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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밴댕이 먹기가 쉽지 않다. 제철에 맞춰 일부러 전문 음식점을 찾아가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이 김치 담글 때 넣는 젓갈인 밴댕이젓 정도를 알거나 혹은 밴댕이와 관련된 속담 몇몇만 기억할 뿐이다. 예컨대 ‘밴댕이 소갈딱지’는 속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흉보는 말로,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파르르 떨다 육지에 닿기도 전에 죽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오뉴월 밴댕이’는 평소에는 변변치 않지만 때를 잘 만나 대접받는 것을 빗대는 말로 밴댕이가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지만 제철인 음력 5월, 6월에는 후한 대접을 받는 데서 생긴 비유다.
제철 밴댕이는 참 맛있다. 밴댕이구이도 좋고 양배추, 깻잎, 초고추장과 함께 빨갛게 무친 밴댕이 회무침도 많이 먹는다. 광해군 때 시인 이응희가 오뉴월 밴댕이 맛에 반해 시 한 수를 남겼다.
계절이 단오절에 이르니/ 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다/ 밴댕이 어시장에 잔뜩 나오니/ 은빛 모습 마을을 뒤덮었다/ 상추쌈에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달다/ 시골 농가에 이것이 없으면/ 생선 맛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제철 밴댕이회가 그만큼 맛있다는 이야기인데 효자로 이름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도 밴댕이젓을 챙겨 어머니에게 보냈을 정도다. 고향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난중일기》에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전복과 밴댕이젓, 어란 몇 점을 어머니께 보냈다”고 적었다.
사실 예전에는 밴댕이가 보통 생선이 아니었다. 맛있는 생선으로 명성이 높았으니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남긴 준치보다도 더 맛있는 물고기로 대접받았을 정도다.
《어우야담》은 광해군 때 유몽인이 쓴 야담집이다. 여기에 밴댕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당시 조선 사람들이 밴댕이를 어떻게 먹었는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김인복이라는 언변 좋은 사람이 있었다. 젊었을 때 길에서 수정 갓끈을 한 시골 선비를 만났는데 갓끈이 너무 짧아 겨우 턱밑에 걸쳐 있었다. 김인복이 수정 갓끈이 천하일품이라고 칭찬하더니 가산을 기울여서라도 갓끈을 사고 싶다며 다음 날 아침 숭례문 밖 청파동 자기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이튿날 시골 선비가 찾아오자 김인복이 입을 열어 집 자랑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중 한 대목이다.
인천 안산 앞바다에서 그물로 잡은 밴댕이가 시장에 나오면 그놈을 사다 기름간장을 바른 후 석쇠에 구우면 냄새가 코끝을 진동하지요. 그러면 상추 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기름이 잘잘 흐르는 햅쌀밥 한 숟갈을 듬뿍 떠서 달고 고소한 된장을 얹은 위에다 노릿하게 구워진 밴댕이를 올려놓고 부산포의 일본 상품 쌈 싸듯 쌈을 싼단 말이오. 그러고는 장사꾼 짐 들어 올리듯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종루에서 파루를 치면 남대문이 열리듯 입을 떡 벌리고 밀어 넣는데······. 이때 시골 선비도 따라서 입을 벌리다 짧은 갓끈이 그만 뚝 끊어져 수정 알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요컨대, 겉멋이나 부리고 돌아다니는 시골 선비를 골탕 먹였다는 이야기다. 밴댕이구이를 상추에 싸 먹는 이야기에 입을 쩍 벌리게 만든 김인복의 입담도 대단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밴댕이구이를 군침 넘어가는 음식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맛있는 밴댕이였으니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그래서 경기도 안산에 밴댕이를 관리하는 관청인 소어소까지 설치했다. 소어(蘇魚)는 밴댕이의 한자 이름으로 예전에는 안산 앞바다에서 밴댕이가 많이 잡혔는지 일단 안산에 모았다가 한양으로 가져와 유통시켰다. 특히 오뉴월에 잡히는 밴댕이는 얼음에 재어 상하지 않도록 했다. 궁궐의 음식 재료 공급을 담당하는 관청인 사옹원에서도 오뉴월 밴댕이만큼은 귀한 얼음으로 신선도를 유지했을 정도로 특별대우를 한 것이다.
밴댕이는 인천과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에서 많이 잡혔지만 요즘은 인천과 강화도에서도 별로 잡히지 않고 주로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잡힌다고 한다. 인천 등지에서 먹는 밴댕이 역시 신안 앞바다 또는 충무 앞바다에서 잡아 냉장 운반한 것이다. 세월 따라 물고기가 사는 곳도 바뀐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