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 수정봉-옥양봉-석문봉-일락산(서산) 산행기
**산행일자 = 2020년02월01일(토요일)
**산행코스 = 용현휴양림 입구-수정봉-옥양봉-석문봉-일락산-용현봉-보헌사지-휴양림 입구
**산행거리 = 16.86 Km(4시간33분32초 소요 , 휴식시간 23초 포함)
**일락산
높이 : 521m,위치 : 충남 서산시
특징, 볼거리
가야산은 주봉인 가야봉(677.6m)을 중심으로 원효봉(677m), 옥양봉(621.4m), 일락산(521.4m), 수정봉(453m), 상왕산(307.2m)등의 봉우리가 연결된다.
주변에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등
백제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개심사쪽에서 서산목장을 거쳐 마애삼존불과 보원사-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원하게 뚫려 가야산을 한 바퀴 돌면서 가야산의 진면목을
구석구석 볼 수 있게 됐다.
**개심사
마음을 여는 사찰이라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개심사는 작은 절이지만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 로 충남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이 돋보이는 절이다.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주차장에서 절마당에 이르는 굽이진 산길이 호젓하고 아름다운데
봄철에는 왕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개심사에서는 20여 그루의 왕벚꽃(겹벚꽃)이 유명하다. 일반 벚꽃의 꽃잎이 홑잎으로 나뭇가지에 하나하나 따로따로 붙어있다면, 개심사 왕벚꽃은
꽃잎이 겹잎으로 일반 벚꽃을 여러 송이 묶은 듯 마치 수국이나 솔방울을 닮았다.
개심사로 오르는 휘어진 돌계단, 그 끝에서 만나는 외나무다리 걸친 경지, 그리고 심하게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심검당, 이 세 가지가
개심사에서 꼭 보아야 할 것 들이다.
** 보원사지
사적 제316호. 절에 대한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으며 현재 넓은 절터만이 있다. 북위 양식을 띤 6세기 중엽경의 금동불입상과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입상이 출토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5층석탑(보물 제104호)·당간지주(보물 제103호)·석조(보물 제102호)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제105호)·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철불 1구가 이곳에서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 8세기로 추정되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철불좌상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하고 있어 이곳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 제105호. 높이 470㎝. 8각원당형의 부도로 기단부가 좁고 높아 전체적으로 세장한 구성을 보여준다.
기단부의 하대석은 8각이며 안상 안에 다양한 자세의 사자상이 양각되어 있다. 중대석의 받침은 원형으로 구름에 싸여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도식적인 표현이 보인다. 중대석은 장식이 없는 8각기둥이며, 상대석에는 앙련이 양각되어 있다. 8각의 탑신석은 중대석처럼 좁고 높으며,
사천왕상·문비·인물상이 돌아가며 얕은 부조로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큰 편으로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탄문은 900년(효공왕 4)에 출생하고 975년(광종 26)에 입적한 화엄종 계통의 승려이다. 부도는
탑비(보물 제106호)의 건립이 978년인 것으로 보아 법인국사가 입적한 975~978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경기도 여주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977)에 비해 전체적인 조형이 섬약하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04호. 높이 900㎝. 기단은 2중기단으로 하층에는 사자상이, 상층에는 팔부중상이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 위에는 별석을
끼워 5층의 탑신부를 받치고 있으며, 초층 탑신에는 우주와 문비가 모각되어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체감이 완만하며, 옥개석은 넓고 끝이
반전되어 백제석탑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상륜부에는 찰주가 남아 있으나 부재는 노반만 남아 있다.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보원사가
중건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출토금동불입상
높이 9.4㎝.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광배와 대좌를 잃었고 두 발도 파손되었으나 도금은 양호하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큼직하며 얼굴은 좁고 길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속에 여며 입은 내의가 보이며, 법의의 끝자락은 왼쪽 팔뚝에 걸쳐 넘겨져 있다. 법의의 아래자락은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뻗침이 심하지는 않다. 조각양식적으로 북위양식을 반영하는 연가7년명금동불입상(539)과 관련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백제불의 특징인
차분한 조형이 두드러진다.
보원사지출토철불좌상
높이 2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불로 두 손이 결실되었으나 항마촉지인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나발이고, 넓적한 얼굴에 눈이
가늘고 길며 코와 입이 유난히 작고, 아래턱을 안으로 당기고 앉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입었는데, 얇고 몸에 밀착되어 몸의
굴곡이 드러나 보인다.
옷주름은 선각에 가까운 얕은 층단형으로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석굴암 본존상 계통을 이은 것으로 고려불상의 특징이 보이는 상이다.
이 상과 매우 흡사한 철불 2구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데,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출토로 같은 장인이나 공방의 솜씨로 보인다.
법인국사보승탑비에는 949년(광종 1)에 법인국사가 발원한 석가삼존상의 내용이 보이는데, 이 철불은 그 삼존상의 본존상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고려초의 조각사 연구에서 중요한 상이다.
전(傳)보원사지출토철불좌상
높이 150㎝. 다른 철불들과 달리 석굴암 본존상과 양식적으로 깊은 관련을 보여 주목되는 상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얼굴은 원만한 타원형으로
양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눈썹 부분을 층단 위에 다시 음각선을 그어 표현한 것과 옆으로 길게 치켜올라간 눈매는 통일신라 8세기 불상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불신의 비례가 알맞으며 팽만감이 넘쳐서 건장해 보인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얇고 몸에 밀착되었는데, 옷주름선이 유려하며 크고 작은 2중의
주름으로 된 번파식 표현이 건장한 몸을 더욱 잘 드러내 보인다. 항마촉지인을 취했던 두 손은 파손되었다.
이 상의 제작시기는 이제까지 철불의 조성을 선종의 전개와 관련지어 9세기 이후로 생각한다든가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광주춘궁리철불좌상 등과 비교되어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되어왔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통일신라 최성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8세기
후반경의 상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철불 조성의 시작도 8세기로 올라감을 시사해주는 중요한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