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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샤머니즘의 보편성과 관련한 몽골 샤머니즘의 문화적 특성
【 목 차 】
1. 서론 : 샤먼과 샤머니즘에 대한 편견을 넘어
2. 샤머니즘에도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적합한가?
3. 세계 샤머니즘의 보편성과 관련한 몽골 샤머니즘의 문화적 특성
1) 유목문화에서 발전한 몽골 샤머니즘의 정치적 성격
2) 종교적 지평융합
3) 자연친화적 종교성
4) 역사속의 트라우마
4. 결론 : 변화속의 몽골 샤머니즘
1. 서론 : 샤먼과 샤머니즘에 대한 편견을 넘어
한국과 몽골의 샤먼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무척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지혜로움은 삶의 연륜에서 축적된 슬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고 어린 샤먼들을 만나도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지혜가 단지 연대기적 결과물은 아닌듯하다. 샤먼들의 지혜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산전수전'으로 표현하는 남다른 굴곡과 고통을 딛고 '정신병자'에서 '종교적 직능자'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치열한 경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1) 그 자신이 극심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 샤먼이 된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그만큼 더 민감할 수 있으며, 타인이 절박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샤먼들과 대화하고, 의례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나의(혹은 그 순간에 직관한 나와 같은 상태의) 고통을 '잘 알고' 연대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샤먼의 인간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직능은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역사적으로도 샤머니즘은 종교라기보다는 광기어린 인간들의 그로테스크한 현상으로 폄하되기 일수였다. 신대륙에 들어간 리차드 에덴(Richard Eden)이라는 사람은 카나리(Canary) 군도의 원주민들에 대해 "(이곳의)거주민들은 수치심, 종교 혹은 신에 대한 지식을 결여한 채 벌거벗고 있었다."고 기록했다.2) 그레고리안 찬트가 없고, 깔끔한 예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없고, 장엄한 미사가 없는 원주민들은 종교도 영혼도 없는 '동물'처럼 여겨졌던 것이다.3) 이처럼 타자(원주민)의 의미체계를 자신(서양인)의 종교 개념으로 덮어씌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
탈랄 아사드(Talal Asad)가 종교 개념의 역사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조나단 스미스(Jonathan Z. Smith)도 서양인의 종교개념의 보편적 적용을 비판했다. 그는 '종교'가 원주민의 범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평가한 서양인의 인식은, 종교가 보편적 인간현상이라는 전제를 과도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4) 북방 민족의 샤머니즘을 연구한 펜티케이넨(Juha Pentik inen)도 만약 종교라는 개념을 북방민족의 맥락에 사용하려면, 종교의 정의는 종교를 다른 삶의 영역으로 사용하는 서구의 종교 개념보다는 더 총체론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5) 이런 비판의 공통점은 샤머니즘의 '실용적' 측면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하며, 샤먼과 그의 신앙민들이 형성하는 공동체를 공정하게 보게 하는 인식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한편 샤먼에 대한 또 하나의 곡해는 '전도된 의식상태(ASC)'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연구 흐름과 관련된다. 흔히 샤머니즘 연구는 샤먼의 트랜스나 퍼제션 그리고 엑스타시에 초점을 맞추고 수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샤머니즘이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엑스타시 현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용(R. N. Hamayon)이 트랜스, 퍼제션, 엑스타시의 개념에 내포된 전제들을 문제삼으면서 지적했듯이 의식의 '변형'에 우선적 관심을 맞추는 배경은 여전히 샤머니즘을 정신병리학적 이상상태로 보는 시각을 나타낸다. 아마용은 샤머니즘에서 중요한 것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샤먼들이 신령과 접촉한다는 것을 '믿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샤머니즘을 샤머니즘으로 만드는 것은 샤먼의 의식상태가 아니라 샤먼이 속한 지역 공동체의 문화이며 신자들이라는 것이다.6)
샤먼을 광인으로 타자화하면 결국 샤머니즘 신앙은 정신병리학적 현상이며 소란하고 천박한 미신일 뿐이다. 그러나 개인적 질곡을 딛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샤먼의 삶에 공감적으로 다가가면, 그리고 샤머니즘의 정치와 도덕, 종교적 의미체계를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맥락에서 편견없이 이해할 수 있다면 샤머니즘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조응하는 종교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샤머니즘에도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적합한가?
과연 샤머니즘에도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적합한 것일까? 시베리아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사회들, 그리고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샤머니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선 '선교적' 세계종교들이 주장하는 보편성과 동일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에는 공통된 '신조'나 통일된 '조직체계'가 없으며, 선교의 열망에 따라 타자의 믿음을 제압하려는 정복적 의도도 없다.
또한 세계 샤머니즘을 동일한 믿음체계로 보려는 보편성의 추구는 생태학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는 엘리아데(Mircea Eliade)와 하너(Michael Harner)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교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엘리아데는 자신의 '신학적 기획'에 모든 종교 전통을 용해시키려 했다. 따라서 '고대적 접신술'로 규정한 샤머니즘 역시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 상관없는 '원초적인 종교현상'으로서 인간이 신령과 소통하는 엑스타시 기술이었던 것이다. 한편 하너의 '핵심 샤머니즘(Core Shamanism)'도 샤머니즘의 일반화를 꾀한 시도였다.
그는 The Way of The Shaman(1980)에서 범세계적으로 분포한 샤먼들 실천에 나타난 공통된 주제를 추출하여 핵심 샤머니즘이라 부른 샤먼 테크닉을 종합했다. 이 테크닉의 정수는 전통적,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을 제거한 것이었다.7)
엘리아데와 하너의 주장은 방향이 약간 다르지만 샤머니즘에서 역사와 문화를 탈각시켰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엘리아데에 대해서는 험프리(Caroline Humphrey)의 비판이 돋보인다. 그녀는 엘리아데의 일반화는 샤머니즘의 연행 내용과 믿음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간과한 비역사적 해석이며, 역사적 연구와 사회적, 이념적 기초에 대한 분석 없이 샤머니즘을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변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8) 다른 논문에서도 엘리아데식의 원형과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샤머니즘은 권력의 맥락에서 사회적 실재의 구성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경우에도 샤머니즘은 일반화될 수 없으며, 각기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 샤머니즘이 가지는 다양성과 변화를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9)
하너의 핵심 샤머니즘에 대한 비판은 피어스 비테브스키(Piers Vitebsky)의 논문에 잘 나타난다. 그는 하너의 핵심 샤머니즘은 여러 문화에서 추출한 샤머니즘을 종합해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시키려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문화를 초월하지 않는 샤머니즘을 자의적으로 해체, 재구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핵심 샤머니즘의 구상은 상대적으로 전통 사회의 샤머니즘을 열등하고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0)
이런 비판적 시각을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해한다면 '세계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비테브스키는 각 지역을 동질화시키는 세계화의 기획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오늘날의 지구촌 문화에 적절하게 받아들여질만한 샤머니즘적 사유방식의 하나로 '지역중심성'을 강조했다.11)
물론 이런 인식이 결국 샤머니즘의 보편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샤머니즘이 완전히 고립된 지역적 종교현상으로 파편화되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편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샤머니즘의 종교적 특성들은 항상 지역의 문화적 프리즘을 투과하여 그 공동체에 발현된다. 따라서 보편성을 다룰 때도 지역적 변형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3. 세계 샤머니즘의 보편성과 관련된 몽골 샤머니즘의 문화적 특수성
'몽골 샤머니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실체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두 측면에서 존재한다. 우선, 몽골 샤머니즘에 대한 과도한 추상화이다. 지난 해 본격적 필드워크에 나서기 전에 사란게렐(Sarangerel)이나 둘람(S. Dulam)12)등의 몽골 샤머니즘 연구문헌을 읽었을 때에는 몽골의 샤머니즘을 매우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몽골 샤머니즘의 내용을 교과서적으로 분류, 정리한 사란게렐이나, 형이상학적 틀로 몽골인들의 샤머니즘을 재구성한 둘람의 이론적 작업을 통해 전달된 몽골 샤머니즘은 외부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필드워크를 통해 그들의 '설명'이 몽골 샤머니즘의 실체를 그대로 기술한 것인지, 그리고 엄밀한 현장 검증을 통해 얻어진 해석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의심이 생겼다. 그들의 자료는 고대적(이상적인 몽골 샤머니즘)이거나 혹은 철학적(형이상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어려움은 몽골 샤머니즘에 대한 몽골인 자신들의 무지와 관련된다. 한국에 돌아온 필자는 2차 필드워크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현지 몽골인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또한 한국에 유학온 젊은 몽골인 학생들과도 몇 차례의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몽골 청년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울란바타르 국립대학에서 샤머니즘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는 뭉크 체쳌이라는 몽골 청년은 울란바타르에는 샤먼이 전혀 없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지난 해 우리가 울란바타르에서 직접 만났고, 우리를 위해 굿도 수행했던 샤먼들은 '유령'이었던 것일까? 이런 무지의 원인은 아마도 그들 대부분이 사회주의 시기에 태어나 교육을 받으면서 전통적 종교문화로부터 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화'와 '무지'의 양 극단을 피하는 길은 몽골의 샤머니즘을 현재적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이지히(Walther Heissig)는 체계적으로 몽골의 종교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지금은 '사라져버린(disappeared)'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13) 하이지히의 연구는 종교를 억압하던 사회주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이 '사라짐'의 전제에서 출발할 때 몽골 샤머니즘의 현재적 사실에 더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몽골의 샤머니즘은 사라졌거나 은닉되었다가 '새롭게' 작동하는 현재적 종교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현재성이 과거의 종교현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은 아니다. 폴 윌리스(Paul Willis)가 "문화적 변화는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정박하는 지점들과 떨어질 수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14) 몽골이 시장경제로 전환한 후 새롭게 복원되기 시작한 현대 몽골의 샤머니즘은 현재적 현상이면서도 과거 전통의 의미체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골 샤머니즘에 대한 기술은 역사속의 문화적 특성과 동시대적 관찰을 효과적으로 병행할 때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 유목문화에서 발전한 몽골 샤머니즘의 정치적 성격
지역적 변형을 겪지 않는 종교는 없지만 샤머니즘은 유달리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종교현상이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의 변형을 제어할 '정통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테브스키가 샤머니즘은 교리, 교단, 경전도 없고, 권위있는 성직자도 없는 파편화된 것이므로 어떤 "주의(...ism)"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샤머니즘의 지역적 특수성을 암시한다.15) 그러므로 한 지역의 샤머니즘을 이해하려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적 조건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 샤머니즘은 개인적인 신비체험보다는 공동체의 이해와 욕구에 대한 응답을 중심으로 해왔다. 샤머니즘이 주로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실천된 것은 그 때문이다. 샤먼은 이웃 공동체와의 잦은 경쟁, 낮은 생산력으로 인한 협력의 요청, 공동체 안의 갈등과 같은 구체적 문제에 대한 조정자요 보호자로서 기능했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샤먼이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역할했던 것이다. 이처럼 씨족 단위의 사회에서 샤먼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역할했던 것은 어느 민족에서나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씨족이 통합되어 고대국가가 수립되면 자연스럽게 정교분리를 거치면서 샤먼들은 주도권을 상실하고 주변화되었다. 하지만 몽골 샤머니즘은 조금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쳤다. 그것은 몽골의 문화적 특수성, 즉 유목문화의 전통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몽골 샤머니즘 연구에 있어 유목문화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몽골인들에게 유목문화는 선택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자연환경이 몽골인들의 역사를 형성했다는 모리스 로사비(Morris Rossabi)의 분석처럼16), 근본적으로 이 지역의 생태환경이 강제한 유목적 환경에서 모든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맥락이 파생한 것이다.
몽골의 유목문화는 우선 정치적 성격이 강한 씨족 샤머니즘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전통이 보다 복잡한 체제인 고대국가의 형성과 유지에서도 작동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고대국가의 수립 이후에는 흔히 샤머니즘이 반중심성17) 혹은 주변적 성향을 띄는데 비해 정치적 차원이 강하게 부각되며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경험은 몽골 샤머니즘의 역사적 특수성이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목축 유목민들은 정치적 목적을 강하게 가졌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유목민들의 생활이 내포하는 분산성으로는 자연의 돌발적 위기상황과 외부인들과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 등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목민들에게 씨족은 친족일 뿐만 아니라 군사집단이며 정치세력의 성격을 가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대성을 이념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시조의 탄생지를 성역화했고, 유목생활의 이동성과 분산성을 상쇄할 수 있는 신화적 고향으로서의 성스러운 산을 상징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샤먼은 씨족의 결속을 주도하는 지도자로서 복무했다.18)
이와 관련하여 유목문화의 샤머니즘은 위계적 세계관을 종교적으로 형성했다. 보통 샤머니즘에는 지고신이 있다해도 대부분 '숨은 신'이나 '사라진 신'으로만 존재하는 반면 몽골 샤머니즘에서는 최고신 텡그리가 신적 위계의 정점에 강력하게 위치한다. '영원한 푸른 하늘' , 즉 멍케 코케 텡그리(M nke K ke Tengri)가 현실적 의례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신관의 위계성은 절대자에 대한 종교적 헌신의 결과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즉 농경 중심의 정주사회와는 달리 유목민들의 이동적 삶은 안정된 정치체제를 구성하기 곤란했고, 따라서 이동성의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상징적 위계 구조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샤머니즘 신앙을 가진 유목민들에게 수직적 초월의 관념이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몽골비사}의 첫부분에는 징기스한이 '천상에서 운명을 점지 받고 태어난'19) 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역시 징기스한의 개인적 배경을 텡그리의 의지와 일치시킴으로써 그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의 종교적 표현이었고, 이를 통해 근본적으로 연대성이 약한 씨족들의 결속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20) 몽골인들에게는 정치적 행동과 종교적 의례가 불가분하게 얽혀 있으며, 텡그리에게 드리는 희생제의는 하늘의 의지와 군사적 승리, 통치권의 주장, 성공의 증거로 간주되었다.21)
이런 종교적, 문화적 특성은 고대 몽골 샤먼들의 정치적 진출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실제로 12, 13세기 몽골 제국 형성기의 역사는 샤먼들이 정치적 활동의 전면에 나섰던 것을 잘 보여준다. 훗날 텝 텡그리(Teb-Tenggeri)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몽골의 대샤먼 커커츄(Kokochu)는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던 테무진에게 "하늘은 테무진에게 이 대지를 통치케 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내려준다. 그에게 '징기스한'이라는 칭호를 준 이도 커커츄였다. 이런 종교적 권위 부여는 테무진의 통치권을 정당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22)
뿐만 아니라 파라만장했던 씨족간 전쟁과 통합을 통해 몽골고원을 통일한 징기스한의 궁정에는 베키(Beki)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베키라는 칭호에는 샤먼적 성격이 깃들어 있으며 샤먼적 인물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와 권위를 가진 인물에게만 부여된 것이다. {몽골비사} 216절은 "베키로 추대되면 흰옷을 입고 백색 거세마를 타며 상석에 앉는다. 또 년월의 길일을 택하는 일을 주관한다"고 기술하고 있음을 볼 때, 족장급 샤먼들이 제국의 궁정에서 통치에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3)
이처럼 샤먼의 정치적 진출이 강력하다보니 당연히 징기스한의 통치권과 마찰이 생겨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국 성립기에 징기스한을 도왔던 커커츄는 정치적 갈등속에서 징기스한의 동생이 권력을 얻을 것이라는 신탁을 내렸다. 이에 징기스한은 神·政 두 가지를 모두 장악하려는 정치적 야욕으로 커커츄를 살해한다. 그리고 스스로 신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신격화를 추진했다. 훗날 멍케칸(1251-1259)은 "하늘에는 멍케-텡그리가 있듯이 대지에는 하늘의 아들인 징기스한만이 유일한 군주이다. ... 멍케-텡그리의 명령은 징기스한으로부터 출발한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정치적 갈등과 종교적 합리화는 샤머니즘을 이용해 절대권력을 장악하려는 초기 몽골 칸들의 의도를 극명히 보여준다.24)
이처럼 몽골 샤머니즘의 정치적 성격은 샤머니즘이 반드시 주변적이고 반권위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몽골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 유목민들의 샤머니즘은 역사적으로 국가권력과 밀접히 결합한 경우가 많다. 험프리도 북아시아 샤머니즘은 특정한 사회의 재건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에 관여한다고 분석했다.25) 비록 불교로 대체되긴 했지만 여진족 역시 샤먼적 배경에서 중국 북부에 정부를 세웠고, 몽골에서도 제국형성기뿐만 아니라 원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샤머니즘이 빠르게 복원되면서 정치세력화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갖는다.
하지만 현재의 몽골 샤머니즘은 야쿠트족 중심의 사카(Sakha)공화국에서처럼 과거의 정치적 힘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26) 그 이유는 시장경제로의 변화 이후 티벳불교가 과거의 사회주의적 이념을 대체하면서 급격히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티벳불교는 승단 제도를 통해 복구의 체계적 진행이 용이했지만 샤머니즘은 늙은 샤먼들의 '재개'와 새로운 샤먼의 '출현'이 갖는 비체계성으로 인해 과거의 정치적 차원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사회주의를 포기한 몽골 정부가 전통문화의 복원을 통해 새로운 민족정체성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샤머니즘을 통한 재건은 아니다.
2) 종교적 지평융합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dom)인 유럽의 농민들은 지역의 성인(Saint)에게 다산과 축복을 기원하고 신비적인 마리아 숭배를 한다. 남미의 샤먼들은 자신들의 영적 카리스마를 증진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성소를 순례한다. 현대의 열광주의적 그리스도교 집회에서도 직접적인 치유와 재물의 축복에 대한 기대가 거침없이 드러난다. 심지어 가장 반우상적인 이슬람 세계에서조차도 성인들의 묘지와 유물을 성화하면서 숭배하고 있다. 불교의 민간의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종교현상은 흔히 '민간신앙' 혹은 샤머니즘적 종교현상으로 분류된다. 시대와 공간이 다르고, 특정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샤머니즘적 사유와 행동양식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샤머니즘이 수렵사회때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종교현상중 하나라는 점에서, 테일러가 개념화했던 '잔존물'(Survival)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잔존의 발현이 어떤 미신적 원형의 낡은 존속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 따라서 샤머니즘적 종교현상은 수렵사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정치적 체계에서 샤머니즘이 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다른 종교전통내에 '스며든'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샤머니즘은 어떤 종교를 만나더라도 강력하게 그 생존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지속때문에 샤머니즘을 하나의 강력한 '실체'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샤머니즘의 강력함은 역설적으로 샤머니즘의 흡수성, 종교적 '융합'의 과정에서 기인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샤머니즘은 강력한 '힘의 종교'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일한 교리와 교단을 갖지 않는, 즉 파괴당할 체계가 없으므로 파괴당하지 않는 비정형적 유약성 때문에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27)
또한 융합이라는 의미는 가다머(H. Gadamer)의 해석학에서 보듯 일방적 흡수와 수용이 아닌 상호 변화를 함의한다. 샤머니즘과 어떤 종교가 만나면 어느 정도 상대의 종교적 내용과 형식의 영향을 받으며 자기의 종교성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샤머니즘은 다른 종교의 민간신앙적 차원으로 스며들어갈 수 있었고 스스로 변형을 겪기도 한다.
몽골의 종교사는 이 융합의 상호적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고대국가 형성기에 일종의 국가종교로서의 성격을 가졌던 몽골 샤머니즘에게 가장 큰 위협은 티벳불교의 도래였다. 그 과정은 순수한 선교에 의한 개종의 수순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 맥락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2차 접촉의 과정은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했던 몽골의 알탄칸(Altan Khan)과 티벳의 황교(黃敎) 지도자인 소드남가초의 1578년의 결탁에서 본격화되었다. 소드남가초는 알탄칸을 쿠빌라이칸의 환생이라고 인정해줌으로써 칸위(位)의 계승을 가능하게 했고, 알탄칸은 소드남가초를 종가파 대제자의 3번째 환생이라고 인정해주면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처럼 정치적 배경하에 들어온 소드남가초는 몽골 샤먼의 우상을 제압하는 선언을 포교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알탄칸의 전폭적 지원하에 그동안의 샤먼시대의 막을 내리게 하였다.28)
그후 티벳불교는 샤먼들의 저항을 억누르면서 몽골인의 정신적 사상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라마승들은 샤먼의 엉거트들을 불교의 호법자로 개조하는 한편 종래 샤먼들의 기능을 모두 계승해버렸다. 그 결과 몽골 샤머니즘의 대표적 의례였던 '어워제'도 라마승들이 집례하게 되었고, 샤먼들과 관계된 각 지역신들도 티벳불교의 신격과 합쳐졌다. 샤먼의 상징물들은 파괴되었고, 말을 순장하던 풍습도 사라졌고, 수태차를 마시는 풍습이 확산되었다. 몽골인들은 불상에 공양을 바치고 경전을 암송하는 종교적 생활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처럼 티벳불교의 몽골내 확산은 샤머니즘의 입지를 협소하게 만들었지만,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보면 몽골의 샤머니즘과 티벳불교의 차이는 모호하다. 이는 종교적 지평융합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샤먼과 라마승의 직능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라마승들도 점을 치고, 예언을 하고, 치유의례와 자연숭배를 했고, 심지어 엑스타시와 주술적 행위의 연행에서는 라마승들이 샤먼보다 훨씬 더 뛰어나기도 했다.29) 지난 해 몽골 종교·문화 필드워크 때 나린텔 솜에서 만난 라마승은 전형적으로 샤먼이 행하는 종교적 직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을 잔치가 벌어진 초원의 개울가에서 가정의 우환과 그것의 치유를 위한 작은 의례를 행했는데, 그 처방이라는 것이 입김을 불어넣은 사탕이라든지, 신령한 힘을 주입한 투그릭 지폐같은 것이었다. 또한 차강노르솜에서 만난 늙은 라마승은 티벳불교의 신격뿐 아니라 자연신령 로스-사브다크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는 자연신령들이 무척 강력하며, 자신에게 커다란 힘을 부여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현상은 외형적으로는 샤머니즘이 티벳불교에 제압되었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종교적인 지평융합을 이루었음을 나타낸다. 이런 융합이 가능하게 되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쥬코프스카야(Zhukovskaya)의 분석에 주목할 수 있다. 쥬코프스카야는 17세기 몽골에 재차 들어온 티벳불교는 이미 샤머니즘과 유사한 티벳의 토착종교인 본-포(Bon-po)와 여러 세기에 걸쳐 경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혼합된 형태였다고 분석한다.30)
이처럼 티벳불교와 샤머니즘의 융합은 한 쪽의 해체가 아니라 각각의 종교성을 풍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몽골 샤머니즘은 티벳불교의 판테온을 수용하면서 신관을 발전시켰고, 우주관을 정교화시켰으며, 화려하고 현란한 의례도 도입했고, 샤먼들은 티벳불교의 신격도 섬기게 되었다.31) 이것은 샤머니즘이 티벳불교에 일방적으로 흡수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박원길은 "어느 면에서는 몽골의 샤머니즘은 라마교(티벳불교)의 외형을 빌려 그대로 존속되어 갔다."고 분석한다.32) 즉 심층적으로는 샤머니즘적 인식체계가 그대로 지속되었다는 것이다.33)
이런 샤머니즘적 인식체계의 지속을 보여주는 사례는 몽골인들의 게르에 모셔진 신상들의 변화와 관련해서 논의할 수 있다. 종교적 정복자로서 침입한 라마승들은 권력의 비호아래 몽골인들의 게르에서 옹곤(ongon)을 치우고 대신 마하칼라상을 모시게 했다. 근대시기 러시아 짜르의 군대가 침입해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백색 군대는 온곤과 마하칼라상을 파괴하고 대신 니콜라스 성인의 그림을 걸어놓게 놓게 했다. 하지만 그 상징물들이 달라졌다고 해서 몽골인들의 믿음과 기대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체된 상징물들에 대한 신앙은 과거 샤머니즘의 신앙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것이 옹곤이건, 마하칼라이건, 혹은 니콜라스 성인이건 상관없이 가족의 보호와 목축의 안정을 기대하는 샤머니즘적 믿음체계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34)
종교 '대(對)' 종교로 본다면 현대 몽골 샤머니즘은 티벳불교에 비해 여전히 주변적이다. 라마승들은 샤먼들에 대한 폄하의 시선을 버리지 않고 있고, 일부 지식인들은 샤머니즘의 확산에 대해 '미신'이라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신앙민들의 일상적 의례와 신행에서 보면 샤머니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몽골의 신앙민들은 라마승을 찾아가 점을 치고, 복을 구하고, 또 같은 목적으로 샤먼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3) 자연 친화적 종교성
돌이킬 수 없는 위험선을 지나버린 듯한 작금의 생태위기는 시장의 조정을 근간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첨단 '과학기술'의 효과적 활용을 통해서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결정적 파국의 예상속에 인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은 그 파고가 더욱 높아가고 있고, 파괴는 인간만이 아닌 지구의 전 생명계가 파괴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한 처방은 근본적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에코센트리즘(Eco-centrism)'과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담론은 그런 변화의 상징적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즉 작금의 위기의 근원은 세계관의 잘못된 방향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해결 역시 세계관의 정정에서 시작해야만 한다는 각성이다.
이처럼 생태학적 사유의 대안적 전형을 찾으려는 관심은 샤머니즘을 비롯한 자연종교의 재발견을 촉진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축적된 공존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연친화적 사유를 행동으로 구체화(의례화)시키는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유'와 '행동'의 일치라는 측면은 생태학적 위기속에 샤머니즘이 지니는 핵심적 의의를 대표한다. 환경의 시대답게 어느 종교나 자기 전통안에서 생태친화적 사유를 찾아내지만, 그것을 의례속에 행동으로 풀어내는 종교는 그리 많지 않다. 현대 생태위기에 대해 제 종교의 무능력함은 사유의 부재가 아니라 의례화된 행동의 부재때문이다. 하지만 샤머니즘은 생태학적 사유를 개인적, 공동체적 삶의 전 영역에서 의례로 풀어내는 경향이 강하다.
생태학적 사유의 측면에서 보면 샤머니즘은 세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풍부한 인식을 담고 있다. 샤머니즘의 세계관은 모든 생물과 무생물, 자연현상에도 신령이 들어있다는 기본 전제를 통해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자연은 그 자체로 영적 세계 혹은 신령의 거주처로 인식된다. 샤머니즘 신앙민들의 이런 영적 연대성은 자연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교감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한편 '조상'에 대한 사유도 샤머니즘의 심미적 자연관을 구체적 행동성으로 만드는 한 동기를 이룬다. 하이지히는 몽골 샤머니즘은 조상숭배와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어서, 조상이 죽으면 대지의 신, 지역의 신령과 유사해진다는 믿음을 기술했다. 조상을 높은 산에 매장하는 풍습도 이와 관련된 것이다.35) 요한 카르피니(John of Plano Carpini)도 {몽골여행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어거데이칸은 자기의 영혼이 안녕을 얻기 위해 작은 숲을 자유로이 성장하도록 남겨두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곳에서 나무를 자르거나 꺾는 일을 금지시켰다."36) 이런 유목민들의 사유방식에서 숲은 인간의 영혼, 즉 조상의 영혼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자신들이 죽은 후 영혼이 돌아갈 공간이다. 그러므로 숲을 해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사후에 거주할 기반을 현세에 파괴하는 자해행위인 것이다.
전통적 유목민들의 이와 같은 자연친화적 인식은 종교적 상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태조건에서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어느 정도 자연을 개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정주농경이 곤란했던 생태조건에서 살아야했던 유목민들에게 자연은 정복을 통한 개조의 대상이 아니라 의존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스텝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기상 변화, 풀의 생장, 기온의 고저는 신령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몽골 샤머니즘의 자연친화성도 이러한 유목적 생태조건에서 파생했다. 기후변화가 극심했던 몽골 고온의 유목민들에게 자연의 움직임은 하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므로 바람, 천둥, 구름, 번개는 모두 텡그리와 관련된 현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37)
하늘의 텡그리 뿐만 아니라 대지의 여신 에튀겐(Et gen)도 '갈색 주름을 가진 어머니 대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면서 자연의 신성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었다. 몽골인들은 이 에튀겐에 의해 만물이 생장한다고 믿었다.38) 이처럼 하늘의 변화와 대지, 자연의 모든 것은 신으로 살아있는 것이었다.39)
이러한 생태친화적 사유는 의례를 통해 행동으로 구체화되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령의 종합적 공생 구조를 일상속에 만들어낸다. 몽골 샤머니즘에 있어서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로스-사브다크 신앙과 관련된 의례이다.40) 로스-사브다크 신앙이 환경 이슈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로스의 거주지인 물과 사브다크의 거주지인 땅을 더럽히거나 모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행동을 '의례화'했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철이 바뀌면 초지를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머물렀던 게르를 해체한다. 그 때 우선 게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서 말뚝을 박았던 자리를 흙으로 다시 메꾸고(사브다크의 상처를 아물게하고) 땅을 '빌려주었던' 것을 감사하는 의례를 행한다. 초원은 사브다크의 집이기 때문이다. 한편 물도 로스의 집이므로 우유나 피, 각종 쓰레기, 특히 머리카락 같은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41)
험프리도 땅에 발을 끌고 다니는 것, 돌을 옮기는 것, 알을 가져오는 것 등을 금지한 것, 그리고 강, 게르 주변, 길, 흐르는 물에서의 방뇨 금지 등의 사례를 보고했다.42) 이런 금기사항들의 의미는 다른 생명체의 공간인 신성한 자연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목민들에게 자연은 정복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철을 따라 풀을 찾아 이동하며 그 안에 잠시 거주하도록 땅을 빌려준 신들의 대지인 것이다.
또한 일상화된 자연의례는 게르를 중심으로 실천된다. 몽골인들에게 게르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이다. 그러므로 일상적 삶의 공간인 게르가 종교적 성화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게르의 일상적 자연의례를 대표하는 것은 매일 아침에 행하는 사촐리(Sachuli) 의례이다. 헙스걸 동쪽의 샤먼 로스타이의 집을 갔을 때 그의 통나무 게르 측면에 푸른 하닥을 묶은 사촐리 도구를 볼 수 있었는데, 샤먼의 가족들은 지금도 매일 아침 그것으로 우유와 차를 네 방향으로 뿌린다고 했다. 그것은 사방의(모든 곳의) 자연에 거주하는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이런 생명존중의 의례화된 행동은 사회주의 시기를 거쳐 자본주의로 급선회한 현대에도 상당부분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종교가 없어요."라고 말하던 젊은 몽골인들도 숲에서 나무를 꺽지 말라는 것, 흐르는 물에서 몸을 씻지 말라는 것 등 자연과 관련된 금기사항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것은 자연의례가 문화화되어 특별히 그 의미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행동의 기원은 유목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종교적 상징작용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몽골의 생태위기는 동북아 환경단체의 연대에 의한 나무심기 운동, 사막화 방지,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개발 등 여러 가지 정책적 대안을 산출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위기의 극복은 몽골인들의 전통문화 복원, 샤머니즘 및 티벳불교의 자연관과 행동의 실천적 재개를 통해 강화될 것이다. 현대 환경운동이 원주민의 종교적, 문화적 운동과 함께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4) 역사속의 트라우마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공동체인 수렵사회에서는 샤먼이 치유자이자 재판관이며 족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고대국가의 탄생과 함께 샤먼의 힘은 약화되었고, 그동안 샤먼이 수행했던 기능들도 다른 종교적 직능자들과 정치세력들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국가와 제도종교의 성장에 따라 샤머니즘은 늘 주변적 위치로 밀려났고, 샤머니즘 신앙의 저변이 넓은 곳에서도 특권적 종교의 외곽에서 민중의 욕구를 채워주는 주변적 종교현상으로 머물러 있었다. 특히 선교나 전파를 통해 유입된 다른 종교전통이 정치적 결탁에 의해 우위성을 획득한 경우에는 샤머니즘에 대한 억압이 '우상파괴'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역사속에서 겪은 샤먼의 트라우마는 다른 종교와의 관계, 그리고 근대화(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 양자를 포함하는)의 방향에서 경험되었다.
우선 선교적 종교들은 토착 원주민들의 의미체계를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진리를 전하기보다는 일방적 정복자로서의 자세를 취했다. 대부분의 세계종교가 세속 권력의 정복전쟁,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이념적 협조자로 참여하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총과 칼에 포위되어 세례를 '당했고', 집에는 피부색도 다르고 얼굴 형태도 다른 서양의 신들을 모셔놓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샤먼들은 미치광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샤머니즘에 가장 큰 시련은 20세기 사회주의 권력의 반종교정책의 실천과정이었다. 원래 칼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직접적 탄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정책적 '무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권력은 종교와 종교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사회주의 권력은 샤머니즘 전통을 '봉건적 미신'이라고 선전했고, 샤먼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타인들을 착취하는 사악한 존재라는 캠페인을 벌였다.43) 특히 샤머니즘의 정치적 전통이 활발했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중국 지역에서는 여타의 종교인들과 함께 샤먼들도 집요하고 잔혹한 탄압에 시달려 대부분 샤먼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44)
사회주의 치하의 탄압과정에서 종교인들은 누구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지만 샤먼들이 갖는 트라우마는 보다 심각했다. 그 이유는 샤머니즘이 교회나 사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벳불교는 사원을 문닫고 라마승들을 쫓아내면 됐지만, 샤먼은 샤먼 '개인'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샤먼들은 라마승들처럼 조직적 저항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으며, 그 시기의 개인적 고통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지속되고 있다.
벡커(Jasper Becker)는 고통스러운 사회주의 시기를 살았던 차강노르의 샤먼 곰부후(Gombuhu)의 트라우마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곰부후는 미신을 실천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언도 받고 므릉(Mohron)의 감옥에 수감되었고, 다시 울란바타르로 이송되면서 형이 삭감되어 2년을 갇혀 지내야 했다. 곰부후가 불러낼 수 있었던 신령들도 국가의 폭력 앞에는 무력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종교의 자유가 다시 허용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곰부후를 괴롭혔다. 벡커가 굿을 부탁한 다음날 곰부후는 불안에 휩싸였다. 전날 밤 관리 한 사람이 그의 게르 근처를 다녀갔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 당 서기의 허가증을 받아온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허가증에는 자유롭게 굿을 할 수 있으며, 지난 밤 곰부후의 집 근처를 다녀간 관리는 '단지' 호기심 때문에 갔던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45)
벡커의 이야기는 우리의 필드워크 경험과도 일치한다. 지난해 우리가 직접 만났던 헙스걸의 80세 노 샤먼 로스타이도 1963년에 정치적 반체제주의자로 몰리자 자발적으로 숲에 가서 무복과 북과 거울, 마우스하프 등 무구 일체를 태워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블랙 라마라고 소개했던 차강노르 솜의 늙은 라마승은 처음에는 우리를 강하게 경계하며, 정부로부터 받은 '허가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종교적 자유를 얻은지 십년이 넘었는데도 그 트라우마의 영향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급격한 유입과 함께 종교적 자유를 얻은 몽골의 샤먼들은, 현재로서는 전통의 복원과 장려 정책에 따라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샤먼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자본주의 문화가 샤먼의 트라우마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것은 도시로의 이주와 자본주의 소비경제로 인한 상처이다.
곰부후의 딸은 아버지가 므릉과 울란바타르까지 끌려갔던 투옥의 경험은 자연으로부터 격리라는 끔찍한 고통이었다고 설명했다.46) 이는 자연신령과의 교감과 접촉이 불가능한 도시에서 샤먼들이 정상적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후 유목민들의 도시이주가 가속화되고 있고 샤먼들도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 티벳불교의 색채가 짙은 옐로 샤먼들이나 도시적 성향의 네오 샤먼들은 잘 적응하였지만, 몽골 북부의 전통적인 샤먼들은 심각한 불안상태를 보이고 있다.
바이라는 차강노르 지역에서 무척 영험한 젊은 여성 샤먼이었다. 필드워크에 들어가기 전 필름을 통해 본 그녀의 굿에서는 영적 파워가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녀의 힘은 의례를 통해서 발현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무척 황폐했다. 처음 찾아갔을 때는 술에 취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였다. 도시로 이주해오면서 알콜릭에 빠져 혼미한 의식 상태를 겪는 바이라의 현실은 시장경제와 도시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바이르의 그런 모습은 차강노르에 가서 만난 바드카와 강한 대조를 보여준다. 바드카는 바이라의 언니이자 영험한 여성샤먼 슈렌의 딸이었다. 그녀는 전문적으로 샤먼업을 하지 않았지만 바야르와 마찬가지로 영적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은 정갈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몽골인들의 전통 게르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그녀의 통나무 게르처럼 깨끗하고 잘 정돈된 실내는 본 적이 없었다. 흥겹게 노래하고 부지런히 일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바드카와 비교할 때, 이전보다는 돈은 더 벌고 있는지 모르지만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바이라의 삶은 자본주의의 트라우마를 반증한다.
이처럼 역사속의 트라우마는 샤먼들에게 오랜 상처로 기억되고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상흔을 통해 샤먼 개인은 고통의 연대성을 고양시킨다. 루이스(I.M. Lewis)는 샤먼의 개인적 트라우마는 신의 부름으로 이해되고 압도적 트라우마의 경험은 신령들을 섬기도록 이끈다고 분석하면서, 그 입문을 "고통의 의례"라고 표현했다.47) 즉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하는 샤먼 후보자가 그 고통을 극복하고 종교적으로 자신을 승화시킬 때 타인의 고통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듯이, 역사속의 트라우마 역시 장기적으로는 샤머니즘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샤먼들의 트라우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복원되거나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샤머니즘의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 하이지히 말대로 '사라진 종교'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샤먼이 죽고, 무구가 불태워져도 샤머니즘 신앙민들의 삶에 녹아든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며,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샤먼의 슬프지만 의연한 삶을 나타낸다.
4. 결론 : 변화 속의 몽골 샤머니즘
사회주의 블록의 해체 이후 독립한 국가들이 겪는 정치적 진공상태는 문화적, 인식론적, 도덕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의 사회주의 이념이 담당했던 기능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적 정체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과거 소비에트에 속했던 여러 국가들, 민주화를 통해 공산당 지배체제를 종식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강하게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윤리적 질서를 형성할 대안적 이념은 수립되지 못했고, 그 결과 폭력적 민족주의가 내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갈등의 이면에서 비록 부정적이긴 하지만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즉 사회주의의 포기 이후 짧은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민족 단위의 정체성을 구분짓는데 종교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이후 신생국가들에서의 종교의 기능과 역할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종교적 기획의 폭이 정교회, 이슬람,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등 뿐만 아니라 '샤머니즘'까지도 포함하면서 넓혀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카 공화국처럼 샤머니즘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수립하려는 시도도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몽골 정부 역시 민족정체성 확립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 강제로 잊혀졌던 징기스한의 역사적 복원과 신격화가 한참 진행중이고, 姓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키릴문자 대신 전통 몽골 문자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총체적인 전통의 복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몽골 전통의 중심축이었던 종교 역시 빠른 속도록 복원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몽골은 티벳불교가 지배적 위치로 올라섰고, 도처의 사원이 복원되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라마승들의 사회참여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벡커는 민주화시위에서 라마승들이 종교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며 뛰어들었고, 사회주의를 대체할 마땅한 도덕적 기준이 없었던 개혁세력에게 자연스럽게 티벳불교가 사회적 도덕률이자 기준점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현지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라마승들에 대한 몽골인들의 존경심은 그것이 현실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변화속에 샤머니즘의 위치는 어떤 것일까? 현재 몽골의 샤머니즘은 전통문화의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특히 전세계 환경운동가들이 관심갖는 몽골의 생태계 보존의 차원에서 샤머니즘은 효과적 신념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현대 몽골 사회에서도 샤먼은 여전히 소수이며, 라마승들의 종교활동과 중첩되는 폭이 넓다보니 샤먼만의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도 못하다. 뿐만 아니라 벌써부터 샤먼을 트릭스터로 몰아대는 사회적 비판 여론이 일어나고 있어서, 자칫 근대화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있는 듯하다.
현재의 몽골 샤머니즘은 '자유롭지만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는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였다. 샤머니즘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늘 변화해 왔다. 그 변화의 현실이 '사실'에 가깝다. 몽골 샤머니즘을 깊이 이해하려면 고대 유목민들의 과거적 샤머니즘이 아니라 새롭게 고안되고 창조된 산물로서의 현재적 샤머니즘 현상을 연구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잊다.
샤머니즘은 초원을 닮았다. 혹독한 한파와 가뭄으로 죽어버린'듯한' 초원도, 날씨가 온화해지고 비가 내리면 금새 풀과 꽃들로 가득찬 생명의 대지로 부활한다. 과거의 티벳불교도, 그리고 현대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도 샤머니즘의 생명력을 고갈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민초들의 종교이다.
[주]
1) 김성례는 신들린 개인이 샤먼으로 사회화되는 이 과정을 샤먼 커리어 형성의 예술적 자기창조 과정으로 해석한다. 김성례, "신들림 체험과 은총에의 추구", 한국문화인류학 제 16집(1984.12) pp.73-85. 참조
2) Jonathan Z.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ed. by, Mark C. Tayor,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The Univ. of Chicago Press, 1998, p.269.
3) 영화 {미션}에서 인디언들의 아름다운 성가를 들으면서 "앵무새도 훈련시키면 노래한다." 라고 비웃는 식민주의자의 폭언처럼, 식민주의자들에게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닌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 잔상이 도처에 남아있다.
4) Jonathan Z. Smith, 앞의 책, p.269.
5) 그는 북방에서 관찰되는 사람들의 '종교'는 교리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삶의 방식' 혹은 '마음의 철학'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Juha Pentik inen, Shamanism and Culture, Etnika, 1997, p.75.
6) Robert N. Hamayon, Are "'Trance', 'Ecstasy', and Similar Concepts Appropriate in the Stusy of Shamanism?" Shaman Vol. 1. No. 2. Autumn 1993 참조
7) Bill B. Brunton, "서구에서의 샤머니즘의 재발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샤먼유산의 발견}, 1998, p.24.
9) Caroline Humphrey, "Theories of North Asian Shamanism", ed. by, Ernest Gellner, Soviet and Western Anthropolog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0, p.244.
9) Caroline Humphrey, "Shamanic Practices and the State in Northern Asia : Views from the Center and Periphery", ed. by, Nicholas Thomas and Caroline Humphrey, Shamanism, History ane the State, Michigan, 1996, pp.191-198.
10) Piers Vitebsky, The Shaman, Macmillan, 1995, p.151.
11) Piers Vitebsky, "From cosmology to environmentalism : Shamanism as local knowledge in a global setting", ed. by, R. Fardon, Counterworks : Managing the diversity of knowldege, Routledge, 1995, p.185.
12) 둘람은 "상징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몽골의 영적 문화의 본질적인 철학적 관점을 발견하려 했다. 이 철학은 물질적 존재와 영적 관념 사이의 절대적 구분 대신 두 원천을 상징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은 샤머니즘을 형이상학적 체계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살아있는 종교현상을 추상화하는 위험성이 있다. S. Dulam, "Humans, the Sky and the Earth as Symbolic Spheres in Mongolia Spiritual Culture", 5th Conference of ISSR, 1999. 참조
13) Walther Heissig, The Religions of Mongolia, Routledge & Kegan Paul, 1970, Preface.
14) Paul Willis, 서동진,문현 옮김, "새로운 민족지의 방법론과 문화정치학", {현대사상} 2000년 봄호, p.161.
15) Piers Vitebsky, The Shaman, p.11.
16) Morris Rossabi, "Mongolia in the 1990s : from Commissars to Capitalists",
http://www.eurasianet.org/resources/mongolia/links/rossabi.html
17) Piers Vitebsky, "From cosmology to environmentalism", p.185.
18) 유목사회에서 씨족이 갖는 권위는 현대 몽골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나린텔 솜에 갔을 때 동행했던 투부쉰자르갈의 씨족은 그 지역에서 명망있는 집단이었으므로 행정군수도 그 앞에서는 자세를 낮출 정도였다. 아직도 주변부 지역에서는 행정적 권위보다 씨족의 권위가 더 강함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19) D. Tserensodnom, 이선아 역, "{몽골비사}의 무속신화", 전북대인문학연구소, {동북아 샤머니즘 문화}, 소명출판, 2000, p.272.
20) 험프리도 이런 유목민들의 하늘 개념 - 천계로의 여행, 수직적 하늘 - 은 엘리아데처럼 원초적 샤머니즘의 근거로 볼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생겨난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aroline Humphrey, "Shamanic Practices and the State in Northern Asia", pp.194-197.
21) Caroline Humphrey, 앞의 책, p.201.
22) 박원길, {북방민족의 샤머니즘과 제사습속}, 민속원, 1998, pp.303-304
23) 박원길, 앞의 책, pp.288-299.
24) 박원길, 앞의 책, pp.309-311.
25) Caroline Humphrey, "Shamanic Practices and the State in Northern Asia", p.223.
26) 1990년대 이후 야쿠트족은 샤머니즘을 국가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것이 비록 '백(白)샤머니즘'의 정제된 형태를 취한다 할지라도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확보를 샤머니즘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Majorie Mandelstam Balzer, "Shamanism and the Politics of Culture : An Anthropological View of the 1992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hamanism, Yahutsk, the Sakha Republic" (Autumn 1993) 참조.
27) 종교의 힘이라는 것이 결국은 세속권력의 후원 혹은 용인의 결과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강력한 종교체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해도 국가권력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완전히 없어지기도 하는 역사적 경험은 그것을 반증한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아쇼카의 통치때처럼 국가종교화되기도 했지만 현재의 인도에서는 거의 사멸한 종교에 가깝다. 이처럼 대단한 문화적 영향력과 종교적 엘리트들의 존재, 그리고 교리와 교단체계의 완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역사내적 부침은 흔한 것이다.
28) 박원길, 앞의 책, pp.362-367.
29) 샤머니즘적인 춤인 참(Tsam)은 몽골 티벳불교의 대표적 연행이다.
30) C.Humphrey, "Theories of North Asian Shamanism", ed. by, Ernest Gellner, Soviet and Western Anthropolog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0, p.249.
31) 울란바타르에서 만난 남성 샤먼 바얌바도르지(Bayambadorj)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는데, 그에게 티벳불교의 가르침과 체계는 그의 샤먼업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았다.
32) 박원길, 앞의 책, p.367.
33) 이와 관련하여 오트너의 논의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쉐르파 사회에서 샤머니즘이 쇠퇴한 원인은 종교적 권력기구인 불교 승단의 압력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그러나 샤머니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샤머니즘은 다른 형태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민중은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는 라마승보다는 샤먼들에게 더 호의를 보였으며, 화신한 라마인 툴쿠(Tulku)를 일정의 업그레이드된 샤먼(upgraded shaman)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Sherry B. Ortner, "The Case of the Disappearing Shamans, or No Individualism, No Relationalism", ed. by, Debra Skinner, Alfred Pach Ⅲ and Dorothy Holaand, Selve in Time and Place : Identities, Experience and History in N데미, Rawman & Little Field, 1998, pp.259-260.
34) 험프리는 러시아의 지배 시기 부리야트 지역 몽골인들의 개종은 다분히 '표면적(superficial)'인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즉 정교회에 들어간 사람들도 교회를 가기보다는 여전히 샤먼을 찾아갔고, 니콜라스 성인의 그림은 농경의 생산성과 행운을 가져오는 옹곤(ongon)이었다는 것이다. C. Humphrey, Teories of North Asian Shamanism, p.251.
35) Walther Heissig, 앞의 책, pp.11-12.
36) 박원길, 앞의 책, p.476.에서 재인용.
37) Walther Heissig, 앞의 책, p.57.
38) Heissig, 앞의 책, p.102.
39) 이러한 자연친화성을 강화한 배경에는 티벳불교의 영향도 있었다. 특히 티벳불교의 판테온을 수용하면서 하위 텡그리들은 각 지역의 자연신들과 융합되었고, 특별한 지경(landscape)과 관련지어졌다. 이에 대해 하이지히는 "몽골의 모든 텡그리들은 높은 산이나 급류 같은 지역적 의미를 지닌 자연현상을 신격화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Walther Heissig, 앞의 책, p.59. 참조.
40) 원래 '로스'는 물의 주인이고 '사브다크'는 대지의 주인이지만 몽골인들은 별개의 신격으로 보지 않고 함께 작용하는 신격인 '로스-사브다크'로 믿는다.
41) 데 마르하호, "몽골 샤머니즘의 초원제에 대하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속학연구소, [몽골과 한국 민속의 비교 심포지엄] 자료집, 2000, pp.126.-127.
42) C. Humphrey, "Chiefly and Shamanist Landscapes in Mongolia", ed. by, E. Hirsch and M. O'Haulon, {The Anthropology of Landscape}, Oxford, 1995, pp.141-142.
43) Jane Morning Atkinson, "Shamanism Today",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1992, p.315.
44) 특히 소비에트 정권은 시베리아의 샤먼들을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지역 지도자들이라고 간주해서 더욱 가혹한 탄압을 자행했다. 그들은 샤먼들을 공동체에서 추방했고, 심지어 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Piers Vitebsky, The Shaman, pp.136-137
45) Jasper Becker, The Lost Country : Mongolia Revealed, 1992, Sceptre, pp.172-173.
46) Jasper Becker, ibid.
47) I.M. Lewis, Religion in Context : Cults and Charis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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