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학명
자금우과 |
Ardisia crenata |
단풍이 지고 찬바람이 피부로 느껴질 즈음이면 사람들은 꽃 피는 계절을 그리워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였던가. 이럴 즈음 꽃가게의 앞줄에는 빨간 열매를 줄줄이 매달고 있는 자그마한 나무를 내놓는다. 바로 ‘백량금(百兩金)’이라는 이름부터 흥미를 끄는 나무다.
백량이라는 적지 않은 돈과 나무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실망스럽게도 돈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중국 이름을 그대로 따왔을 따름이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을 처음으로 조사하여 통일된 이름을 정하면서 대부분 예부터 사용하던 우리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였다. 제대로 된 적절한 이름이 없을 때, 혹은 한약재로 알려진 나무들은 중국 이름을 그대로 빌려 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백량금은 뿌리를 자르면 붉은 점이 있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주사근(朱砂根)’이라 했다. 한편 주사근과 비슷하고 학명이 ‘Ardisia crispa’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의 원래 중국 이름이 백량금이었다. 학자들이 중국 이름을 빌려다 붙이면서 주사근이라고 해야 할 것을 착오로 유사 종류인 백량금이라고 해버린 것이다. 진짜 중국 백량금은 주사근보다 잎이 조금 더 가늘고 긴 것 외에는 너무 비슷한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탓에 전문 학자들도 이런 실수를 한 것이다. 참고문헌으로 쓴 중국 원예서 《본초강목》의 설명이 좀 헷갈리게 기술된 것도 착오 이유라 할 수 있다.
똑같은 일이 일본에서도 벌어졌다. 중국 백량금을 가져다 처음 정원수로 개발할 때 그들은 엉뚱하게 ‘당귤(唐橘)’이라 하고 우리가 말하는 백량금은 ‘만량(萬兩)’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였다. 같은 식물을 두고 중국에서는 주사근, 우리나라에서는 백량금, 일본에서는 만량이 된 셈이다. 액수로 따져 백량보다 100배가 많다는 뜻의 일본 이름은, 이 나무가 처음 알려진 에도시대에는 비싼 값이 아니면 살 수 없었던 탓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자금우를 십량(十兩), 중국 백량금은 백량, 열매가 비슷한 죽절초를 천량, 백량금은 만량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붉은 과실은 큰돈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에 이렇게 돈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량금은 남부지방의 상록수 숲에서 햇빛을 거의 받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다. 키는 30~50센티미터 정도로 큰 것이라고 해도 1미터가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긴 해도 곧추선 하나의 줄기를 가지며 가지와 잎은 대체로 줄기 끝에 모여 달린다. 가지는 줄기에 비하여 훨씬 가늘고 오래지 않아 떨어져버리므로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일은 거의 없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좁고 긴 타원형으로 표면은 짙은 초록빛이며 뒷면은 연한 초록빛이다. 가장자리에는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특징적인 것은 톱니와 톱니 사이에 ‘선체(腺体)’라는 작은 점이 나타난다.
6월경 손톱 크기만 한 흰 꽃이 가지 또는 줄기 끝에 우산모양으로 적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까지 핀다. 9월이면 꽃이 진 자리에 둥글고 콩알 크기만 한 빨간 열매가 가득 열린다. 열매는 이듬해 다시 꽃이 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다. 진초록 바탕에 빨간 열매로 악센트를 준 백량금의 모습은 겨우 내내 잿빛 아파트의 베란다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일등공신이다. 이렇게 오래 열매를 달고 있는 이유는 숲속의 그늘에서 자라는 탓에 새들의 눈에 띄는 기간을 늘려 잡은 선조들의 배려라고 한다. 꽃가게에 가서 백량금을 달라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일본 이름인 만량에다 ‘금(金)’자 하나를 더 붙인 만량금으로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