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사람의 말은 그 자체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숨겨진 의도와 함께 해석되어야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때가 많다.
청담동 사건 제보자의 여자 친구가 제보자에게 한 말과 경찰에게 한 말이 달랐다. 왜 두 상황에서 말이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보는 대신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제보자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믿었다. 경찰서에서 한말이 '당연히'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꽤 많은 진보 인사들도 동일한 생각을 가져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즘 교육과정에 5.18 민주화 운동이 삭제되었다는 언론 기사와 함께 의견이 분분하다. 교육 현장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교육과정 대강화'라는 용어가 상당히 낯설다. 교육학 박사인 나조차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의미를 찾아보니 평소 내가 생각하던 바를 담고 있는 용어이다.
나는 교육학자로서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명시된 점을 비판해왔다. 큰 방향성만 교육과정에서 제시되고 나머지 구체적인 교육 내용은 교사들이 전문성을 토대로 각자 구성하는 것이 풍성한 수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과정 대강화'를 환영한다.
기사를 쓴 기자가 교육과정 대강화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글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쟁에 눈이 멀어 쓴 기사라고 쉽게 치부해도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이전 정부에서 동일한 표현을 썼다고 해도 지금처럼 진보적인 사람들이 발끈했을까?
현 정권은 민주주의라는 단어조차도 그대로 쓰길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교육과정에 넣었다. 교육과정을 개발한 연구원들 대다수가 반대했음에도 말이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나 화물연대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입장을 보면 노동과 인권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0.29 참사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의 큰 사건이다. 이 일을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벌써 잊었는가. 어떻게라도 정부에 불똥이 튀는 걸 막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고자 희생자 이름도 없는 분향소를 급히 차리고 참사 원인을 언급조차 못하도록 국가애도기간을 정부가 선포하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과 교육이 무슨 상관이 있냐며 반감을 가질 수 있다. 교육부가 정권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그들의 반감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교육부는 엄연히 정부 기관 중 하나이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대통령과 국정 철학이 맞는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되는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지난 8개월 동안 정부가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행태들을 보며 걱정을 넘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음을 느낀 시민들이 교육과정 대강화에서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가 삭제된다고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교육부가 논쟁 초기에 상세하게 설명하면 될 일을 논쟁 후 뒤늦게 삭제된 단어를 다시 삽입하겠다고 말한 것 자체가 의도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게 만든다.
다행히 교육 관련자분들이 교육과정 대강화의 의미와 함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나는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한다. 동시에, 교육부가 교육 개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과연 교육 본연의 모습을 위한 개혁인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갖고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