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죽은 뒤 하천에 붙박여 있는 물귀신과 숲에 사는 귀신의 이야기다. 물귀신은 제가 죽은 하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홀로 사람들은 관찰하며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 어느 날 물귀신(통칭 ‘물’이라고 불리는 것)은 숲에 사는 귀신인 ‘이영’을 만나게 된다. 이영은 숲을 떠날 수 없으며,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홀로 남겨진 귀신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은 물에게 여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등 친밀한 관계를 이어간다. 이후 골프장 건설을 위해 숲과 하천을 밀어버리던 중, 이영의 시체가 발견되고, 산사태로 인해 하천이 흙에 메워져 버린다.
아쉬웠던 부분과 그 이유
이영과 여울은 인간이었음과 동시에 인간이 아니게 된 인물들이다. 작중에서 그들은 평범한 인간처럼 외로움 등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도 빈번하게 나오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즐겁게 웃는 장면이 나온다. 전체적인 흐름이 간결하고 잔잔한 글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비인간적 면모와 인간적 면모의 전환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지냈기에 마모된 인물의 면모를 부각시켜 서술하거나, 남자를 완전히 죽이지는 않았다면 조금 더 매끄러운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은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발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발목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기이한 각도로 꺾이고, 남자가 물속으로 잠겼다. 그 순간, 철퍽거리는 발버둥 소리 사이로 익숙한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이영.
물은 중얼거리며, 다급하게 남자를 물 아래로 깊이 밀어 넣었다.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도록, 이영의 웃음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드디어 만난 이영을 보며, 물은 제가 유령임에도 꼭 유령이라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를 처음 물 아래로 집어넣었던 것은 분노에서 기인한 감정이었다. 물은 그들이 싫었다. 불길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하며 하천을 홀로 방치하더니, 이제 와서 이곳을 전부 뒤집어 놓는다는 꼴이 우스웠다. 숲이 사라진다면, 이영은 어떻게 되지? 두려움이 엄습하면, 그것은 몸집을 키워 대상을 지정한 분노가 된다. 그런 식으로 물은 인간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이영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물은 분노가 아닌 절박함을 느꼈다. 물은 너무 오래 혼자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르고, 목소리 내는 법도 잊어서 안녕, 하고 인사하는 간단한 동작조차 기름칠 덜 된 양철 나무꾼처럼 삐걱거릴 정도로. 기억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였다. 물은 제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외로움이라는 것에 닳고 닳아서, 뭉툭해진 나머지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상대를 만난 뒤 반가움을 표하는 방법조차 고독에 마모된 뇌는 잊은 지 오래였다. 물이 여울이 된 것은 이영을 만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게 더 이상 숲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였다. 물은 외로웠다. 그 외로움이 목을 조르는가 싶을 때 만난 것이 숲이었다. 처음이라는 건 특별하다 못해 소중한 것인데, 그건 물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물은 이영이 아니면 안 됐다. 제가 가진 유일한 것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전부 주고 싶었다. 이영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처럼, 앙상한 팔을 들어 흔들며 외쳤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물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흔들었다. 제 목소리가 물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기다릴게.
정말로 그 말이 닿았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영이 웃었기에 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제가 숲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말라비틀어진 심장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물은 수초로 남자의 팔을 휘감았다. 몇 번 물에 가라앉다가 다시 떠오르는 남자를 보며 이영이 킬킬 웃었다. 숲은 그 충만감에 사로잡혀 다른 감정조차 전부 잊어버렸다. 인간일 시절에 가졌을 죄책감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포만감이 들었다. 여전히 남자는 물의 발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물은 이영이 뒤돌아 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의미로.
다음 날, 남자는 정신을 잃은 채로 물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공사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