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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탐방 3탄 < 청도에서 통영 구경 가기 >
일시 : 2017. 06. 10(토) ∼ 06. 11(일) - 1박 2일
장소 : 통영 일원
참가자 : 안창성, 한경호, 황경철 (3명)
요즘 JTBC 방송에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는데 1회에 통영 다찌집에서 몇몇 이빨 센 사람들이 등장해 정말 쓸데없는 지식 자랑하는 것을 보고는 황선생이 통영 다찌집에 가보자는 의견을 냈다. 황선생은 우리도 그들처럼 현학적인 지식 파티를 하자는 것은 아닐 게고 다만 이를 핑계로 통영 다찌집에서 한잔하자는 지극히 단순, 소박한 생각에서 한 말일 게다. 게다가 통영 안내 전문의 안선생이 동행하는 것이기에 계획이고 자시고 할 것없이 바로 출발해도 여행이 매우 부드럽게 진행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여행은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린 이를 구실로 청도 '대하횟집'이란 곳에서 당연하다는 듯 사전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진지하게 일정과 코스에 대해 의논하고 준비물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의 결과, 안선생이 알아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가장 합리적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도달하기까지는 일인당 550ml 소주가 세 병씩 필요했으니 회의의 진지함은 이로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6월 10일 토요일 10시에 청도에서 나와 황선생이 만나 출발하고 안선생은 근무지인 부산에서 바로 통영으로 와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12시경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내비에 '통영시외버스터미널', '통영 버스터미널' 등을 아무리 쳐도 이 내비년이 안내를 하지 않아 주행 중 계속 내비년과 싸울 수 없어 내가 휴대폰으로 "다음 포털"에 들어가 지도에서 '통영시외버스터미널'을 친 연후에서야 '통영종합버스터미널'이 정확한 이름임을 알아 겨우 내비년 입맛에 맞추어 안내를 받게 되었다. 출발 전 정확한 지명을 알려야 네비년과 쓸데없는 싸움을 피할 수 있으니 이는 운전자의 정신건강과 사고예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제대로 작동 후 출발하는 것이 차라리 가면서 속 끓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약속시간에 거의 맞추어 도착하니 붉은 티셔츠를 입은 황선생이 보였다. 점심때가 다 된지라 점심 먹을 만한 식당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요리로, 조리로” 하는 지시에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어딘지도 모를 곳에 있는, 간판부터 현지인 타입인 식당에 도착했다. 이런 식당을 많이 아는 것은 경력자의 이력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는 “아따, 아지매, 살 많이 쪘네, 몰라볼 뻔했다.” 정도의 멘트를 날려주어야 주인도 이 사람이 누구더라 하고 관심 있게 쳐다보고 그러다가 “아이고, 참 오래간만이네요. 와 그래 안 왔능교? 이런 회화가 오가야 비로소 이 집이 자랑하는 것을 제대로 대접받듯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괜히 눈 아프고 머리 아프게 메뉴판을 보지 말고 바로 ”요새 머가 좋은교? 그거 세 개 주소. “로 끝을 내는 것이 좋다.
가급적 맛집은 아끼는 편이지만 내 카페가 그리 많은 회원이 있는 곳도 아니요, 게다가 통영은 자주 가는 곳도 아니니까 상호를 밝히면 “청산식당”이란 곳이다. 여긴 도다리쑥국이 유명한 모양이나 이미 계절은 여름에 거의인지라 뭘 줄지 궁금했는데 큰 냉면 그릇에 누워있는 놈은 붉은 볼락으로 중간 크기 두 마리였다. 물이 좋아 시원한 볼락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다음 행선지를 의논했다. 대하횟집에서 그렇게 회의를 했건만 미진한 곳이 있는지를 늘 살펴야 하는 것이 여행이니 여행 전 회의는 필수적으로 여러 번하는 것이 좋다. 단, 기록하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이 계속 비슷한 논제로 회의를 여러 번해야 하는 것이다. 나폴레옹 유배 후 남은 유럽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빈 회의가 결론도 없이 회의만 계속되는 걸 본 오스트리아의 늙은 장군 리뉴 공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Der Kongress tanzt viel, aber er geht nicht weiter)."라고 편지를 쓰고 결국 그는 빈 회의가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술에 잠긴 회의는 진행될수록 앞부분부터 사라지는 침몰하는 배 모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제법 큰 볼락이 무를 요 삼아 누워 있다. 사진이 아주 선명하다. 그러나 이때는 몰랐는데 갤럭시 S7에는 음식 찍기 기능이란 게 따로 있었는데 이는 가장 중요한 음식에 하이라이트를 맞춰 찍는 기능이었다. >
< 아줌마가 특별히 주는 것인지 몰라도 까나리를 조려 생멸치 쌈밥으로 싸서 먹으라고 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
여행을 다니면서 섭섭했던 중 하나가 카메라였는데 마침 갤럭시 S7 엣지를 싸게 살 기회가 있어 이번에 구입을 했다. 그러나 얼마나 잘 나오는지 알 수가 없어 황선생이 가진 LG 제품과 비교를 해보았는데 방법적으로는 마침 앞에 별로 할 일없이 앉은 안선생을 찍고 이를 끝까지 확대해 선명도를 비교해 보면 될 듯했다. 그래서 둘이서 사진을 찍은 후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을 찾으니 눈과 쌍꺼풀인 듯하여 두 젊은이가 늙은이의 눈을 한껏 확대해 보았더니 갤럭시 S7이 조금 더 선명한 듯했다.
< 초상권 침해 및 신체 무단 확대를 견디면서까지 해상도 실험에 참가해주신 안선생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말을 드리는 바이다. >
사람이 집을 떠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집을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시내로 가서 여러 동선(動線)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 숙소를 정하자는 말을 하자마자 바로 안선생이 여객선터미널 쪽으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 있는 ‘넥슨 모텔’에 몇 번 숙박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조바 아지매’(얼마나 낯익은 일본말이냐)가 10만 원 달라는 걸 9만 원으로 깎았다. 일단 짐을 방에 넣어두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다찌집’ 이야기를 했더니 안선생이 ‘다찌’는 비싸고 그와 비슷한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토지’라는 식당에 1인당 2만 원짜리 정식을 예약하고 6시에 오기로 했다.
점심은 먹었고, 아직 술을 마실 시간은 아닌 것 같고, 6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래서 어디로 갈까 하다가 통영대교를 건너 미륵도에 가 보기로 했다. 마침 황선생이 미래사라는 절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가파른 비탈길을 굽이굽이 힘들여 차가 올라가니 드디어 주차된 차들도 많이 보여 우리도 길가에 차를 주차한 후 절로 들어가니 아담한 절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미래사(未來寺)인 줄 알았는데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불이 미륵도에 오길 기원한다는 뜻에서 미래사(彌來寺)라 이름 지었다 한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절이지만 아자형(亞字型) 범종루가 훤칠하게 지붕을 하늘로 휘날린 모습이 마치 통영의 시인이었던 청마 유치환 선생이 말한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근사했다.
< 미래사라는 현판 아래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이라 적어 둔 것이 보인다.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양 옆에 번들거리는 것은 유리로 그 안에는 목조로 된 사천왕 대신 아래 사진처럼 그림으로 된 사천왕이 있다. 왼쪽에 걸린 ‘효봉성지 자비 기도도량’이란 현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절은 효봉 스님의 상좌인 구산 스님이 효봉과 석두, 두 스승의 안거를 위해 1954년 지은 암자에서 비롯되었다. >
< 유리로 막아 두어 먼지가 끼지도 않을뿐더러 색상도 오래 보존될 듯하다. 위의 것은 칼도 들고 비파도 들어 사천왕상 같기도 한데 밑의 많은 사람들은 부처의 제자들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누군지 모르니 무얼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럴 때 불교적 지식이 많은 친구가 있다면 좋을 텐데. >
< 청마 선생 때문에 대단한 칭찬을 했지만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화려한 지붕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둥이 약해 보여 하체가 부실한 대갈장군처럼 보인다. 亞자형 지붕이란 十자형 지붕이라 해도 되겠다. >
< 대웅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 단청색이 선명하다. >
<도솔영당, 선사들의 영정을 모신 곳인데 원래 ‘兜’는 투구를 의미하는 ‘두’자이나 불교에서는
이를 ‘두솔’이 아닌 ‘도솔’로 읽는다. 이는 마치 도장(道場)을 5쪽의 사진처럼 ‘도량’이라 읽는 것과 같다. 도솔천(兜率天)은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곳으로 이상적인 정토이니 미래사와 잘 어울리는 당집 이름이라 하겠다. >
< 지붕 용마루에 어처구니 구실을 하는 짐승 형상의 조각물이 양쪽에 붙어 있다. 오키나와에서 본 사자 형상의 시샤가 생각났지만 이건 특이하게도 몸통은 없고 대가리만 있다. >
< 나오다가 쪽마루에 놓인 소대가리를 닮은 기이한 형상의 항아리를 보았다. 무슨 용도인지 뚜껑을 열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으련만 이런 경우 흔히 나는 그냥 스쳐 오고 만다. 그리고 계속 궁금해 하는 괴이한 취미가 있다. >
< 불유정(佛乳井)이란 우물이다. 얼마나 물이 달콤하기에 부처님 젖이 흐르는 우물이라 이름을 지었을까 했지만 부처님은 비록 젖은 크지만 남자인지라 젖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붉은 바가지와 푸른 바가지가 있어 이는 남자는 푸른색, 여자는 붉은색 바가지를 쓴다는 황선생의 말을 듣고 그런 깊은 뜻이 있구나 하면서 보니 다른 색이 없고 두 가지 색이 주를 이룸을 알 수 있었다. >
< 자그마한 연못 곁에 작은 부처가 오백 원짜리 동전을 잔뜩 안고 있다. 약 15개 정도가 되니 칠팔천 원 정도이다. 문득 오키나와 복주원의 용 모양의 기둥에서 용 입 안에 든 1엔짜리(우리 돈으로 10원) 시주가 떠올랐다. 그때 작은 부처들도 있었는데 그 앞에 놓인 것이 전부 1엔짜리였고 하다못해 10엔짜리도 보지 못했음을 떠올리면서 이런 점에서 한국인은 적어도 일본인보다 50배 정도 배포가 크다고 느꼈다. 물론 일본인에게 1엔은 사용 가능한 화폐이지만 우리의 10원은 현실적으로 사용 불가능한 화폐가 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누가 부처 앞에 10원짜리 동전을 잔뜩 쌓아 놓는다면 그는 종교적 목적의 시주를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호주머니 보호를 위한 이기적 투기행위를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10원짜리를 넘어 이젠 50원짜리, 100원짜리도 줍지 않는 형편이라서 하는 말이다. >
< 미래사에 대한 설명은 여길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법정스님도 여기서 출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 실상 왼쪽의 그림을 사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유는 절의 조감도를 그린 것이 아주 소박하여 마치 초등학생의 작품을 보는 정겨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
미래사 바로 앞에는 편백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피톤치드를 마셔가며 조금 걷다 보면 남해를 굽어보고 있는 자그마한 미륵상이 나온다. 양양 낙산사의 동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에 그 크기나 솜씨는 비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고양이 한 마리의 벗이 되어주고 있는 마음 씀씀이가 따사롭다. 이 글을 쓰며 미래사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보았는데 2017년 2월에 오신 분 중 어느 분이 이 고양이와 밥그릇의 사진을 올려 둔 것을 보니 이 고양이는 길고양이가 아니라 미륵상의 벗이 되어 여기 정착한 고양이 같았다.
다시 차를 타고 달아 공원으로 가서 소변도 보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전망대로 갔다. 올라가는 길가에 동백나무와 특이하게도 개복숭아나무를 심어 두었다. 벌써 매실 정도의 크기로 자라 곧 따서 엑기스를 담으면 될 듯했다. 개복숭아청은 기침에 효능이 있다고 하나 효능보다는 맛으로 담는 이가 많은 듯하다. 전망대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 가까이 있는 섬 정도만 보는 것에서 끝내야 했다. 시간이 제법 되었기에 다시 시내로 돌아와 차를 숙소에 두고 도보로 시내 구경을 나섰다.
넥슨 모텔 입구에서 좌측으로 조금 가니까 넓은 공터에 이순신이 거북선을 이끌고 전투하는 조각공원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화강암으로 거북선을 표현하고 사람들은 황동으로 만들어 화살을 재는 병사, 대포를 다루는 병사, 북을 치는 병사, 그리고 선두에 서서 전투를 독려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 등 상당히 전투 장면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또 이순신이 남긴 여러 말, 예를 들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시조라든지, “신에게는 아직 배 12척이 있습니다.”라든지 하는 말을 한자로 큰 돌에 새겨 주위를 둘러 전체적으로 상당히 짜임새 있게 느껴졌다.
< 여긴 '후(後)' 자를 보아 알겠지만 배의 뒷부분이다. 그래서 활을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병사를 두었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물결을 단순화한 표현이 재미있다. 그런데 왜 배의 정면과 측면을 두고 하필 후면을 찍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어야 정상적인데 그런 의문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다음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측면에는 ‘모텔’이 정면에는 ‘아담 모텔’과 ‘앤젤인어스 커피점’이 있어 분위기를 완전히 망치기 때문이다. 후면에서 찍어야 바다 쪽이 되어 별 불편 없이 역사의 현장에 몰입하는 사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세밀함이 있어야 사진을 찍는데 도움이 된다. 이 공원의 이름이 통제영 병선마당이란 걸 한참 노력 끝에 알았다. >
< 보라, 이 사진에서 눈에 제일 먼저 띄는 것이 모텔인지 인물인지. >
< 진두에서 지휘하시는 이순신이 마치 ‘아담 모텔’에서 주무시고 ‘엔젤인어스 커피점’에서 식후 커피를 때리신 후 나온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배경 자체를 아예 없앨 수 있으면 더 나을 듯하지 않은가? >
< 주변에는 있는 오석에 이런 식으로 이순신의 말을 새겨 두었다. “지금 신하에게는 전선이 아직 12척이 있으니 나아가 죽을힘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이 오히려 가능할 뿐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하가 죽지 않은즉 적이 감히 저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이순신 생애의 절정의 순간이 아닐까 한다. >
< 길 가에 붙은 백석의 시. 이런 게 여러 개 있어 통영이 문화적 도시임을 은연중 느끼게 했다. >
백석이 통영에서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해 충렬사 앞 계단에 앉아 그 처녀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알쓸신잡’에서 나왔거니와 그 연유에서인지 골목 어귀나 반반한 벽에는 이런 백석의 시가 붙어 있다. 백석의 고향은 현재 북한의 정주라는 곳이니 과거의 잠시의 인연을 끌어들여 선점하는 놈이 장땡이란 생각이 들었다.
< 통영이 장편 대하소설 ‘토지’를 지은 박경리 여사와도 연관이 있어 그런지 식당 이름을 토지로 지었다. >
동피랑 벽화 마을이 멀리 보였지만 높기도 높고 힘도 없어 포기했다. 다만 동(東) 자가 ㅎ종성 체언으로 벼랑의 사투리 비랑과 결합되어 격음이 되면서 동피랑이 되었을 것이라고 국어선생으로서의 권위로 설명을 하였다. 이미 ‘도솔영당’에서 ‘도’ 자를 모르던 두 사람에게 ‘도솔영당’이라 읽음으로써 국어선생으로서의 권위는 이미 확보된 지라 두 사람 모두 정설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오후 6시로 예약했지만 배회할 곳도 더 없고 다른 곳에 가기에도 어중간하여 5시 30분에 ‘토지 식당’으로 갔다. 넥슨 모텔에서 나와 명촌 식당을 거쳐 M모텔 앞이 토지 식당이다. 알파벳 모텔 그룹인지 근처에 H모텔도 있었다. 황선생 말로는 H모텔을 일본인들이 보면 남녀의 섹스를 연상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서 있는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라나? 참, 일본인다운 사소하게 색(色)스러운 발상이다. 그러면 ‘M’으로는 무얼 상상해야 하나?
< 1인분에 2만 원짜리 해물 위주의 정식의 모습이다. 3명이 취하도록 마시고 계산서를 보니 95,000원이다. 실비로 즐긴 셈이다. >
< 나중에 제법 큰 열기 구이에 매운탕까지 나와서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낀 우린 항구의 밤바다를 보며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마셔 소화제를 대신했다. >
'다찌'란 말은 원래 '다찌노미'라고 해서 서서 간단히 한잔 마시고 가는 술집을 말하는 것이니 우리말로 '선술집'으로 해석을 하면 되겠지만 통영의 '다찌집'은 그런 형태로 영업하는 것이 아니니 '실비집' 정도로 흔히 풀이를 하고 있다. 대개 1인당 3만 원 정도이고 기본상 값을 6만 원으로 하면서 소주 1병 당 1만 원씩 추가할 때마다 점점 나은 안주가 나오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우리 3명의 경우 기본상 6만 원에 5병 추가하면 11만 원, 그리고 나머지 술값까지 계산하면 약 15만 원 정도가 예상된다. 물론 술이 약하거나 안주빨이 약한 사람을 위한 반다찌 집도 있다. 이 집들은 아예 간판에 반다찌라 적혀 있고 금액이 조금 싼 대신 안주의 양이 조금 약하다고 하겠으니 우리가 이용한 '토지 식당'도 지불한 술값으로 본다면 반다찌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얼근하게 취하여 거리를 배회하다가 모텔로 돌아온 우리는 황선생이 코스트코에서 사 온 맥주와 소주로 입가심 후 몇 신지 모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시락국과 복국 사이에서 조금 갈등하다가 졸복국을 먹기로 하고 서호시장 안 만성 복집으로 갔다.
< 오른쪽 밥뚜껑에 담긴 졸복은 초장에 찍어 먹고 졸복국은 지리(맑은 국)로 먹다가 다시 고추다대기(다대기도 일본말이나 적당한 어휘가 없다. 고추 다진 양념은 애매하다)를 넣어 복어 매운탕으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12,000원에 소주 1병. >
아침을 시원한 졸복국과 소주 1병으로 해장 후 한산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정말 안선생이 숙소를 잘 구한 것이 주차에 대한 걱정도 없거니와 모든 장소가 도보로 5분 안에 다 해결되어 쓸데없이 객지에서 거리를 방황할 일이 없었다. 배 삯이 젊은 황선생과 나는 왕복 11,900원인데 안선생은 65세 이상이라서 9,800원이었다. 그런 할인 혜택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주민등록증을 주니 아가씨가 알아서 경로우대를 해주었다. 안선생은 할인받은 액수만큼 썩 즐거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 배 도착에 맞추어 대기 중인 한산도 일주 버스. 버스비는 900원이었다. 배삯이 왕복 11900원인데 비해 매우 싼 느낌이다. >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선선하여 행락객이 많았다. 20분 남짓 가서 제승당항에 내렸다. 항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제승당과 이충무공 유적지가 있지만 옛날 중학교 2학년 담임할 때 가본 터라서 그만 두기로 했다기보다 그곳은 걸어가야 하므로 게으른 우린 기다리던 일주버스를 무조건 탔다. 일주 버스는 제승당 방향이 아닌 왼쪽 편 길로 해서 섬을 빙 돌아 추봉교를 건너 추봉도의 봉암마을로 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 추봉교 건너 왼쪽 편에 있는 아담한 진두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내리니 안선생이 이곳의 한산중학교가 자기가 가장 근무하고 싶은 학교라기에 가 보기로 했다. 학교 앞 넓게 펼쳐진 바다와 멀리 보이는 섬들, 그리고 초여름 따뜻한 햇살 아래 펼쳐진 나른한 고요함, 잘 가꾸어진 정원과 화초들이 학교라기보다는 별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정문에서 본 남해의 풍경. 애들이 몇 안 될듯한데 있을 시설은 다 있고 오히려 모든 게 여유롭고 넉넉해 보인다. >
< 자연산 회 한 접시 6만 원에 소주 두 병과 매운탕에 68,000원을 지불했다. 회 맛은 역시 남해가 동해보다 단맛이 더 하다. >
< 안선생이 추천한 보리수 식당. 재임 중 노무현 대통령이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는 곳이다. 비록 지위는 낮지만 음식은 낮출 수 없어 우리도 여기서 식사를 했다. 대통령이 왔다간 걸로 보면 아마 이 동네에서는 가장 위생적으로나 미각적으로나 나은 집인 듯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한 장 걸린 게 없는 걸로 보아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을 겪으면서 떼어버린 건 아닐지 모르겠다. 이명박이 국밥 처먹은 식당은 그 후 장사가 망했다는 풍문이 있는 걸 보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가정이다. 한낮인데도, 혹은 한낮이라서 길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 사진을 찍기 전 사이클 탄 무리가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고 왁자지껄 떠난 후라 길은 더욱 고독하다. >
1시 30분 버스를 타고 다시 제승당 항구에서 배를 타고 돌아와 중앙시장에 들렀다. 나도 저번에 들린 적 있는 갈치 파는 곳에 가니 그 아줌마가 그대로 있었다. 세네갈 산(産) 갈치가 2마리 2만 원짜리와 3마리 2만 원짜리가 있었는데 우린 3마리 2만 원짜리를 샀다. 안선생이 “누구엄마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능교?”하고 인사하는 덕에 5,000원짜리 전갱이는 거저 얻었다. 이래서 경험자가 중요한 것이다. 2000원을 주니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넣어 단단히 밀봉해 주었다. 그리고는 청도를 향해 출발했고 청도 도착과 동시에 우리 여행의 모든 공식적 행사는 끝이 났다.
< 전체 든 돈이 535 500원에다가 내가 빠뜨린 만성식당 식사 후 숙소 옆 커피하와이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3잔 값 9,000원까지 하면 544,500원이다. 물론 차를 운전한 황선생의 노고와 안선생의 노련한 가이드에 대한 보답은 해드리지 못해 섭섭하다. 이 글로 섭섭함이 조금은 달래지리라 믿는다. > 끝.
2017.07.03.
첫댓글 ㅋㅋ 충분한 회의 끝에 일정과 식사 등 모든 것은 여행 전문가이신 안섐에게 맡기기로 결정하는데 소주가 서너병 필요해?
왜 학교 다닐때 선생님께 글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요? ㅎㅎㅎ
니가 수학여행이라도 가면 잘 관찰해야 할 텐데 술 마신다고 배울 시간이 없었겠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