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부활의 소망 Date 2016. 3. 27
Text 1Ths 4,13-18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 어렸을 때 들은 재미난 옛날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웬 옛날얘기냐고요? 다 이유가 있으니 들려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양반이 왜 저 얘기를 하나 생각하며 들어보십시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 ‘햇님 달님 얘기’ 아십니까? 떡 장사였던 엄마는 길에서 만난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떡 다 뺏어먹고 나중에는 자신까지 잡아먹히지요. 애들까지 잡아먹으려고 아이들만 있는 집에 호랑이가 가서 문열어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가 아니고 손이 엄마 손이 아니라며 문을 안 열어줬지만 너무 엄마가 보고 싶던 여동생이 그만 문을 열어주니 호랑이가 쫓아옵니다. 황급히 달아난 남매는 뒤뜰에 있는 높은 나무 위로 피합니다. 호랑이가 나무 밑에서 너희들 어떻게 그 나무에 올라갔는지 알려달라고 꼬드깁니다. 오빠는 나무에 참기름을 바르면 잘 올라올 수 있다고 속였는데 자꾸 미끄러지는 호랑이를 보고 여동생이 깔깔 웃으면서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 그거 밟고 올라오면 되는데 그것도 모른다고 말을 하니 드디어 호랑이가 그렇게 해서 막 잡아먹으려고 올라옵니다. 그때 남매는 하늘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살려주시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게 내버려두시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랬더니 정말 튼튼한 새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남매는 그 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보고 있던 호랑이도 남매의 기도를 흉내 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도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게 하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못 올라가게 하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하고 거꾸로 기도했더니 썩은 헌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호랑이는 그 줄을 붙잡고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수수깡에 찔려 죽는 바람에 수숫대가 붉게 되었고, 하늘로 올라간 오빠는 해가 되고 동생은 달이 되었는데, 달님이 된 동생이 밤은 무섭다고 해서 결국 오빠가 대신 달님이 되고 여동생이 햇님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힘은 세지만 우매한 호랑이와 유약하지만 지혜로운 아이들이 대비되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새 동아줄과 썩은 동아줄입니다.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하죠? 자기는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잡으면 떨어져 수수깡에 찔려죽은 호랑이 신세가 됩니다. 기왕에 얘기 꺼낸 김에 한 가지 얘기를 더 하겠습니다. 남자들의 시집살이라고 하는 군대는 특히 줄을 잘 서야 그 시집살이 수월하게 한다고 합니다. 보안대에 신병이 왔습니다. 보안대는 군대의 권력기관이거든요. 대위가 대령과 맞먹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거기는 거의 다 가까운 친척이 장성, 국회의원, 장관 등 빽이 든든한 사람들만 배정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임병이 신병에게 묻습니다. ‘야, 너 무슨 빽으로 여기 왔어?’ 그랬더니 신병 대답이 ‘줄을 잘 서서 왔습니다.’ ‘뭐야? 무슨 줄?’ ‘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에 바로 제 앞과 뒤에 줄서서 있던 아이들이 둘 다 아버지가 장성이어서 중간에 낀 저도 같이 불러서 둘은 육군본부로 배정 받고 전 보안사병이 됐습니다.’
영상을 한 번 보시지요. 화면에 보이는 저 친구 많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나름대로는 요령을 부려봤는데 결국 망하고 말았네요. 선거철이 돼서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며 대통령에게 줄서기를 하는 후보들 많지요. ‘나 대통령 하고 이런 사이야.’ 과시하느라 현수막, 명함에 대통령하고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있는 사람들 쫙 깔렸습니다. 그거 길어봐야 2년만 지나면 썩은 동아줄 될 줄입니다만 당장은 쓸 만하니 경쟁적으로 친박을 넘어 진박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걸 봅니다. 언제나 이 나라에서 이런 꼴 안 볼 수 있을는지, 내 죽기 전에는 한 번 보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도 줄서기를 잘 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이 평탄하니 찾는 사람이 많다는 말씀(마7,13-14)입니다. 주님은 비록 좁고 험하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곳에 줄을 대고 있습니까?
2. 오늘 읽은 살전4,13-18 말씀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있을 부활과 휴거에 관한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주셨느냐 하면 13절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몰라서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죽은 자나 나중에 죽을 자들이나 다 다시 살아날 터인데, 마치 자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될 것이라고 1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혹 예수님 재림 당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은 육신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도 15-16절에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씀이 17절 끝 부분 말씀인데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인생은 결코 죽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시 살아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또 죽는 그런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요5,28-29에는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하였고요, 계20,11-15에는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사람은 세상 살다가 죽는데 죽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부활, 즉 영원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서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활은 영원한 새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새 세상에서 영원불멸의 몸으로 영원토록 사는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몸이 어떤 몸인지에 대하여 고전15,50-54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홀연히 변화되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는 것을 운이 없거나 재수 없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부활절 말씀을 통하여 정말 몰라서는 안 될 한 가지 진리가 더 있습니다. 18절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입니다. 무엇을 위로하란 말입니까?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왜 위로가 됩니까? 부활은 새로운 영생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아무에게나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문과 멸망의 문 둘 중에 생명의 문에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만 위로가 됩니다. 다른 줄에 서 있는 사람은 위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주일에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에 등장했던 도사처럼, 비명을 지르고, 원한에 이를 갈며, 원통하여 통곡할 일입니다. 그런 이들은 부활이 소망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입니다. 태워도 태워도 구더기조차 죽지 않는 천국 쓰레기장 게헨나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확실하게 예수님 편에 줄을 서 있습니까? 할렐루야~
3. 미국 PGA에서 뛰고 있는 최경주 선수는 아주 신실한 감리교인입니다. 한 집회에서 간증하였는데 자기가 골프선수가 된 것은 줄을 잘 섰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역도선수 하고 싶은 사람 나오라고 해서 모두 12명이 나갔는데 6명씩 갈라세워놓더니 최경주가 있는 쪽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골프선수가 되라고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그게 불만이기도 했는데 착한 그가 그저 시키는 대로 가다가 보니까 골프선수가 되었고 믿음 좋은 아내를 만나 기도하며 선수생활을 하였더니 오늘날 같은 유명 골프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계21,10ff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준비하여놓으신 새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지극히 귀한 보석같이 빛이 나고 벽옥과 수정처럼 맑더라고 했습니다. 오염되고 망가졌던 세상 대신 완벽하고 온전하여 거기 사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놓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새 세상입니다. 사도들의 믿음이 기둥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빛이 항상 둘러 비추어 그늘진 곳이 전혀 없는 곳, 필요악이라는 부작용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법과 질서의 나라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다시 새 세상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와 살 수 없는 사랑과 평화만 가득한 곳입니다.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얼마나 행복한 세상일까요? 그런데 그 나라는 생명의 부활에 연결된 줄에 서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부활 소망은 금수저입니다. 진짜 확실한 로또번호입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아멘!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아멘!” 노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