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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47 대방광불화엄경 47권 三十三,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2 서 문 장소와 모습과 시간에 따라 불사를 짓습니다.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혹은 아란야에 있어서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텅 비고 한가한 곳에 있어서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있으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삼매에 머물러서 불사를 짓고, 혹은 동산의 숲에 혼자 머물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몸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으면서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깊은 지혜에 머물러 불사를 짓고, 혹은 모든 부처님의 견줄 데 없는 경계에 있어서 불사를 짓고, 혹은 다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몸과 행에 머물러서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좋아함과 지혜를 따라서 방편으로 교화하기를 쉬지 아니하며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천신의 몸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용의 몸과 야차의 몸과 건달바의 몸과 아수라의 몸과 가루라의 몸과긴나라의 몸과 마후라가의 몸과 사람인 듯 아닌 듯 한 몸 등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성문(聲聞)의 몸과 독각(獨覺)의 몸과 보살의 몸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법을 말하고 어떤 때는 고요히 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한 부처님을 말하고 혹은 여러 부처님을 말하여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여러 보살의 일체 행과 일체 원으로 한 행과 한 원을 삼는다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모든 보살의 한 행과 한 원으로 한량없는 행과 원을 삼는다 말하여 불사를 짓습니다. 혹은 부처님의 경계가 곧 세간의 경계라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세간의 경계가 곧 부처님의 경계라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부처님의 경계가 곧 경계가 아니라 말하여 불사를 짓습니다. 혹 하루를 머물고, 혹 하룻밤을 머물고, 혹 반달을 머물고, 혹 한 달을 머물고, 혹 일 년을 머물고,내지 말할 수 없는 겁을 머물면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광대한 불사입니다. 2016년 6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차 례 4, 법을 설하다 (8) 부처님의 자재(自在)를 답하다 <4> 부처님의 열 가지 광대한 불사(佛事) 1) 도솔천에 태어나다 2)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다 ..... ..... ..... <4> 부처님의 열 가지 광대한 불사(佛事) 1) 도솔천에 태어나다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廣大佛事가 無量無邊하야 不可思議라 一切世間에 諸天及人이 皆不能知며 去來現在의 所有一切聲聞獨覺도 亦不能知요 唯除如來威神之力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열 가지 광대한 불사(佛事)가 있으니,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어서 일체 세간의 모든 천신과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하고, 과거 미래 현재에 있는 일체 성문(聲聞)과 독각(獨覺)들도 또한 알지 못하고, 오직 여래의 위신력은 제외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열 가지 광대한 불사(佛事)란 도솔천에 태어나고,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고, 왕궁에 탄생하고,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하고, 정각을 이루는 등의 부처님의 일생이 낱낱이 큰 불사가 된다. 즉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불사이지만중생이 하는 일은 모두 중생의 일이다. 꿈속에서는 왕 노릇을 하든 부처노릇을 하든 낱낱이 다 꿈속의 일이지만 깨고 나서 생시에 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 모두 다 사실인 것과 같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이 어찌 꿈밖의 일을 알겠는가. 부처님의 일을 일체 세간과 천신과 성문과 독각들은 알지 못한다.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於盡虛空徧法界一切世界兜率陀天에皆現受生하사修菩薩行하야作大佛事하사대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온 허공과 법계에 가득한 일체세계의 도솔천에 태어나서 보살의 행을 닦아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먼저 석가세존은 진허공 변법계(盡虛空徧法界) 일체 도솔천에서 다 같이 태어나서 보살행을 닦아 큰 불사를 짓는다. 無量色相과無量威德과無量光明과無量音聲과無量言辭와無量三昧와無量智慧의所行境界로 攝取一切人天魔梵沙門婆羅門阿修羅等하사 大慈無礙하며大悲究竟하야平等饒益一切衆生호대 “한량없는 상호와 한량없는 위덕과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음성과 한량없는 말씀과 한량없는 삼매와 한량없는 지혜의 행(行)하는 경계로써 일체 사람과 천신과 마왕과 범천과 사문과 바라문과 아수라들을 거두어 주는데, 크게 인자함이 걸림 없고 크게 가엾이 여김이 구경에 이르러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요익(饒益)케 하느니라.” 강설 ; 한량없는 상호와 한량없는 위덕과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음성과 한량없는 말씀과 한량없는 삼매 등으로 사람과 천신과 마왕과 범천과 사문과 바라문과 아수라들을 거두어 주며, 크게 인자함 크게 가엾이 여김이 구경에 이르러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이익케 한다. 或令生天하며或令生人하며或淨其根하며或調其心하며或時爲說差別三乘하며 或時爲說圓滿一乘하사普皆濟度하야令出生死하나니是爲第一廣大佛事니라 “혹 천상에 나게 하고 혹 인간에 나게 하며, 혹 감관[根]을 깨끗이 하고 혹 마음을 조복시키며, 혹 차별한 삼승(三乘)을 말하며, 혹 원만한 일승(一乘)을 말하여 두루 다 제도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나니, 이것이 첫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부처님이 처음 도솔천에 태어났다는 사실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을 천신으로 태어나게 하며, 수많은 이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며, 혹은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일불승을 설하여 널리 제도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일이 곧 부처님의 광대한 불사를 짓는 일이다. 2)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다 佛子야一切諸佛이從兜率天으로降神母胎하사대以究竟三昧로觀受生法이如幻如化하며 如影如空하며如熱時焰하사隨樂而受하야無量無礙하야入無諍法하고起無着智하야 離欲淸淨하야成就廣大妙莊嚴藏하며受最後身하사住大寶莊嚴樓閣하야而作佛事하사대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갈 적에 구경의 삼매로 태어나는 법을 관찰하되, 환영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허공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좋은 대로 태어남이 한량없고 걸림이 없으며, 다툼이 없는 법에 들어가고 집착이 없는 지혜를 내어 탐욕을 여의고 청정하여 광대하고 미묘한 장엄의 광[藏]을 성취하며, 가장 뒤의 몸[最後身]을 받아서 큰 보배로 장엄한 누각에 있으면서 불사(佛事)를 짓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는 불사다.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는 일이 환영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허공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좋은 대로 태어남이 한량없고 걸림이 없다. 이번에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서 사람으로 태어나고는 이제는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뒤의 몸[最後身]을 받아서 큰 보배로 장엄한 누각에 있으면서 불사를 짓는다고 하였다. 가장 뒤의 몸[最後身]을 받는다는 것은 생사에 유전하는 가장 마지막 몸을 말한다. 소승불교에서 아라한이 되면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지 않고 영원한 열반에 든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대승보살불교에서는 세세생생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거듭하면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몸을 받아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등각(等覺)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등각(等覺)이 되면 천만번을 다시 태어나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등각을 최후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或以神力으로而作佛事하며或以正念으로而作佛事하며或現神通하야 而作佛事하며或現智日하야而作佛事하며或現諸佛廣大境界하야而作佛事하며 “혹은 신력으로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바른 생각으로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신통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지혜의 태양[智日]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경계를 나타내어 불사를 짓기도 하느니라.” 或現諸佛無量光明하야而作佛事하며或入無數廣大三昧하야而作佛事하며或現從彼諸三昧起하야而作佛事하나니라 “혹은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광명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수없이 넓고 큰 삼매에 들어 불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저러한 모든 삼매에서 일어나 불사를 짓기도 하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서 온갖 모습을 다 나타내어 불사를 짓는다. 신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바른 생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신통을 나타내기도 하는 등으로 불사를 짓는다. 佛子야如來爾時에在母胎中하야爲欲利益一切世間하사種種示現하야而作佛事호대 “불자여, 여래께서 그때 어머니의 태(胎) 안에 있으면서 일체세간을 이익케 하려고 갖가지로 나타내어 불사를 짓느니라.” 所謂或現初生하며或現童子하며或現在宮하며或現出家하며或復示現成等正覺하며或復示現轉妙法輪하며或示現於入般涅槃 하사如是皆以種種方便으로於一切方과一切網과一切旋과一切種과一切世界中에而作佛事가是爲第二廣大佛事니라 “이른바 혹 처음 탄생함을 나타내고, 혹 동자를 나타내고, 혹 궁전에 있음을 나타내고 혹 출가함을 나타내며, 혹 평등한 정각 이룸을 나타내고, 혹 미묘한 법륜 굴림을 나타내고, 혹 열반에 드심을 나타내기도 하느니라. 이와 같이 갖가지 방편으로써 일체 방위와 일체 그물[網]과 일체 돎[旋]과 일체 종(種)과 혹 일체 세계 안에서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둘째 광대한 불사(佛事)니라.” 강설 ; 여래께서 어머니의 태(胎) 안에 있으면서 일체세간을 이익케 하려고 갖가지로 나타내어 불사를 짓는데 이미 태중에서 출생의 모습과 동자의 모습과 궁중에 있는 모습과 출가하는 모습과 정각을 이루는 모습과 미묘한 법륜을 굴리는 모습과 심지어 열반에 드는 모습까지 나타낸다. 곧 어머니 태중에 있는 최초의 순간에서 80생애가 다 나타난 것이다. 한 순간이 한량없는 세월이라는 내용 그대로다. 이와 같이 누구나 모태 중에 있을 때 이미 한 생애가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안다는 것은 실로 큰 불사이다. 3) 왕궁에 탄생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一切善業이皆已淸淨하며一切生智가皆已明潔하사대 而以生法으로誘導群迷하사令其開悟하야具行衆善하야爲衆生故로示誕王宮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착한 업(業)이 이미 청정하였고 일체 나는 지혜가 이미 깨끗하여졌으나, 나는 법으로 여러 미혹한 이들을 인도하여 깨닫게 하며 여러 가지 착한 일을 행하게 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왕궁에 탄생함을 보이느니라.” 一切諸佛이於諸色欲宮殿妓樂에皆已捨離하사無所貪染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든 물질과 욕망과 궁전과 춤과 음악을 다 이미 여의어 탐하거나 물들지 아니하느니라.” 常觀諸有가空無體性하야一切樂具가悉不眞實하며持佛淨戒하야究竟圓滿하며 “모든 있는 것이 공(空)하여 자체의 성품이 없고 일체 향락의 기구가 진실치 않음을 항상 관찰하며,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을 지니어 끝까지 원만케 하느니라.” 觀諸內宮의 妻妾侍從하고生大悲愍하며觀諸衆生의 虛妄不實하고起大慈心하며 觀諸世間이 無一可樂하고而生大喜하며於一切法에心得自在하야而起大捨하며 “모든 내궁(內宮)의 처첩과 시종들을 보고는 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내고, 모든 중생들이 허망하여 진실치 아니함을 보고는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모든 세간(世間)이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음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일체 법에 마음이 자재함을 얻고는 크게 버리는 마음을 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면서 이미 중생을 위한 육바라밀의 마음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을일으킨 것이다.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한없는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의 네 가지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무진(無瞋)을 체(體)로 하고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자기가 받는 낙(樂)을 남도 받게 하려고 뜻을 두고, 먼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널이 일체 중생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다. 비무량심(悲無量心)은 무진(無瞋)을 체(體)로 하여, 남의 고통을 벗겨 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친한 이의 고통을 벗겨주기로 하고, 점차로 확대하여 다른 이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희무량심(喜無量心)은 희수(喜受)를 체로 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 희열(喜悅)케 하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른 이에게 미치는 것은 위와 같다.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무탐(無貪)을 체로 하여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원(怨)ㆍ친(親)의 구별을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 대하여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이와 미운 이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량이란 것은 무량한 중생을 상대(相對)로 하며, 또 무량한 복과(福果)를 얻으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具佛功德하야現生法界하야身相圓滿하고眷屬淸淨호대而於一切에皆無所着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갖추고 일부러 법계에 태어나면 몸매가 원만하고 권속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면서 이미 공덕을 갖추고 일부러 법계에 태어나면 몸매가 원만하고 권속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다. 以隨類音으로爲衆演說하사令於世法에深生厭離하야如其所行하야示所得果하며 “여러 종류를 따르는 음성으로 대중에게 연설하여 그로 하여금 세상 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깊이 내게 하고, 행(行)하는 대로 과보(果報)를 얻게 됨을 보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면서 이미 여러 종류를 따르는 음성으로 대중에게 연설하여 그로 하여금 세상 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깊이 내게 하고, 행하는 대로 과보를 얻게 됨을 보인다. 復以方便으로隨應敎化하사未成熟者로令其成熟하고已成熟者로令得解脫하야爲作佛事하야令不退轉하며 “다시 방편을 써서 근기에 맞추어 교화하되 성숙하지 못한 이는 성숙케 하고, 이미 성숙한 이는 해탈을 얻게 하며, 그들을 위하여 불사를 지어 퇴전하지 않게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면서 이미 방편을 써서 근기에 맞추어 교화하되 성숙하지 못한 이는 성숙케 하고, 이미 성숙한 이는 해탈을 얻게 하며, 그들을 위하여 불사를 지어 퇴전하지 않게 한다. 復以廣大慈悲之心으로恒爲衆生하야說種種法하며 “또 광대한 자비심으로 항상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설하느니라.” 又爲示現三種自在하사 令其開悟하야心得淸淨하며 “또 세 가지 자유 자재함[三種自在]을 나타내어 그들을 깨닫게 하여 마음이 청정케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면서 이미 광대한 자비심으로 항상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설하며, 세 가지 자유 자재함[三種自在]을 나타내어 그들을 깨닫게 한다. 세 가지 자유 자재함[三種自在]이란 사전에 사종자재(四種自在)를 들었다. 네 가지 자유 자재한 것인데 보살이 수행하는 지위 중10지(地)의 제8 부동지(不動地) 이상에 이를 때에 얻는 네 가지 자재다. (1) 무분별자재(無分別自在)는 제8지 보살은 억지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2) 찰토자재(刹土自在)는 제8지 보살은 여러 세계에 마음대로 가서 나는 것이며, (3) 지자재(智自在)는 제9지 보살은 온갖 것을 아는 지혜를 얻어 마음대로 교화하는 것이며, (4) 업자재(業自在)는 제10지 보살은 번뇌 악업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이 사종자재가 경문의 삼종자재에 해당하는지는 상고할 길이 없다. 雖處內宮하야衆所咸覩나而於一切諸世界中에施作佛事하사以大智慧와 以大精進으로示現種種諸佛神通하사대無礙無盡하야 恒住三種巧方便業하나니 “비록 궁전 내에 있음을 여러 사람이 다 보지만 일체 모든 세계에서 불사를 지으며, 큰 지혜와 큰 정진으로 모든 부처님의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이기를 걸림 없고 그지없이 하며, 항상 세 가지 교묘한 방편의 업에 머무느니라.” 所謂身業이 究竟淸淨하며語業이 常隨智慧而行하며意業이 甚深하야 無有障礙니以是方便으로利益衆生이是爲第三廣大佛事니라 “이른바 몸의 업이 끝까지 청정하며, 말의 업은 항상 지혜를 따라 행하고, 뜻으로 하는 업은 깊고 깊어 걸림이 없으니 이런 방편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이것이 셋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부처님은 왕궁에 탄생하여 비록 궁전 내에 있음을 여러 사람이 다 보지만 일체 모든 세계에서 불사를 지으며, 큰 지혜와 큰 정진으로 모든 부처님의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이기를 걸림 없고 그지없이 한다. 부처님은 몸의 업이 끝까지 청정하며, 말의 업은 항상 지혜를 따라 행하고, 뜻으로 하는 업은 깊고 깊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으로 짓는 광대한 불사다. 4)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示處種種莊嚴宮殿하사觀察厭離하야捨而出家하사欲使衆生으로了知世法이 皆是妄想이라 無常敗壞하야深起厭離하야不生染着하야 永斷世間貪愛煩惱하고修淸淨行하야利益衆生하나니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갖가지로 장엄한 궁전에 있으면서 살펴보고는 싫어서 떠나려는 생각을 내어서 버리고 출가함을 보이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세상법이 모두 허망한 것이어서 무상하게 무너지는 것임을 알고 싫어서 떠나는 마음을 깊이 내어 물들지 않게 하며, 세간의 탐욕과 애착과 번뇌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청정한 행을 닦아 중생을 이익케 하고자 함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출가는 곧 중생들에게 세상사가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보이려는 본보기였다. 부처님이 그랬듯이 일체중생들도 인생사와 세상사가 모두 허망하고 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이다. 해인사에서 강원에 입방(入榜)하려면 산감이라는 소임을 한철이상 보아야했다. 1961년경 산감을 보느라고 삼선암을 지나다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사미니가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관광객이 물었다. “어찌하여 출가를 하였소?” “인생이 무상해서요.” 묻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서슴없이 나오는 대답이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그 스님은 지금도 문수경전연구회에 화엄경 공부하려 다니고 있다 . 그렇다. 인생무상이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무조건 출가는 인생이 무상해서 한 것으로 되어있다. 當出家時하야捨俗威儀하고住無諍法하야滿足本願無量功德하며 “출가할 적에는 세속의 위의(威儀)를 버리고 다툼이 없는 법에 머물러 본래의 서원과 한량없는 공덕에 만족하느니라.” 강설 ; 입산출가를 하면 승려로서의 위의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관기관에서 하고자하는 욕락(欲樂)과 재물과 이성과 음식과 명예와 수면에 대한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어떤 일에도 다투거나 갈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 또 출가의 본래의 서원은 일체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대자대비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서원으로 한량없는 공덕을 지어 무한히 베푸는 것이다. 以大智光으로滅世癡闇하야爲諸世間無上福田하며 “큰 지혜의 빛으로 세간의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하고 모든 세상의 가장 높은 복전이 되느니라.” 강설 ; 출가의 목적은 큰 지혜의 광명을 얻어 세속적 어리석음의 어둠을 다 소멸하고 세상의 사표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세상의 사표가 되면 더없는 복전이 된다. 출가한 스님이라는 승(僧)자는 앞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앞선 사람이란 세상의 스승이며 사표가 된다는 뜻이다. 常爲衆生하야讚佛功德하야令於佛所에植諸善本하며以智慧眼으로見眞實義하고 “항상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부처님 계신 데서 모든 착한 뿌리를 심게 하여 지혜의 눈으로 진실한 이치를 보게 하느니라.” 강설 ;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먼저 부처님의 출가하신 공덕에 대한 것을 잘 알아서 그 공덕의 위대함을 본받고 찬탄하여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과 그 외의 보살들과 선지식들과 조사님들과 훌륭한 스승들에 대한 공덕을 아는 대로 찬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신심을 일으켜 줘야 한다. 그것은 곧 착한 근본을 심게 하는 일이다. 또 지혜의 눈으로 진실한 뜻을 보게 하는 일이다. 復爲衆生하야讚說出家가淸淨無過하야永得出離하야長爲世間智慧高幢이是爲第四廣大佛事니라 “또 중생에게 출가하는 것이 청정하고 허물이 없음을 찬탄하여 영원히 벗어남을 얻어서 세간의 우뚝한 지혜의 당기(幢旗)가 되게 하나니, 이것이 넷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출가는 흔히 번뇌에 얽매인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성스런 단체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심출가(心出家)니 신출가(身出家)니 하여 출가를 구분하지만 어디에 있든 스스로 속된 번뇌로부터 멀리 떠난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출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불사 중에 진정한 출가야말로 광대한 불사다.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이다. 5) 정각(正覺)을 이루다 佛子야一切諸佛이具一切智하사於無量法에悉已知見하사대菩提樹下에成最正覺하사降伏衆魔에威德特尊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지혜를 갖추어서 한량없는 법을 이미 알고 보았으며, 보리수 아래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온갖 마군을 항복 받고 위엄과 공덕이 특별하니라.” 강설 ; 불교는 세존께서 정각을 이룸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세존의 탄생과 출가를 위대한 불사라고 높이 찬탄하는 것도 정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여러 가지 기념일 중에 정각을 이루신 성도(成道)하신 날을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삼아야 하고, 가장 성대하게 행사를 치러야 하고, 가장 널리 알려야 한다. 정각이란 모든 부처님이 일체 지혜를 갖춰서 한량없는 법을 낱낱이 다 깨달아 아는 일이다. 其身이 充滿一切世界하야神力所作이無邊無盡하며 “그 몸은 일체 세계에 가득하고 신통한 힘으로 하시는 일이 그지없고 다함이 없느니라.” 강설 ; 세존이 정각을 이룸으로부터 그 몸은 법의 몸[法身]이 되고 일체세계에 충만하여 신통한 힘으로 하시는 일이 그지없고 다함이 없다. 於一切智所行之義에皆得自在하사修諸功德하야悉已圓滿하며 “일체 지혜로 행하는 뜻이 모두 자재하며, 모든 공덕을 닦아 다 이미 원만하니라.” 강설 ; 또 세존이 정각을 이룸으로부터 일체 지혜로 행하는 뜻이 모두 자재하며, 모든 공덕을 닦아 다 이미 원만하다. 其菩提座가具足莊嚴하야周徧十方一切世界어든佛處其上하사轉妙法輪하야說諸菩薩의 所有行願하며 “그 보리좌(菩提座)는 장엄을 갖추어 시방의 일체 세계에 가득하였는데, 부처님이 그 위에 앉아서 미묘한 법륜을 굴리면서 모든 보살들의 행(行)과 원(願)을 설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6년의 고행을 끝내고 마지막 바른 선정에 들었던 곳을 ‘금강좌’ 또는 ‘보리좌’라고도 하며 ‘사자좌’라고도 한다. 그 보리좌의 장엄을 화엄경 서두에 이렇게 묘사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에 계실 때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중략) 그 사자좌는 높고 넓으며 매우 아름다워 마니보석으로 받침대가 되어있으며, 연꽃으로 그물이 되어있으며, 청정하고 미묘한 보석으로 그 둘레가 되어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로 된 갖가지 꽃들은 영락으로 되어있고 당우와 정자와 누각과 섬돌과 문호와 온갖 물상들은 격식을 갖추어서 장엄하였습니다. 보석으로 된 나무들은 가지와 열매가 무성하여 두루두루 돌아가며 사이마다 펼쳐져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이 앉은 자리는 언제 어느 장소가 되었든 모두가 보리좌이다. 그 보리좌에 앉아서 설하시는 법문은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이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불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와 같다. 開示無量諸佛境界하사令諸菩薩로 皆得悟入하야修行種種淸淨妙行하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열어 보이며,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고 갖가지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닦게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보리좌에 앉아서 미묘한 법륜을 굴리는데 보살의 행원과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열어 보이신다. 부처님의 경계를 열어 보여서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여 가지가지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수행하게 한다. 復能示導一切衆生하사令種善根하야生於如來平等地中하며 “또 일체중생을 지도하여 착한 뿌리를 심고 여래의 평등한 땅에 나게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정각을 인하여 일체중생을 지도하여 선근을 심게 하고 여래의 평등한 땅에 나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느끼고 깨달은 것만치만 다른 사람들을 지도한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부단히 공부하여 스스로의 인품을 향상시키고 인연이 닿는 모든 사람들을 지도하여 세상을 청정국토와 극락정토와 화장장엄세계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 住諸菩薩無邊妙行하사成就一切功德勝法하며 “모든 보살의 그지없이 묘한 행에 머물러 일체 공덕의 훌륭한 법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그 법으로 시방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에서 하는 일은 무한하다. 이와 같은 보살의 그지없이 묘한 행에 머물러 일체 공덕의 훌륭한 법을 성취하게 한다. 一切世界와一切衆生과一切佛刹과一切諸法과一切菩薩과一切敎化와一切三世와 一切調伏과一切神變과一切衆生心之樂欲을悉善了知하야而作佛事가是爲第五廣大佛事니라 “일체세계와 일체중생과 일체 부처님 세계와 일체 모든 법과 일체 보살과 일체 교화와 일체 삼세와 일체 조복과 일체 신통변화와 일체중생의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모두 잘 알아서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다섯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보살의 그지없이 묘한 행에 머물러 일체 공덕의 훌륭한 법을 성취하게 하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정각의 광대한 불사며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이다. 6) 법륜(法輪)를 굴리다 佛子야 一切諸佛이轉不退法輪은令諸菩薩로不退轉故며轉無量法輪은令一切世間으로咸了知故며轉開悟一切法輪은能大無畏獅子吼故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보살들을 퇴전치 않게 하는 연고며, 한량없는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세간이 다 알게 하는 연고며, 일체를 깨닫게 하는 법륜을 굴리나니 두려움 없이 크게 사자후(獅子吼) 하는 연이니라.” 강설 ; 법륜을 굴리는 불사야말로 모든 불사 중에 가장 큰 불사며 일체 불법의 꽃이며 열매다. 여기에 아홉 가지 법륜을 열거하였다. 물러서지 않는 법륜과 한량없는 법륜과 일체를 깨닫게 하는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轉一切法智藏法輪은開法藏門하야除闇障故며轉無礙法輪은等虛空故며轉無着法輪은觀一切法이 非有無故며轉照世法輪은令一切衆生으로淨法眼故며 “일체법의 지혜광[一切法智藏] 법륜을 굴리나니 법장(法藏)의 문을 열어 어둡고 막힌 것을 없애는 연고며, 걸림이 없는 법륜을 굴리나니 허공과 같은 연고며, 집착이 없는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을 관(觀)하는 연고며, 세상을 비추는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법의 눈이 깨끗하게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일체법의 지혜광법륜과 걸림이 없는 법륜과 집착이 없는 법륜과 세상을 비추는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轉開示一切智法輪은悉徧一切三世法故며轉一切佛同一法輪은一切佛法이不相違故니一切諸佛이 以如是等無量無數百千億那由他法輪으로隨諸衆生의心行差別하사而作佛事하야不可思議가是爲第六廣大佛事니라 “일체지혜를 열어 보이는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세 세상 법에 두루하는 연고며, 일체 부처님과 꼭 같은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부처님의 법이 서로 어기지 않는 연고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없는 백 천억 나유타 법륜으로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행(行)이 차별함을 따라서 불사(佛事)를 지음이 헤아릴 수 없나니, 이것이 여섯째 광대한 불사이니라.” 강설 ; 또 일체지혜를 열어 보이는 법륜과 일체 부처님과 꼭 같은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없는 백 천억 나유타 법륜으로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행이 차별함을 따라서 불사를 짓는 것이 헤아릴 수 없다. 이 법륜을 굴리는 일은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상설 변설로 굴리는 것이다. 7)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다 佛子야 一切諸佛이入於一切王都城邑하사爲諸衆生하야而作佛事하나니所謂人王都邑과天王都邑과龍王과 夜叉王과乾闥婆王과阿修羅王과迦樓羅王과緊那羅王과摩睺羅伽王과羅刹王과毘舍闍王인如是等王의一切都邑이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왕의 도성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불사를 짓나니, 이른바 인간왕의 도성과 천왕의 도성과 용왕과 야차왕과 건달바왕과 아수라왕과 가루라왕과 마후라가왕과 나찰왕과 비사시왕의 이와 같은 왕들의 모든 도성들이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온갖 곳에 들어가서 온갖 위의를 나타내어 불사를 짓는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부처님의 보살행이 가리는 곳이 어디 있으며 짓지 못할 행위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왕의 도성과 천왕의 도성과 용왕의 도성 등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入城門時에大地震動하고光明普照하야盲者得眼하고聾者得耳하고狂者得心하고裸者得衣하고諸憂苦者가 悉得安樂하며一切樂器가不鼓自鳴하고諸莊嚴具가若着不着에咸出妙音하야衆生聞者가無不欣樂하며 “도성의 문에 들어갈 때에 땅이 진동하고 광명이 두루 비치어 맹인이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미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헐벗은 이가 옷을 얻으며, 모든 근심하던 이들이 안락을 얻게 되고, 일체 악기가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며, 모든 장엄거리가 쓰거나 안 쓰거나 모두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온갖 생명들이 듣고는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강설 ; 인간과 천룡팔부의 도성에 들어갈 때에 땅이 진동하고, 광명이 두루 비치어 맹인이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미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헐벗은 이가 옷을 얻으며, 모든 근심하던 이들이 안락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불사를 짓는다. 一切諸佛이色身淸淨하고相好具足하사見者無厭하야能爲衆生하야作於佛事하나니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육신이 청정하고 상호가 구족하여 보는 이가 싫어할 줄 모르며 능히 중생들을 위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또 모든 부처님의 육신이 청정하고 상호가 구족하여 보는 이가 싫어할 줄 모르며 능히 중생들을 위하여 불사를 짓는다. 설사 불상을 만들더라도 가장 아름답고 복된 상호를 그리고 조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는 것이 다 불사를 짓기 위함이다. 所謂若顧視와 若觀察과 若動轉과 若屈伸과 若行若住와 若坐若臥와 若黙若語와 若現神通과 若爲說法과 若有敎勅한 如是一切로 皆爲衆生하사 而作佛事하며 “이른바 돌아보거나 관찰하거나 움직이거나 굽히고 펴거나 가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잠잠하거나 말하거나 신통을 나타내거나 법을 말하거나 가르쳐서 타이르거나 하는 이와 같은 모든 것들로 모두 중생을 위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불사를 짓는 일이다. 예컨대 돌아보거나 관찰하거나 움직이거나 굽히고 펴거나 가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잠잠하거나 말하거나 신통을 나타내거나 법을 말하거나 가르쳐서 타이르거나 하는 이와 같은 모든 것들로 모두 중생을 위하여 불사를 짓는 일이다. 一切諸佛이普於一切無數世界種種衆生心樂海中에勸令念佛하야常勤觀察하야種諸善根하야修菩薩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널리 일체 수없는 세계에 있는 갖가지 중생들이 좋아하는 마음바다에서 그들에게 권하여 부처님을 생각하게 하고 부지런히 관찰하며 여러 가지 착한 뿌리를 심어 보살의 행을 닦게 하느니라.” 강설 ; 또 부처님은 무수한 세계에 있는 갖가지 중생들이 좋아하는 마음바다에서 그들에게 권하여 부처님을 생각하게 하고 부지런히 관찰하며 여러 가지 착한 뿌리를 심어 보살의 행을 닦게 하여 불사를 짓는다. 歎佛色相이 微妙第一호대 一切衆生이 難可値遇니 若有得見하야 而興信心이면則生一切無量善法하야 集佛功德하야 普皆淸淨이라하니라 “부처님의 몸은 미묘하고 제일이어서 일체중생이 만나기 어렵거니와 만일 보기만 하면 신심을 일으키고 일체 한량없이 착한 법을 내어 부처님의 공덕을 모아 두루 청정하여진다고 찬탄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은 미묘하고 제일이어서 만나기 어려움을 찬탄한다. 만약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의 몸을 친견하게 되면 신심을 일으키게 되고 한량없는 선한 법을 내게 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몸은 그대로가 불사를 짓는 일이다. 如是稱讚佛功德已에分身普往十方世界하사令諸衆生으로悉得瞻奉하야思惟觀察하며 承事供養하야種諸善根하야得佛歡喜하고增長佛種하야悉當成佛이니以如是行으로而作佛事하며 “이와 같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는 몸을 나누어서 널리 시방세계로 가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우러르고 받들며 생각하고 관찰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모든 착한 뿌리를 심어 부처님을 환희케 하고 부처님의 종자를 증장하여 모두 부처를 이루게 하며, 이와 같은 행으로써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일이 곧 불사를 짓는 일이며, 몸을 나누어 시방세계에 두루 가서 모든 중생들에게 우러르고 받들며 생각하고 관찰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모든 착한 뿌리를 심게 하는 인연을 심어주는 일들이 훌륭한 불사를 짓는 일이다. 或爲衆生하야示現色身하며或出妙音하며或但微笑하사令其信樂하야 頭頂禮敬하며 曲躬合掌하며稱揚讚歎하며問訊起居하야而作佛事하나니 “혹은 중생을 위하여 육신을 나타내기도 하고 묘한 음성을 내기도 하며, 혹은 다만 미소만 짓기도 하며, 그들로 하여금 믿고 좋아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경하고 허리를 굽혀 합장하며, 드날리고 찬탄하고 일상[起居]을 문안하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부처님과 같은 훌륭한 성인은 그 육신을 나타내기도 하고 묘한 음성을 내기도 하며, 혹은 다만 미소만 지어도 훌륭한 불사를 짓는 것이 된다. 또 중생들에게 믿고 좋아하게 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경하고, 허리를 굽혀 합장하게만 하여도 큰 불사를 짓는 일이 된다. 一切諸佛이以如是等無量無數不可言說不可思議種種佛事로於一切世界中에隨諸衆生心之所樂하사 以本願力과 大慈悲力과一切智力으로方便敎化하사悉令調伏이是爲第七廣大佛事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가지가지 불사로써 일체세계에서 모든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르며, 본래의 원력과 크게 자비한 힘과 일체 지혜의 힘으로 방편으로 교화하여 다 조복케 하나니, 이것이 일곱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불사를 짓는 일이다. 부처님과 같이 일체중생 부처님의 일거수일토족도 모두 불사를 짓는 일이다. 중생부처님도 진여불성으로 일거수일투족 하므로 일체가 불사를 짓는 일이다. 또한 중생의 참마음 참사람이 온갖 위의를 나타내어 삶을 영위하므로 그 모두가 다 불사를 짓는 일이다. 하물며 모든 부처님이 본래의 원력과 크게 자비한 힘과 일체 지혜의 힘으로 방편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다 조복케 하는 일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처처(處處)가 불상(佛像)이며, 사사(事事)가 불공(佛供)이며, 일체 행위가 모두 불사(佛事) 아닌 것이 없다. 8) 장소와 모습과 시간에 따라 불사를 짓다 佛子야一切諸佛이或住阿蘭若處하야 而作佛事하며或住寂靜處하야而作佛事하며或住空閑處하야而作佛事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혹은 아란야에 있어서 불사를 짓고, 혹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불사를 짓고, 혹은 텅 비고 한가한 곳에 있어서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아란야나 고요한 곳[寂靜處]이나 텅 비고 한가한 곳[空閑處]이나 모두 같은 의미이다. 수행자가 처음에는 이와 같이 고요한 곳에서 혼자 있으면서 공부를 하고자한다. 부처님도 출가하여 처음 수행하실 때는 이러한 곳에서 살았다. 어느 곳이든 모두가 불사를 짓는 일이다. 或住佛住處하야而作佛事하며或住三昧하야而作佛事하며或獨處園林하야而作佛事하며或隱身不現하야而作佛事하며 “혹은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있으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삼매에 머물러서 불사를 짓고, 혹은 동산의 숲에 혼자 머물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몸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으면서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혹은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서나 삼매에서나 숲속에서나 아예 몸을 숨기거나 일체 행위가 모두 불사를 짓는 일이다. 예컨대 금으로 비녀와 반지를 만들어도 그것은 금이며, 불상을 만들거나 코끼리와 같은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도 그것은 모두 금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처님이 하시는 일에 무엇인들 불사가 아니겠는가. 或住甚深智하야 而作佛事하며 或住諸佛無比境界하야 而作佛事하며 或住不可見種種身行하야 隨諸衆生의 心樂欲解하사 方便敎化호대 無有休息하야 而作佛事하며 “혹은 깊은 지혜에 머물러 불사를 짓고, 혹은 모든 부처님의 견줄 데 없는 경계에 있어서 불사를 짓고, 혹은 다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몸과 행에 머물러서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좋아함과 지혜를 따라서 방편으로 교화하기를 쉬지 아니하며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불사를 짓는 일이란 깊고 깊은 지혜에 머물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의 비교할 수 없는 경계에 머물기도 하고, 다 볼 수 없는 가지가지 몸에 머물러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쉬지 않고 방편으로 교화하는 일들이다. 불사가 어디 한가지뿐이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만 반드시 훌륭한 불사라고 집착할 일이 아니다. 或以天身으로 求一切智하야而作佛事하며或以龍身과夜叉身과乾闥婆身과阿修羅身과迦樓羅身과緊那羅身과 摩睺羅伽와人非人等身으로求一切智하야而作佛事하며或以聲聞身과獨覺身과菩薩身으로求一切智하야而作佛事하며 “혹은 천신의 몸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고, 혹은 용의 몸과 야차의 몸과 건달바의 몸과 아수라의 몸과 가루라의 몸과 긴나라의 몸과 마후라가의 몸과 사람인 듯 아닌 듯 한 몸 등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느니라. 혹은 성문(聲聞)의 몸과 독각(獨覺)의 몸과 보살의 몸으로 일체지혜를 구하면서 불사를 짓기도 하느니라.” 강설 ; 또 어떤 처지와 어떤 몸과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일체 존재의 평등한 본질과 차별한 현상을 다 꿰뚫어 아는 일체지혜를 구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곧 불사를 짓는 일이다. 용의 몸이나 야차의 몸이나 건달바의 몸이나 아수라의 몸이나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나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이나 그 어떤 몸이라도 차별하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어찌 남녀노소와 승속을 가리랴. 或時說法하고或時寂黙하야而作佛事하며或說一佛하고或說多佛하야而作佛事하며 “어떤 때는 법을 말하고 어떤 때는 고요히 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한 부처님을 말하고 혹은 여러 부처님을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법을 설하는 것으로 불사를 짓고 묵묵히 있는 것으로도 불사를 짓는다. 혹은 한 부처님만을 이야기 하고 혹은 수많은 부처님을 이야기하여 불사를 짓는다. 或說諸菩薩의一切行一切願이爲一行願하야而作佛事하며或說諸菩薩의一行一願이爲無量行願하야而作佛事하며 “혹은 여러 보살의 일체 행과 일체 원으로 한 행과 한 원을 삼는다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모든 보살의 한 행과 한 원으로 한량없는 행과 원을 삼는다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보살의 행원에 있어서도 한 행원에 일체 행원을 설하고 일체 행원에서 한 행원을 설하여 불사를 짓는다. 或說佛境界가 卽世間境界하야而作佛事하며或說世間境界가 卽佛境界하야而作佛事하며或說佛境界가 卽非境界하야而作佛事하며 “혹은 부처님 경계가 곧 세간 경계라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세간의 경계가 곧 부처님 경계라 말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은 부처님 경계가 곧 경계가 아니라 말하여 불사를 하느니라.” 강설 ; 혹은 부처님 경계가 곧 세간의 경계며 세간의 경계가 곧 부처님의 경계임을 설하여 불사를 짓는다. 부처님 경계가 곧 경계가 아님을 설하여 불사를 짓기도 한다. 或住一日하고或住一夜하고或住半月하고或住一月하고或住一年하며 乃至住不可說劫하사爲諸衆生하야而作佛事하나니是爲第八廣大佛事니라 “혹 하루를 머물고, 혹 하룻밤을 머물고, 혹 반달을 머물고, 혹 한 달을 머물고, 혹 일 년을 머물고, 내지 말할 수 없는 겁을 머물면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여덟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불사를 짓은 시간에 대해서도 하루 낮 동안 짓기도 하고 하루 밤 동안 짓기도 하고 반달, 한 달, 일 년, 불가설 겁 동안 등등 일정하지 않게 불사를 짓는다. 이러한 등의 광대한 불사를 짓는 일이 곧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이다. 9)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다 佛子야一切諸佛이是生淸淨善根之藏이라令諸衆生으로 於佛法中에生淨信解하야諸根調伏하야永離世間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청정한 선근을 내는 창고[藏]이니라.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 법에 대하여 깨끗한 믿음과 지혜를 내게 하고 모든 감관을 조복시켜 영원히 세간을 여의게 하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훌륭한 선근을 출생하는 창고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삶을 복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고 여러 가지 감각기관들을 조복 받아 길이 속된 일을 떠나게 한다. 令諸菩薩로於菩提道에具智慧明하야不由他悟하며或現涅槃하야而作佛事하며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보리(菩提)의 도(道)에 밝은 지혜를 갖추게 하되 다른 사람을 인하지 않고 깨달아 혹 열반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보살이 보리의 도에서 밝은 지혜를 갖추어 스스로 깨닫게 되어 일체 번뇌가 사라진 열반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는다. 或現世間이皆悉無常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세상이 모두 무상함을 나타내어 불사를 짓느니라.” 或說佛身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부처님의 몸을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여러 가지다. 불신(佛身) 즉 부처님의 몸은 불교 최상의 이상(理想)을 실현한 부처님 몸을 말한다.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고, 보리ㆍ열반을 증득한 부처님의 과체(果體)를 논하는 것이 불신론(佛身論)이다. 무상정각, 곧 보리ㆍ열반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는 대승ㆍ소승ㆍ학파(學派)ㆍ종파(宗派)에 의하여 견해를 달리하므로 그의 실현인 불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다르다. 부처님은 입멸한 뒤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아니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견적 존재인가, 이치로서의 존재인가, 덕으로서의 존재인가? 만일 영겁(永劫)의 본체로서의 존재라 하면 역사상의 부처님은 화현인가? 실체의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 중생 제도가 가능한가? 이런 종류의 문제가 불신론의 근본 문제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불신설이 생겼다. 부처님의 몸을 어떤 시각에서 설명을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불사를 짓는 일이다. 或說所作이皆悉已辦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지을 일을 모두 마치었다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或說功德이 圓滿無缺하야而作佛事하며 “혹 공덕이 원만하고 모자람이 없다고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모든 사람은 본각(本覺)에서 보거나 본래로 완전무결한 진여본성에서 볼 때 이미 할 일을 다 하였다. 그리고 본래로 갖춘 공덕도 완전하여 조금도 결함이 없다. 이와 같은 본래 자리를 설명하여 불사를 짓는다. 사람의 실상을 이해하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평등하게 완전무결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불사 중에 큰 불사이다. 或說永斷諸有根本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모든 존재[有]의 근본을 아주 끊었다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모든 존재의 근본은 텅 비어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근본을 아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이 또한 큰 불사이다. 或令衆生으로厭離世間하고隨順佛心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을 싫어하고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중생들에게 이와 같은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은 곧 발심이다. 불심(佛心)을 내는 일이고 보리심을 내는 일이고 도심(道心)을 내는 일이다. 불사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불사다. 或說壽命이 終歸於盡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목숨이 마침내 다한다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사람의 목숨은 끝내 다하고 만다. 그래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목숨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그것은 목숨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그 애착 때문에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집착에서 시원하게 벗어나도록 설명하여 준다면 그것은 큰 불사이다. 或說世間이 無一可樂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세간 일은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다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세상은 온통 불타는 집과 같고 고통의 바다라서 한 가지도 즐거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서 도에 대한 발심을 하게 한다면 이 또한 훌륭한 불사이리라. 或爲宣說盡未來際토록供養諸佛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라 말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부처님께 공양하고 보살에게 공양하고 일체 선지식에게 공양하고 나아가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다 같이 부처님으로 받들어 공양하게 가르친다면 이 또한 얼마나 훌륭한 불사이겠는가. 或說諸佛이 轉淨法輪하사 令其得聞하고生大歡喜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법륜을 굴린다 말하여 그들이 듣고 크게 환희하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불교가 이와 같이 오래도록 전승되어 오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일체 선지식들이 청정한 법륜을 굴려서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그것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환희심을 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고 환희심을 낸 사람들이 다시 또 청정한 법륜을 굴려서 불법이 영원히 이어가게 하는 것은 참으로 값지고 중요한 불사이다. 或爲宣說諸佛境界하사令其發心하야而修諸行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내고 수행케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또 부처님의 깊고 깊은 경계를 설하여 그것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계에 이르려고 마음을 내어 온갖 수행을 하여 불사를 짓는다. 모든 불교도와 일체 수행자들은 모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或爲宣說念佛三昧하사令其發心하야常樂見佛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염불하는 삼매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항상 즐겁게 부처님을 뵈려는 마음을 내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불교 수행에는 보살행과 봉사와 염불과 주력과 참선과 간경 등등이 있다. 그 모든 수행을 널리 설하여 부처님을 항상 즐겁게 친견하게 하여 불사를 짓는 것이다. 或爲宣說諸根淸淨하사勤求佛道호대心無懈退하야而作佛事하며 “혹 모든 감관[根]이 청정함을 말하여 불도를 부지런히 구하고 게을러 물러가는 마음이 없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모든 감관[根]이 청정하다는 것은 이미 몸가짐을 철저히 하여 불도를 부지런히 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훌륭한 불사이다. 或詣一切諸佛國土하사觀諸境界種種因緣하야而作佛事하며 “혹 일체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나아가서 모든 경계와 가지가지 인연을 보아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국토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경계와 가지가지 인연을 만나고 살펴서 그것에 알맞은 불사를 짓는다. 或攝一切諸衆生身하야皆爲佛身하사令諸懈怠放逸衆生으로悉住如來淸淨禁戒하야而作佛事하나니是爲第九廣大佛事니라 “혹 일체 모든 중생의 몸을 포섭하여 모두 부처님의 몸을 삼아서 게으르고 방탕한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청정한 계율에 머물게 하여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아홉째 광대한 불사니라.” 강설 ; 누구의 몸이나 그 몸을 모두 부처님의 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자신의 몸이 부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굳게 믿는다면 몸가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결코 게으르지도 않을 것이며 방탕하지도 않을 것이며 먹을거리도 함부로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게으르고 방탕한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청정한 계율에 머물게 하여 불사를 짓게 될 것이다. 10) 열반을 보여서 불사를 짓다 佛子야一切諸佛이入涅槃時에無量衆生이悲號涕泣하야生大憂惱하야遞相瞻顧하고而作是言호대 如來世尊이有大慈悲하사哀愍饒益一切世間하야與諸衆生으로爲救爲歸니如來出現이難可値遇어늘 無上福田이於今永滅이라하나니卽以如是令諸衆生으로悲號戀慕하야而作佛事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적에 한량없는 중생이 슬피 울며 큰 근심을 내어 서로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여래 세존께서 큰 자비로써 일체세간을 가엾이 여기고 이익케 하여, 모든 중생의 구호할 이가 되고 의지가 되는지라. 여래의 출현하심을 만나기 어렵거늘 더없는 복전이 이제 영원히 가시도다.’라고하나니, 곧 이와 같이 중생들로 하여금 슬피 울고 앙모(仰慕)하게 하여 불사를 짓느니라.” 강설 ;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출현신대로 큰 불사를 지은 것이요,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살펴보신 것은 그대로가 훌륭한 불사를 지은 것이요,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출가하여 6년간 수행하신 것은 그대로가 훌륭한 불사를 지은 것이요, 마군을 항복받고 정각을 이룬 것은 그것도 역시 훌륭한 불사를 지은 것이요, 49년간 진리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은 그대로 역시 훌륭한 불사를 지은 것이요, 마지막으로 열반을 보이신 것은 그것도 역시 큰 불사를 지은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불사가 아닌 것이 있겠는가. 부처님의 이와 같은 불사 지음을 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復爲化度一切天人과龍神과 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等故로隨其樂欲하야自碎其身하야以爲舍利호대無量無數하야 不可思議하야 令諸衆生으로起淨信心하야恭敬尊重하고歡喜供養하야修諸功德하야具足圓滿하며 “또 모든 천신과 사람들과 용과 신들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 한 이들을 교화하려고 그들의 욕망을 따라 스스로의 몸을 부수어 사리(舍利)를 만들되 한량없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신심을 일으키게 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환희하고 공양하여 모든 공덕을 닦아서 원만케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교화하기 위하여 열반에 드신 뒤에도 그 몸을 부수어 낱낱이 사리로 삼아서 모든 중생들에게 청정한 신심을 일으키게 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환희하고 공양하여 모든 공덕을 닦게 하였다. 이 얼마나 크고 큰 불사인가. 스님들이 원적에 들어 다비를 끝내고 나면 습골(拾骨)과 쇄골(碎骨)과 산골(散骨)을 하는데 그 과정들이 다시 눈에 선하게 하는 내용들이다. 아직도 이름 있는 큰스님들은 유골을 나누어 여러 곳에 탑이나 부도를 세워 모신다. 이 또한 훌륭한 불사다. 復起於塔하야種種嚴飾하야於諸天宮과龍宮과 夜叉宮과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人非人等諸宮殿中에以爲供養하며 “또 탑을 조성하고 여러 가지로 장엄하여 모든 천궁과 용궁과 야차의 궁전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듯한 이들의 모든 궁전에서 공양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사리는 세상 곳곳에서 온갖 중생들이 사리탑을 세워 모셔서 공양 올려 불사를 짓는다. 만약 사리가 없으면 경전을 사리탑에 넣어 모시기도 한다. 부처님의 경전은 ‘법신(法身)사리’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훌륭한 불사다. 牙齒爪髮을咸以起塔하야令其見者로皆悉念佛念法念僧하야信樂不廻하며誠敬尊重하야在在處處에布施供養하야修諸功德하고 “치아와 손톱과 머리카락으로 탑을 조성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佛]을 생각하고 법(法)을 생각하고 스님[僧]을 생각하며 신심을 돌이키지 않고 정성으로 존중하며, 가는 곳마다 보시하고 공양하여 모든 공덕을 닦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사리에는 유골사리뿐만 아니라 치아사리도 있고 손가락 사리도 있고 머리카락사리도 있다. 어떤 사리가 되었든 낱낱이 탑을 세워 그 사리탑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생각하게 하여 진실을 다해 공경하고 존중하며 보시와 공양으로 온갖 공덕을 닦게 하여 불사를 짓는다. 以是福故로或生天上하며或處人間호대種族尊榮하고財産備足하며 所有眷屬이 悉皆淸淨하며不入惡趣하고常生善道하야恒得見佛하야具衆白法하며 “이러한 복덕으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에도 태어나서는 문벌이 훌륭하고 재산이 풍족하고 권속들이 청정하며,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좋은 길에 태어나서 늘 부처님을 뵈옵고 여러 가지 청정한 법[白法]을 구족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사리탑에 공양하고 예배하면 그 복덕으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에도 태어나서는 문벌이 훌륭하고 재산이 풍족하고 권속들이 청정하며,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좋은 길에 태어나서 늘 부처님을 뵈옵고 여러 가지 청정한 법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초기에는 사리탑을 신앙하다가 그 다음에 불상을 모셔서 예배하고 공양하게 되었던 것이다. 於三有中에速得出離하야各隨所願하야獲自乘果하며於如來所에知恩報恩하야永與世間으로作所歸依하나니 “세 가지 세계[三有]에서 빨리 뛰어나 제각기 소원대로 자기의 과보를 얻으며 여래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며, 영원히 세간의 귀의할 데가 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사리탑에 예배하고 공양하면 세 가지 세계인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빨리 뛰어나 제각기 소원대로 자기의 과보를 얻게 된다. 또 부처님의 사리탑을 예배하고 공양하여 모시는 것은 여래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일이며, 영원히 세간의 귀의할 데가 되는 것이다. 佛子야諸佛世尊이雖般涅槃이나仍與衆生으로作不思議淸淨福田과 無盡功德最上福田하사令諸衆生으로善根具足하며福德圓滿이니是爲第十廣大佛事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비록 열반에 드시더라도 모든 중생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복전이 되고 끝없는 공덕의 가장 높은 복전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착한 뿌리가 구족하고 복덕이 원만케 하나니, 이것이 열째 광대한 불사이니라.” 강설 ; 부처님 세존은 비록 열반에 드시더라도 모든 중생들에게 무한한 복전이 되고 영원한 스승이 된다.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지가 얼마나 오래인가. 그런데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복전이 되고 만 중생들의 귀의할 곳이 되는가. 아무리 찬탄하더라도 그 공덕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佛子야此諸佛事가無量廣大하야不可思議하야一切世間에諸天及人과及去來今聲聞獨覺은皆不能知요唯除如來威神所加니라 “불자여, 이 모든 불사는 한량없고 광대하고 불가사의해서 일체세간의 천신과 사람과 과거 미래 현재의 성문과 독각들도 알지 못하거니와, 오직 여래의 위신력으로 가피를 받은 이는 제외될 것이니라.” 강설 ; 이 모든 불사는 한량없고 광대하고 불가사의해서 일체세간의 천신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또 과거 미래 현재의 성문과 독각들도 알지 못한다. 오직 여래의 위신력으로 가피를 받은 이라면 조금은 알 수 있으리라. <5> 둘이 없는 행(行)의 자재한 법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無二行自在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悉能善說授記言辭하야決定無二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열 가지 둘이 없는 행에 자유자재한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수기(授記)하는 말씀을 잘 설하시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똑 같이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른 모든 생명들이 다 같이 불성이 있으므로 실제에 있어서는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수기하여 보증하는 말씀을 하신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여 다른 말이 있을 수 없다. 즉 결정하여 둘이 없다. 그러므로 만약 일체생명을 부처님으로 수기하지 않는다면 그는 부처님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悉能隨順衆生心念하사令其意滿하야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중생들의 생각함을 따라 그 뜻을 만족케 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또 일체 모든 부처님은 똑 같이 중생들의 생각함을 따라 그 뜻을 만족케 하는데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중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하지 않는 부처님이 어디에 있겠는가. 즉 분명하고 확실하여 둘이 없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즐겁게 하지 않는 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悉能現覺一切諸法하사演說其義하야 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일체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말씀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법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 뜻을 연설하시는 일도 법을 깨달은 부처님이라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법을 설하여 참다운 이치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는 불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一切諸佛이 悉能具足去來今世諸佛智慧하야 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과거 미래 현재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구족함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모든 개달은 사람들은 깨달음의 지혜를 다 구족하였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悉知三世一切刹那가卽一刹那하야 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 세상의 일체 찰나가 곧 한 찰나인 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이 곧 한 찰나임을 안다. 만약 구세(九世) 십세(十世)가 서로 서로 같은 것이어서 한 찰나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이해가 결정하여 둘이 없다. 一切諸佛이悉知三世一切佛刹이入一佛刹하야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 세상의 일체 부처님의 세계가 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감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앞에서 말한 시간과 같이 공간에 대해서도 일체세계가 한 세계에 다 들어감을 깨달은 사람들은 다 같이 알아 둘이 없다. 만약 공간성을 그와 같이 알지 못한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悉知三世一切佛語가卽一佛語하야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 세상의 일체 부처님의 말씀이 곧 한 부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깨달은 사람들의 말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 말씀이 똑 같은 줄을 안다. 만약 다른 말로 안다면 그는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悉知三世一切諸佛이與其所化一切衆生으로體性平等하야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 세상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교화할 일체중생들과 성품이 평등함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그 성품이 동일하여 평등하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 다르게 안다면 그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는 말도 모르는 사람이다. 一切諸佛이 悉知世法과及諸佛法이 性無差別하야決定無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상법과 모든 부처님 법의 성품이 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느니라.” 강설 ; 깨달은 사람들은 세상법과 부처님의 법이 그 본성은 차별이 없이 같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 세상법과 불법을 다르게 안다면 그는 불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一切諸佛이 悉知三世一切諸佛의 所有善根이 同一善根하야 決定無二가 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세 세상 일체 모든 부처님들의 가지신 착한 뿌리가 다 같은 착한 뿌리임을 아는 것이 결정하여 둘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선근이란 나에게도 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깨달은 사람은 그와 같은 선근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은 안다. 이것은 결정적인 일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 <6> 일체 법에 머물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住하야住一切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住覺悟一切法界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머무름이 있어 일체 법에 머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은 일체 법계를 깨달음에 머무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먼저 일체 법계를 깨닫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 일체 법계를 깨달아야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一切諸佛이住大悲語하며一切諸佛이住本大願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말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본래의 큰 서원에 머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당연히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머물러야 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교화하려는 큰 서원에 머물러야 한다.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중생을 교화하려는 서원이 없으면 그는 부처님이 아니다. 一切諸佛이住不捨調伏衆生하며一切諸佛이住無自性法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조복시킴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제 성품이 없는 법에 머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법으로 일체중생들을 조복시키고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 또 부처님은 자체의 고정된 성품이 없는 법에 머문다.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시키지 않으면 부처님이 아니요 보살이 아니요 선지식이 아니다. 고통 받는 중생을 버리고 외면한다면 부처님이 아니요 보살이 아니요 선지식이 아니다. 一切諸佛이住平等利益하며一切諸佛이住無忘失法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게 이익 되게 하는 데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잊어버림이 없는 법에 머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데 차별이 없다. 만약 사람을 차별한다면 부처님이 아니다. 또 부처님은 어떤 법을 아는데 있어서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 보통의 중생들은 항상 배우고 또 항상 잊어버린다. 그러나 잊어버리면서 또한 자란다. 마치 콩나물을 물을 줘서 키우는데 물은 다 세어나가지만 어느새 콩나물을 자라있는 것과 같다. 一切諸佛이住無障礙心하며一切諸佛이住恒正定心하며一切諸佛이住等入一切法하야不違實際相이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은 장애가 없는 마음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항상 바른 선정의 마음에 머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은 일체 법에 평등하게 들어가 실제를 어기지 않는 데 머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이 무슨 장애가 있겠는가. 만약 어떤 일에도 장애가 있으면 부처님이 아니다. 또 부처님은 항상 바른 선정의 마음에 머문다. 또 일체 법에 평등하게 들어가 실제를 어기지 않는 데 머문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은 아무리 열거해도 달할 수 없다. <7> 일체 법을 다 알아서 남음이 없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知一切法盡無有餘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知過去一切法하야 盡無有餘하며知未來一切法하야盡無有餘하며知現在一切法하야 盡無有餘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일체 법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는 것이 열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과거의 일체 법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미래의 일체 법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현재의 일체 법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법을 다 알아 넘음이 없다. 부처님이 어찌 일체 법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있겠는가. 知一切言語法하야盡無有餘하며知一切世間道하야盡無有餘하며知一切衆生心하야盡無有餘하며 “일체 말하는 법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일체 세간의 도리를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느니라.” 강설 ; 또 말하는 법과 세간의 도리와 중생들의 마음까지 다 알아 남음이 없다. 知一切菩薩善根의上中下種種分位하야盡無有餘하며知一切佛圓滿智와及諸善根의不增不減하야盡無有餘하며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가 상품 중품 하품으로 갖가지 나눈 자리(分位)를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일체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와 모든 착한 뿌리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느니라.” 강설 ; 또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가 상품 중품 하품으로 갖가지 나눈 자리와 일체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와 모든 선근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을 다 알아 남음이 없다. 知一切法이 皆從緣起하야 盡無有餘하며 知一切世界種하야 盡無有餘하며 知一切法界中에 如因陀羅網諸差別事하사 盡無有餘가 是爲十이니라 “일체 법이 모두 인연으로 일어난 줄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일체 세계종(世界種)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으며, 일체 법계 가운데 인다라 그물과 같은 차별한 일을 알아 다하고 남음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또 일체 법이 모두 인연으로 일어난 것과 다중의 세계가 하나로 되어 있는 세계종과 일체 법계 가운데 인다라 그물과 같은 차별한 일들까지 다 알아 남음이 없다. <8> 부처님은 열 가지 광대한 힘이 있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力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廣大力과 最上力과無量力과大威德力과 難獲力과 不退力과 堅固力과 不可壞力과一切世間不思議力과一切衆生無能動力이 是爲十이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힘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이른바 광대한 힘과 가장 높은 힘과 한량없는 힘과 큰 위력의 힘과 얻기 어려운 힘과 물러가지 않는 힘과 견고한 힘과 파괴할 수 없는 힘과 일체 세간이 헤아릴 수없는 힘과 일체 중생이 흔들 수 없는 힘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에는 열 가지 광대한 힘이 있다. 광대한 힘과 가장 높은 힘과 한량없는 힘과 큰 위력의 힘과 얻기 어려운 힘과 물러가지 않는 힘 등이다. 부처님은 곧 힘이고 힘은 곧 부처님이다. <9> 부처님은 열 가지 용건법이 있다 1) 몸과 목숨을 무너뜨릴 수 없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大那羅延幢勇健法하시니何者가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 身不可壞며命不可斷이니 世間毒藥의所不能中이며一切世界水火風災가皆於佛身에不能爲害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勇健法]이 있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은 그 몸을 무너뜨릴 수 없고, 목숨을 끊을 수 없고, 세간의 독약으로 중독 시킬 수 없고, 일체 세계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가 모두 부처님의 몸을 해할 수 없느니라.” 강설 ; 부처님에게는 열 가지 용감하고 굳건한 법[勇健法]이 있다. 먼저 몸과 목숨을 어떤 독약이나 수재와 화재와 풍재로도 부처님의 몸을 해칠 수 없다. 세존이 열반에 드실 때 변질된 음식을 잘못 드시고 병이 나서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오온으로 된 육신이다. 부처님의 몸이 아니다. 부처님의 몸, 진리의 몸, 법의 몸은 영원히 불생불멸이다. 一切諸魔와 天龍과 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과 毘舍闍와 羅刹等이 盡其勢力하야雨大金剛을如須彌山과 及鐵圍山하야徧於三千大千世界하야一時俱下라도不能令佛로 心有驚怖하며 “일체 모든 마군과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 한 것과 비사사와 나찰 따위가 그들의 힘을 다하여 큰 금강을 비 내리기를 수미산 같고 철위산 같이 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한꺼번에 내리더라도 능히 부처님의 마음을 놀라게 할 수 없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과 목숨은 모든 마군과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 등이 온갖 날카로운 무기를 이용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乃至一毛도亦不搖動하야行住坐臥에 初無變易일새佛所住處四方遠近에 不令其下하야則不能雨하며假使不制하야而從雨之라도終不爲損이니 “내지 한 터럭도 또한 움직일 수 없어서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조금도 변동되지 않으며, 부처님 계신 곳에서 사방으로 멀거나 가깝거나 내리지 못하게 하면 곧 내릴 수 없고 설사 막지 아니하여 내리더라도 마침내 손상시키지 못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은 어떤 무기로 가해를 하더라도 한 터럭도 또한 움직일 수 없으며,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에 조금도 변동하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若有衆生이爲佛所持와及佛所使라도尙不可害어든況如來身가是爲諸佛의 第一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입었거나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더라도 오히려 해할 수 없거든 하물며 여래의 몸이겠는가.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첫째 큰 나라연당기(幢旗)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설사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해도 오히려 그를 해칠 수 없다. 그런데 어찌 여래의 몸이겠는가. 이것이 첫째가는 부처님의 큰 금강과 같은 당기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2) 한 모공(毛孔)에 온 세계를 다 수용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以一切法界諸世界中須彌山王과及鐵圍山과大鐵圍山과大海山林과 宮殿尾宅으로置一毛孔하야盡未來劫호대而諸衆生이不覺不知요唯除如來神力所被니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법계의 모든 세계 가운데 있는 수미산과 철위산과 큰 철위산과 큰 바다와 산림과 궁전과 집들을 한 모공(毛孔)에 넣고 오는 세월이 다하더라도 모든 중생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니, 오직 여래의 신통으로 가피 받은 이는 제외되느니라.” 강설 ; 저 드넓은 우주법계는 모두 부처님의 작은 모공 속에 있다. 부처님은 그 모든 우주법계를 한 모공 속에 넣고 미래 겁이 다하더라도 중생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佛子야爾時諸佛이於一毛孔에持於爾所一切世界하야盡未來劫토록或行或住하며或坐或臥호대不生一念勞倦之心하나니 “불자여, 이때에 모든 부처님의 한 모공(毛孔)에 저러한 일체 세계를 지니고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혹은 가고 혹은 머물고, 혹은 앉고 눕더라도 잠깐도 고달픈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강설 ; 이때에 모든 부처님의 한 모공에 저러한 우주법계와 일체 세계를 지니고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혹은 가고 혹은 머물고, 혹은 앉고 눕더라도 잠깐도 고달픈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勇健法]이다. 佛子야譬如虛空이普持一切徧法界中所有世界호대而無勞倦인달하야 一切諸佛이於一毛孔에持諸世界도亦復如是니是爲諸佛의 第二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온 법계에 가득한 모든 세계를 널리 지니더라도 고달픔이 없는 것과 같이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모공(毛孔)에 모든 세계를 지님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둘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한 모공에 저러한 우주법계와 일체 세계를 지니고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혹은 가고 혹은 머물고 하는 일을 허공에 비유하여 밝혔다. 저 허공 속에는 온 법계에 가득한 모든 세계를 널리 지니더라도 고달픔이 없다. 부처님이 모공 속에 우주를 다 지니는 것도 그와 같다. 스스로 허공이 되어야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수용하는 용감하고 굳건한 법[勇健法]이 있게 된다. 3) 한 모공(毛孔)이 큰 산을 다 지니는 힘이 있다 佛子야一切諸佛이能於一念에起不可說不可說世界微塵數步하고 一一步에過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國土하사如是而行하야 經一切世界微塵數劫하나니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걸음을 걷고, 한 걸음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가며, 이와 같이 걸어서일체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겁을 경과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서로 융통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 예컨대 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걸음을 걷고, 한 걸음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가며, 이와 같이 걸어서 일체 세계의 작은 먼지 수 겁을 경과한다하더라도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다. 이것이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佛子야 假使有一大金剛山이 與上所經一切佛刹로 其量正等하야 如是量等大金剛山이 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어든 諸佛이 能以如是諸山으로 置一毛孔하며 佛身毛孔이 與法界中一切衆生毛孔數等이어든 一一毛孔에 悉置爾許大金剛山하야 持爾許山하고 遊行十方하야 入盡虛空一切世界하야 從於前際로 盡未來際토록 一切諸劫에 無有休息호대 佛身無損하며 亦不勞倦하야 心常在定하야 無有散亂이니 是爲諸佛의 第三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불자여, 가령 하나의 큰 금강산이 있는데, 위에서 지나온 일체 세계와 그 수량이 같으며, 이와 같은 수량의 큰 금강산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수와 같거든, 모든 부처님이 능히 이와 같은 모든 산을 한 모공(毛孔)에 넣으며, 부처님 몸의 모공이 법계에 있는 일체 중생의 모공수와 같은데, 낱낱 모공에 모두 저러한 큰 금강산을 넣고, 저러한 산을 지니고 시방으로 다니면서 온 허공의 일체 세계에 들어가서 앞 세월로부터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일체 모든 겁 동안에 쉬지 아니하건마는 부처님의 몸은 손상되지도 않고 또한 고달프지도 않으며,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어 산란함이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셋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한 모공 속에 무수한 금강산을 다 넣고 낱낱 모공 속에도 다 그와 같이 해서 시방세계를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에까지 돌아다녀도 부처님의 몸은 손상되지도 않고 또한 고달프지도 않으며,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어산란함이 없다. 이것이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4) 삼매의 작용이 자유자재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一坐食已에結跏趺坐하야經前後際不可說劫토록 入佛所受不思議樂하사其身安住하야寂然不動호대亦不廢捨化衆生事하나니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번 앉음에 밥 먹고는 가부좌하고 앉아서 앞 세상과 뒷세상을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나면서 부처님들이 받는 부사의한 낙을 받는데 들어가 그 몸이 편안하게 머물러서 고요하게 동요하지 않지마는 또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버리지 않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서 자유자재한 작용을 일으키는 용감하고 굳건한 법을 밝혔다. 부처님의 삼매란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무수한 세월을 지나면서 즐거움을 누리더라도 부처님의 책임인 중생 교화하는 일은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왕성하게 교화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佛子야假使有人이於徧虛空一一世界를悉以毛端으로次第度量이라도諸佛이 能於一毛端處에結跏趺坐하사盡未來劫하며如一毛端處하야一切毛端處도悉亦如是니라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허공에 두루한 낱낱 세계를 모두 털끝으로 차례차례 헤아리는데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털끝만한 곳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하며, 한 털끝만한 곳에서처럼 일체 털끝만한 곳에서도 모두 또한 그러하느니라.” 강설 ; 가령 어떤 사람이 허공에 두루한 낱낱 세계를 모두 털끝으로 차례차례 헤아리는 것과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털끝만한 곳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하며, 한 털끝만한 곳에서처럼 일체 털끝만한 곳에서도 모두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을 어찌 비교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부처님의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佛子야假使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에一一衆生의其身大小가悉與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로 量等하고輕重도 亦爾하야諸佛이 能以爾所衆生으로置一指端하야盡於後際所有諸劫하며一切指端도皆亦如是하야盡持爾許一切衆生하고入徧虛空一一世界하야盡於法界하야悉使無餘호대而佛身心은曾無勞倦이니是爲諸佛의 第四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불자여, 가령 시방의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낱낱 중생의 몸이 크기가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 세계의 분량과 같고, 무게도 역시 그러하거든 모든 부처님이 저러한 중생들을 한 손가락 끝에 놓고 오는 세상의 모든 겁을 다하며, 일체 손가락 끝에도 또한 모두 이와 같이 해서 저러한 일체 중생을 다 놓고, 온 허공에 두루한 낱낱 세계에 들어가서 법계가 다하도록 다 남음이 없이 하되 부처님의 몸과 마음은 조금도 고달프지 않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넷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무수한 중생들의 낱낱 몸의 크기가 무한하고, 몸은 무게도 역시 무한한데 모든 부처님은 그러한 중생들을 한 손가락 끝에 놓고 오는 세상의 모든 겁을 다하며, 일체 손가락 끝에도 다 놓고 역시 모든 겁을 다하더라도 부처님의 몸과 마음은 조금도 고달프지 않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5) 항상 두루 법을 연설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能於一身에化現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頭하며一一頭에 化現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舌하며一一舌에化出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差別音聲하사法界衆生이靡不皆聞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몸에서 능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머리를 나타내고, 낱낱 머리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혀를 나타내고, 낱낱 혀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와 같은 차별한 음성을 내거든, 법계의 중생들이 듣지 못하는 이가 없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하나의 몸에서 무수한 머리를 나타내고, 그 낱낱 머리에서 다시 또 무수한 혀를 나타내고, 또 낱낱 혀에서 또 무수한 음성을 내는데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다. 이 또한 일체 존재의 존재원리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서로 걸리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는 무애(無碍)의 이치이다. 一一音聲에演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修多羅藏하며一一修多羅藏에 演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法하며一一法에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文字句義하니 “낱낱 음성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경장(經藏)을 연설하고, 낱낱 경장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법을 말하고, 낱낱 법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글자와 구절과 이치가 있느니라.” 강설 ; 또 무수한 음성의 그 낱낱 음성에서 무수한 경전을 설하고, 무수한 경전에서 또 무수한 법을 설하고, 낱낱 법에서 다시 무수한 글자와 구절과 이치가 있다. 如是演說하야盡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고盡是劫已에復更演說하야盡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며 “이와 같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겁(劫)이 다하도록 연설하며, 이러한 겁을 다하고는 또 다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겁이 다하도록 연설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하나의 몸에서 무수한 머리, 무수한 머리에서 무수한 혀, 무수한 혀에서 무수한 음성 등등으로 낱낱 법에 이르고 낱낱 법에서 다시 무수한 글자와 구절과 이치가 있는 것을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겁이 다하도록 연설하며, 이러한 겁을 다하고는 또 다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겁이 다하도록 연설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설법이다. “바람소리와 시냇물소리가 모두 부처님의 설법이다.”라는 고인의 말씀의 근거가 된다. 如是次第乃至盡於一切世界微塵數하고盡一切衆生心念數어든 未來際劫은猶可窮盡이어니와如來化身의所轉法輪은無有窮盡이니 “이와 같은 차례로 내지 일체 세계의 작은 먼지수가 다하고 일체 중생의 생각의 수효가 다하되 오는 세월의 겁은 설사 다한다 하더라도 여래의 화신(化身)이 굴리는 법륜(法輪)은 다함이 없느니라.” 강설 ; 여래의 화신(化身)을 노래한 화신송(化身頌)이 있다. “아름답다 저 달이여, 은하(銀河)를 갈아다 만들었는가. 흰 얼굴 머금은 고운 빛은 온 누리 두루 두루 다 비추이네. 물속의 달을 건지려함은 부질없는 짓일세, 본래로 푸른 하늘 떠나지 않은 저 달이여.” 또 이런 게송도 있다.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있고, 만리(萬里)에 구름 없으니 만리가 하늘이더라.” 모두가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화신(化身)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표현한 글이다. 所謂智慧演說法輪과斷諸疑惑法輪과照一切法法輪과開無礙藏法輪과令無量衆生으로歡喜調伏法輪과 開示一切諸菩薩行法輪과高昇圓滿大智慧日法輪과普燃照世智慧明燈法輪과辯才無畏種種莊嚴法輪이라 “이른바 지혜로 연설하는 법륜과 모든 미혹을 끊는 법륜과 일체 법을 비추는 법륜과 걸림이 없는 창고[藏]를 여는 법륜과 한량없는 중생을 환희케 하여 조복시키는 법륜과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열어 보이는 법륜과 높이 떠오르는 원만한 지혜의 태양의 법륜과 세상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을 널리 밝히는 법륜과 두려움 없는 변재로 갖가지 장엄하는 법륜들이니라.” 강설 ; 다함이 없는 여래화신이 다함이 없이 법륜을 굴리는 내용을 밝혔다. 지혜로 연설하는 법륜과 모든 미혹을 끊는 법륜과 일체 법을 비추는 법륜과 걸림이 없는 창고[藏]를 여는 법륜 등등이다. 如一佛身이以神通力으로轉如是等差別法輪에一切世法으로 無能爲喩하야如是盡虛空界一一毛端分量之處에 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어든一一世界中에念念現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化身하고一一化身도皆亦如是하야所說音聲文字句義가 一一充滿一切法界하야其中衆生이皆得解了호대而佛言音은無變無斷하며無有窮盡이니是爲諸佛의 第五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한 부처님 몸이 신통한 힘으로 이와 같이 차별한 법륜을 굴리는 것을 일체 세간법(世間法)으로 비유할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온 허공의 낱낱 털끝만한 곳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세계가 있고, 낱낱 세계 가운데 잠깐 잠깐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수의 화신(化身)이 있고, 낱낱 화신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이 연설하는 음성과 글자와 구절과 이치가 낱낱이 모두 일체 법계에 가득하여, 그 안에 있는 중생들이 다 분명히 이해하더라도 부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끊이지 아니하여 다함이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다섯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센 법이니라.” 강설 ; 부처님이 굴리시는 온갖 법륜을 어찌 세간의 법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와 같은 법륜들을 온 허공의 털끝만한 곳마다에 무수한 세계가 있고, 낱낱 세계마다에서 순간순간마다 무수한 화신 부처님이 무수한 법을 설한다. 또 법을 설하는 음성과 글자와 구절과 이치가 낱낱이 모두 일체 법계에 가득하다. 이것이 또한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센 법이다. 6) 덕상(德相)으로써 마군을 항복받다 佛子야一切諸佛이皆以德相으로莊嚴胸臆이猶若金剛의 不可損壞하야菩提樹下에結跏趺坐하시니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복덕의 형상으로 가슴을 장엄하심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는 이가 보리수 아래서 가부좌하고 앉으셨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 중에 덕상(德相)으로써 마군을 항복받는 내용을 밝혔다. 복덕의 형상으로 가슴을 장엄하신 것은 가슴 만(卍)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자 목걸이를 걸어서 부처님의 덕상을 삼기를 권유한다. 덕이야말로 금강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다. 부처님은 덕상을 갖추고 보리수나무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만 해도 모든 마군들이 두렵게 하지 못한다. 魔王軍衆이其數無邊하며種種異形이甚可怖畏하야衆生見者가靡不驚懾하야 悉發狂亂하고或時致死하는如是魔衆이徧滿虛空이라도 “마왕의 군중은 그 수가 그지없는데 가지각색의 흉악한 형상이 매우 무서워서 보는 중생마다 모두 놀라서 발광하거나 혹은 죽게 되나니, 그러한 마군들이 허공에 가득하였느니라.” 강설 ; 그래서 마왕의 군중은 그 수가 그지없는데 가지각색의 흉악한 형상이 매우 무서워서 보는 중생마다 모두 놀라서 발광하거나 혹은 죽게 되기도 하지만 부처님은 전혀 공포가 없다. 如來見之에心無恐怖하야容色不變하며一毛不豎하야不動不亂하며無所分別하야離諸喜怒하며寂然淸淨하야住佛所住하며 具慈悲力하야諸根調伏하며心無所畏하야非諸魔衆의所能傾動이요而能摧伏一切魔軍하야皆使廻心하야稽首歸依하고 “여래께서 보시고는 마음에 두려워하지도 않고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으며, 털 끝 하나 곤두서지 않고, 요동하지도 어지럽지도 않고 분별도 없고, 기쁘고 노함을 여의시고 고요하고 청정하게 부처님의 머무는 데 머무시며, 자비한 힘을 갖추고 모든 감관이 조복되었고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으시며, 마군들 따위는 흔들 수 없고 오히려 일체 마군을 항복받아 모두들 마음을 돌이키고 머리를 조아려 귀의케 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마군들을 보고 공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감동시켜 마음을 돌려 도리어 귀의하게 한다. 然後에 復以三輪敎化하사令其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意하야永不退轉이니是爲諸佛의 第六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그러한 뒤에 다시 세 가지 바퀴[三輪]로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고 영원히 물러가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부처님의 여섯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마군들을 세 가지 바퀴[三輪]로 교화한다는 것은 삼전법륜(三轉法輪)으로서 시전(示轉)ㆍ 권전(勸轉)ㆍ 증전(證轉)이다. 석존이 세 번 사제(四諦)의 교(敎)를 말씀한 것이다. 시전은 이것은 고(苦), 이것은 집(集), 이것은 멸(滅), 이것은 도(道)라고 그 모양을 보인 것이다. 권전은 고(苦)를 알라, 집(集)을 끊으라, 멸(滅)을 증득하라, 도(道)를 닦으라고 권한 것이다. 증전은 석존이 스스로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증득하려고,도를 닦은 것을 보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증득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을 설하여 마군을 교화하는 것이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7) 원만한 음성이 두루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有無礙音하사其音이 普徧十方世界어든衆生聞者가 自然調伏하나니彼諸如來의所出音聲을須彌盧等一切諸山이不能爲障이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걸림이 없는 음성이 있어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하였으므로 듣는 중생은 저절로 조복되며, 저 모든 여래가 내는 음성은 수미산 같은 일체 모든 산들도 방해하지 못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은 원만한 음성이 시방에 두루하여 걸림이 없다. 그 소리를 듣는 중생은 저절로 조복된다.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다. 수미산이 어찌 장애가 되겠는가. 天宮과 龍宮과夜叉宮과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等一切諸宮의所不能障이며一切世界高大音聲도亦不能障이라隨所應化하야一切衆生이靡不皆聞하야 文字句義를 悉得解了하나니是爲諸佛의 第七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천궁과 용궁과 야차궁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일체 모든 궁전들이 방해하지도 못하고, 일체 세계의 높고 큰 소리도 또한 능히 방해하지 못하며, 교화를 받을 만한 일체중생들은 모두 듣고 그 글자와 구절과 이치를 다 알게 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일곱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수미산 등 일체 산이 장애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천궁과 용궁과 야차궁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 궁들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부처님의 음성을 어느 누가 방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교화를 받을 만한 일체중생들은 모두 듣고 그 글자와 구절과 이치를 다 알게 된다. 이것이 또한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8) 마음에 장애가 없다 佛子야一切諸佛이心無障礙하야於百千億那由他不可說不可說劫에恒善淸淨하야去來現在一切諸佛로同一體性이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걸림이 없어 백 천억 나유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劫) 동안에 항상 청정하며,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꼭 같은 본체의 성품이니라.” 강설 ; 마음에 장애가 없으려면 텅 비어야 한다. 그래서 청정(淸淨)이란 텅 비었다는 뜻이다. 텅 비지 않고는 장애가 없을 수 없다. 그 텅 비어 청정함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체성(體性)이 동일하다. 無濁無翳하며無我無我所하며非內非外라了境空寂하야不生妄想하며無所依無所作하야不住諸相하며 永斷分別하야本性淸淨하며捨離一切攀緣憶念하야於一切法에常無違諍하며住於實際하야離欲淸淨하며 入眞法界하야演說無盡하며離量非量所有妄想하고絶爲無爲一切言說하며 “흐림도 없고 가림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경계가 고요함을 알아 허망한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의지할 데도 없고 지을 것도 없고, 모든 상(相)에 머물지도 않고 아주 분별이 끊어져 본 성품이 청정하며, 일체 반연하는 생각을 여의었으며,일체 법에 항상 어기거나 다툼이 없으며, 실제에 머물러서 탐욕을 떠나 청정하며, 진여법계에 들어가 연설함이 다함이 없으며, 요량할 수 있고 요량할 수 없는 모든 허망한 생각을 여의었고,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일체 말이 끊어졌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일체 장애가 없는 것은 마음이 텅 비어 청정하기 때문이며, 마음이 텅 비어 청정한 것은 일체 흐림도 없고 가림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경계가 고요함을 알아 허망한 생각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요량할 수 있고 요량할 수 없는 모든 허망한 생각을 여의었고, 함이 있고 함이 없는 등의 일체 말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於不可說無邊境界에悉已通達하야無礙無盡하며智慧方便으로成就十力하야 一切功德이莊嚴淸淨하며演說種種無量諸法호대 皆與實相으로不相違背하며於諸法界三世諸法에悉等無異하야究竟自在하며入一切法最勝之藏하야一切法門에正念不惑하며 安住十方一切佛刹하야而無動轉하며得不斷智하야知一切法究竟無餘하며盡諸有漏하야心善解脫하고慧善解脫하며住於實際 하야通達無礙하야心常正定하며於三世法과及以一切衆生心行에一念了達하야皆無障礙하나니是爲諸佛의 第八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말할 수 없고 그지없는 경계를 이미 통달하여 걸림이 없고 다함이 없으며, 지혜와 방편으로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일체 공덕과 장엄이 청정하며, 갖가지 한량없는 모든 법을 연설하되 한 가지도 실상과 어기지 아니하며, 모든 법계의 세 세상 모든 법이 모두 평등하고 다르지 아니하여 끝까지 자유자재하며, 일체 법의 가장 훌륭한 법장에 들어가 일체법문에 바른 생각이 미혹되지 않으며, 시방의 일체 부처님 세계에 편안히 머물러 동요하지 않고 끊어짐이 없는 지혜를 얻어 일체 법을 끝가지 알아 남음이 없으며, 모든 번뇌[有漏]를 다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여 실제(實際)에 머물러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서 마음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어 세 세상 법과 일체중생의 마음과 행동을 한 생각에 통달하여 하나도 장애가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여덟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마음에 일체 장애가 없음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 막연하게 부처님은 일체에 장애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낱낱이 열거하여 밝혔다. 이와 같은 것이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9) 법신(法身)이 미묘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 同一法身이며境界無量身이며功德無邊身이며世間無盡身이며 三界不染身이며隨念示現身이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꼭 같은 법신이니, 경계가 한량없는 몸과 공덕이 그지없는 몸과 세간에 다함없는 몸과 세 세계에 물들지 않는 몸과 생각대로 나타내는 몸이니라.” 강설 ; 대승경전과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일컬을 때 굳이 법신이라 하지 않아도 법신 부처님을 부처님이라 한다. 또 법신 부처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에게 진여생명으로서 다 같이 해당되는 부처님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는 일체 모든 부처님은 동일한 법신이다. 그러므로 경계가 한량없는 몸과 공덕이 그지없는 몸과 세간에 다함없는 몸과 세 세계에 물들지 않는 몸과 생각대로 나타내는 몸이다. 非實非虛한 平等淸淨身이며無來無去한 無爲不壞身이며一相無相한 法自性身이며無處無方한 徧一切身이며 “또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어서 평등하고 청정한 몸과 옴도 없고 감도 없이 함이 없어 무너지지 않는 몸과 한 모양이며 모양이 없어 법의 성품인 몸과 처소도 없고 방향도 없어 온갖 것에 두루한 몸이니라.” 神變自在한無邊色相身이며種種示現하야 普入一切身이며妙法方便身이며智藏普照身이며示法平等身이며普徧法界身이며 “또 신통변화가 자유자재하여 그지없는 몸매를 가진 몸과 갖가지로 나타나서 일체에 널리 들어가는 몸과 묘한 법의 방편인 몸과 지혜의 창고가 널리 비치는 몸과 법을 평등하게 나타내는 몸과 법계에 두루한 몸이니라.” 無動無分別하고 非有非無한 常淸淨身이며非方便非不方便이며 非滅非不滅이로대 隨所應化一切衆生의種種信解하야而示現身이며 “또 동함도 없고 분별도 없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항상 청정한 몸과 방편도 아니고 방편 아님도 아니며 열반도 아니고 열반 아님도 아니어서 교화할 바 일체 중생의 믿고 이해함을 따라 나타내는 몸이니라.” 從一切功德寶所生身이며具一切諸佛法眞如身이며本性寂靜無障礙身이며成就一切無礙法身이며 “또 일체 공덕 보배로 생긴 몸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갖춘 진여의 몸과 본래의 성품이 고요하여 장애가 없는 몸과 일체 걸림이 없는 법을 성취한 몸이니라.” 徧住一切淸淨法界身이며分形普徧一切世間身이며無攀緣無退轉永解脫하야 具一切智普了達身이며是爲諸佛의 第九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또 온갖 청정한 법계에 널리 머무는 몸과 형상을 나타내어 일체 세간에 두루 하는 몸과 반연함도 없고 물러감도 없고 아주 해탈하여 일체지혜를 갖추어 두루 통달하는 몸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아홉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또 일체 생명으로서의 법신 부처님은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어서 평등하고 청정한 몸과, 옴도 없고 감도 없이 함이 없어 무너지지 않는 몸과, 한 모양이며 모양이 없어 법의 성품인 몸 등등이다. 일체 생명이 법신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모두가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 된다. 10) 수행(修行)과 지혜가 구족하다 佛子야一切諸佛이等悟一切諸如來法하며等修一切諸菩薩行하며若願若智가 淸淨平等이猶如大海하야悉得滿足하며行力尊勝하야未曾退怯하며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모든 여래의 법을 평등하게 깨닫고,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평등하게 닦으며, 서원과 지혜가 청정하고 평등함이 마치 큰 바다가 모두 가득한 듯하며, 수행의 힘이 높고 수승하여 잠깐도 물러나거나 겁약하지 아니하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든 여래의 법을 깨닫고 나서 다시 모든 보살행을 닦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불법의 최종 목적은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처음도 끝도 불교는 보살행을 실천하자고 하는 가르침이다. 만약 보살행이 없다면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을 다 깨닫고 다시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길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불교는 서원과 지혜가 청정하고 평등하여 마치 큰 바다가 가득하듯이 보살의 수행이 높고 수승하여 잠깐도 물러나거나 멈추지 않아야 한다. 住諸三昧無量境界하야示一切道하야勸善誡惡하며智力第一로演法無畏하며 隨有所問하야悉能善答하며智慧說法이平等淸淨하며身語意行이悉皆無雜하며 “또 모든 삼매의 한량없는 경계에 머물고 일체 도리를 보여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짓을 경계하며, 지혜의 힘이 제일이어서 법을 연설함이 두렵지 않고, 묻는 대로 따라서 잘 대답하며, 지혜로 법을 설함이 평등하고 청정하여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행(行)이 조금도 잡란(雜亂)함이 없느니라.” 강설 ; 수행과 지혜가 구족하였을 때 그 능력과 행이 어떠한가를 밝힌 내용이다. 법을 설함에 묻는 대로 따라서 잘 대답하며, 지혜로 법을 설함이 평등하고 청정하여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행이 조금도 잡란함이 없다. 보살이 몸과 말과 뜻이 잡란하다면 그는 아직도 부족한 보살이리라. 住佛所住諸佛種性하야以佛智慧로而作佛事하며住一切智하야演無量法이無有根本하고無有邊際하며神通智慧가 不可思議하야一切世間이無能解了하며智慧深入하야見一切法이微妙廣大하야無量無邊하며三世法門을咸善通達하며 一切世界를悉能開曉하며以出世智로於諸世間에作不可說種種佛事하며成不退智하야入諸佛數하며 “부처님이 머무시는 부처님의 종성(種性)에 머물러서 부처님의 지혜로 불사를 지으며, 일체지혜에 머물러 한량없는 법을 연설하되 근본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으며, 신통과 지혜는 헤아릴 수 없어 일체세간들이 능히 알지 못하며, 지혜가 깊이 들어가서 일체 법을 보되 미묘하고 광대하여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세 세상의 법문을 다 잘 통달하여 일체세계를 다 능히 깨우치며, 출세간의 지혜로 모든 세간에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불사를 짓되 물러가지 않는 지혜를 이루어 모든 부처님의 수효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또 보살의 수행과 지혜가 구족하였을 바람직한 모습에는 부처님이 머무시는 부처님의 종성에 머물러서 부처님의 지혜로 불사를 짓는 일이다. 흔히 불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하는 일이 부처님의 지혜에 의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중생의 욕심의 표현들이다. 雖已證得不可言說離文字法이나而能開示種種言辭하야以普賢智로集諸善行하며 成就一念相應妙慧하야於一切法에悉能覺了하며如先所念一切衆生에皆依自乘하야而施其法하며 “비록 말할 수 없고 글자를 떠난 법을 이미 증득하였지마는 가지가지 말을 열어 보이며, 보현보살의 지혜로 모든 착한 행(行)을 모아서 한 생각에 서로 응하는 미묘한 지혜를 성취하여 일체 법을 다 능히 깨닫고, 먼저 생각하던 일체중생들과 같이 다 그들의 법에 의지하여 그 법을 베푸느니라.” 강설 ; 참다운 이치는 말을 떠났다고 하였다. 말을 떠나고 문자를 떠난 법을 드러내는 것이 불교지만 말이 가장 많고 문자가 가장 많은 것이 또한 불교다. 그러므로 말과 글자에 구애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말을 떠나고 문자를 떠난 진리를 드날린다. 이 또한 수행과 지혜를 구족한 보살의 모습이다. 一切諸法과一切世界와一切衆生과一切三世의於法界內에如是境界가其量無邊을以無礙智로悉能知見이니라 “일체 모든 법과 일체세계와 일체중생과 일체 세 세상의 법계 안에 이와 같은 경계가 한량없고 그지없지마는 걸림 없는 지혜로 모두 다 알고 보느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법과 일체세계와 일체중생과 일체 과거 현재 미래의 법계 안에서 말을 하되 말을 떠난 참다운 이치를 한량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다 알고 다 본다. 佛子야一切諸佛이於一念頃에隨所應化하사出興於世하며住淸淨土하사 成等正覺하며現神通力하사開悟三世一切衆生의心意及識호대不失於時니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잠깐 동안에 교화를 받을 중생을 따라 세상에 나타나서 청정한 국토에 머물러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신통한 힘으로 세 세상 일체 중생들의 마음과 뜻과 의식을 깨우치되 때를 놓치지 않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어 일체중생의 마음을 깨우치되 때를 놓치지 않고 교화하고 조복한다. 모든 일에는 시절인연이라는 것이 있다. 춘하추동이라는 자연의 이치도 모두 때가 있고 시절이 있듯이 중생들을 가르쳐서 교화하는 일도 모두 때가 있다. 세상사 인생사도 역시 때가 있고 시절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 佛子야衆生이 無邊하며世界가 無邊하며法界가 無邊하며三世가 無邊이어든諸佛最勝도 亦無有邊하야悉現於中하야成等正覺하사以佛智慧로方便開悟호대無有休息이니라 “불자여, 중생이 그지없고, 세계가 그지없고, 법계가 그지없고, 세 세상이 그지없고, 모든 부처님의 가장 수승함도 또한 그지없는데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나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부처님의 지혜로써 방편으로 깨우침이 쉴 사이가 없느니라.” 강설 ; 무엇인들 끝이 있고 한량이 있고 다함이 있겠는가. 중생이 그지없고, 세계가 그지없고, 법계가 그지없고, 과거 현재 미래가 그지없고, 모든 부처님의 가장 수승함도 또한 그지없다. 부처님은 그 가운데서 등정각을 이루고 깨달음의 지혜로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데 쉴 사이가 없다. 佛子야 一切諸佛이 以神通力으로 現最妙身하야 住無邊處하며 大悲方便으로 心無障礙하사 於一切時에 常爲衆生하야 演說妙法하나니 是爲諸佛의 第十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라 “불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가장 미묘한 몸을 나타내고, 끝없는 곳에 머무르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방편으로 마음이 걸림이 없어서 일체 시간에 항상 중생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연설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열째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은 신통한 힘으로 가장 미묘한 법신을 나타내어 그지없는 곳에 머무른다. 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방편으로 마음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시간에 언제나 중생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연설하여 중생들을 교화한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이다. 佛子야此一切諸佛의 大那羅延幢勇健法이無量無邊하야 不可思議라 去來現在一切衆生과及以二乘은不能解了요唯除如來神力所加니라 “불자여, 이 일체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은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어서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중생이나 이승(二乘)들이 능히 알지 못하거니와 오직 여래의 신통한 힘으로 가피하심은 제외될 것이니라.” 강설 ;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큰 나라연당기처럼 용감하고 굳건한 법은 무량무변하다. 불가사의하다. 이 불가사의한 법을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체중생들과 성문과 연각들은 알지 못한다. 여기까지 부처님의 열 가지 용감하고 굳건한 법을 설하여 마쳤다. (9) 무애(無碍)를 답하다 <1> 열 가지 결정한 법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決定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定從兜率로 壽盡下生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결정한 법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수명이 다하면 결정코 내려와서 태어나느니라.” 一切諸佛이定示受生하야處胎十月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태어나실 적에 열 달 동안 태(胎)에 머무느니라.” 一切諸佛이定厭世俗하야樂求出家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세속을 싫어하고 출가(出家)하느니라.” 一切諸佛이決定坐於菩提樹下하사成等正覺하야悟諸佛法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보리수 아래 앉아서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불법을 깨닫느니라.” 一切諸佛이定於一念에悟一切法하야一切世界에示現神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한 생각에 일체 법을 깨닫고 일체세계에서 신통한 힘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一切諸佛이定能應時하야轉妙法輪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때를 따라 미묘한 법륜(法輪)을 굴리느니라.” 一切諸佛이定能隨彼所種善根하사應時說法하야而爲授記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저들의 심은 착한 뿌리를 따라서 때에 맞추어 법을 설하고 기별(記莂)을 주느니라.” 一切諸佛이定能應時하야爲作佛事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때를 따라 불사(佛事)를 짓느니라.” 一切諸佛이定能爲諸成就菩薩하야而授記莂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보살을 모두 성취하기 위하여 기별을 주느니라.” 一切諸佛이定能一念에普答一切衆生所問이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결정코 잠깐 동안에 일체중생의 묻는 일을 널리 대답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 가운데 열 가지 결정한 법을 들었다. 결정한 법이란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같이 겪는 일이며, 걸어 온 길이며, 이룬 일이다. 이것은 결정한 법이라 변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도솔천에서 하생하시고, 태중에서 열 달을 머무시고, 출가하시고 정각을 이루시는 등의 일이다. <2> 열 가지 빠른 법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速疾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得遠離一切惡趣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들은 열 가지 빠른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친견하는 이는 빨리 온갖 나쁜 길을 멀리 여의게 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得圓滿殊勝功德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는 이는 빨리 훌륭한 공덕이 원만케 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能成就廣大善根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는 이는 빨리 넓고 큰 착한 뿌리를 성취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得往生淨妙天上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는 이는 빨리 청정하고 미묘한 천상에 가서 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能除斷一切疑惑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는 이는 빨리 모든 의혹을 끊느니라.” 一切諸佛을若已發菩提心하야而得見者면速得成就廣大信解하야永不退轉하고 能隨所應하야敎化衆生이어니와若未發心이면卽能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이미 보리심을 발한 이가 친견하면 빨리 광대한 신심과 지혜를 성취하고 영원히 물러나지 아니하며 능히 마땅하게 중생을 교화하고, 만약 보리심을 발하지 못한 이는 곧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未入正位하고而得見者면速入正位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바른 지위[正位]에 들어가지 못한 이가 친견하면 빨리 바른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能淸淨世出世間一切諸根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친견하는 이는 빨리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근기를 청정하게 하느니라.” 一切諸佛을若有見者면速得除滅一切障礙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친견하는 이는 빨리 일체장애를 소멸하느니라.” 一切諸佛을 若有見者면 速能獲得無畏辯才가 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을 만약 친견하는 이는 빨리 두려움 없는 변재를 얻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을 친견하면 얻게 되는 열 가지 공덕을 열거하였다. 부처님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보는 것이 참으로 친견하는 것이 되는가. 금강경에, “만약 형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다.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화엄경의 견해는 일체사람과 일체생명은 물론하고 삼라만상과 천지만물을 낱낱이 다 부처님으로 보아야 진실로 부처님을 친견한 것이 된다. <3> 마땅히 항상 생각해야 할 열 가지 청정한 법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應常憶念淸淨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의過去因緣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마땅히 항상 생각해야 할 열 가지 청정한 법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나간 인연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淸淨勝行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청정하고 훌륭한 행(行)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滿足諸度를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만족한 모든 바라밀다를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成就大願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성취한 큰 서원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고, 一切諸佛의積集善根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쌓은 착한 뿌리를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已具梵行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이미 구족한 범행(梵行)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現成正覺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른 깨달음 이룬 것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色身無量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육신이 한량없음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神通無量을一切菩薩이應常憶念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신통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느니라.” 一切諸佛의十力無畏를一切菩薩이應常憶念이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힘과 두려움이 없음을 일체 보살이 항상 생각해야 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일체 모든 부처님의 과거의 인연과 청정하고 수승한 행과 모든 바라밀과 큰 서원과 선근과 범행과 정각과 한량없는 육신과 신통과 열 가지 힘과 두려움 없음 등을 일체보살은 응당 항상 기억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을 밝혔다.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여 잊지 않아야 한다. (10) 해탈(解脫)을 답하다 <1> 열 가지 일체지혜에 머무르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一切智住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悉知三世一切衆生의心心所行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일체지혜에 머무름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세 세상 일체중생의 마음과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다 아느니라.” 강설 ; 지혜란 어떤 한 가지 사실을 철저히 꿰뚫어 아는 일이다. 모든 부처님은 철저히 꿰뚫어 아는 일을 한 생각에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남김없이 다 철저히 꿰뚫어 안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悉知三世一切衆生의所集諸業과及業果報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세 세상 일체중생의 모은바 모든 업(業)과 업의 과보를 다 아느니라.” 강설 ; 또 모든 부처님은 한 생각에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움직임을 다 앎으로 모든 업과 업의 과보를 다 안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悉知一切衆生의 所宜하사以三種輪으로敎化調伏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일체중생의 마땅한 바를 다 알아 세 가지 바퀴[三種輪]로 교화하여 조복시키느니라.” 강설 ; 또 부처님은 한 생각에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그 마땅한 바대로 세 가지 바퀴[三種輪]로 교화하여 조복시킨다. 세 가지 바퀴[三種輪]란 삼전법륜(三轉法輪)으로서 법을 설하는데 시전(示轉)ㆍ권전(勸轉)ㆍ증전(證轉)이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盡知法界一切衆生의所有心相하사於一切處에普現佛興하사令其得見하야方便攝受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온 법계 일체중생의 마음씨[心相]를 다 알고 온갖 곳에서 태어남을 나타내어 그들이 보게 하여 방편으로 거두어 주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한 생각에 일체중생들의 마음씨를 다 알아 알맞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알맞은 방편으로 거두어 교화한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普隨法界一切衆生의心樂欲解하사示現說法하야令其調伏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온 법계 일체중생의 마음으로 좋아함과 이해를 따라서 법을 말하여 조복시키느니라.”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悉知法界一切衆生心之所樂하사 爲現神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온 법계 일체중생의 마음으로 좋아함을 따라서 신통한 힘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隨所應化一切衆生하야示現出興하사爲說佛身의不可取着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교화할 일체중생을 따라서 일부러 나타나서 부처님의 몸은 집착할 수 없음을 설하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한 생각에 일체중생들에게 알맞은 모습으로 맞추어서 나타난 것이다. 결코 고정된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집착할 일이 아니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普至法界一切處一切衆生의彼彼諸道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법계의 모든 곳에 있는 일체중생들의 각각 태어난 모든 길에 두루 이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몸은 모든 시간에 온 우주법계에 충만해 있다. 그래서 일체중생들의 각각 태어난 모든 길에 두루 이른다.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隨諸衆生의有憶念者하사在在處處에無不往應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중생들의 생각하는 이를 따라서 있는 곳마다 가서 다 응하느니라.” 一切諸佛이於一念中에悉知一切衆生解欲하사爲其示現無量色相이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에 일체중생의 욕망과 지혜를 다 알고 그들에게 한량없는 몸매를 나타내 보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한 생각에 중생들의 생각하는 이를 따라서 있는 곳마다 다 가서 다 응하고 또 일체중생의 욕망과 지혜를 다 알고 그들에게 한량없는 몸매를 나타내 보여 교화하고 조복한다. <2> 열 가지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삼매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無量不可思議佛三昧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 普爲衆生하야廣說妙法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한량없고 헤아릴 수없는 부처님 삼매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 하여 중생들에게 묘한 법을 널리 말하느니라.” 강설 ; 열 가지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삼매를 밝혔다. 모든 부처님은 항상 바른 선정에 계신다. 언제나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 하여 중생들에게 미묘한 법을 널리 설하여 교화하고 조복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선정에서 떠난 적이 없다. 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普爲衆生하야說無我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무아(無我)의 경계를 말하느니라.” 一切諸佛이 恒住正定하사 於一念中에 徧一切處하사 普入三世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머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세 세상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 徧一切處하사普入十方廣大佛刹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시방의 넓고 큰 부처님 세계에 널리 들어가느니라.” 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普現無量種種佛身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한량없는 가지가지 부처님의 몸을 널리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隨諸衆生의 種種心解하야現身語意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따라 몸과 말과 뜻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恒在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說一切法의 離欲眞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일체법의 욕심을 여읜 참된 자리를 설하느니라.” 一切諸佛이恒住正定하사 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演說一切緣起自性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머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모든 인연의 자체성품을 연설하느니라.” 一切諸佛이恒住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示現無量世出世間廣大莊嚴하야令諸衆生으로常得見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머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한량없는 세간과 출세간의 광대한 장엄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들이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게 하느니라.” 一切諸佛이恒住正定하사於一念中에徧一切處하사令諸衆生으로 悉得通達一切佛法의無量解脫하야究竟到於無上彼岸이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바른 선정에 머물면서 한 생각 동안에 온갖 곳에 두루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불법의 한량없는 해탈을 통달하여 구경에 위없는 저 언덕에 이르게 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은 항상 바른 선정에 있으면서 무아를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에 두루 들어가고, 또 시방세계에도 들어가고, 한량없는 가지가지 몸도 나타내고,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따라 몸과 말과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일체법의 욕심을 여읜 참된 자리를 설하기도 하고, 모든 인연의 자체성품을 설하기도 하고, 한량없는 세간과 출세간의 광대한 장엄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들이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게도 하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불법의 한량없는 해탈을 통달하여 구경에 위없는 저 언덕에 이르게도 한다. 이 모든 불사가 선정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와 같이 일체 모든 부처님은 한 순간도 바른 선정을 떠난 적이 없다. <3> 열 가지 걸림 없는 해탈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無礙解脫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不可說不可說諸佛이出興於世하며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열 가지 걸림 없는 해탈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나타내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해탈은 걸림이 없는 해탈이다. 해탈이라는 것이 곧 걸림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걸림이 없는가.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함을 나타낸다.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不可說不可說諸佛이轉淨法輪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법륜 굴림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不可說不可說衆生이受化調伏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킴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不可說不可說諸佛國土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국토를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不可說不可說菩薩授記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보살의 수기(授記)받음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去來今一切諸佛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去來今諸世界種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세계종(種)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去來今一切神通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티끌에 과거 미래 현재의 온갖 신통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去來今一切衆生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중생을 나타내느니라.” 一切諸佛이能於一塵에現去來今一切佛事가是爲十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한 티끌에 과거 미래 현재의 온갖 불사(佛事)를 나타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의 걸림이 없는 해탈은 언제나 한 티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법륜 굴림을 나타내고, 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킴을 나타내고, 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국토를 나타내고, 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보살의 수기(授記)받음을 나타내고, 또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고, 또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세계종(種)을 나타내고, 과거 미래 현재의 온갖 신통을 나타내고,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중생을 나타내고, 과거 미래 현재의 온갖 불사(佛事)를 다 나타낸다. 이것이 부처님의 길림이 없는 해탈이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이란 실로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달리 더 설명할 길이 없다. 불부사의법품 2 끝 화엄경 강설 47 끝 |
첫댓글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무진(無瞋)을 체(體)로 하고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자기가 받는 낙(樂)을 남도 받게 하려고 뜻을 두고, 먼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널이 일체 중생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다.
비무량심(悲無量心)은 무진(無瞋)을 체(體)로 하여, 남의 고통을 벗겨 주려는 마음이다
. 처음은 친한 이의 고통을 벗겨주기로 하고, 점차로 확대하여 다른 이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희무량심(喜無量心)은 희수(喜受)를 체로 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 희열(喜悅)케 하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른 이에게 미치는 것은 위와 같다.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무탐(無貪)을 체로 하여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원(怨)ㆍ친(親)의 구별을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 대하여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이와 미운 이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량이란 것은 무량한 중생을 상대(相對)로 하며,
또 무량한 복과(福果)를 얻으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불신(佛身) 즉 부처님의 몸은 불교 최상의 이상(理想)을 실현한 부처님 몸을 말한다.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고, 보리ㆍ열반을 증득한 부처님의 과체(果體)를 논하는 것이 불신론(佛身論)이다.
처처(處處)가 불상(佛像)이며,
사사(事事)가 불공(佛供)이며,
일체 행위가 모두 불사(佛事) 아닌 것이 없다.
보살이 수행하는 지위 중10지(地)의 제8 부동지(不動地) 이상에 이를 때에 얻는
네 가지 자재다.
(1) 무분별자재(無分別自在)는 제8지 보살은 억지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2) 찰토자재(刹土自在)는 제8지 보살은 여러 세계에 마음대로 가서 나는 것이며,
(3) 지자재(智自在)는 제9지 보살은 온갖 것을 아는 지혜를 얻어 마음대로 교화하는 것이며,
(4) 업자재(業自在)는 제10지 보살은 번뇌 악업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이 사종자재가 경문의 삼종자재에 해당하는지는 상고할 길이 없다.
부처님이 머무시는 부처님의 종성(種性)에 머물러서
부처님의 지혜로 불사를 지으며,
일체지혜에 머물러 한량없는 법을 연설하되
근본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으며,
신통과 지혜는 헤아릴 수 없어
일체세간들이 능히 알지 못하며,
지혜가 깊이 들어가서
일체 법을 보되 미묘하고 광대하여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세 세상의 법문을 다 잘 통달하여 일체세계를 다 능히 깨우치며,
출세간의 지혜로 모든 세간에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불사를 짓되
물러가지 않는 지혜를 이루어 모든 부처님의 수효에 들어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