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즐겁다.
퇴직의 자유와 여유로움을 한껏 누린다.
어디를 가더라도 가을은 곱고 풍성하다.
오늘은 고창 문수사.
단풍으로 유명하단 얘기는 설핏 들었으나 처음 발길을 들이는 곳이다.
남고창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제법 시골길을 달리면 왠지 깊숙한 산자락으로 접어드는 느낌이 든다.
더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시멘트길을 걸어 오른다.
조금 오르니 일주문이 보인다.
그 옆으로 무척이나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한 단풍 한 그루가 있다.
굵은 둥치와 휘어진 가지들이 예사롭지 않은 단풍나무의 연륜을 보여 준다.
문수사 단풍숲은 100년에서 4백년으로 추정된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문수사 입구에서 문수산 중턱까지 좌우측 숲 일대에서 자생하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문수사 가는 길 만나는 단풍들의 자태가 남다르다.
키가 퍽이나 크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굵은 줄기와 가지들, 넓게 펼치고 있는 단풍 잎새들.
다른 절집에서 보았던 단풍들과 차원이 다르다.
감탄사를 연이어 뱉어내며 문수사에 오른다.
단풍숲을 바라보는 재미에 가는 길이 마냥 즐겁다.
고인돌의 고장답게 숲에는 크고 많은 돌덩어리들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무들이 커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리고 있는 나무 밑둥도 보인다.
험난한 환경도 극복해 가며 자라는 나무들의 질긴 생명력이 참 대단하다.
입구에는 직접 만든 차를 판다는 찻집이 있는데 노천카페다.
간소한 탁자와 의자에서 문수산을 풍경 삼아 맥반석 달걀 세 알과 대추차 한 잔.
재밌는 건 외국인 외모를 지닌 젊은 남자가 차를 팔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예까지 온 걸까?
차마 묻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문수사는 따스한 손길로 감싸 안아주는 할머니 손길처럼 낡아진 그대로 옛스런 정취 풍기며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꽤나 정스런 절집이다.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과 기둥이 곧 허물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데 잘도 버티고 있다.
돌아 나오는 길, 신기한 단풍 한 그루가 보인다.
속이 텅 빈 채 껍질 밖에 남지 않았는데 위로는 꽤나 실하고 고운 잎새들을 거느리고 있다.
물관과 체관이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에 가능하다는데 쉽사리 이해 되질 않는다.
끈질긴 생존 의지가 느껴진다.
널찍한 단풍숲에 함께 어울리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나무들이 많다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상수리 나무 등 등.
사이좋은 나무들의 다정함과 순박함을 닮아 가고 싶다.
이런 문수사를 화폭에 담는 이도 보인다.
고창엘 왔으니 최애 산책로 고창읍성을 지나칠 순 없지.
고창읍성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성곽 둘레길은 공사하는 중이라 패스.
물이 든 산책로와 소나무향 진한 숲길을 걷는다.
고창은 언제 찾아도 마음 푸근한 곳이다.
문수사, 찾아갈 곳이 더 늘었으니 고창 오는 발걸음이 더 즐거워질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