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슬픈 여자 한나의 기도
삼상 1:10-18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엘가나에게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브닌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한나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1. 브닌나는 한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 1:6-7).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라는 말씀을 보면 브닌나가 한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격분”이란 ‘성가시게 하다’, ‘괴롭히다’, ‘화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브닌나가 우습게 여기고 화가 날 정도로 괴롭힌 것입니다. 브닌나의 괴롭힘으로 한나는 울고, 음식을 먹지 못했고(7, 8), 슬펐으며(8, 15), 괴로웠고(10), 고통스러웠습니다(11). 그런데 “격분시키다”는 이전부터 괴롭혀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괴롭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남편 엘가나가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8절을 보면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해 주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엘가나가 ‘어찌하여’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것에서 한나를 얼마나 끔찍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는 표현도 한나에 대한 엘가나의 사랑이 지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매년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다른 사람보다 갑절이나 많은 재물을 한나에게 주었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5). 그런데도 마주치기만 하면 갈궈대는 브닌나로 인해 남편의 사랑도 재물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가 브닌나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5…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삼상 1:5-6). 이 말씀을 보면 한나가 임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라는 말씀처럼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한 것은 기도의 자리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가 남편 앞에서 울며 먹지 않고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며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대적 브닌나로 하여금 격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한나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브닌나 마저 ‘형님, 염려마세요. 내 자식이 형님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형님도 곧 아이를 가질 거에요’라며 따뜻하게 대했다면 한나는 기도의 자리로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브닌나의 존재 이유
하나님이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는 데 왜 우리를 힘들게 해서 깨닫게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브닌나를 보내는 이유는 사람은 좋게 말해서는 그렇게 쉽게 기도의 자리로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나도 브닌나가 격분하기까지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나를 하나님이 보시고 브닌나로 하여금 격동하게 해 하나님을 찾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브닌나를 보내십니다. 남편은 아내가 브닌나일 수 있습니다. 아내는 시어머니남편자식이 브닌나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브닌나를 우리에게 보내셨을 때는 맞서 싸우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브닌나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나도 브닌나로 인해 날마다 울며 음식도 먹지 못하고 괴로워했지만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 1:10).
다윗도 자신을 비난하고 까닭 없이 공격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맞서 싸우지 않고 “나는 기도할 뿐이라”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2-4). 욥도 조롱하는 친구와 싸우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 16:20).
하나님이 사람과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통곡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기도는 브닌나와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브닌나로 인해 격동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기도의 자리에 앉아 힘써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나를 생각하소서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나를 기억하사”는 “나를 생각하시고”라는 뜻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기도하자 응답이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19).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해 주시자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비롯해 여러 자녀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 2:21).
라헬이 자식을 낳지 못하자 야곱을 붙들고 아이를 낳게 해달라며 들들 볶아댔습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 라헬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야곱이 애 낳는 기계도 아니고 무슨 재주로 아이를 낳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는 한나처럼 하나님이 생각해 주셔야 낳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창 30:22). 라헬도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자 그 유명한 요셉이라는 인물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하게 하는 분이십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에 9:22). 다윗도 하나님께 기도하자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베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워주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브닌나로 인해 괴로울 때 우리의 할 일은 기도의 자리에 앉아 생각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춤이 되게 하심을 믿고 늘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근심 빛이 없더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 1:17-18).
한나가 통곡하며 심정을 통한 기도를 드리고 나자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신해 축복해 주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 이에 한나의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졌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18).
근심 빛이 사라졌다는 것은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뜻입니다. 물론 한나의 마음이 평안해진 것은 브닌나가 사라져서 평안해진 것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면 여전히 브닌나가 갈궈댈 것입니다. 그런데도 근심 빛이 없이 평안해진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것은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는 표식입니다. 이에 한나가 집에 돌아가서는 음식을 먹고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드렸다면 염려하지 않는 것이 믿음인데 그 믿음의 결국이 평안입니다.
살다 보면 브닌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러할 때 기도가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으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도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결론
브닌나는 기도의 자리에 앉으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브닌나는 원수(怨讐)도 아니고, 사라져야 할 존재도 아니라 축복이요 은총임을 깨닫고 한나가 브닌나로 인해 하나님께 생각해 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생각해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브닌나로 인해 울며 슬퍼하지 말고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