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가(20241013) 조성현 목사
누가복음9:32-33
눅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눅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을 통하여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 기간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까지 동원하여 자신이 육체의 신분을 초원한 영적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의 시간이 되고 성령님의 충만한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선포하십니다.
눅9:20-22 눅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9: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눅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셔야 했던 이유는 예수님에게는 정해놓은 죽음의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죽음의 시간을 알고 계셨습니다. 3년여 시간의 사역의 기간..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증거임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증거 합니다. 지난 번 말씀처럼 심지어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동원하기까지 하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죽은 자를 소환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
2.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질문만 던지고 있습니다.
눅9:32-24 눅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눅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눅9: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예수님이 그들에게 모세와 엘리야를 보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기간 동안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있을 수 없는 장면 속의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첫째, 그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증거하는 놀라운 시간에 그들의 모습은 실망감을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인간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 설명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의 행위는 결국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놀라운 현장에 있지만, 듣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자기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보이신 이유는 예수님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것이 중요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증거로서의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에 머뭅니다. 그리고 산 위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겠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선포였지만, 제자들의 생각은 오히려 모세와 엘리야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신앙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자신을 향하면 모든 것이 자기 핑계거리로 절락합니다. 자신가 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를 보면서 감동했던 즉흥적인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였듯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자기의 생각에 빠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십니까? |
3. 하나님의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눅9:35 눅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누가복음 9장의 반복이며 결론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신념은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교회와 이단을 가르는 단 하나의 기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고백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사명에 대한 선포입니다.
말씀을 다시 함께 묵상해 봅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엘레야는 엑스트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에 대한 증거일 뿐입니다. 엑스트라가 주인공보다 빛나서는 드라마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오로지 예수님의 이름만 허락하신 것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하시기 바라고 여러분의 믿음이 열매를 맺어 심판의 자리에게 칭찬받고 구원받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생각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죄의 용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 교회를 다니고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이라 주장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깨달음을 통하여 죄의 용서와 심판 앞에서 칭찬받을 수 있도록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간증의 시간)
예수님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만남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의지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이름은 오직 예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함께하심임을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