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詩]맥시멈 리스크 ㅡ양안다.
맥시멈 리스크
ㅡ양안다.
어느 쪽으로 걸어갈까 어느 방향으로 누워 잠에 들어야 꿈을 꾸지 않게 될까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나는 판단에 약하고 어젯밤에는 꿈에서 광장을 오래 서성였다 대립을 멈추지 않는 두 시위대, 구석에서 울던 외국인, 어디선가 악취, 사람들은 밤하늘을 향해 촛불을 던지고 있었다
진, 나는 네가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모습을 좋아했지 나는 진의 뒤에 올라타며 난 있잖아 다 동의하거든? 그런데 전속력으로 달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터널에 들어서자 계기판 바늘이 솟구치고 등 뒤로 지나가는 빛과 소음과 두고 온 표정, 사이드미러로 진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끝나있는 터널
다른 계절보다 유독 길게 느껴지는 여름
밤의 해안도로를 달리면 꽃인지 빛인지 구별하지도 못한 채 속도가 풍경을 지워 나갔다
전속력으로
빠르게 더 빠르게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지휘자는 팔을 더 빨리 휘젓겠지
어느 날의 현실이었다
진을 기다리는 동안 여름은 한낮의 꿈을 꾸는 듯
길고 길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정말 그렇게 믿겨지는
같은 꿈속에 갇힌 적이 있었다 나선형 탑의 꼭대기에서 시작하는 꿈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가며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없었다 때때로 벽을 더듬다 문고리가 만져져 그것을 열고 나가면
다시 탑의 꼭대기인 그런 꿈
나는 나를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게 놓치고 싶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진과 내가 광장에 나갔을 때 두 눈으로 확인했던 건 온통 빛이었고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나왔어 정말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면서 먼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상상했다
시위대에 몸을 구겨 넣어 원치 않는 곳으로 걷기도 했다 의도대로 걷지 못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야 그치? 몰라 모르겠어 폭 좁은 미로 같아, 진과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대립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에게 소리치면서, 촛불을 쥔 손을 길게 뻗으면서, 진, 어디서 악취가 나는 거 같지 않아?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아직도 온통 빛이었다
소음 속에서 누군가가 촛불을 집어 던지고 그러자 빛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불이 붙었다고, 비명과 고함을 구분할 시간도 없이,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길가에 주저앉은 어느 외국인은 울면서 모국어로 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해석해보고 싶었는데
이 모든 상황이 하나도 기이하지 않았다
어느 날의 꿈이었다
거울이 깨지면 불행해진다는 미신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다시 거울이 되었지만
내가 갈라져 있었다 알아볼 수 없었다
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지휘자가 죽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연주했다
모두 엉망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왜 항상 갑작스러운 걸까
사실 나는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헬멧도 쓰지 않고 에어백도 없고 예고 없는 충돌이 두려웠다 사고가 두렵고 공포가 공포스럽고 진, 네가 내게 화를 내며 소리쳤을 때, 그래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널 붙잡을 수 없었다
뒷모습은 언제나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전속력으로
빠르게 더 빠르게
죽음이 클라이막스가 아니듯
끝도 마찬가지
지겨운 여름
한낮의 빛으로 가득한 꿈을 꾸고 싶다 그 꿈은 무슨 색깔일까
고장 난 계기판이 좌우로 날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속도를 가늠하지 않게 되었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이것도 꿈이야 저것도 꿈이야 아니 현실이야 쏟아내고 또 쏟아내다가 누군가가 그것을 기록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최대치의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시산맥> 201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