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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들
롬 15장 17-33절
오늘 우리는 로마서의 결론 부분에서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자기 민족을 향해 절규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회개하고 예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는데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구원을 거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사도바울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로마서 9장 1절과 2절에서 사도바울은
내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예수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천국의 생명책에
자기의 이름이 빠지게 될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통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것을 이룬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절한 꿈은
‘민족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사도바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이방인을 위하여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은혜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데
일생을 바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이방인을 위해서
바울의 생애를 바치기를 원하셨습니다.
16절에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마음이지만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자기의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16절에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두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부족하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십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예’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어떤 분은 대답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입니까?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가정에서 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어디에서 살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희미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분명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이 말을 아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냐고 물을 때
‘저는 대통령인데요, 저는 장관인데요,
저는 사장인데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사장이건 대통령이건 노동자건간에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인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방인을 위한 일꾼’이라고
자기가 헌신할 대상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예수믿는 한 여자 청년이
불교를 믿는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이 집에 보내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20~30년을 버티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30년후에
그 집안이 예수믿는 가정으로 변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이 직장에 보내주셨다.
내 월급을 반으로 줄여도 상관없다.
나는 월급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분명한 하나님의 일꾼이요,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생애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어하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로마서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가정에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서
딸은 ‘나는 시집가지 않고
아빠와 함께 살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미국으로 시집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딸의 심정,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수 있고
사도바울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동족을 두고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 기막힌 심정이
로마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사용해서라도
이방인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최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은 다른이들이 가지않는
열악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주변분들이 말렸지만
그는 웃으면서 가야한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웃으면서 거절하는 사람이
무서운 법입니다.
‘그곳에 가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말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도 무섭지 않고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그 지역에 가서
예수를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 분이 그 일을
한 번 정도 생각해 본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기 때문에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생을
교회도 없는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만듭니다.
좋은 환경을 쫓아다니고
좋은 조건을 쫓아 다니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불행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나 위치가 분명하고
사무실에 내 자리가 분명해야 만족합니다.
그것을 빼앗으면 모두 가버립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빼앗아도 있어야 합니다.
월급을 주지 않아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나는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일을 꼭 해야 한다.
내 생명 끝날때까지
이 일만은 굶더라도
죽더라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16절을 보십시오.
그의 목표는 한가지였습니다.
곧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꿈은
자기의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들을 제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교사가 나오고, 목사가 나와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구원의 축제가 이루어지는
제물로까지 바쳐지도록 하게 하는 것이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소위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7,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시대에도
할 말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른척하고
오직 이방인을 위하여 나를 부르신
그것만을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도
사도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것은 반지성주의나
비지성주의적인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지성의 세계와 학문의 세계와
상식과 합리성의 세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결혼도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위치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수도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갇힌 몸이 되어도
아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았어도
찬송을 불렀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지성이 뛰어나고
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보십시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알고난 후에
자기 자신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살던 지역도
민족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른 사람이 전도한 곳에서는
전도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무서운 소리입니다.
복음의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곳에만
찾아 가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싸움은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기득권 싸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만들어 놓은 곳에 가서
앉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그런 기득권과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며
개척정신을 갖습니다.
남이 전도하지 않는 곳,
남이 만지지 않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믿지 않는 곳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미지의 세계로 가야 하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안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2~29절을 보십시오.
이 곳에서 두 절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먼저 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로마가 아니라 서바나였습니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입니다.
그 당시 세계관에 의하면
서바나는 지구의 끝이고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전설적인 그 곳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기 위하여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고
이것이 로마서입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로마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로마는 그 당시 전세계의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로마의 유혹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쓴 진짜 이유는
서바나로 가기 전에
로마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그들로부터 지원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그 정도로 일을 했다면
기득권에 안주할 수도 있습니다.
원로목사가 되어
자기가 고생한 것만큼 남은 여생을
편안히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거절하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합니다.
지구의 끝이고
죽음의 땅이라고 하는 서바나에 관심이 있고
그곳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거기에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복음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고한 대가로
열매를 따먹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위에 있지 않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있고 한 나라가 있다면,
한 민족이 있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거기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30절 이후에
세가지 기도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전도하고자 하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믿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부탁은
이방인들이 바울에게 헌금을 했는데
그 헌금으로 인해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번째는 로마에 가는 여정을 인도해 주실 것과
장차 서바나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고 로마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땅끝에 한 영혼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 곳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사도바울의 이 뜨거운 심장이
여러분의 혈관 속에서 똑같이 맥박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까지 가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바울은 서바나로 가기 위해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주님, 여기에 머리 숙인 당신의
종들에게 성령이 임하사
저들의 마음이 복음으로
불타게 도와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축복해 주시고
복음의 제사장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