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민주공화국>의 이상
1. 2017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운동의 뜨거운 열기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수립이라는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 ‘촛불운동’이 평화적 방법으로 진행되고 결국 정치적인 승리를 거두자 수많은 학자들과 언론들은 ‘촛불운동’의 의미를 평가하였고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촛불운동’은 단순히 박근혜 정부의 불법적 통치 행위에 기인했다기 보다는 당시 한국 사회를 위태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즉 한국사회의 확산되는 불평등, 시장과 사법에 의해 지배되는 한국 정치, 시민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진행되는 국가의 폭력, 정치가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는 정치 과잉화와 같은 문제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2. 하지만 좀 더 나은 민주주의의 실험에 대한 기대는 불과 몇 년 만에 붕괴되었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실망에 따른 시민들이 불만도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적으로 더 나은 국가에 대한 비전과 이상적 국가 형태에 대한 고민대신에 단기적인 이익과 파당적이고 이념적인 지도자와 정책에 대한 호불호에 따른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국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과 이념에 사로잡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윤석열 정부’였다.(비록 당시 대선에서 국민들이 선택할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 감정적인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3. 바림직한 국가에 대한 비전을 상실한 채 이념과 감정에 따른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정치의 불안과 혼란을 야기시켰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다. 정치적 이슈나 정책 그리고 제도에 대한 충분한 통찰을 잃어버리고 이념에 따라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 한 학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경청할만하다. “좌파가 되는지 혹은 우파가 되는 것은 얼간이가 되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이 둘은 도덕적 반신불수 상태에 빠져있다. 게다가 이들 단어 사용을 고집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거짓된 현실을 더욱 거짓되게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이다.”
4. 더 나은 국가는 민주적 절차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지도자가 획득한 권력에 따라 독재를 자행한 일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공화국’적 가치를 도입해야 한다. ‘공화국’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부라는 의미로 고전적 정의에 따른 핵심적인 개념은 ‘법적 정의’와 ‘이익의 공유’이다. 법이 공정하고 형평하게 적용되며, 국가의 자원이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적인 기준이 수립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권력이 국민에게 부여될 수 있는 공공성의 규범을 수립하는 것이 공화국의 의미라 할 수 있다.
5. 한 정치학자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건국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이념 보다는 ‘균등적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공화국적 가치가 더 우선되었다고 말한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정치적 목표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적 문제(정치의 사사화, 역근대화, 근본화, 파당화)를 극복하고 합의할 수 있는 공준을 수립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6. 새로 등장한 윤석열 정부의 핵심적 정치구호는 ‘법치주의’이다. 하지만 ‘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공화주의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법치, 또는 법의 공정한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이나 자본에 봉사하고 참여 ,비판,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의 법치주의는 시민과 민주주의로부터 독립된 사법 관료주의와 사법전문성에 기초한 법률가의 지배로 전이되고 있다. 더구나 그런 법률가 집단이 행정부마저 장악함으로써 ‘법치’는 강력한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치는 ‘법적 정의’와는 별개로 작동한다. “법적 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시장과 기업에 대해서는 규제철폐를 외치는 반법치-반규칙을 주장하면서도 거꾸로 정치인, 시민과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법치와 준법과 규칙준수를 외치는 이율배반의 논리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법치의 극단적 적용이 현재 정부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결국 특정 집단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공화국의 중요한 가치가 ‘법적 정의’와 함께 ‘이익의 배분’이라고 했듯이, 국가의 역할은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실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에서 실행하고 있는 법인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축소와 같은 부유층에 친화적인 정책은 우리가 극복하려 했던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 기업과 시장의 지배를 강화하는 기업독재나 시장전체주의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과 친자본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사회주의적 이념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보수세력은 우리 사회의 평등한 발전을 거부하는 특정 집단의 옹호 세력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 보유세 경감의 혜택을 받는 것에 기뻐하지 말고 이러한 정책이 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강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정치적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8.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지도자나 특정 집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과 제도를 고민하고 성찰하여 민주적 절차와 공화적 내용이 작동하기 위해 어떤 공적인 목표를 추진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민주공화국’을 수립할 것에 대한 거시적 사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없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흐름에 따라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아닌 오랫동안 공격받았던 ‘우중’의 행동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라는 가치에 몰입하여 공적인 영역에 무관심한 것도 극복해야 한다. 개개인의 사적 행복은 공적인 성취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와 더 나은 정치적 공동체에 무관심한다면 결국은 외부의 힘은 개인의 영역까지 파괴할 것이다. 과잉된 정치적 참여와 과소화된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정서에 따른 반응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시민적 참여와 절제 그리고 이성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댓글 - 촛불운동(혁명)이 가져온 개인적(사회적) 경험은 매우 강렬하였다. 그러나 그 뜨거움의 열정이 냉정으로 변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방향을 바꾼 차거운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그러진 촛불 이야기만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촛불의 역사 현장을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다시 올바른 판단과 실천을 해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