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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교회 간증!!
할렐루야! 감사드립니다. 남서울교회 여전도연합예배로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귀와 영광올려 드립니다. 잠시 기도드리겠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참으로 조으신 하나님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의 은총으로 이땅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남서울교회 여전도 연합예배로 인도해 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북한 땅에서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분은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습니다. 오늘 여전도연합예배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성령님께 맡겨드리고 감사하며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저를 남서울 여전도 연합예배에 불러주신 하나님과 남서울교회 통일선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새생명교회가 남서울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어느날 황금종교회 최광목사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최광목사님은 남서울교회에서 어려운 교회에 대하여 묻기에 저의 새생명교회를 추천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남서울교회 통일선교부 강지수 부장님과 사모님이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때 직접오셔서 저희교회 문제때문에 여러 가지로 조금깊이 알게 되셨습니다. 1987년에 결혼하여 일녀일남을 낳았고 1994년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되여 고난에 행군이 시작되면서 식량난을 겪다가 1998년 1월에 배고픔에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중국으로 탈북하였습니다. 2004년 3월에 중국공안에 붙잡혀 북송되였고, 또다시 탈북하여 2007년에는 대한민국으로 입국하여 2008년 1월에 대구로 집을 받아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던중 하나님 부르심의 소명앞에 무릎을 끓고 2010년 대구 동산성서 신학원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영남신학대학교 학부 1학년에 입학하면서 탈북민 대구상인제일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2013년 1월부터 경남최초로 탈북민 새생명교회를 개척하여 6월15일에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경북 영남신학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부산장신대학 신대원 재학중에 있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통합교단 경남노회에 정식절차로 인하여 지난 3월16일에 설립예배를 드리게 된 탈북민 새생명교회 담임전도사 주영순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저는 위에 소개되였듯이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태여나서 제일먼저 알아야 할 언어는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입니다. 이렇게 태어나 북한에서 살면서 지은것은 오로지 우상의 죄뿐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절하고 날마다 고맙다고 웨쳐야 했고 로버트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북한땅에 현실입니다. 1980년에 조선인민군 고사총사령부에 입대하여 고사총부대에서 군인생활을 하면서 신병훈련 때에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것이 도적질입니다 달밤이면 큰 주머니를 들고 주변에 농장밭을 나의밭으로 생각하면서 엎드려 보복전진하면서 달려있는 가지면 가지, 오이면 오이 닥치는대로 움쳐다가 다음날 군인들의 식사 준비를 하여야 했습니다. 토요 100리 강행군때마다 “조선인민의 철천치 원수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남조선 괴뢰들을 모조리 소멸하자!!” 등 구호를 웨치면서 군사훈련을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소멸하고 때려야 하며 죽여야 하는 것으로 배우고 교육하는 것이 북한에 조선인민군입니다. 이런 군인생활을 마치고 저는 1985년 1월에 제대하여 1987년에 결혼하여 일녀일남을 낳은 엄마가 되었습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되기전 2~3년전부터 북한땅에 식량난으로 사람들이 굶주림에 헤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일성이 사망된후로 금수산 의사당에 김일성이 죽은시체를 안치한다고 북한에 인민들은 먹든 말든 상관없이 수십억을 들여 완공하였습니다 이렇게 김정일의 철저한 독제체제가 시작되였습니다 사람들이 집을 팔고 길거리에 앉게 되였고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인하여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는곳마다 먹을것 때문에 아우성소리였습니다 시장이 생기면서 꽃제비 아이들이 먹을것과 눈에 보이는것들을 움치기 시작하였고 길거리에 깔려진 경찰들이 이런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가는곳마다 먹을것 때문에 아우성소리 높아갔습니다 옆집, 윗집, 앞집모두가 먹을것 없어 전쟁아닌 전쟁으로 소리없이 가족이 무리로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산어느 집에서 먹을것이 없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며느리를 잡아 먹고 아버지가 아들까지 잡아서 시장에 아들을 잡은 고기를 팔다가 손가락이 발견되여 붙잡혀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바닥에 모인 사람들을 묶어 놓고 사람고기를 먹고 팔기까지 한 아버지를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총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1997년에 저희 가정에도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저의 몸무게가 삼십팔 키로밖에 안되었고 10살 7살된 애들을 건사할 아무러한 힘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고있던 중에 저의 친정엄마가 양강도 대홍단 감자 고장인 외가집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감자라도 좀 넉넉히 먹는 고장이였습니다. 감자라도 먹을수 있어서 조금 몸을 추수려 세웠는데 저의 외삼촌 댁이 중국으로 넘나드는 장사군에게 저를 넘겨주었습니다 외삼촌은 중국에 가면 먹을 걱정은 하지 않고 살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를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아줌마와 함께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가면 무조건 인신매매에 걸리게 됩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땅 심심 산골에 장가들지 못한 사람들에게 단돈 몇푼에 팔려야 했습니다. 이후로 굶주림에 역사는 끝났지만 이세상에 살면서 사람으로서의 인격, 자존심, 다 버려야 하고 오직 시골에서 해뜨기 전부터 농사일에 시달리다 저녁해지는 늦은시간까지 밭에서 김을 매고 호미와 땅과 씨름하여야 합니다. 하루세끼 쌀밥을 마음껏 먹는 대신 농촌시골에 노동은 그야말로 꼬리없는 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농촌에서 강아지를 기르면서 사람이 먹던 쌀밥을 줄때는 날마다 눈물로 보냈습니다. 북한에 버려진 내자식, 엄마와 동생들 먹을것이 없어 죽어가던 이웃집들, 앞집에 누구, 모두생각나면서 강아지들이 미웠습니다. 너희들이 싫어서 먹지 않는 밥을 북한땅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리군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어도 날마다 빚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던 어느날 가정살림이 너무나 어려워 연길에 농사비용을 마련하느라고 나갔다가 중국공안에게 걸려 북송되게 되었습니다. 손을 싹싹 비비면서 사정을 해도 사정없이 북송하고 말았습니다. 중국도문 변방을 거쳐 북한땅에 넘겨진 순간부터 안전원 여기로 말하면 경찰들의 발에 밟혀야 하고 맞아야 하고 온갖 모욕과 욕설에 날마다 시달려야 했습니다. 청진집결소에 갇혔을때 어떤 여인은 맞아서 간이 파혈이 되어서 저의 옆에서 죽었고 어떤 여성은 화장실에 자그마한 노끈을 목에 매여 자살 하는등 너무나 끔찍한 현실이 잠시나마 중국에서 잊고 살았던 내고향 북한땅을 새롭게 알게 했습니다. 중국도문 변방에서 북한온성 보위부로, 온성보위부에서 단련대로, 단련대에서 청진집결소로, 집결소에서 다른 노동단련대로, 그곳에서 함흥안전부로 호송되였습니다. 드디여 감옥살이를 마치고 두고갔던 어린아이들을 찾았더니 두명다 굶어죽고 없었습니다. 제가 살던 뒤집 아줌마는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죽었다고 하면서 사연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속상하고 힘들어서 또다시 죽을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북한땅 만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 라는 의문이 끝임없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날마다 하늘을 쳐다 보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또다시 몸무게 체중이 삼심키로밖에 안되면서 영향실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의 고통이 날마다 연속적으로 저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남서울 여전도회원 여러분!! 이것이 북한땅에 현실이며 약한 자는 철저히 짓밟혀야 하고 찢겨야 하며 죽어야 하고 아파야 하며 마침내 고통속에 숨져야 하는 것이 오늘의 북한땅입니다 저는 여러모양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이모든것은 그대로 성경에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네 가운데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에스겔5:8~11절에 말씀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북한땅에 현실입니다. 사람이 우상숭배에 죄에 빠져 있으므로 땅이 저주를 받고 사람마다 황폐한 곳에서 서로 삼키우고 비방거리와 가증한 일들에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불쌍히 살아가고 있는 북한땅입니다. 저는 2004년말에 또다시 탈북하였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살던 2006년에 우리 동네에 한국행을 돕는 부로커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떠나면 반드시 한국으로 갈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네 또다른 탈북민 여성한명과 함께 떠난것이 중국북경 아파트 집이였습니다. 그곳에 미국국적을 가진 감리교 60세이상 되는 여선교사님이 저희들을 맞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으되 오직 기도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야 갈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날마다 말씀을 쓰고 외우게 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에 설교 테프를 통하여 듣게 하셨고 그것을 글로 써서 삶에 적용과 함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때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원문으로 성경필독하였던 책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매일 썼던 일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드문이 들여다 볼때마다 너무나 은혜가 되기도 합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저는 성령님을 만나기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청결한 자는 주님을 만난다고 약속하셨으니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모세에게 가시떨기나무 불꽃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이 지금 현재 나의 이 자리에서 만나기를 원하오니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던중 어느 금욜밤 12시에 앉았던 자리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갑자기 방언이 터지면서 살아계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 그리고 아름다운 찬양과 율동을 드리게 하시고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저를 향해 하늘문이 열리면서 빛이 비추면서 사랑하는 내 딸아!! 은혜가 차고 넘칠지어다“ 라는 말씀과 함께 친히 안수해 주시는데 불덩이를 이고 있는 느낌과 함께 방언으로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위해 죽네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축복하심이 그날 새벽5시 이후까지 계속되였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저도 날마다 시와 찬양으로 화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었던 찬양 우리를 구원하신 나의 예수님 따스한 사랑으로 품어주셨소 한없는 은혜와 축복속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아 ~ ~ 아버지 나의 예수님 아~ 날마다 감사함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네 주님의 능력을 믿는 자마다 주님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사는 우리는 성령충만, 말씀충만, 감사충만. 아~~ 아버지 나의 예수님 아 ~~ 날마다 감사함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네. 이렇게 성령님을 만난 나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날마다 감사하게 되었고 저희들의 고향땅인 북한땅을 비전으로 품게 되었습니다. 그때 1년8개월을 갇혀 예수님을 만나고 날마다 감사하다가 2007년 10월에 대한민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원에 있을때 이충원집사님이 원장님이셨습니다. 이충원원장님을 탈북민들 모두는 아빠처럼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저는 이렇게 2008년 1월에 하나원에서 서울에 떨어지기위하여 삼일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대구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구로 가서회사생활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문명에이스 회사에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하던 어느날 갑자기 주님의 부르시는 소명앞에 무릎을 끓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1:8절 저는 하나님이 부르심의 소명을 깨닫고 바로 순종하였습니다. 대구동산성서신학원에 1년공부마치고 나서 영남신학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영남신학대학교 1학년에 재학하기 시작하면서 탈북민 대구 상인제일교회 목사님이 저와 함께 탈북민 사역을 하자고 하시면서 전도사로 임명하셨습니다. 2년간 교육전도사로 있던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21:15절)고 말씀을 허락하시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부르심이 목회자의 길인것은 2006년도에 벌써 알았지만 한국에 도착하고 보니 그래도 돈도 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회사에 다녔었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 는 하나님의 때는 아마도 10년 그보다 썩후에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부 2학년때 어떤 사모님이 창원땅에 죽어가는 탈북민들을 복음으로 일으키고 그들에게 생수를 공급하여야 하는데 그 책임이 전도사님에게 있는것이 아닐지?? 기도해 보시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심은 있어도 아직은 아닌것 같다고 했는데 두 번째로 또 찾아 오셨습니다. 그때에야 10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나 어린양에 불과한 순진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부르심의 소명에 순종은 하겠지만 이렇게 빨리 저를 부르심은 너무나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100일 기도마친후에 주시는 말씀은 아가서 1장8절 말씀입니다 “여인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순간 가슴에 닫는 것은 “고난이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는 것이였습니다. 정말 고난의 길이고 하지만 행복한 것은 성도 한 사람들이 변화되여 주님께 돌아올때에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탈북민들의 습관은 우상숭배에 습관이 몸에 배여서 저들이 주장하는 것을 맞다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내미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라는 주체철학인 김일성주체사상, 즉 우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탈북민 교회를 세워가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왜냐면 제가 말씀을 받고도 두려워서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정말 자신없습니다”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그곳에 한사람의 기도가 내귀에 들려서 너를 그곳에 보내기를 원한다!! 하시며 네가 하냐?? 내가 한다!! ” 라는 음성앞에 무릎을 끓지 않을 수 가없었습니다. 이렇게 개척이 된 새생명교회는 2013년 1월 첫주일예배를 지금여전도회장네 집에서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첫주일은 그나마 탈북민들이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 모여서 맛나는 북한음식나누며 그자리에서 예배를 십칠명으로시작되였습니다 지금은 주일마다 30명 좌우 예배드립니다. 출석교인이 그 이상되지만 모두들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교회생활을 잘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척이 주님이 하신다라고 생각할 때는 너무나 쉽지만 그래도 내가 먼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보내실 만해서 보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은 이 사역을 위해 특별히 남편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제 남편은 중국 조선족인데 한번도 불평없이 저를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남편은 팬티를 뻗더라도 저의 이 사역을 끝까지 돕겠다고 하십니다. 남편은 탈북민들이 변화되여 주님께 돌아오는 모습을 볼때 자신의 마음이 함께 변화되며 어떻게 하나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하십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나에게 조용히 어떤 부분에는 말씀을 전할 때 강하게 하고 어떤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은혜로울 것 같다고 하면서 깨우쳐 줍니다. 저의 남편 자랑은 오늘 여기에서 처음으로 마음껏 해봅니다. 간증할 때 한번도 자랑한적 없었는데 저의 남편을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탈북민들을 하나님이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남편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였지만 마음을 바꿔주시고 이제는 주를 위해 한몸 헌신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신하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와 존귀와 영광올려 드립니다. 저의 노회시찰장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새생명교회 목회는 전도사님이 하는것이 아니라 남편 최춘산 집사님이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쉽지 않는데 하시는건 주님이 함께 하셔서 돕는 자를 붙혀 주신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때론 너무나 행복하게 사역을 할때가 많습니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 일방적으로 제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고 남편에게 이야기 해도, “잘했다고 그래 정말 나도 찬성한다“ 라고 긍정적으로 저에게 더없는 힘이 되어주니 너무고맙고 감사합니다. 우선은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탈북민들은 저보다 남편을 더 조아하고 남편은 교회에 모든 안밖에 일을 말없이 그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성도들이 감동을 받는 다고 이야기 하군합니다. 단지 탈북민 교회 개척은 최광목사님도 경험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재정적으로는 제한되여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방법은 정확하시고 우리로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고 목숨을 걸고 기도하게 하시며 그 일들을 성취해 가시는 분이신줄 믿습니다. 저의 마음으로는 주제넘게 개척이란?? 말도 안되는 일이며 더구나 북한에서 어찌보면 자식을 책임지지 못해 굶겨죽인 살인자 엄마나 다를바 없는 저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칭함을 허락하시고 항상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주님곁에 있게 하시는 주님께 영광올려 드립니다. 제가 남서울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것도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합니다 어느날 통일선교부 부장님이 전화주시면서 언젠가 교회를 방문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었고 오셔서 기도도 해주시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저는 아무미련없이 그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후에 남서울 교회에서 통일선교자금을 가지고 저의 교회를 여전도회장님이랑 일행에 하나원 106기때 이충원원장님도 함께 오셨고 너무 조은 주일오후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저의 교회에 어려움이 있는 이 시점에 오시게 된것입니다. 현재 새생명교회는 갑자기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부분은 사정해서 될일도 아니고, 서로가 사랑한다면, “제가 나가는게 맞는다” 라는 결론을 짓게 되었고 더 이상 남을 아프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가라고 하는 이때에 미련없이 나가려고 합니다. 나가려 하지만 저의 새생명교회는 현재는 갈데가 없습니다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주공 아파트에 탈북민 170명정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중 새생명교회로 출석한 사람들이 거의 60프로입니다. 지난 3월16일에 설립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난 4월6일 임시 당회장님이 주일 오후예배에 오셔서 6명의 성도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 새생명교회가 현재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2013년도 일년동안에는 거의 헌금이 별로 없어서 남편에 수입으로 교회의 전기세, 물세 등 주일식품재료들을 충당했습니다 올해 2014년 지금까지 평균 매월 헌금은 150만원입니다 여기서 지출은 매월 평균200만원입니다. 매월 전기세가 한겨울 60만원 들었고 물세~ 2만원 설날 탈북민들이 외로워 홀로 계시는 분들과 외로워 하는 교인들과 전체 북한음식나누기 행사를 진행하며 간단한 선물, 설립예배때 간단한 선물과 또 전도를 위해 나머지 140만원을 쓰다보면 수입대 지출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새생명교회 성도들은 지금 4월11일까지 40일을 작정하며 교회 건물을 위하여 매일밤 12시~3시까지 3시간 작정철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남서울 교회도 우리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기도제목은 주님의 뜻이있다면 이 건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매입할 수 있게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노회장님과 임시 당회장님이 지난주 토욜에 집주인을 만난데 의하며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십니다. 시가는 이억 이천입니다. 현재 건물의 주인이 벧엘금고에 일억이천이라는 돈은 은행대출로 되어있고 전세금은 삼천만원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칠천이라는 금액인데 이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이 확실하게 다는 아니더라도 채워주실줄 믿습니다 제가 왜 남서울교회에 이렇게 보고하여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성도들은 이 상황을 놓고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새생명교회는 건물도 복음을 위하여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 냐면 부동산에 내놓는다고 해도 매입자가 불교일지 점쟁일지 어떤 사람이 매입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건물을 공손히 내놓고 갈데가 없고 교회건물로 사용하던 공간이 이상한데매입된다면 그곳도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지 이건 고민 끝에 저의 당회장님도 이공간을 확실하게 새생명교회가 앞으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재정은 누구도 잘 지원하려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는 시작하신이도 하나님이시오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온전히 협력하여 선을 이루사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저는 탈북민 사역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며 기존교회 탈북민 사역을 일년정도 해보았고 또 저역시 탈북민이지만 이시대 주님의 부르심의 소명은 분명한 확신이 있으므로 반드시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손길로 승리케 하시고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절 우리모두가 나중에 특별히 새생명교회가 부흥되고 잘 꾸며져 갈때는 여러분들의 헌신이 아름답게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게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선택하고 교회를 이루어 가든 여러분들의 헌신은 주님이 받으실거고 반드시 주님은 우리모두에게 동일한 은혜에 축복하심과 함께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줄 믿습니다 왜냐면 바로 지금은 새생명교회와 남서울 교회는 그리스도예수 사랑안에서 한모퉁이 돌로 연결되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새생명교회는 주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새생명교회는 세워지게 된 목적이 있습니다. 이땅에 와서 창원땅에 살고 있는 탈북민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비전과 사명이 있습니다. 비젼과 사명은 통일된 북한땅에가서 모두가 예수님을 전하는 귀한 일군들인것입니다 저의 새생명교회 성도한사람 한사람은 모두가 복음을 위하여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오로지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는 공동체입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뼈, 저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 37:7~8, 10절 새생명교회서 예수의 군사들이 일어나서 반드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부족함이 쓰임받게 될줄 믿습니다. 저는 믿고 확신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가운데 이루어질줄 믿습니다. 반드시 주님은 당신의 일이기 때문에 이루어 가실줄 믿습니다. 오늘 특별히 남서울 교회에 은혜의 제단에 부족한 여종을 세워주신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이도 주님이시요, 이루어 가실분도 오로지 주님이실줄 믿습니다. 우리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갈 때 놀라운 일들이 우리 모든 교회에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너무 부족하지만 주님의 뜻에 따르게 하시고 이시대에 통일 한국의 믿음직한 군사들을 양육하시기 위하여 새생명교회를 이끌어 가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남서울교회를 축복하시고 특별히 여전도회의 임원들과 통일선교부를 마음껏 축복하시고 이시대 부르심에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따라 돕는 은혜에 손길이 비록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이땅에 모든 교회들에게 임하게 될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의 감사하며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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