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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과 하나님의 나라(눅9:28-36)
1. 누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나누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일들을 우리가 자세히 나누고 있어요.
이 말씀들을 나누며 우리도 주님과 같이 살아갑시다. 인격만이 아니라
사역에서도. 오늘 본문은 주님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오늘도 문맥을 살피며
말씀을 나눕니다. 예수님이 5병이어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
로 추대하려고 했어요 주님은 그러한 군중을 피해서 제자들과 따로 한적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가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
습니다. 주님이 이것을 물은 이유는, 공생애 마지막이 다가오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
서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나타내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구세주이시라”고 신앙고백을 하게 하심으
로. 예수님은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자,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당시 종교
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난예고 후에 매번 제자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시간 첫 제자도를 나누었
어요. 주님이 십자가를 지듯이,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은 수난예고 후에 매우 도전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27절,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할
까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2. 하나는 주님의 재림이에요. 재림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합당
하지 않은 해석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변화산 사건이에요.
이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잠시 후에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적용을
더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과 말씀의 능
력으로 그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변
화산 사건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수제자들만 보았습니다. 반면 세 번째 해석
-주님이 친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다른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도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도 계속해서 종말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볼 거에요.
28절, 이 말씀을 하시고 팔일 쯤 후에 예수님이 세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주님이 이처럼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여기저
기에 수시로 나타납니다. 기도는 주님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말씀을 전하시는 3대 사역만큼, 주님은 친히 기도하시는 본을 철
저하게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방법-길이 없다고 강조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새벽과 저녁으로 기도합니
다.(새벽 기도회만이 아니라 저녁기도회까지) 주님처럼-주님만큼 기도할 때
우리도 주님과 같이-주님만큼 사역할 수 있습니다.(기본 수칙)
예수님이 기도하던 이 시점을 좀 더 알아봅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죽음을 예고하셨고, 실제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전도실습을 하며 교회를 세우도록 하셨어요.
하지만 제자들의 모습은 아직도 한심합니다. 제자들의 나이가 적지도 않
은데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주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주님으로 인해 무엇
인가를 얻고자 기대할 뿐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이 깊이 시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이때 주님이 세 자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어요. 이 셋은 그래
도 수제자들-영적으로 좀 눈이 뜨였다고 하는. 주님이 그들과 함께 산에 오
른 때는 저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피곤하여 깊이 졸은 모습을 보면요.
3. 제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피곤하니 졸았고, 주님은 깊은 시름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9-31절,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
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제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
이에요. 제자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보고 놀라고 있을 때 주님은 모세
와 엘리야 두 사람과 귀중한 일을 나누셨습니다.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고난당하고 죽으실 것)을 나누셨습니다. 이 별세는 exodus(출애굽)을 말합
니다. 이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에요. 세상 죄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
람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대탈출이란 말입니다.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여기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까?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구약성경-구약의 예언)를 대표합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전해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예언자를 대표합니다. 예언자 중의 예언자에요.
예수님께서 곧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심으로 율법과 예언의 말씀(구약 말씀)
을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마5:17) 제자들은 주님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이 일
을 행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현상만 보고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영적 세계와 말씀을 연결하여 볼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주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들과 행하심
을 온전히 알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 모든 제자훈련의 가치도
그때서야 빛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주님을 직접 뵙지 않고도, 이러한 영적 세계와 말씀을 연결하여 볼
수 있는 눈이 열렸으니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에요.
4. 오늘 본문의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모습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29절,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마17:2, “그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고 합니다. 막9:3, ”빨래하는 자
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하얗다.“고. 예수님의 몸 전체가 하늘의
광채로 빛나고 있습니다.(실제 주님은 빛이시다-사도 요한의 눈에 보여주신
것이나 제 눈에 보여주신 모습도)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도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예수님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주님의 영광을 받아 빛나는 모습
입니다. 베드로는 훗날 이 경험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
히 본 자라”라고 증언합니다.(벧후1:16)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천국에서는 지금 우리의 용모가 아니고 전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변화될까요? 세상에서는 외모에 상당히 신경
을 씁니다.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우쭐하거나 좌절하기도 해요. 미래의 천국
에서는 우리의 용모가 변화될 것이기에 외모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키가 크니 작으니 외모가 잘생겼느니 그렇지 않느니, 건강하니 건강하지 않느니
따집니다. sns 뉴스 가운데 외모를 서술하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외모에 따라
탁월함-우월함-미친 비율-이 비율이 실화? 이런 적나라한 표현이 쉽게 발견.
마치 사람을 물건-상품처럼 구분해요. 사람을 인격적으로 보지 않는 외모지상
주의에요. 하나님의 나라-천국에서는 외모를 따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얼마나 부질없고 허탄한 것인지 드러날 것입니다.
용모가 변화되어 완전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장애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었거나 손상되었어도 그때는 온전한 팔-다리로 변화됩니다.
그때에는 시각과 청각을 잃은 사람도 없습니다. 화상을 입었던 분들도 완전한 피
부로 변화됩니다. 늙은 사람이 없고 다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이 단면을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어요.(목회 장례식 가운데 목사님 한 분, 권사님
한 분의 부활체를 보여주신 적이, 목사님은 청년의 모습-30세 전후, 피부에 점과
티도 없고 살이 적당하게 올라 옴. 안경도 쓰지 않고 얼굴에는 평안함과 기쁨 자
체, 권사님은 결혼식 드레스를 입은 처녀의 모습)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다는
것은 그곳에는 죄와 허물이 전혀 없음을 말씀합니다.
5. 하나님의 나라-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줍니다. 예수님은 물론 모세와 엘리야도 영광 가운데 나타났어요.
우리도 모세와 엘리야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지상에서 살던 시간 차이를 뛰어넘어 주님 안에서 만남과 대화
가 이뤄집니다. 우리의 사고체계나 생각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우리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며, 제 생
각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제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마음껏 우리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지금도 이미 우리가 생각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여기저기서 그 물밑 작업이 이뤄지
고 있습니다.
이 변화산 사건을 본 베드로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33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2-33절을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세 제자들이 깊이 졸다가 변화산 사건을
목격하였어요. 그리고 뭔가 말을 했지만,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순간 하
고 말았습니다. 신비체험을 잘못하면 엉뚱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신비체험은 좋은 것이지만 늘 분별을 잘 해야 해요. 그래야 자신이 건강한
신앙을 누리고, 남에게도 덕을 끼칠 수가 있어요.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귀
한 현장을 보면서, 변화산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였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 여기다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베드
로를 탓할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 황홀함 속에서 계속 머물기
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에요. 복음성가 실로암 가사처럼-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실로암-맹인이 눈을 뜬 연못,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심을 감사하는 노래),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6. 베드로가 비몽사몽 가운데 이렇게 말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34-35절,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
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분위기가 반전
되며 하늘에서 제자들에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그의 말에 순종하라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상황파악을 바로 하지 못할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고 주님의
말에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되었습니까?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을 변화산에 데려간 이유를 알면 됩니다. 주님은 27절, 제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제자
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잠시 보게 하기 위해 변화산으로 데려간 것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단면(전체가 아니라)을 보게 하셨습니다. 세 제자들이 변화산
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고, 그곳에 안주하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
들을 만류하십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잠시 보여주고, 산
아래로 다시 데려가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맥락을 통해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장차 임
할 하나님의 나라와 지금 이 땅에서 세워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제자들이
구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미래에 임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맛보게 하고, 그 소망 가운데 오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
도록 부지런히 사명을 감당하라는 메시지이에요. 같은 시간 산 아래에서는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제자들이 귀신
을 쫓아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주님이 산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이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
를 지셔야 하고,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 끝까지 주님은 최선을 다
해서 사람들의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7. 세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귀한 사
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먼저 변화산
경험이 필요합니다. 신령한 체험(신비 체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
경험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의 삶을 넘어 있습니다. 세
제자들이 본 것처럼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공생애 동안의
주님의 모습은 천상의 주님과 비교가 되지 않아요. 사람이 전혀 쳐다볼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이에요. 우리가 오늘 바라보는 주님은 공생애 동안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에요. 세 제자들이 본 영광스러운 주님입니다. 예수님의
진면목-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은 우리 생각으로 전혀 제한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말씀, 말씀, 말씀이 중요하지만 이 신령한 체험을 겸해야 해요. 신령한 체험
을 한 자는 더욱 사명감 속에서 주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말입니다. 이 두 사도들이 순교하기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의 복음만 전한 것은 이런 신령한 경험을 하였
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힘겨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나라를 기억했
습니다. 세상 모든 자랑거리들이 그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를
알고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령한 체험
에만 머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책망을 받아야
해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제자들과 같이 특별한 체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신령한 체험을 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목숨을
다해 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무시하면 신비주의자-은사주의자-기복신앙이 됩
니다. 이것을 무시하지 않고 순종한다면 그는 신비주의-은사주의-기복신앙에
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일꾼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주신 사명이
바로 이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지역-민족-열
방의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달려갑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
고 누리고 싶다는 사람들을-국적과 출신을 막론하고 우리는 뿌리칠 수 없습니
다. 이 사명을 다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이 시대 최고-최대 교회로
부흥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교회-멋진 성도의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리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