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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천자를 활로 쏘다 (3)
이미 밤이 깊었다.
모든 움직임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병사들은 공보가(公父嘉)의 집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수레에서 내린 화독(華督)은 병사들의 매복을 확인한 후 유유한 걸음걸이로 공보가의 집 대문 앞으로 갔다.
문을 두드렸다.
문지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태재 화독(華督)이다. 공사마와 비밀리에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왔느니라."
내실에서 아내 위씨(衛氏)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공보가는 화독(華督)이 친히 방문했다는 전갈에 부리나케 마당으로 내려왔다.
앞서 달려간 문지기가 대문을 열었을 때였다.
대문이 부서지듯 젖혀지며.
"으아악 -!"
문지기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얼굴을 감쌌다.
동시에 함성소리가 밤하늘을 진동했다.
사방에 매복해 있던 병사들이 벌 떼처럼 쏟아져나와 대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깜짝 놀란 공보가(公父嘉)가 뒷걸음질치며 소리쳤다.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화독(華督)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백성을 못살게 구는 도적이 여기 있다. 속히 처단하지 않고 어찌 꾸물거리느냐?"
사태를 짐작한 공보가가 화독(華督)을 쏘아보았다.
분노에 찬 눈빛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할 때였다.
그 뒤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칼날이 번쩍 하고 빛을 발하는 순간 공보가(公父嘉)의 머리는 땅 위로 굴러떨어졌다.
목을 잃은 몸체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잘린 목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그것이 신호였다.
집 안으로 난입한 병사들은 공보가(公父嘉)의 가솔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늙은이고 어린아이고 구별하지 않았다. 그저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비명과 절규가 처절하게 울렸다.
화독(華督)은 심복 부하만을 거느린 채 곧장 내실로 들어갔다.
불빛 아래서 보는 위씨 부인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다.
"일어나시오."
위씨는 저항하지 않았다.
화독(華督)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나왔다.
남편 공보가의 죽음을 아직 알지 못하는가.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화독(華督)의 명을 받은 심복 부하들은 위씨를 휘장 수레에 태워 먼저 집으로 향했다. 수레 안의 위씨는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두 눈이 어둠속에서 얼음처럼 빛났다. 문득 그녀의 손이 허리를 더듬었다.
비단 띠를 풀었다.
"....................!"
수레가 한 번 흔들렸다.
부하들은 바퀴가 돌에 걸린 것이려니 생각했다.
잠시 후 화독(華督)이 수레를 뒤쫓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잔뜩 기대감을 품은 채 수레의 휘장을 젖혔다.
"헉!"
숨을 들이키며 한 걸음 물러났다.
비단 띠로 목을 맨 위씨가 죽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원통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인가.
튀어나온 두 눈이 무섭게 화독을 쏘아보고 있었다.
화독(華督)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얼른 휘장을 닫고 부하들에게 명했다.
"짚에 싸서 교외 야산에 갖다버려라!"
그날, 공보가(公父嘉)의 집안 식구들은 난입한 병사들에 의해 모조리 도륙당했다.
재물도 몽땅 털렸다.
다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혈육이 있었다.
공보가의 어린 아들 목금보(木金父)였다.
충실한 집안 머슴 하나가 어린 목금보를 끌어안고 노나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목금보(木金父)는 노나라에 정착해서 살았다.
성장해서 다시 아버지의 성을 따랐다.
이 목금보가 바로 대성(大聖)이라 불리는 공자(孔子)의 6대조이다.
자칫했으면 중국은 공자를 탄생시키지 못할 뻔했다.
정적(政敵)에 대한 견제, 음모, 그리고 행동, 거기에 아름다운 여인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그러나 여인을 얻지 못했다 하여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어쨌거나 태재 화독(華督)은 강력한 라이벌인 사마 공보가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권력 다툼의 속성상 여기까지는 언제 어느 때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송(宋)나라의 대변혁은 그 후에 일어났다.
사태가 이상한 쪽으로 진행된 것이다.
송상공이 총신 공보가(公父嘉)의 죽음을 안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누가?"
송상공(宋殤公)의 입에서는 가장 먼저 이러한 물음이 터져나왔다.
"태재 화독(華督)이 병사들을 격동시켜........"
말을 끝까지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당장 화독(華督)을 불러들여라!"
송상공의 명을 받은 사자가 화독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화독의 태도가 여느 때와 달랐다.
"몸이 아파 입궁할 수 없다. 내일 들어가 뵙겠다고 전하여라."
공보가의 죽음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송상공(宋殤公)의 제거까지 꿈꾸었던 것일까.
그랬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화독(華督)은 그 순간에 마음속으로 또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화독(華督)의 불손한 태도에 송상공은 불같이 노했다.
"화독이 나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화독은 송상공의 증조부인 송대공(宋戴公)의 손자이다.
이를테면 화독(華督)도 공족이다. 신뢰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강했다.
태재라는 중책을 맡긴 것도 공족에 대한 애정과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과는 한마디 의논없이 총신 공보가를 해치웠다. 게다가 이제는 대놓고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있다. 송상공(宋殤公)은 개인적인 배신감만 느낀 게 아니었다.
- 군주에 대한 도전.
군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생각했다면 당연히 그 즉시로 군사를 소집하여 화독(華督)을 체포했어야 했다. 그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송상공(宋殤公)은 여기서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수레를 준비하라!"
공보가의 집으로 문상(問喪)을 갔다.
화독(華督)을 처단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중에도 공보가의 죽음에 대한 조문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병을 핑계로 송상공의 사자를 돌려보낸 화독(華督)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궁정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 주공께서 공보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에게 내일은 없다."
화독(華督)은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의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민하고 신속했다.
가장 먼저 군정(軍正)을 불렀다. 군정은 군중의 문서 담당관이다.
"주공이 공보가를 끔찍이 아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공보가를 죽인 너희들을 주공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저희들은 태재 어른의 명만 따를 뿐입니다."
"지난날 선군 송목공(宋穆公)께서는 자신의 아들인 공자 풍을 군위로 올리지 않고 조카에게 물려주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주공이다. 당연히 공자 풍을 잘 모시고 대접했어야 했다. 그런데 주공은 공보가만 총애하여 오히려 선군의 아드님인 공자 풍을 죽이기 위해 밤낮으로 정나라를 치는데만 주력하였으니, 이 어찌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니겠는가."
"공보가가 병사들에게 피살당한 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이것을 바로 의(義)라고 한다. 또한 배은망덕한 주공을 처단하고 공자 풍을 모셔와 군위에 모신다면, 이것을 가리켜 곧 재앙이 복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군정(軍正)이 머리를 조아렸다.
"태재의 말씀이 곧 병사들의 생각입니다."
화독(華督)은 군정을 시켜 수백 명의 무장 병사들을 공보가의 집 주변에 매복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송상공의 행차가 공보가의 집 대문 앞에 당도했다.
송상공(宋殤公)이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리려고 할 때였다.
골목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정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동시에 주변에 매복해 있던 무장병사들이 벌 떼처럼 쏟아져 나와 송상공의 수레를 덮쳤다.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온 시가지를 진동시켰다.
사방에서 내달아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송상공은 경악했으나 몸을 빼내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그대로 병사들 무리에 파묻혀 난자를 당했다.
얼마 후, 공보가의 집 앞은 텅 비었다.
대문 앞에 부서진 수레와 피투성이가 된 송상공(宋殤公)의 시체만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을 뿐이었다.
송상공(宋殤公)이 죽었다는 기별을 듣자 화독(華督)은 나는 듯이 궁 안으로 들어갔다. 궁을 장악하자마자 신료들을 불러 송상공의 죽음을 선포했다.
"나라에 하루라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되는 법이오. 지금 선군 송목공의 아드님인 공자 풍이 정나라에 망명해 계십니다. 백성들도 송목공의 은덕을 잊지 못하고 있소이다. 우리는 마땅히 공자 풍을 모셔다가 새 주공으로 받들어야 할 것이오."
이제 모든 권력은 화독(華督)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모든 대부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화독(華督)은 사자를 정나라로 보냈다.
그 동안의 일을 정장공에게 알린 후, 공자 풍의 귀환을 요청했다.
정장공은 그 동안 원수처럼 지내던 송상공(宋殤公)이 변을 당해 죽고 자신이 돌보던 공자 풍이 군위에 오를 것이라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이제 정나라와 송나라의 사이가 가까워지겠구나."
정장공(鄭莊公)의 소감이었다.
이 말은 곧 정나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자 풍이 이 말뜻을 어찌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그는 정장공(鄭莊公)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눈물로써 맹세했다.
"보잘것 없는 목숨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군후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다행히 본국으로 돌아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대대로 정나라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공자 풍은 11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송나라로 돌아와 군위에 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송장공(宋莊公)이다.
송장공(宋莊公)은 화독의 공이 큰 것을 인정하고 그를 국상(國相)으로 삼아 병권과 내정을 모두 맡기었다. 화독은 자신의 행동이 떳떳치 못한 것임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재상에 오르자마자 송나라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인 '고(郜)의 대정(大鼎)'을 비롯한 많은 보화를 주변 여러나라에 뇌물로 보냄으로써 송장공과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때의 일을 두고 후세의 사가들이 어찌 붓을 들지 않았을 것인가.
<춘추좌씨전>은 송상공 시해의 주모자인 화독(華督)을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화독은 '고의 대정'을 노(魯)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또 제(齊), 진(陳), 정(鄭)나라에도 모두 뇌물을 보냈다. 이리하여 인정을 받고 송나라 재상이 되었다.
'고(郜)의 대정(大鼎)'이란 고 땅에 전해오는 발이 세 개 달린 커다란 솥으로, 은 왕조때 제작된 보물이다. 그런 귀중한 보물을 뇌물로 받침으로써 자신의 행실을 감추려 했던 화독(華督)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다른 사관은 뇌물을 받은 나라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춘추시대엔 임금을 몰아내고 죽이는 것이 예사였다. 일 년 사이에 노, 송나라에서 해괴한 일이 연이어 일어남으로써 그것이 비롯되었다. 모든 나라가 뇌물을 받지만 않았어도,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불충한 자들이 어찌 기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다 -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또 어떤 이는 공자 풍을 없애려 한 송상공의 속좁음을 비꼬기도 했다.
송목공이 송상공에게 나라를 전한 것은 밝고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송상공이 공자 풍을 시기하여 정나라와 원수가 된 것은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마침내는 신하 손에 죽고 공자 풍이 군위에 올랐으니, 구천에 가서 무슨 낯으로 아비와 형을 대할 것인가.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