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祠)가 있는 표충사(寺)
사명대사가 일제의 울타리에 갇혀
영남 알프스 자락의 표충사는 사찰보다 사찰 주변으로 사람들이 더 몰린다. 주변 산세가 웅장하고 더불어 계곡이 깊고 울창하다. 지금까지 표충사 근처를 수없이 다녔어도 정작 표충사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지 못했다. 당장 표충사의 표충의 유래부터 관심이 없었다.
표충사는 원래 밀양시 영취산에 있던 백하암 자리에 있었다.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영정사)에서 수호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1838년(헌종 4)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가 예조에 보고하여 부사 심의복의 도움으로 영취산에 있던 표충사당을 1839년에 영정사 자리에 옮겨 지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의열단 김원봉을 비롯한 밀양 사람들의 불타는 독립운동을 잠재우고자 했다. 그래서 밀양 재악산(載岳山)을 일본의 천황을 뜻하는 천황산(天皇山)으로 바꾸고, 수미봉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동안 밀양을 사랑하는 향토사학자들이 이 같은 일제의 만행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까지 산 이름과 주봉의 이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비록 일본이 재악산을 천황산으로, 수미봉을 재약산으로 바꿨지만 표충사 입구에는 ‘재악산표충사’란 현판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사명대사를 비롯한 3대 의승장들의 충혼을 기리는 호국사찰 표충사를 천황산이나 재약산 표충사라 하면 사명대사가 크게 노할 것 같다. 특히 일제가 민족혼을 없애기 위해 이름 바꾼 천황산에 표충사를 가두는 꼴은 빨리 사라져야겠다. 생각 같아선 사명대사 고향에 남겨진 표충비의 모형이라도 표충사에 세워두었으면 좋겠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땀을 흘린다는 사명대사 비석은 2011년을 마지막으로 땀을 흘리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비석에서 땀이 흘러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예성탁 발행·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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