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08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의 진정한 의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식민지 개척에 나선 중세 유럽 제국의 정복 함선에 사제들이 동승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500여명의 선원들과 함께 신대륙을 발견하였을 때에도 사제들이 함께하였다. 원주민들을 살육하며 식민지를 확장해 나가던 제국의 정복자들을 위해 그 당시 사제들은 어떤 성경 구절을 읽어 주며 격려하였을까?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의 위기는 기독교인들의 오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는 환경 학자들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목적만 옳으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을 근거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성경 본문이 창세기 1장 28절이다. 만일, 식민지 정복과 착취 그리고 자연 파괴를 일삼은 사람들이 정말이 본문을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면 윤리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고 오남용한 잘못까지 범한 것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이 본문의 의미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흔히 '문화명령'이라고 불린다. 문화(文化)의 문자적 의미는 야만스러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이나 '교양'이 되는 것을 뜻한다. 영어단어 culture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하였는데 이 단어는 본래 땅을 가꾸다, 경작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밭을 일구듯이 사람의 마음이나 생활양식을 가꾸고 다듬는 것을 culture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문화 명령'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이다. 그렇게 하려면 가꾸고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짐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네 가지 명령, 즉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는 명령들 중에 마지막 명령만이 인간의 고유한 활동을 나타낸다. 처음의 세 가지 명령은 물고기와 새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지만(창 1:22). '정복하라'는 명령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참으로 창세기 1장 28절을 근거로 식민지 정복과 자연 파괴를 정당화하였다면 그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문화 명령으로 오히려 불순종과 죄의 길로 나간 것이다.
그러면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창조의 질서에서 인간과 땅의 관계는 아담이란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름은 그의 근원인 흙, 즉 아다마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창 3:23) 하셨다고 말한다. 그렇다. 땅은 인간의 근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이후 그를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창 2:15) 하셨다. 이 진술은 땅은 인간이 정복하고 착취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경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시 24:1)이 "땅은 인생에게 "(시 115:16)주셨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히 말하면 소유권이 아니라 관리권이다. 다시 말해 땅에 대한 청지기 직분이다. 그러므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결코 자연에 대한 폭력적 지배나 이기적 착취를 명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았다'고 말씀하신 자연을 누리고 관리하며 보호하라는 말이다. 자연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말이다.
이런 사상은 창세기 1장의 넷째 날 광명체들에게 주어진 기능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각각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창 1:16). 여기 주관하다'는 단어는 구약에서 흔히 '다스리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동사 마샬에서 왔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결코 억압적 통치나 착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해와 달에 의한 밤낮의 지배는 조화와 질서 속에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주어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도 그런 의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무분별한 생태계의 파괴에 반대한다. 그리고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의 보호에 관심을 기울인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의 본래 계획과 뜻에 따라 지구를 지키며 보호해야 한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는 없으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환경청지기의 책임 있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