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 마뭉속 깊은곳에 간직되어 있는 말들을 끄집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형과 나는 왜,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부모님은 자녀를 6~7명을 낳았으나 살아남은 사람은 형과 나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관계를 끊었다. 내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형의 우유부단 때문일까? 무엇이 문제이길래 나는형에게 전화 한통 못하고 있는가 명절이 다가오면 형에게 전화라도 한통해야지 생각했다가도 에이, 하며 끊어버린다. 만약 지금이라도 형이 전화를 걸어와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자고 한다면 나는 바로 달려갈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일은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족은 명절이 되면 형님집을 찾았다. 형님은 성당을 다녀서 제사는 안지내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낸 후 식사를 했다. 형은 심성이 착했다. 착해서 우유부단했다.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 형수는 드센 여자였다. 의견차이가 있을 때면 형 앞서서 자신의 의견을 주저없이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난 뒤끝이 없어" 라고 말했다. 형과 형수가 어떻게 살든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어머니와의 관계만 좋아질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어머니 말대로 성격은 죽기전까진 바뀌지 않을것 같았다. 어느 명절날 집에 오는 차안에서 집사람이 말했다. "형님(형수)이 다음부턴 오지 말라고 하네" 무슨 이유가 있냐고 했더니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그래 나도 오고싶어 오는것은 아니야 오지말라면 잘됐네" 그리고 나는 연을 끊었다. 형님에겐 아무 말도 안했다. 그것으로 형제의 연이 끊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엄청나게 큰일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냥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10여년이 경과 했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그러나 전화를 하긴 싫다. 특히 명절이 되면 형님이 보고싶다. 형에게 전화해서 "형님 밥이나 한번 드시죠"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알량한 용기가 나에겐 없다. 사람 마음이란게 참 이상하댜. 갈팡질팡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특히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더욱 자기 마음을 들춰내기가 쉽지않다. 나는 일년전 쯤 도서관에서 교육하는 '시' 공부를 하러 2개월 정도 다닌적이 있다.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녔다. 마음속에 들끌고 있는 언어를 풀어 쓰고 싶었다. 어떤 문장을 써야 내 마음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 배우고 싶었다. 7~8명 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 여성이었고 나 혼자 남자였다. 그 강좌에서 남자가 수강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조금은 민망한 기분도 들었지만 시를 쓰는 법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강의를 들었다. 참석자들 중엔 나이가 많으신 여사님들이 많았고 30대 여성분이 한분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문학적 소양이 있고 시적 감각이 있는것 처럼 보였다. 강사는 여성분이었다. 스크린에 여러 시들과 음악, 축약된 영화 내용을 보여주고 시적 감흥을 일으켜 시를 써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강의가 두달 이어졌다. 한달정도 지나 와이프에 대한 시제를 놓고 시를 지어보게 했다. 나는 와이프를 생각하며 글을 적어 발표를 했다.
사랑하는 나의 여인에게
당신에게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내요
나의 마음이 온통 불타 올라, 당신을 꿰기 위해 결혼 전 보낸 편지 후 처음인것 같소.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난 당신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없었소, 당신은 나의 최진실이었소, 난 당신을 소개할 때 최진실보다 더 예쁘다고 소개하곤 했소, 그런데 지금 피곤에 절은 당신의 눈을 볼 때면 모든것이 내 잘못임을 잘 알고 있소. 당신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친절, 상냥한 미소, 청춘, 경제적 생활까지 모든것을 주었지만 난 당신에게 시름, 아픔, 눈물, 늙음만을 준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오, 그러나 사랑하는 오여사 다른것은 다 몰라도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요, 당신과 내가 같이 만나 살아온지 30년이 넘었소. 혼자 산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이네요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당신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살아갈 것이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것보다 더 사랑하오.
나는 이 문장을 조금 읽어나가다 왈칵하고 눈물을 쏟았다. 정말 민망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듯 눈물을 쏟는다는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같이 교육을 받던 사람들이 나를 위로했다. 정말 황당햇다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의 감정은 알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을 잘 몰랐기에 감정에 휩싸여 눈믈을 훌렸던것 같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갑작스런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지 앞에서는 눈물을 훌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감성적인 남자로 아무대서나 잘 우는 편이지만 매일 같이 보는 가족 앞에서 질질 짜는것은 꼴불견이다. 그리고 창피해서, 어린 딸들과 집사람 앞에선 펑펑 울기가 조금 그렇다. 나는 나이 먹은 남자다 나이를 먹다 보니 조금만 슬퍼도 감상적이 되어 눈물이 질금질금 흐른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약해진건 아니다. 단지 공감능력이 좋아진듯 하다. 나이를 먹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무엇이 옭고 그른지 점점 판단하기가 어렵다. 세상은 더 복잡다단해지고 있는것 같다. 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팍팍해지는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있다면 살아가야 하거늘, 젊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변하고 배워야 할것 같다. 배움은 끝이 없다. 나이를 먹으며 여유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배울것이 많은데 여유시간이 많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배우는일이다. 세상의 변화를 배우고 변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것이다. 혹 세상을 못 따라 간다해도 배운것 만큼은 남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