(Bernd Becher, 1931-2007, 독일)와 힐라 베커(Hilla Becher, 1934-, 독일) 부부는 사진이 얼마나 객관적인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가를 애써 보이고자 한 사진작가들이다. 70년대 중반부터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있는 예술아카데미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들은 독일의 사진작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 학생 중 한 사람이 토마스 루프(Thomas Ruff, 1958-, 독일)다. 루프에게서 리얼리즘은 모든 주관적인 결정을 기계에게 양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표정 없는 익명의 인물들을 칼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jpegmsh01>(2001)이라는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 추려낸 JPEG 이미지들로 오늘날의 역사에 대한 은유적인 사전을 제시하듯 한 것이다. 274.3x188cm라고 하는 상당히 큰 크기의 작품인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서히 추상적인 형태로 바뀐다. 이는 구체적인 사람들이나 건물 등이 재난으로 인해 파쇄되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리네케 딕스트라(Rineke Dijkstra, 1959-, 네델란드)는 사진을 통해 암암리에 이미 고전적인 그림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의 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묘한 작업을 하는 셈이다. <폴란드의 콜로브체크, 1992년 7월 26일>(1992)라는 작품을 보면, 해변에 서 있는 젊은 아가씨의 자세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카메라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암암리에 관능을 자아낸다.
볼프강 틸만즈(Wolfgan Tillmans, 1968-, 독일)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사진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동일한 사진작품을 경우에 따라 그 크기를 달리 해서 전시한다는 점이다.
비탈리 코마르(Vitaly Komar, 1943-, 러시아 태생 미국)와 알렉산더 멜라미드(Alexander Melamid, 1945-, 러시아 태생 미국)
지그마르 폴케(Sigmar Polke, 1941-, 독일 화가)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 독일)
바젤리츠와 젊은 키퍼는 코린트로부터 표현주의와 반모더니즘을 거쳐 그들 자신의 작업을 통해 국가적인 정체성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확고한 본보기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그들 자신의 작업을 통해 실현해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주장을 리히터는 거절했다. 리히터는 모든 시각예술적인 실천들은 대량 문화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의 여부, 그리고 전 지구적인 문화 생산의 탈국가적인(postnational) 정체성의 본보기에 연루되는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 1962년부터 바로 이어서, 바젤리츠의 작업은 여러 추종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들 중에는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üpertz, 1941- , 독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 모두는 특별히 서독일적인 회화의 형태를 확립하여 현대 문화의 지역적인 작풍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그때, 회화 내에서의 그러한 기획과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자 하는 말썽 많은 시도는 이미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바젤리츠와 그를 추종하는 신표현주의자들은 파시즘에 의해 문화 생산의 국가적 정체성의 본보기가 파괴된 이후, 이 두 주장 즉 한편에서의 국가 정체성의 연속성에 대한 주장과 다른 한편에서의 문화 생산의 정체성의 본보기(특히 독일적인 것)에 대한 주장 중 하나라도 과연 믿을만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의 확립은 독일 파시즘이 야기했던 실제의 붕괴 즉 여러 균열들과 실제의 역사 파괴를 흐릿하게 만든다. 바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연속성 확립이라는 과제가 문화 생산을 재국가화하고 재지역화 하려는 기획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회화적인 실천들이 본질상 반동적인 것은 아니지만, 파시즘적인 균열을 무시한 채 독일 역사의 경험의 연속성을 기획하는 그 어떤 시도도 필연적으로 그 자체 반동적인 허구일 수밖에 없다.
마르틴 키펜베르게르(Martin Kippenberger, 1953-, 오스트리아)
레오 라우크(Neo Rauch, 1960-, 동독일)
한네 다르보벤(Hanne Darboven, 1941-2009, 독일)
마트 뮬리컨(Matt Mullican, 1951-,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