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내의 정신에 혼란이 오며 기억이 부실하고 인지 능력이 떨어져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몇 번을 다시 물어야 겨우 귀찮은 듯 대답을 주곤 한다.
아내 뿐 아니라 나도 요즈음 누가 무엇을 물을 때 정확한 맥을 몰라 다시 묻기가 힘겨울 때
알아듣는 척 하고 있지만 다시 묻기가 번거로워 반복해 묻기 보다는 내가 느낀대로 긍정으로 주는 대답은 듣는 사람으로는 엉뚱한 대답일 수 있으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가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지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까지는 삶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는데 2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고 밥을 먹기 싫어해서 끼니마다 음식점을 전전하면서 입맛 당기는 음식 찾아 끼니를 때우지만, 그마져도 3분의 일만 겨우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따끈하고 얼큰한 음식을 그토록 좋아했던 아내였건만 요즈음은 입맛도 변해 매운 것 뜨거운 것도 싫어해 음식 고르는데도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치매의 종류도 많지만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치매가 대부분이지만 아내의 치매는 전두측두엽 치매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치매로 뇌의 전두엽 및 측두엽이 퇴화하여 나타나는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알츠하이머에 비해 행동 및 언어기능에 더 영향을 미치지만, 기억력에는 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치매가 오면 망상과 우울증, 집착과 고집, 성적인 의부, 의처 증 등이 온다는 의사의 조언을 들어 익히 알고는 있지만 어느 때는 내가 면박을 주는 일이 가끔 있는데, 그때 돌아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일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몰려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내가 바보스럽고 한스러워 아내를 감싸 안고 눈물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님은 나도 모르게 아내를 정상인으로 착각해서, 현명하지 못한 나의 돌출행동을 원망하며 뉘우치는 잘못을 범하곤 한다.
모든 상황에서 과도하게 윽박지르거나 고의적인 자극을 주는 일과 환자의 자존심을 최대한 지켜주는 일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명심해야 하는 첫 번째 명제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나는 과연 환자를 보살피는 사람인가 남편이란 자리의 권위만을 지키려는 사람인가 수 없이 자문할 때마다 환자를 돌보는 자리임을 또 다시 확인하고 있어도 수시로 그 자리를 망각하고 있으니 나도 치매 환자가 아닌가 자문할 때가 많다.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시골장 구경을 좋아하는 아내는 우선 시선이 멈추는 곳은 야채 시장이다. 무 배추로부터 상추, 쑥갓, 대파 등, 지난번에 사다 놓은 야채가 남아 있는데 또 살려고 하면 “집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사지 말라”고 말하면 기어코 고집부리며 산다고 우긴다. 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 야채도 필요하겠으나 사다 놓으면 며칠을 이리저리 뒹굴다 결국 버리게 된다. 그 우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내가 포기해 버린다. 먹든지 버리든지 물건 사는재미마저 박탈하기 안쓰러워 얼마 되지않는 금액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재미를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정상적일 때 생활 습관이 지금도 계속됨을 보는 내 마음은 쓰리게 아파온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이 정상인이라고 굳게 믿고 집안 살림 거두자면 우선 먹거리 챙기는 일이 주부로서 제일 먼저해야 할 일임을 50 몇 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지켜왔던 희생의 옛 습관이 지금도 재현되는 현실에서 그 고마움의 보답 약속을 지켜주지 못한 못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곤 한다.
봄철이면 들로 나가 나물캐는 일은 아내가 젊었던 시절에도 즐겨하던 일이었는데 해가 질 때까지 나물캐는일은 생활의 전반을 차지하고 두 식구 늙은이 먹을 만큼만 뜯어 오면 좋겠지만 욕심껏 캐와서 이삼일 있으면 썩어서 버려야 되지만 냉장고에 잔뜩 넣어두고 아까워서 못 버리게 한다. 이웃들에게 나눠 먹고도 싶지만, 아는사람도 없고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선물했다가 오히려 누를 끼치는 잘못이 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아내 모르게 전부를 버리지도 못하고 반씩만 버리는 동안 며칠후 지난 일을잊고 있는 아내의 생각이 어쩌면 득이 될 때가 많다.
가을이 오면 대추, 밤, 은행 주으러 다니기 바쁘고 주워 온 밤을 삶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니 삶아서 속을 파내서 간직한 밤이 냉장고에 지천으로 넘쳐나서 아내 모르게 두 봉지 세 봉지 버리는데 아직도 2년 전의 밤이 너댓 봉지가 남아있는데 토종 산 밤은 너무 자잘해 삶아서 속을 파내는데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지만 먹지 않고 넣어두어 2년이란 세월을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다. 어느 땐 기억이 살아나 밤 까서 모아놓은 봉지가 많았는데 왜 이것뿐이 없냐고 물을 땐 우리가 먹고 남은 것이 이것뿐이라고 뻔뻔스럽게 둘러대기 일쑤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봄철에 억척스럽게 뜯은 쑥을 삶아서 보관한 냉동실 전부에 삶은 쑥 때문에 다른 것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진다. 미국에 있는 아들딸에게 보내 준다고 보석처럼 아끼는 물건들을 아내 몰래 한 봉지 한 봉지를 내다 버리고, 달래를 무지막스럽게 캐다가 미처 먹지를 못해 칼로 썰어서 냉동실에 간직했던 그것을 버리는 것도 나의몫이다.
지금도 베란다엔 2년 전에 주워 온 대추와 은행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그것들을 줍는 집착이 너무 심해 나와 씨름의 연속은 오늘도 게속되고, 환자임을알기에 뭐라 강제도 할 수 없어 따르고 있지만 아내가 며칠이 지나면 하나하나 기억을 잊을 때 버리면 되기 때문에 집안에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더라도 아내의 뜻 따르는 일이 우선이기에 애틋하고 불쌍한 아내의 즐기는 일에 공범자를 자청하며 항상 뒤 쫒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아내 혼자 다니다가 넘어지거나 사고가 나면 더더욱 큰일이기 때문에 정말 이런 짓 하기 싫지만, 항상 따라다니며 버릴 것을 주우러가는 안타까움은 해답이 없겠지 싶다.
어쩌다 한눈판 사이에 집을 나가면 황급히 아내를 찾으러 헤맨다. 힘이 없어 자그만 돌부리에도 걸리면 쉽게 넘어지는그였기에 긍정적인 생각은 사라져 버리고 항상 나쁜 생각에 사로잡혀 찾으러 나서서 허둥대기 시작한다.
밤나무와 대추나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을 알기에 차근차근 수색작업이 시작된다. 치매센터에서 시계처럼 팔에다 차고 다니는 ‘위치 추적기’를 달아 줬는데 그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아 무용지물이고, 손전화라도 들고 나가면 위치 파악이 순조로울 텐데 항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디를 가면 꼭 잊지 말고 손전화를 가지고 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아픈 아내가 기억하길 바라는 것이 내 잘못임을 모르지 않지만, 아내 마음 다치게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쏟아놓으면 아무 말도 없이 뒤에서 고개 숙이고 쫓아오는 모습이 어찌 그리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는지 두 볼에선 아픔의 눈물이 흐른다. 생각했던 곳에서 찾으면 다행이지만 다 돌아봐도 찾지 못하면 처음서부터 수색작업이 계속된다.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가고 오는 사이에서 서로 길이 엇갈려 찾지 못할 때가 더러 있는데 다행히도 아직은 혼자 집을 찾아오고는 있지만 그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흔들 때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며칠 전 내가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 또 집을 나가서 술래처럼 황급히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갈만한 곳을 한 바퀴 돌았지만 찾지 못하여 “찾으면 단단히 다그치리라” 또 환자를 돕는 돌보미의 본분을 망각해 버린다. 두 바퀴째 두 곳을 돌고 있는데 먼 곳에서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오는 아내를 발견했다. 단단히 꾸짖으리라는 생각은 저 멀리 도망가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측은한 연민은 안타까움으로 변하고 눈앞에 보이는 초라한 아내의 모습 보는 안도의 환한 기쁨은 오십몇 년을 같이 살면서 쌓아온 두텁고 두터운 사랑과 정의 모습이었을 게다.
나를 본 아내의 쭈그러진 얼굴에서 반짝이는 눈빛의 반가움과 환한 웃음꽃은 아직도 시들지 않고 이토록 싱싱한지 놀랍게 엄습하는 향수鄕愁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두 봉지의 은행을 나에게 건네면서 “많이 주웠지?” 자랑하는 아내의 모습은 꼭 열일곱 예쁜 아가씨 모습그대로였다. 저녁에 잠을 자다가도 문뜩문뜩 옆에서 자는 아내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련의 정情 때문에 속을 태워도 옆에만 있어 주기를 간절한 기도 속에서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