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스님의 인불사상
<1>
세상에서 달마(達磨, ?~528)스님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을까? 그는 인도 향지국 왕의 셋째 왕자였다. 양나라 보통 8년 정미년(서기 527년) 9월 21일에 중국으로 건너 와서 중국 선불교의 초조가 되면서 불교를 완성의 단계로 이끌어 올린 사람이다.
그가 광주에 오자 광주 자사 소앙蕭昻이 주인의 예를 갖추어 영접하고 나서 표를 올려 무제에게 알렸다. 무제가 그 보고를 받고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가지고 달마대사를 맞이하였으며 10월 1일에는 직접 지금의 남경인 금릉에 도착하였다.
양무제가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승려들을 만든 일이 가히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말하였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이러한 것은 다만 인간으로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작은 과보이며 모두가 빠져나가 버리는[漏] 원인일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잠깐 있으나 실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다운 공덕입니까?”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가 스스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상의 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양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로서 제일가는 도리입니까?”
달마대사가 말하였다.
“넓고 텅 비어 성스러움이란 없습니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양무제가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달마대사가 갈대 잎 하나로 장강을 건너 위나라에 이르러 숭산 소림사에 머무시면서 얼굴은 벽을 향해 앉아 종일토록 침묵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는 바라문”이라고 하였다.
<2>
금릉에서 양무제와의 그 역사적인 만남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아무튼, 유명한 대화를 남겨 오늘날까지 선불교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즉 “여러 가지의 불사를 하여 큰 복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떤 공덕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가 천하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는 지침이 되었으며 올바른 불교공부의 기준이 되었다. 만약 이 한마디 말이 없었더라면 불교도들은 지금까지 자기와는 상관없는 밖을 향하여 부단히 찾고 있었을 것이다. 절을 지어 복을 닦으며 탑을 쌓아 공덕을 짓고 온갖 보시와 선행으로 공덕이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것이 성불의 바른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삿된 견해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성불의 바른길인가? 달마대사는 “양무제가 그동안 해 온 불사로는 한갓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날 수 있는 과보에 불과하다.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광명의 대해탈과 진여열반의 삶과는 그 거리가 십만 팔천 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가 스스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상의 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본성의 공덕과 청정한 지혜는 세상의 일이나 인위적인 수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추고 있어서 누가 가져갈 수도 없으며 새롭게 다듬거나 장엄하거나 닦을 것이 아닌 그 사실을 아는 것뿐이다. 만약 수행을 통해서 새롭게 닦거나 장엄한다면 그것은 마치 본래 있는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하나 더 올려놓는 것과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본래부터 이미 해탈이 되어 있고 본래부터 부처가 되어 있다. 한량없는 복덕과 한량없는 신통을 다 갖추고 있어서 조금도 더할 것이 없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뜻을 설파한 것이다. 인간이 본래로 그렇게 위대한 존재거늘 하물며 양무제가 다시 물은 ‘성스러운 진리로서 제일가는 도리’가 따로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역사적 만남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그러나 그 어긋난 대화가 다행하게도 먼 후대에까지 불교를 바로 가르치고 수행을 바로 하게 하는 거울이 되고, 지침이 되어 바른 견해[正見]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3>
그리고 양무제와의 최후의 한마디 “모른다[不識]”라는 그 말은 달마대사의 모든 저서와 주옥같은 말씀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모른다”보다 더 훌륭한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후대의 어떤 선사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나서 천하의 명화인 달마대사가 갈대 잎 하나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는 일위도강도一葦渡江圖를 남기게 된다.
그 후 숭산 소림사에 와서 소림굴에 묵묵히 앉아 벽만을 쳐다보고 말없이 중생제도의 세월을 기다린 것이다. 그것이 무려 9년의 세월이었다. 마치 강태공이 강가에 앉아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천하를 경영할 웅지를 품고 때를 기다리듯이.
조정에서 궁중의 신하들을 다 모아 놓고 정사는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로 가사를 입고 경전을 강설하던 불심천자佛心天子 양무제는 더 이상 불교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황벽스님은 자신의 저서 「완능록」에서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이유를 “오직 한마음의 이치를 전하여 일체중생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바로 가리키기 위해서라고 하며, 중생이 부처가 되는 데는 어떤 수행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과, 다만 지금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아 자신의 성품을 볼 것이며, 달리 다른 곳에서 부처를 구하거나 찾지 마라.”라는 가르침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정리하였다. 다시 내 식으로 간추리면 “사람이 부처님”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전파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