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미련이다 그것에 대하여~ / 이태호
요즘 들어 선산을 자주 찾는다. 그만큼 집안에 중대사가 많다는 방증이다. 동생을 둘씩이나 잃은 맏이의 슬픈 소회는 숨겨놓자. 무엇보다 각별했던 고모님의 병환, 아들과 조카들의 승진 등 보고드릴 일들이 호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생가는 선산자락에 발을 묻고 자꾸만 늙어갔다. 대문 쇳대를 풀자 안마당이 어수선하다. 어머니의 꽃밭은 이미 새들이 뿌린 씨앗들이 점령했다.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떨어트려보았다. 둔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이 있다는 신호 또한 없다.
중간 채 기와지붕너머로 대숲이 수런거린다. 마치 나를 향하여 핀잔이라도 하는 것 같다. 서까래는 물론 기둥도 힘겹다고 울상이다.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던 토주대감인 감나무는 그러거나 말거나 설익은 감 익히기에 열중이다. 어렸을 때 나를 떨어트린 것을 여태껏 잊지 않았는지, 이파리 두어 장이 편지처럼 내려앉는다. 인기척에 까치까지 몰려왔다. 깍깍거리며 부산을 떠는 모습이 옛집을 복원해 달라는 시위처럼 보였다.
늘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말랑말랑한 홍시 두어 개를 땄다. 부엌 쪽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거긴 남겨 두어라. 까치 몫이니까” 까마귀나 참새, 직박구리, 곤줄박이나 딱새 등 텃새들도 많건만, 유독 까치에게만 몫을 챙겨두라고 하셨을까? 아마도 가장 친한 새가 까치라서 그런 것 같다.
옛사람에게 동물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요, 정신적 지주,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구도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동물을 홀대하지 않았다. 특히 날짐승 중에서 까치는 길조로 여겨왔다. 어디 까치뿐이겠는가. 황소도 그렇고 고양이나 견공도 그랬다. 지금의 반려동물과는 또 다른 차원의 관계였다. 아마도 서로의 영혼을 이어주는 회로가 있고, 그 것을 타고 어떤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에 미치자 외양간의 송아지가 살아나고, 졸졸 따라다니던 백구까지 꼬리를 흔든다.
집 안팎을 둘러본 다음, 가을이 그려놓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올 때마다 달라졌다. 정겹던 곡선보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직선이 늘어났다. 집들의 모습 또한 부드러움보다 각을 세웠다. 초록이 넘실대는 배추밭을 지나자 이끼 낀 기왓장을 머리에 인, 거만하지 않을 지붕이 보였다. 낯설지 않았다. 겨레붙이가 사는 집이다. 너른 마당에는 가을걷이가 몸을 말리며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호수 같은 평화가 넉넉했다. 한자(漢字)로 양각한 문패의 돌림자가 선친과 항렬(行列)이 같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기척을 내니 연세 지긋하신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나는 공손하게 머리부터 숙였다. 그런 다음, 훈장(訓長)네 큰아들이며, 아버지의 함자(銜字)를 말씀드렸다. 이내 알아보시더니, 모습을 빼다 박았다며 반가워하신다. 마루에 앉으라시며 검불도 없건만 손바닥 비질을 하신다. 잘 익은 홍시까지 가지고 오셨다. 이런저런 옛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차고 넘친다. 무척 외로우신 것 같았다. 얼른 일어나기가 송구스러워 한 시간 남짓 앉아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것과 아쉬운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젊고 늙음에 관계없이 인간은 모두 자기를 들어내기 위한 본성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미덥지 않다며 아들내외를 탓하기도 하셨다. 굳이 홍시를 담아주시던 감나무껍질 같은 아주머니의 손마디가 안쓰럽다. 봉지에 담긴 어머니 닮은 정이, 가을 햇볕처럼 따뜻했다. 나는, 은백색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마치 화사하게 피어난 억새를 보는 듯했다.
생가로 되돌아와 다시 감나무 앞에 섰다. 서리 맞은 홍시 빛도 아름답지만, 이파리 또한 곱다. 밑동을 이불처럼 덮은 감잎 한 장을 주워 들고 절대자를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생도 이처럼 곱게 지고 싶습니다.”
머잖아 도래할 겨울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노을빛 홍시와 푸른 대숲, 퍽이나 대조적이다. 나는 함박눈을 이용하여 홍시 하나하나에 하얀 고깔을 씌워 주었다. 상상 속의 풍경화라서 그런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감나무에게 인사했다. “내년 겨울에도 만날 수 있겠지? 알았어, 못 오더라도 겨울 텃새에게 편지라도 보낼게.”
2022년 09월
첫댓글 선생님 수필을 읽다가 행간에 불현듯 필자가 여성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정서가 여려서 혼란스럽습니다. 멋진 글밭에서 한 수 배우고 나갑니다. 노을빛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