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음악

[손님]

조선후기의 음악

이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인 광해군 때부터 갑오개혁(1894년)이 있었던 19세기 말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궁중음악이 쇠퇴하였으며, 중상층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풍류음악이 발전하였고, 전문예술인에 의한 공연예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 청나라를 왕래하던 사신들을 통하여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었고, 상공업의 발달로 인하여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유흥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문음악인에 의한 음악 곡목이 크게 늘어났다

궁중음악의 쇠퇴

조선 후기의 아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큰 전란으로 인하여 단절되기도 하였고, 국가 재정의 피폐로 인하여 그 규모가 현저히 축소되었다.

<종묘제례악>은 연주규모가 감소되어 《악학궤범》에서 36인이었던 등가의 악공은 20인으로, 72인이었던 헌가의 악공은 22인으로 줄었으며, 음악적인 내용도 변화를 겪어 다양하던 리듬이 비교적 균일한 등시가의 음악으로 변하였다.

궁중의식에서 연주되던 전정(殿庭) 음악의 규모도 축소되었으며, 특히 편성에서 현악기가 빠져 관악중심의 편성이 되었다. 연향의 음악은 향악기와 당악기가 혼합된 향당교주(鄕唐交奏)가 일반화되었으며, 여러 궁중잔치에 추어지던 정재(呈才)의 창사(唱詞)가 순한문 가사로 바뀌고, 춤을 추는 무용수의 제도가 내연(內宴)에서는 여기(女妓)로, 외연(外宴)에서는 무동(舞童)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어가의 행차에 따르던 음악인 전후부고취의 음악도 편성이 축소되었으며, 숙종·정조대에 이르러 어가의 행차나 사신의 행차에 새로운 악대가 나타나는데, 오늘날의 대취타와 비슷한 편성의 세악수(細樂手)와 취고수(吹鼓手)의 등장이 그것이다.

민간 풍류방 음악의 발달

조선후기에는 사대부와 부유한 중인계층의 음악애호가들에 의한 풍류방 음악이 발달하였다. 이들 풍류방 음악은 <영산회상>으로 대표되는 줄풍류와 가곡(歌曲)이 주류를 이루었다. 불교적인 내용의 성악곡이었던 영산회상은 조선 후기에 기악곡화 되었고, 다양한 변주곡이 첨가되어 모두 9곡으로 구성되는 모음곡을 이루게 되었는데, 거문고, 가야금, 양금(洋琴) 등의 현악기와 단소, 대금 등의 관악기가 한데 어울려 연주되었다. 풍류객들은 한데 모여 각기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을 즐겼는데, 때로는 신분이 낮은 전문음악인들이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들 풍류객들은 지식층이었으므로, 그들이 연주하던 음악을 기록한 악보를 많이 남기고 있는데,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고악보로는 거문고 악보가 가장 많아 40여종을 넘고 있으며, 양금 악보도 30여종이나 된다. 특히 양금은 조선 후기에 청나라를 통하여 들어온 서양의 악기지만, 연주법이 간단하여 비전문 음악가인 풍류객들의 사랑을 받고 빠른 시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풍류방에서 주로 연주된 음악으로는 <여민락>과 <보허자>도 있는데, 본래 당악계통 악곡인 <보허자>는 풍류방에서 현악기 중심의 실내악으로 연주되면서, 향악화 되는 과정을 거쳤고, 많은 파생곡을 낳게 되었다.

풍류방 음악의 다른 한 가지는 성악곡인데, 조선 전기에 발생한 <만대엽>이 <중대엽>, <삭대엽>으로 확대되고, 여기에 다양한 악조가 생겨나서 음악의 다양성을 더하게 되었다. 매우 느린 음악인 <만대엽>은 영조 이후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고, <중대엽>도 19세기에 접어들어 거의 불리지 않았다. 오늘날 남아 전하는 가곡은 <삭대엽> 계통의 악곡인데, 시조시(時調詩)를 기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삭대엽>은 매우 다양한 변주곡을 낳게 되었고, 남창과 여창의 곡조가 생겼으며,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성악곡인 가곡의 반주음악을 기악곡으로 독립시켜 연주하는 음악들이 생겨나서 우리음악을 풍부하게 하였다. 가곡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사람을 가객(歌客)이라 하는데, 주로 중인 신분이었던 가객들은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 등의 가집(歌集)을 남기기도 하였다.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한편 조선 전기에 싹튼 문학장르인 가사(歌辭)는 단순히 읽히는 장르가 아니라, 소리내어 읽고, 읊는 장르로 발전하면서 ‘십이가사(十二歌詞)’라는 가창 장르를 낳았는데, 이는 가객들에 의하여 불려졌다.

가곡이 관현악 반주를 수반하는 엄격한 성악곡이고, 전문적인 수련을 거친 가객들이 주로 부르는데 비하여, 비전문가도 쉽게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장르가 발생하였는데, 기존의 <삭대엽>에 얹어 부르던 시조시를 단순한 가락에 얹어 부르는 시조창(時調唱)이 나타났다. 18세기말과 19세기 전반에 나타난 시조창은 비전문 음악인도 쉽게 배워 부를 수 있는 악곡이 되었으며, 평시조 이외의 여러 변형들이 생겨나 민요, 휘모리잡가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문예능인의 음악

조선 후기에는 전문적인 음악인에 의하여 공연되는 음악 장르가 많이 나타났다. 소리광대에 의하여 연행되는 판소리도 그 중의 하나이다. 유진한의 《만화집》에 의하면 18세기에 이미 춘향가가 불려졌음을 알 수 있으며, 송만재의 《관우희》에 의하면 19세기 중엽에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배비장전>, <강릉매화타령>, <옹고집전>,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12마당의 판소리가 형성되었다. 이들 판소리는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내용이나 악곡의 완성도가 높은 여섯 마당이 남게 되었는데, 신재효가 이들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한 바 있다.

[만화집]

판소리는 18세기인 영조·정조대에 우춘대, 하한담, 최선달 등의 명창이 활동하였고, 19세기 전기에는 권삼득, 모흥갑, 송흥록 등 여러 명창이 나타나 기존의 판소리에 새로운 내용의 음악을 덧붙였다. 노랫말과 가락을 새롭게 짜서 부른 대목을 ‘더늠’이라 하는데, 이들 더늠 가락은 후대의 명창들에 의하여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도 있다. 이 시기 판소리에는 지역적인 특징도 드러나는데, 섬진강 동쪽 남원, 구례 등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동편제와, 그 서쪽 광주, 나주, 보성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서편제, 그리고 충청도지역의 중고제가 그것이다.

고종 무렵인 19세기 후반에는 김세종, 김정근을 비롯한 여러 명창이 활동하였는데, 이들의 음악이 오늘날의 판소리 명창들에게 전승되고 있으며, 현재의 판소리는 19세기말에 이미 그 틀을 갖추었다.

19세기 말 호남·충청지방에서 활동하던 기악 명인들은 시나위 가락과 판소리 가락을 악기에 실어 표현하였는데, 이와 같은 음악이 발전하여 산조가 되었다. 산조를 처음 연주한 악기는 가야금인데, 김창조, 박팔괘, 한숙구 등 명인들이 이 시기에 각기 독특한 산조를 연주하였다.

한편 사당패 소리로 전승되던 선소리 산타령은 조선 말기에 전문적인 소리꾼 집단에 의하여 불려졌고, 서울지방의 서민층 소리꾼들은 잡가를 즐겨 불렀다.

조선 후기 음악사의 경향

조선 후기 음악사의 일반적인 경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 성악곡으로 불리던 많은 음악이 기악곡화 되었다. 성악곡에서 가사가 탈락하고, 그 선율이 기악 연주에 맞도록 변주되는 경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궁중음악 중 <낙양춘>, <보허자>, <정읍>, <여민락> 등이 모두 그러하며, 풍류방 음악인 <영산회상>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 말기에는 가곡에서 <자진한잎> 계통의 기악곡이 파생되었으며, <산조>도 판소리의 성악화 경향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관현타악기의 합주로 연주되던 음악의 편성이 축소되면서, 현악기가 줄어들거나 탈락되어 관악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전문 음악인에 의한 궁중음악이나 민간의 대풍류곡들이 관악위주의 편성이 된다.

다양한 변주곡이 만들어져 연주곡목을 확대하였다. <영산회상>과 <가곡>의 곡목이 확대되는 과정이나, <보허자>의 변주곡이 모두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기존의 음악작품을 부분적으로 변형시켜 곡목을 확대하는 방법이 우리음악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는 전통적인 방법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악곡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음역이 고음화되는 경향이다. 여러 변주곡이 첨가되어 큰 규모의 모음곡이 되는 과정에서, 느린 악곡의 장식음이 덜어져 나가면서 속도가 빨라지는 악곡을 계속적으로 추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평조의 악곡이 줄어들고, 그 보다 높은 악조인 우조의 악곡이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유교의식이나 궁중 의례의 부수적인 기능을 주로 담당하던 조선 전기의 음악과는 달리, 민간의 음악이 조선 음악문화를 주도하면서,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기 시작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데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