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 집사가 세례를 주었는데
나는 안 되나요?
어느 목회자가 고민이 담긴 질문을 해 온 적이 있다. 내용인즉 교인들 가운데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빌립이 세례 베푸는 행위를 근거로 평신도도 세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마다 고민하는 것은 현재 성직자만이 베풀 수 있는 세례를 전통적인 교회법이기에 존중하지만, 성경에서 명확하게 빌립 집사가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하나의 실제 사건이기에 답변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교회 내에서 있어 왔다. 한때는 이러한 주장이 성직에 대한 도전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평신도들의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당싱의 집사와 오늘의 집사는 이름은 같으나 그 임무와 내용이 많이 다라는다는 점이다. 당시의 사도들이 구제와 봉사까지 맡아 진행하다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전담하는 사역의 주역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보살피는 일은 신앙의 본이되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집사라는 직분을 맡겼다.
둘째는 스데반은 설교자로 빌립은 전도자로 세운 것처럼 일곱 집사는 사도들이 안수하여 세운 정직의 수임자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사도들을 따르면서 충분히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신학교와 같은 제도적인 교육 기관이 없었던 때 사도들이었다. 지금의 신학교와 같은 제도적인 교육 기관이 없었던 때 사도들을 수행하면서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그들이 필요한 훈련을 철저히 받았던 준사도와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사도들처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로서 인정을 받았고 사도들이 맡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의 사람들이었다.
종교개혁기에는 만인 제사장을 부르짖던 개혁자들도 교회는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례되는 곳이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이 임무는 목사에게만 국한시키게 되었다. 이것는 사도 시대부너 이어진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최근에는 교회 안에 셀이라는 핵분열과 같은 교회의 구조 개편을 시도하는 교회에서 셀마다 평신도 지도자를 목자로 두고 그들이 성례전까지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발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성직자의 임무를 대행하는 기현상까지 보인다.
혹자는 성직자가 부족한 외국인 천구교회에서는 신부가 평신도를 임명하여 성례를 위탁하여 일정 지역에 보내는 일이 있음을 보면서 평신도의 성례전 집행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툭수한 상황에서 천주교회에서 있었던 일일 뿐 우리 개신교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이다.
교회마다 가지고 있는 헌법에서는 평신도가 성례전을 행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속한 교단이 성경과 신학에 입각하여 세운 헌법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를 무시할 때 교회는 질서를 잃게 되고 혼돈의 세계에 진입하게 됨을 유념해야 한다.
첫댓글
주님께서 하십니다~!!
전통적인 성직자의 임무를 대행하는 기현상까지 보인다.
아멘~주님께 영광!!
교회가 절대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질서를 바로 세워가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