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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06 | 본문 072~074쪽 |
01 ➁ 02 ➄ 03 ➃ 04 ➂ | ||
⌜조선 후기 인물전(人物傳)의 특성⌟ |
·1문단 : 사전(私傳)의 개념과 그 갈래 ·2문단 : 인물전의 성격 변화와 그 이유 ·3문단 : 조선 후기 인물전의 작가층과 서술 방식의 특성 ·4문단 : 조선 후기 인물전의 구성과 특성 ·5문단 : 조선 후기 인물전의 문체의 특성 ·6문단 : 조선 후기 인물전의 문학사적 의의 |
01 세부 정보 파악 답 ➁
➁ 5문단의 ‘사전(史傳)나 조선 전기의 인물전은 문체가 엄숙하고 장중한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조선 후기 인물전은 기존의 문체를 포함하면서도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 풍자적인 문체를 보여 준다.’를 통해 사전(史傳)의 장중한 문체를 물리쳐 제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➀ 1문단의 ‘문학에서 사람의 일생은 지속적인 관심사이고 좋은 소재가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물의 생애나 사적을 다루는 글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한문학에서 자주 접하는 ‘전’이다.’에서 알 수 있다.
➂ 4문단의 ‘대체로 전은 인물의 가계나 신분 사항을 기록하는 인정 기술, 인물의 삶의 자취를 보여 주는 행적, 작가가 인물의 삶에 대해 논평하는 논찬의 3단계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에서 알 수 있다.
➃ 2문단의 ‘조선 전기 인물전의 입전 대상은 당대 사회가 지키고자 했던 이념과 규범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역사적으로 기릴 만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에서 알 수 있다.
➄ 1문단의 ‘후대로 오면서 문인이나 학자들이 사전(史傳)의 형식을 본떠 그들의 문집이나 글에서 실존 인물에 주목하여 입전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기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록한 인물의 전기이므로 사전(私傳)이라 부른다.’에서 알 수 있다.
02 자료 해석의 적절성 평가 답 ➄
➄ <보기>의 A는 민간의 이야기를 윤색한 글(패관 문학)을 비판하면서 내용 면에서는 경전을 전범으로 삼고, 표현 면에서는 고문의 문체를 따라야 한다는 관점이고, B는 ‘문은 성인의 도를 담는 그릇’이라는 기존의 문학관을 비판하며 작가계층이나 사용하는 어휘에 구애받지 않고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을 긍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A는 조선 후기 인물전을 비판할 것이고, B는 옹호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3∼5문단을 통해 조선 후기 인물전이 다양한 표현 기법이나 현장감 있는 문체를 활용했음을, 6문단을 통해 당대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➀ 조선 후기 인물전은 획일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지 규율을 강화한 것은 아니다.
② 이 글을 통해 조선 후기 인물전이 풍자적인 문체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조선 후기 인물전이 설화적 요소를 수용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기이하고 환상적인 삶을 추구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➂ 조선 후기 인물전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윤리 의식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니다.
➃ 이 글로 볼 때, 조선 후기 인물전이 역사의 이면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활용했다고 한 것은 적절하다. 하지만 5문단의 ‘이는 작가의 문학적 취향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로 볼 때, 작가의 취향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03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기 답 ➃
➃ <보기>의 ‘‘일지매’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은 조선 후기 인물전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이는 탐관오리가 횡행하는 당대의 실상에 대한 비판과 진지한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지, 조선 전기의 성리학적 가치관의 계승을 부각하는 것은 아니다.
➀ <보기>의 선생님의 말에 ‘그에 대한 평가를 칠언 절구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고, ‘일지매’라는 인물의 삶에 대한 논평이 시로 제시되어 있다.
➁ 일반적인 전의 구성은 ‘인정 기술-행적-논찬’의 3단계로 구성되는데, <보기>의 ‘‘일지매’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에는 가계가 언급되자 않아 인정 기술 부분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➂ 조선 전기 인물전의 입전 대상은 당대 사회가 지키고자 했던 이념과 규범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인물이었는데, <보기>의 ‘일지매’는 도둑이므로 입전 대상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➄ <보기>의 ‘일지매’의 행적은 조선 후기 시정(인가가 모인 곳)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거나 간접적으로 전해 들을 수 있는 특이한 삶으로 볼 수 있다.
04 내용들 간의 의미 관계 파악 답 ➂
➂ ‘탁전’은 사전(私傳)의 일종이므로 공식적 역사 기록이 아닌 개인적 기록에 해당한다. 작가가 자신의 행적이나 인생관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공식적 평가로 볼 수 없다.
➀ 가전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덕적 교훈을 전달한다고 했으므로, 조선 전기 인물전처럼 독자들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➁ 탁전은 자신의 행적이나 인생관을 가상의 인물에 의탁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므로, 작가의 생애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➃ 가전은 사물을 의인화한 것이고, 탁전은 가상의 인물에 의탁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➄ 1문단의 ‘가전과 탁전은 주로 고려 중기 이후에 창작되었며’를 통해, 사전(私傳) 중에서 가전과 탁전이 조선 전기 인물전보다 먼저 창작이 시작된 갈래임을 알 수 있다.
인문 06 - 이나현 추가 문제
[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문학에서 사람의 일생은 지속적인 관심사이고 좋은 소재가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물의 생애나 사적(事績)을 다루는 글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한문학에서 자주 접하는 ‘전(傳)’이다. 전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열전(列傳)에서 유래되었는데, 본래는 사관(史官)이 ㉠기록한 역사적 인물의 공식적 전기(傳記)인 사전(史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문인이나 학자들이 사전(史傳)의 형식을 ㉡본떠 그들의 문집이나 글에서 실존 인물에 주목하여 입전(立傳)*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록한 인물의 전기이므로 사전(私傳)이라 부른다. 우리 문학사를 살펴보면 사전(私傳)에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가전(假傳), 자신의 행적이나 인생관을 가상의 인물에 의탁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평가하는 ⓑ탁전(託傳), 실제 인물이나 허구적으로 창조된 인물의 행적을 다룬 인물전(人物傳)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전과 탁전은 주로 고려 중기 이후에 창작되었으며, 인물전은 주로 조선 시대에 창작되었다. 사전(私傳) 중 대표적인 것이 인물전인데, 조선 전기 인물전의 입전 대상은 당대 사회가 지키고자 했던 이념과 규범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역사적으로 기릴 만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즉 조선 전기 인물전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란을 겪으면서 지배 계층이나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상업 자본이 형성되면서 중인이나 평민들의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는 변화 속에서 인물전의 성격도 크게 바뀌었다.
조선 전기 인물전은 주로 사대부가 창작했는데, 이와 달리 조선 후기 인물전의 창작에는 사대부는 물론 중인 계층이 대거 참여했다. 이렇게 작가의 폭이 넓어지자 작가가 역사나 역사적 인물을 서술한다는 의식은 희미해지고 인물전도 역사서와의 관련성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 인물전은 조선 전기와는 달리 역사적 인물의 선행과 미담보다는 당대의 시정(市井) 공간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의 다양하고 특이한 삶에 주목하여 사실보다 흥미를 추구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입전 인물의 삶의 진면목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기 위해 사실을 윤색하거나 설화적 요소를 수용하고 나중에는 아예 허구적 인물까지 등장시키는 ㉢수법을 보여 주었다.
대체로 전은 인물의 가계나 신분 사항을 기록하는 인정 기술(人定記述), 인물의 삶의 자취를 보여 주는 행적(行績), 작가가 인물의 삶에 대해 논평하는 논찬(論贊)의 3단계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인물전은 이러한 구성을 준수하면서도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가가 이전 시기와 다른 새로운 인물을 포착하여 입전하면서 인정 기술 부분을 약화하거나, 인물의 행적을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인물의 행동 또는 사건의 장면을 소설처럼 구체적으로 재현하거나, 논찬을 작품의 앞에 두거나 앞뒤 모두에 두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 인물전은 이전과 다른 문체의 특징을 보여 준다. 사전(史傳)이나 조선 전기의 인물전은 문체가 엄숙하고 장중한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조선 후기 인물전은 기존의 문체를 포함하면서도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 풍자적인 문체를 보여 준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취향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이와 같은 특성들을 정리하면, 조선 후기 인물전은 다양한 계층의 작가들이 인물들의 주체적인 삶을 포착하여 당대의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새로운 의식(意識)을 부각하려 한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이면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끌어내어 문학에 부활시킴으로써 당대의 실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하고 획일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비판 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입전: ‘전’에서 한 인물의 생애를 서술하는 것.
05. 윗글을 참고하여 <보기>의 내용을 이해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다음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소설 ‘양반전’의 일부분이다.
양반이란 사족(士族)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旌善郡)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還子)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監使)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의 장부를 열람하고는 대로(大怒)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게 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도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걸.” ≪중략≫
① 획일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비판 의식을 드러내었다
② 인물들의 다양하고 특이한 삶에 주목하여 흥미를 추구하였다.
③ 소설이 창작될 당시,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 풍자적인 문체가 쓰였다.
④ 소설이 창작될 당시, 다양한 계층의 작가들이 작품 창작에 참여했다.
⑤ 선행과 미담을 주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존 인물에 의거하여 쓰였다.
06. 윗글을 참고하여 <보기>의 내용에 대해 추론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지윤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약 500년 전 조선 전기 시대에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서 지윤이는 사대부라는 계급에 속하는 남성이었다. 지윤이의 직업은 사관(史官)이었고, 여러 권의 책을 쓴 바 있다. 지윤이가 죽은 뒤,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지윤이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지윤이를 역사적 인물로 추대한다.
① 지윤이는 성리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② 지윤이는 주로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를 기록하였다.
③ 지윤이의 문체는 엄숙하고 장중한 경우가 많았다.
④ 지윤이는 자신의 인생관을 자신의 할아버지인 현선이에 의탁하여 탁전으로 남겼다.
⑤ 지윤이가 죽은 뒤, 후대의 한 학자는 자신의 문집에 지윤이에 대한 사전(私傳)을 기록하였다.
07. 문맥상 ㉠∼㉤와 바꿔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서록한
② ㉡ : 모방하여
③ ㉢ : 기법
④ ㉣ : 상황
⑤ ㉤ : 포함
인문 | 06 | |
05 ⑤ 06 ➃ 07 ➃ | ||
05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기 답 ⑤
⑤ 양반전은 조선 후기에 쓰인 작품으로 실존인물이 아닌 허구적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3문단 참고)
① 조선 후기에는 역사의 이면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끌어내어 문학에 부활시킴으로써 당대의 실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하고 획일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비판 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6문단 참고)
② 조선 후기에는 당대의 시정공간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의 다양하고 특이한 삶에 주목하여 사실보다 흥미를 추구하였다. (3문단 참고)
③ 조선 후기 인물전은 기존의 문체를 포함하면서도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 풍자적인 문체를 보여준다. (5문단 참고)
④ 조선 후기 인물전의 창작에는 사대부는 물론 중인 계층이 대거 참여하였다. (3문단 참고)
06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여 추론하기 답 ④
④ 탁전(託傳)은 주로 고려 중기 이후에 창작되었으며, 자신의 행적이나 인생관을 가상의 인물에 의탁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윤이는 조선시대 사람이고, 실존인물인 자신의 할아버지에 의탁하여 서술하였으므로 탁전(託傳)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현선이가 역사적으로 기릴 만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인물전(人物傳)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① 전란을 겪은 후 지배 계층이나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으므로 조선 전기 지배 계층은 성리학적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2문단 참고)
② 사관(史官)인 지윤이는 조선 전기 인물이므로 역사적 인물의 공식적 전기(傳記)인 사전(史傳)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1문단 참고)
③ 사전(史傳)이나 조선 전기의 인물전은 문체가 엄숙하고 장중한 경우가 많았다. (5문단 참고)
⑤ 후대로 오면서 문인이나 학자들이 사전(史傳)의 형식을 본떠 그들의 문집이나 글에서 실존 인물에 주목하여 입전(立傳)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기록한 인물의 전기이므로 사전(私傳)이라 부른다. (1문단 참고)
07 어휘 선택의 적절성 판단 답 ④
④ ‘양상’은 ‘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를 뜻하고, ‘상황’은 ‘일이 되어가는 과정이나 형편’을 뜻하므로 바꾸어 쓸 수 없다.
① ‘수법’은 수단과 방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기법’은 기교와 방법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두 단어 모두 ‘방법’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바꾸어 쓸 수 있다.
② ‘모방하다’는 ‘다른 것은 본뜨거나 본받다’를 뜻하므로 ‘본받다’와 바꾸어 쓸 수 있다.
③ ‘기법’은 기교와 방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므로 ‘수법’과 바꾸어 쓸 수 있다.
⑤ ‘내재하다’는 ‘어떤 사물이나 범위의 안에 들어 있다’를 뜻하므로 ‘포함하다’와 바꾸어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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