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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sandong303@daum.net
2021년 통일과 문학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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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관圖書館
김 성 열
대성이 정치를 접고 고향으로 낙향을 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가 애당초 정치의 입문을 할 때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누구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은 개인의 명예 뿐, 사실상 국민들을 위해 한 일 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선거때만 되면 단 세치도 안되는 혀끝으로 하늘에다 무지개 다리를 놓고 바다에는 수상 도시를 건설하겠다며 유권자들을 기만 했다. 그리고 당선이 되면 그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살아지고 당리 당략 많이 우선시되는 그런 정치는 이제 대성에게는 신물이 났다. 모두가 자기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려 든다. 법은 만인 앞 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우스개 소리 많은 안인 것 같다.
힘없는 사람들만 통발속에 갇혀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일부이기는 하지만 고위층 자녀들은 허리 통증 아니면 무릎관절 환자들로 병역의무를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때문에 대성은 그 불량한 양심으로 더 이상 국민들 앞에 나설 수가 없어, 정치를 그만 두기로 선언을 하고 낙향을 한 것이다. 사실, 지난날, 사치스럽고 화려했던 정치세계의 유혹들을 물리 치기 란 그리 쉽지 많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성이 읍내 엘 나가려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 데, 택시 한대가 가 그의 앞에서 급정거를 하더니, 한 여인이 내리면서 대성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저, 실례지만 여기가 쇠장이 맞나요?”
“네, 그런데요. 쇠장이 누구를 찾으시는지요?”
“아! 그렇군요, 네 고맙습니다. 그럼……이만……”
대성이 누구를 찾느냐는 물음에 그 여인은 대답은 하지않고 그냥 얼버무리다 저편으로 살아진다. 그날 오후였다. 대성은 모처럼 친구가 하는 부동산 중개 업소 엘 들렸다.
“오! 이게 누구 요. 황대성 의원 아니 신 가. 어서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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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찬구사이지만 서로간 하대를 하지 않고 반 경어를 쓰고 있었다.
“장 사장! 이제는 그 의원이라는 꼬리는 좀 때어 부르시 게나, 정계를 떠난 지가 벌서 언제 인데, 그냥 이름을 부르시게, 황대성 이라고 말이 오. 돌이 켜보면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게 창피해서 그래요.”
“아니지요, 그건 아니지요. 본인은 아무리 그런다 해도 국회의원이라 하면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 입니까. 안 그런 가요, 황 의원! 내 친구라 서가 아니라 존경하고 있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모두가 황의원만 같았으면 해서요. 선거때는 자기를 뽑아 달라고 유권자의 강아지 한 테도 아부를 아끼지 안타가도 당선만 되고 나면 그들 눈에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자기 개인의 이해득실만 쫓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 오. 황 의원 같은 분이 정치를 접은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해일 것 같아 안타까워서 내 그래요.”
장사장과 황의원이 한참 대화를 나뉘고 있는데 한 여인 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까 아침나절 길을 묻던 바로 그 여인이다. 이번에는 얼굴에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시골에서 농사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이 보였다. 그는 사무실 안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장사장에게 시선이 멈췄다.
“뭐 좀 알아볼 것이 있어 서요.”
“네, 말씀 하시죠.”
“이 동네에 혹 주인없이 버려진 빈집 같은 것 나온 것 있나요. 있다면 구경 좀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있을까요?”
허름한 집을 사서 헐고 다시 새집으로 짓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모두가 도시로 떠난 농촌은 빈 집들이 한집 건너 있을 정도로 많았다.
장사장은 벽에 부쳐진 지도를 살피다가, 매물로 나온 부동산 장부를 두어 장 넘기더니 그 여인을 향해 말을 한다.
“네 있습니다. 마침, 여기가 131-1번지인데, 터 밭도 제법 넓고요. 옛날에는 으리으리한 기와집 이였는데 주인없이 비워 둔 지가 꽤 오래 되었어요. 건물 값 보다는 땅값이죠, 뭐, 들어가 사시려면 수리를 해야 될 겁니다. 안채와 행랑채가 있는 데 어차피 행랑채는 워 낙에 낡아서 헐어야 될 거 고요. 그런데 왜 그런 낡은 집을 찾으세요. 좋은 집들도 나와있는 것이 많은데요. 혹, 리모델링을 해서 음식점이라도 차리시려고요, 그러면 자리도 좋고 잘 될 겁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러면 여기서 멉니까? 지금바로 보고 싶어 서요.”
“그러실 까요, 자, 그러면 지금 같이 가시죠. 거리가 얼마 되지않아 금방이면 됩니다. 요, 모퉁이만 돌면 바로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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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장과 그 여인이 밖으로 나오자 대성도 따라 나왔다.
“자! 그러면 황 의원, 다음의 다시 만납시다. 시간되시면 자주 좀 들려요. 차라도 나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하고요”
“그럽시다, 장 사장!”
장사장은 황의원과 그렇게 헤어지고 그 여인과 둘이서 집을 보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이 있었는지, 황의원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궁금한듯 그 여인은 묻고 있었다.
“저분이 전에 국회의원 이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친구지만 참으로 양심적인 진국이죠. 언제라도 출마만 하면 따 논 당선인데, 나이도 한참 좋은 삼십 대 청년 인 데도,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낙향을 하여 농사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한반도 통일의 대한 연구소’를 가지고 잇기는 하지만, 남들은 국회의원을 하지못해 머리를 싸매고 덤벼드는 판국인데,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죠.!”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어느덧 산모동이를 돌아 장사장이 말한대로 큼지막한 기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손님! 말씀 드린 집이 바로 이집입니다. 보다시피 대지도 넓고 터 밭 다 합치면 꽤 넓은 편이죠.”
장사장이 말한 대로, 주인없이 비워 둔 집이라, 행랑채는 다 쓰러지고 마당에는 잡초가 한길이 넘도록 우거져 있었다. 지붕의 기와도 손을 보지 않아 골이 패이고 까마귀나 까치가 씨를 퍼드렸는지, 낡은 기왓장사이에서는 고 염 나무 서너 그루가 하얗게 꽃까지 피어 대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더욱 참담 했다. 천정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비가 새서 무너진 황토벽 부스러기들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져 있었다. 마루 구석구석에도 바람의 날려 들어 온 풀씨들이 싹이 트면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문짝도 떨어져 나뒹굴고 저녁 나절이나 되어야 겨우 햇볕이 드는 방안에는 심하게도 찌 들어있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확 덮친다.
군데군데 처져 있는 거미줄에는 하루살이들의 사체와 곤충들의 날게 부스러기 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나풀거리고 있었다. 6,25 전쟁은 이곳도 피해가지를 않았는 지 기둥과 대들보에 포탄 파편자국들이 보기에도 흉했다. 마루밑에서 낮잠을 즐기던 들고양이 들이 낯선 방문객들에 놀래어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 보인다. 그녀석들이 이 집의 터주 대감 인 듯 보였다.
장사장은 그 집을 한바퀴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서 이끼가 파랗게 낀 연자방아에 걸 터 앉았다. 돌을 파서 만든 그 연자방아는 장정들의 두 아람도 될 듯 보였다. -3-
여름에는 보리 방아를, 가을에는 벼를 찢는 머슴들로 집 안팎이 북 쩍이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나 말이 이 연자방아를 돌 릴 때는 아마도 이집이 가장 전성기 였을지도 모른다. 장사장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집의 대한 내력과 풍수지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손님! 저기 저 마주 보이는 저 산이 사람들은 안산이라고 부르는데,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에다, 좌청룡, 우백호가 딱 버티고 있는 이 집터가 최고의 명당자리라 하네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조선시대 때 권세깨나 있던 사람이 살았 데죠, 세월이 흐르면서 집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는 데, 일제 강점기때 총독부의 어느 관료가 사 들였다는 말도 있고요. 일본이 패망하자, 마을 사람들은 낯과 도끼를 들고 그 집으로 달려갔죠. 그러나 그 때 주인은 이미 자취를 감췄 버린 뒤였어요. 총독부의 고위 관료였던 집 주인은 그 길로 일본으로 도망간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하더라고요. 이모두가 인과응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장사장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 야트막한 언덕 바지에는 여러 기의 고총古塚들이 수풀속에 파 뭍여 있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묘를 관리하는 사람이 이집에 살고 있었는데, 이 집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그나마 관리하던 손길이 끊어지게 된 거죠. 그 넓은 토지는 누군가가 야금야금 다 팔아먹고, 알짜배기 이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꼴이 되어 버린 거죠. 사람들은 흉가라고 꺼리는 것을 서울사람이 사들였는데, 이상하게도 이집을 사고 난 후부터는 사업도 망하고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 데요. 그래서 이집을 급매물로 싸게 내놓게 된 거죠. 이 일대가 개발이 된다는 소문으로 하루가 다르게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데도, 이 집은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지금은 달나라를 가고 오는 세상인데 그런 것이 뭐 상관예요. 아무튼 누구든 이 집을 사기만 하면 앞으로는 큰 대박을 터뜨릴 겁니다.”
그러면서 장사장이 그 여인을 힐끗 쳐다보니 처음 볼 때 보다도 훨씬 부티가 나 보이는 것이, 보통사람은 아니고 서울에서 내려온 복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장의 말을 듣고 있던 그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한다.
“사장님! 자세한 말씀 잘들었습니다. 여기가 분명 백 삽십일의 일 번지가,맞습니까. 좋습니다. 계약서를 쓰시죠, 그러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장사장은 의외였다.
이 집을 내 놓은 지가 거진 십 수년은 족히 되었는 데도, 매매가 이루어질 듯 질 듯 하다 가도 실패 한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기대는 하지 않았는 데도 계약을 한다니까, 그 여인의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다.
너무나 뜻밖이라 장사장은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계약을 하신 다 고요….?”
“네…!”
그는 당당했다. 거액이나 되는 집값을 단 한 푼도 깎지 않고 제시한 금액대로 계약서를 쓰자고 한다. 장사장은 계약서를 작성을 하면서 그제서야 그 여인의 이름이 최영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영애!.”
장사장은 최영애 라는 말에 얼핏 해방되기전까지도 총독부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이 집주인 그 최씨 일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 하도 많은 세상이라 더 이상 연결 시켜 생각하지는 않았다. 최영애는 다시한번 131-1번지를 재확인하고 계약서의 최영애 라는 이름위에 도장을 찍었다. 그는 계약서의 도장을 찍으면서도 이집이 자신의 선대들이 살던 집이 였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확인했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다. 영애는 서둘러 계약금 일부를 지불하고는 밖으로 나오면서 장사장에게 묻고 있었다.
“사장님! 한가지 말씀 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무엇인지 말씀 해보세요.”
“아까 전에 친구분이시라는 그 황의원님, 그분, 중 개소 사무실에 자주 들르시나요?”
“아! 황대성 그 친구말씀 하시는 거죠, 왜요. 한번 만나시려고요 연락해서 자리를 한번 만들어 드릴까요?”
“아! 아네요. 그냥…..”
그는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 말고 그냥 얼버무리고 있었다. 장사장은 이상했다. 아까도 황의원의 대해서 물어보더니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최영애는 열흘도 돼지 않아 잔금모두를 치르고 자신의 명의로 이전 등기까지 마쳤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많은 인부들과 굴삭기도 동원이 되었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집 뒤에 무연고로 방치 되어있는 고총들도 벌초까지 말끔하게 마친 다음 할아버지 말씀대로 서울에 있는 집안 문중 까지 찾아 다니며 족보의 수록된 위치와 이름들을 확인했다. 그곳의 묻혀 있는 여섯 기의 무덤의 주인 모두가 자기 선대의 무덤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할아버지의 말씀으로는, 그의 선대 조부께서는 홍경래의 한 무리로 활동을 하다가 관군에게 잡혀 죽은 시신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수습하여 지금의 이 자리로 모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때가 언제 가 될지는 모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조상님 산소부터 찾아 잘 모시라는 당부를 하셨다. 영애는 놀라면서도 만족했다.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 내용을 알 턱이 없는 마을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주인없이 내버려진 산소 벌초의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애는 태연했다.
“그야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예전부터 이집의 사는 사람이 관리를 해온 터라 이상할 것도 없죠.”
영애의 조부 최 길택은 총독부의 고위 관료였던 최 판길의 맏형이다.
최판길은 당시 일본의 관료였지만, 그의 형 길택은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앞장을 섰다. 그는 만주 봉천을 오고 가며 우리나라 독립 군들의 군자금을 운반하는 책임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이였다.
길택은 삼엄한 왜경들의 눈을 피해 독립군들에게 전할 군자금을 인수받아 만주로 가는 길에, 이제 가면 언제 또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가희동의 살고 있는 동생 최판길의 집을 찾아 갔다. 그는 권력을 이용하여 한양에서도 소문난 부자였다. 서울 장안에다 고래 등 같은 근사한집에, 두서넛 채나 되고 두어 명이나 되는 첩과 종들까지도 거느리고 살았다.
말 듣던 대로 길택이 찾아간 동생의 집은 무장한 일경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총독부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더니 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무슨 일인들 못 했을까. 왜놈들에게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아부하고, 얼마나 만은 우리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핍박하며 살아왔을까. 그럴 때면 형으로서 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못한 것에 양심이 편할 수가 없었다.
길택은 그런 그 아우가 어느때는 연민이 느껴 지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 아우가 총독부의 고위 관료자리를 내버리고 자신이 저지른 반 민족행위에 대해 깊이 성찰을 하여 원래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지금 현상수배자가 아닌가.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 잡힐지도 몰라 동생은 만나지도 못하고 그 길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발길을 돌린 그는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속을 뛰다시피 달렸다. 내일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만주로 떠나는 새벽 첫차를 타기위해 서다.
달리는 기차속에서도 그는 언젠가 동생이 한말이 떠오른다.
“형님 아직도 독립운동인가 뭔가 하는 그 일을 계속 하고 계시는 거예요. 왜 쓸데없이 목숨을 걸면서 까지 그 위험한 일을 하고 계세요. 그러다가 잡히면 우리 가문은 패가망신 한다 고요, 독립요? 조선의 독립이 그리 쉽게 된다면 내 손에 장을 짖겠 어 요. 지금이라도 모든 일 접으시고요, 저와 함께 위대한 대 일본 황국 신민이 되는 겁니다. 독립요, 꿈 깨세요.” -6-
동생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길택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저러는 사람이 조선땅에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러는 동생에게, 형으로서 할말을 잃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한마디 하고 말았다.
“너는 내동생이지만, 세상을 그리 살지 말 거라. 너 개인 은 부귀영화라고 할 지언 정, 조국을 배반하고, 민족을 배반하는데 앞장서는 너 같은 동생을 두었다는 것이 내가 부끄럽군 아. 이것은 우리 가문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야. 지금 와서 내 말을 받아 드리기는 쉽지만은 않을 테 지만, 너야 말로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라도 민족의 배신 하는 경거 망동한 일은 더 이상 하지 말 거라. 역사는 영원할 것 같지만 밤사이에도 변하는 것이 역사야. 우리 속담에 권 불 십년이란 말이 있다. 권력도 언젠가는 종말이 온다는 것도 알아 두 거라.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일본은 패망 하고 야 말 것이다. 여기 저기서 그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외신들의 일반적인 견해야.”
그 때가 1945년 팔월 중순쯤 이였다. 그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기차는 이미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만주 대륙 깊숙이 달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허리에 찬 군자금이 든 전대를 확인을 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독립군들의 본거지인 목적지에 곧 도착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객실 안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손님들이 일어나 웅성거리며 객실 천정에 매달린 스피커의 귀를 기울인다.
바로 그때,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본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문서를 낭독하고 있었다. 너무나 뜻밖이라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객실안의 승객들 대부분이 조선 사람들이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조선땅을 버리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조선의 유민들이다. 지금 그들은 만주 봉천이나 북간도로 떠나는 이들이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워 했던 조국의 독립이던가.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만세!
그 함성소리는 만주대륙까지 퍼져 나갔다. 어떤 이들은 가슴속의 숨겨 가지고 다니던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른다. 상황이 그리 바뀌자 조선땅을 떠나려던 이들이 발길들을 돌린다. 그 중에는 상해 임시 정부 수뇌들도,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감격이 채가시기도 전에 해방된 조국은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대국들에 의해 두 동강이가 나버리고 말았다.
북쪽에는 이미 소련군들이 들어와 점령을 했다.
그들의 약탈과 횡포는 일제보다도 더 포악 했다. 그들은 점령군이 되어 우리의 부녀자들을 전리품으로 여겼다. -7-
약소민족이 겪어야 하는 또다른 수난 시대가 온 것이다. 그 무렵, 영애의 조부 길택도 발길을 돌려 귀국을 하였으나, 남으로 내려오지 않고 북에서 그대로 머무르기로 했다.
그는 평양의 머무르면서 인민들 누구나 공평하게 잘산다는 선전 선동을 그대로 믿고 공산주의 사상이 세뇌 되기 시작 하면서부터, 그는 정식으로 북조선 인민공화국 노동당 당원이 되었다.
김일성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길택은 북한정권에서 승승 장구했다. 6,25 남침때는 독립군의 경력을 인정받아 북한군의 최강인 보병 12사단의 한 연대장으로. 휴전이 될 무렵에는 강원도 도솔산 전투에서 우리 해병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전쟁 때 남으로 내려와서도 그의 고향은 일부러 들리지를 않았다. 아우의 친일 행적으로 인한, 고향사람들의 자극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영애는 매입한 집을 헐고 현대식건물로 새로 짓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짓는다고 했다. 굴삭기와 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터 파기공사가 한창이던 중, 사람들이 일을 하다 말고 웅성거린다. 최사장은 일꾼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깜짝 놀라 할말을 잃었다.
땅속에 단지가 하나 묻혀 있었다. 영애는 떨리는 손으로 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그는 두 번 다시 놀랬다. 영애는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 안에는 금은 보화가 하나 가득 차 있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신문사에서도 방송국에서도 경쟁을 하다시피 취재를 해갔다. 조용하던 동네가 떠들 석 했다. 그 사실을 목격한 중개 소 장사장은 할말을 잃었다. 그 집을 자기가 매입할 것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는 심장이 벌렁거리며 며칠 간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영애는 동네사라들의 민심도 민심이지만, 그 보물단지를 안전하게 보관을 하기 위하여 그가 거래 하고 있는 은행 본점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그 금은 보화가 십억이 되는 이, 이십억이 되는 이 소문들이 난무했다. 그날 밤 영애는 모든 장부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려 는데, 벼 란간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기전에 들려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통일은 막연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 어떻게 던 그 동네 131-1번지 그 기와집을 반드시 손에 넣으라고 하셨다. 그 집터에는 보물단지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비밀리 전해져 내려왔다고도 하셨다.
그 보물단지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다 떴고 본인, 당신 뿐이라고도 하셨다. 조선시대말 어느 정승 대감이 역모로 몰리게 되자, 가지고 있던 땅과 재물이 나라의 몰수가 되기전에 집안의 패물이란 패물모두를 단지에 담아 종을 시켜 부엌 바닥을 파고 묻어 놓았다. -8-
그리고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날저녁 그 종을 목을 쳐죽였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나라의 몰수물이라 경매에 나온 그 집을 헐값에 길택의 증조부가 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내력은 장손들에게만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왔다. 그제서야 영애는 어떻게 던 그 집을 수중에 넣어야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영애는 북조선 노동당으로부터 남한으로 내려가 그 집을 거점으로 만들어 주요 인물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고 서울로 잠입, 이곳 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영애가 간첩의 임무를 띄고 이곳까지 온사실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애는 연못이 있는 정원도 꾸며 놓았다. 담장대신 넝쿨장미를 건물 한 바퀴 삥 둘러 심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는 함박꽃도, 칠월이면 곱게 꽃을 피는 청 도라지도, 화초 용 양귀비도 심어 놓았다. 뒷동산 숲속에서는 산비둘기와 뻐꾹새가 깊어 가는 여름을 노래하고, 밤이면 소쩍새와 부엉이가 밤이 새는지도 모르게 울어 댄다. 주위의 자연 환경 마저도 도서관의 풍광을 더욱더 어울리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후, 영애는 땅속에서 캐낸 그 보물단지를 경매시장에 내다 팔아 수입 금 일부를 국가의 헌납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해 가을 삼층으로 지어진 도서관이 준공이 되고 많은 이 지방 고위급 인사들과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도서관 이름은 [서평도서관]이라 지었다. 서울과 평양의 첫 자를 딴것이다. 그는 언젠가는 통일이 이루어 질것이라 믿고 있었다.
새로 문을 연 [서평도서관]은 몰려 드는 인파로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영애는 사흘이 멀다고 문인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치루었다. 문예창작실도 개설이 되고, 시 낭송회와 문학세미나도 종종 열었다.
‘서평 도서관’ 이 언론을 통해 세상의 알려지자 전국 각처에서 방문객들이 모여들었다. 그 뿐 많이 아니고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들을 전시도 하여 내로 라 하는 화백들의 발길도 끝이지를 않았다.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전당으로 명성이 드높아 지고 유명한 예술가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국회 문 공 위원들의 초청 방문이 있었다.
그 일행 중에는 황대성 전의원도 함께 있었다. 영애는 현관까지 나와 그들을 영접했다.
“아니 황 의원님!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곳에 계신 것 같습니다. 시간 나시면 오셔서 세계의 유명한 그림들도 감상을 하시고 차도 준비해 놓았으니 자주 좀 들리세요. 한 동네 계시 잖아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고요. 저도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가니 이제는 시간이 좀 나는 것 같네요.” -9-
황의원과는 구면이다. 공사가 진행될 때 집구경을 한다며 황의원은 가끔 들릴 때 마다 그녀를 만나곤 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진작 찾아 뵙지못해 죄송하기도 하고요, 핑계지만 관장님께서 너무나 바쁘신 것 같아 서요.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의 고용창출에도 상당히 기여하시고 대단하십니다.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서평 도서관]이 생겨나다 보니 우리 마을이 새롭게 탄생이 된 것 같습니다. 늦게 나마 축하를 드립니다.”
“참, 황의원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과찬이시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관장님! 이 모든 게 사실 이잖아요.”
이렇게 그들의 덕담들이 한동안 오고 갔다. 그 이후부터 황의원은 [서평도서관] 출입이 잦아지고 [서평 도서관] 관장과도 낯을 익히며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던 가림 막들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 간의 인지 상정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장은 미인 인 데다 매력도 넘쳐흘렀다. 그가 김일성 종합대학 무용학과를 나와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유학까지 다녀온 인 테리 라는 것도 얼마전부터 알고 있었다.
영애의 그 빼어난 미모는 그가 어린시절, 금강산 휴게소에서 북한 실세를 두어 번 직접 만난적도 있다고 했다. 그것은 [서평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탈북 문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아무튼 그런 저런 일로 황 의원 가슴속에는 그녀가 한걸음한걸음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강제로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런 가 하면 황대성 의원을 대하는 [서평 도서관]관장의 마음도 서서히 그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훤칠한 키에 짙은 눈썹 나무랄 데 없는 미남에게 그는 이미 빠져들고 있었다.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자신이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바쳐온 북조선 삼대세습 체제와 당을 위한 충성심이 겉 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황의원은, 오늘 저녁을 같이하고 싶으니 시간을 내어 달라는 도서관관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황의원이 먼저 전화를 걸 참인데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연말이라 바쁘지만 꼭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전화였다. 도대체 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 참에 자신도 중대한 결심을 하기로 했다. 몇 번이나 하고싶은 말을 못하고 미루어오던 참이다.
오늘 그는 용기를 내어 반드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참이다.
그가 거절이라도 하면 받아 드릴때까지 포기하지않고 도전해볼 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동창인 경찰서 친구 정보과장의 귀 띰으로 들려주던 말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는다.
“황 의원! 요즘 [서평도서관] 출입이 잦다면서요, 하지만 친구이니까 내 하는 말일 세, 그 서평 도서관장 아직은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우리네가 생각하는 그런 보통사람이 아니네. 그는 북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항상 명심 하시게.”
정보과장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요즘 세상에 그 무슨 헤게 한 소리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얼마 가지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직 그는 그녀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는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서평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 날 전부터 날씨가 꾸물대더니 눈발이 내리기 시작을 한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내리는 첫눈이다. 첫눈은 상서 러 운 서설이라고 하는 데 어쩌면 오늘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의원의 집과 [서평 도서관] 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자동차로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는 털이 달린 겨울 외투를 푹 뒤집어쓰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느새 쌓인 눈이 미끄럽기까지 한다. 그가 걸음을 거를 때 마다 신발 밑에서는 뽀드득 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소리다. 어렸을 때 첫눈이 내리면 동무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곤 하던 추억들이 떼를 지어 달려 든다. 그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도서관장은 넓다 란 우산을 바쳐 들고 문밖까지 나와 마중을 하고 있었다. 한복으로 차려 입은 그가 더욱 돋보였다.
“어머! 눈이 벌써 이리도 많이 내렸네요. 황의원님! 날씨도 우중충 한데 괜히 번거로움을 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는 언제 봐도 산소처럼 상큼하고 청순했다. 마치 요, 몇 년 전 금강산 천 선대에 오를 때 암벽 틈에 피어 있는 한송이 야생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수정같이 맑은 것이, 아침 방송을 하는 기상 케스터의 음성을 어쩌면 그리 쏙 빼 닮을 수가 없다.
영애는 도서관과 연결 되어있는 별관으로 황의원을 안내를 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일하는 아주머니 외에 그들 단둘 뿐이다. 현관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우산을 접어들고 한손으로는 황 의원 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있었다. 순간, 그 여인으로부터, 봄볕에 풍겨 대는 파릇파릇한 풀향기가 같은 것이 대성의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이것은 세상에서 귀하고도 귀한 그녀만의 향기인지도 모른다.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건물안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준공식때 자신이 보낸 란 화분과, 겨울 철인 데도 연산 홍과 또 다른 꽃들이 탐스럽게도 피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황의원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은 벽에 걸린 낯익은 몇 점의 그림들이다. 진본은 아니지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신윤복의 [미인도]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같은 유명한 그림들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차를 준비했어요, 우선 차부터 드시죠. 식으면 차의 생명인 향기가 다 날라 간데 요. 아는 친구가 외국 여행길에서 구입해온 것을 특별히 선물을 받았어요. 유럽에서도 귀족들만 마시는 귀한 명품 차라고, 그 친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대는 것 있죠.”
차를 마시고 난 그들은 저녁상이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보아도 그녀의 한복차림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인다. 거기에 다 머리에 쪽을 짓고 비녀라도 꼽는다면, 영락없는 조선시대 황진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아하면서도 우아하기까지 한 것이. 마치 오월의 피는 백합과도 같았다. 그런 여인과 마주 앉아 저녁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으면서도 얼마나 황홀한지 황의원은 꿈만 같았다.
그들은 건배를 하면서 양주도 몇 잔 씩 돌아갔다. 얼음 조각을 곁들인 양주는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해서 그런지 황의원에게는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달콤했다. 양주를 마셔서 그런지 도서관장의 얼굴이 가을 햇볕에 무르 익어가는 사과 빛 갈처럼 붉어진다. 그런 여인을 앞에 두고 있는 황의원의 가슴은 팔월의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줄을 망서리고 있는데, 그때 마침, 도서관장이 먼저 말을 하고 있었다.
“황의원님! 오래전부터 황의원님의 대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렇게 뵙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저에게서 무슨 냄새 같은 것 나는 것 없습니까? 저는 남조선 땅에 첫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자본주의에 그 퀴퀴한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제일 먼저 풍기던데, 뭐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화주의가 썩어가는 아주 고약한 냄새, 김씨 일가의 삼대 세습 체제와 평양 궁전에서 풍기는 그 역겨운 비계덩어리 냄새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것 말고도 굶주린 북한주민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고약 하긴 해도 곰삭은 홍어는 사람들이 먹기라도 하지만, 사회주의 그 썩는 냄새는 너무나 지독해 인민들이 질식하기 직전이지요. 남극이나 북극 빙하에서도 생존하는 바이러스 도 있다면서요. 황의 원님 제가 말이 너무 말이 많죠? 그러면 이야기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요. 그래, 그, 황의원님이 추진하신다는 ‘한반도 평화통일 연구 사업’은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황의원이 말을 받았다.
“요즘 뭐 잘되는 것 있습니까. 그저 마음만 바쁠 뿐인 걸요.”
“아니! 황의원님께서는 수완도 워낙 좋으시 잖아요.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에는 외통위원으로 활약이 대 단 하셨다면 서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데 놀라지 마세요. 평양 엘 한번 다녀오시죠. 필요하시다면 제3국을 통한 여권 수속과 경비 일체는 걱정 하지 안 으 셔도 됩니다. 평양 3호실에도 연락을 취해 놓겠습니다. 그러면 한반도 평화통일 연구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황의원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순간 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남한인데도 그는 평양에 있는 것처럼, 그 하기가 어려운 말들을 우물에서 냉수 마시듯 쉽게도 한다. 당황해 하는 황의원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영애는 태연스럽게도 다시 말을 한다. 황의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 시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왜? 황의원님 답지않게 두려 우세요. 그러실 것 없어요. 황의원님은 미혼이시지 잖아요. 게다가 독일 유학도 다녀 오셨겠다, 사회주의 구조적인 생리도 어느정도 익숙하실 테 고, 평양 엘 가시면 고급아파트와 북한의 미녀와 결혼도 하시고요. 어떠세요, 황의원님! 그래서 오늘은 제가 작심을 하고 의원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기 할말은 다했다는 듯이 그는 그 독한 양주를 연 거푸 몇 잔을 들이마신다. 그는 술이 취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지 황의원에게는 그가 횡설수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일로 미루던 일이 비로서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네요. 아름다운 겨울 밤이, 첫눈 내리는 이 겨울 밤이, 우리들을 위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 어 요. 이런 기회는 또다시 오기가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 들지 않으세요, 황의원님!?”
벼 란간 도서관장의 얼굴에 우수까지 겹쳐 보여 어디 까지가 진실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설마, 자신의 속을 한번 떠보려는 것 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종종 자신과 황의원을 한데 묶어 우리들이라고 한다.
황대성은 그 말이 듣기가 싫지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미리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창밖에서는 세찬 바람소리가 무슨 짐승 울음소리처럼 들려온다. 이중 샷 시로 된 그 두꺼운 유리창을 세차게도 때리며 눈보라가 쳐 댄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뭇잎들이 그 거대한 겨울이란 집단과 최후에 발악을 하며 지르는 마지막 잎새들의 비명처럼 들리다가 도, 그보다는 만년설 빙하가 녹아내려 병들어 이빨 빠진 북극 곰의 비명 소리 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가 더 무서워 보인다. -13-
어느새, 겨울 밤도 자정을 훨씬 넘기고 새벽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영애는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황의원을 쳐다본다.
“황의원님! 이래도 이 최영애가 이상하지 않아요. 황의원님 주변에는 사냥개 만큼이나 후각이 뛰어난 정보 과 요원들도 많이 있잖아요. 국가보안법 냄새를 귀신처럼 맞는 사냥개 들 말입니다. 자유 란 무엇이고 독재 란 무엇인가요, 국가는 인민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되고, 반면, 인민들은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왜? 이 시대 사는 우리들에게는 조국이 둘이 되어야 하나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른 가요. 이 땅의 통일은 정말로 아득하기만 한 걸까요, 그러면 혁명은 또 무엇입니까, 배웠다는 지식층들은 어디에 다 숨어있나요, 그들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비겁한 자들입니다. 전체인민의 단 일프로도 안되는 권력이 전체인민을 지배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어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남의 일입니까, 누구는 배의 기름기가 번지르하고, 누구는 갈비뼈가 배가죽을 뚫고 나와야 되느냐고요.”
그는 남북간의 서로 다른 이념의 대해 강도 높은 비평과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황대성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정보과장과 둘도 없는 친구사이라는 것 까지 어떻게 알고 있을까. 산 넘어 어 산이다. 그를 향하여 대성이 낮이 막 하게 물었다.
“아니 그것 까지 어떻게……?”
“황의원님! 놀라지 마세요, 저의 손톱과 발톱, 그리고 수많은 머리카락과 털끝 까지 모두가 최첨단 고성능 안테나라, 남조선의 웬만한 정보는 다 잡히는 걸요.”
황대성은 그의 앞에서 두 손을 들었다. 온 전신에는 냉기가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그가 대성의 시선과 부딪히며 말을 한다. 마주친 그의 눈빛 속으로 자신이 빨려들 듯이 아주 강렬했다.
“황의원님! 이 최영애, 고백 할 게 있어요.”
그는 낮이 막 한 목소리로 신중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자수는 뭐 고, 고백은 또 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못 도와 드릴 것도 없지요.”
황의원은 어서 말을 하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관장은 망 서림 없이 말을 한다.
“이제는 무서워서 더 이상은 견뎌 낼 수가 없어요, 저를 도와주세요, 그래서 남과 북이 아니라 그쪽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이 최영애는 평양에서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 이예요. 황의원 님 같이 지체 높은 남조선의 거물급 인사들을 포섭하여 월북시키는 간첩, 간첩이라고요, 여기, 이, [서평 도서관]도 그러한 사업을 목적으로 마련한 위장 사업체 였다고요. 이제 나는 어떻게 하죠. 무서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북쪽에서 급파된 암살 조들이 어디선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들것만 같아요, 그래서 무서워요.”
그 말을 해놓고 그는 황대성에게 쓰러졌다. 대성은 그를 안았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죠, 그러나 나는 당을 배반했을 지언 정, 죽어도 조국을 배반했다고는 생각 하지 않아요. 나를 이토록 용감하게 만들어준 것은 남조선의 그 위대한 자유, 내가 그토록 바랐던 자유예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동안 이 최영애의 인생과 혼은 일찍부터 없었어요. 그 모두를 한 개인의 권력 앞에 찬탈을 당했어요. 그것은 나 뿐 많이 아니고 북쪽의 수많은 인민들 이예요. 그것이 억울하고 분통해 참을 수가 없어요. 괴물에 가까운 그들을 비 토하며 저주하고 싶어요.”
“영애 씨, 그 말을 날 보고 믿으라고요, 이럴 때는 영애씨가 꼭 연극 배우 같아요.”
“아니 예요. 참말이예요. 증거를 대라고요. 조금 있으면 북쪽에서 나를 찾는 방송을 하기 시작 할거예요. 그리고 느슨해 진 것의 대한 책임을 물어 사상교육과 생활 총화를 강요할 겁니다.”
도서관장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파 수신기에서는 난수표 방송이 흘러나왔다.
“40JXX00035K, 40JXX00035K, 40JXX00035K,”
최영애가 응답을 하지 않자 전파수신기에서는 계속 반복하여 방송을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을 열고 수신기를 밖으로 내 던졌다. 전파수신기가 땅바닥으로 구르며 깨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들려왔다. 도서관장은 대성의 가슴을 파고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애원을 한다. 아니, 애원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대성 씨, 나 인제 어떡하죠, 나 혼자는 도저히 무서워 견딜 수가 없어요, 남조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나의 심장과 신경세포 조직 까지도 물을 들여 놓았어요, 자수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둘 이라도 하나가 되어 한반도 통일의 작은 디딤돌이 되고 싶어요.”
그제서야 대성은 그의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경찰서 친구 정보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황대성입니다. 이, 이른 새벽 시간에 미안합니다만, 아주 중대한 일이니, 급히 [서평 도서관]으로 와 주셔야 되겠습니다.”
“예 알았어요, 새벽 아니라 새벽 할애비라 해도, 황의원이 부르는데 지구 끝인 들 내 못 갈 것도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황 의원!”
창밖에는 지난 날들의 모든 일들을 말끔히 씻고, 하나가 되는 두 남녀들을 축복이라도 하 듯,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 저 눈 녹은 대지위에는 새파란 생명들로 물들일 것이다.
무섭다며 가슴을 파고드는 그녀를 대성은 다시 한번 힘껏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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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21년 8월 21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