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쇼핑하다가
음료수 진열대에 다소곳이 서있는 너를 보았지
저녁에 아침햇살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네
포도
너를 생각하면 왜 닭백숙이 생각날까
포도농원에서 포도보다 닭백숙 먹던 추억 탓이다
엘리베이터
10층 이상 멈춰 있을 땐 너를 부르지 않았다
네가 오는 시간보다 계단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연스레 운동을 하게 된다
나는 4층에 산다
먼발치
먼발치서보면 언제부턴가 1이 11로 보인다
11년 만 젊었더라면 약간 통통하게만 보였을텐데
하얀이
누런이가 싫어서 수없이 양치를 했더니
잇몸이 탈이 났다
이러다 이빨이라도 빠지면 큰일이다 싶어
오복중 하나라도 지켜야겠다
나무
커다란 편백나무에 귀를 대보면
생명의 물소리가 굽이쳐 들려온다
웃음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뇌는 멍청해서 억지웃음을 구별 못한다 해서
출근길에 억지로 웃어본다
억지로 웃는 내 모습이 우스워서 진짜로 웃는다
봄
눈을 엄청 좋아하는데 추위는 너무 싫어서
봄이 오는 향기에 띌 듯이 기뻣다
아뿔사 눈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물구나무
물구나무를 서면 어께도 아프고
중심잡기도 힘들어 오래가지 못한다
차선책으로 거꾸로 매달려봤다.
이번엔 발목이 아프다
처음엔 다 힘들고 아픈가보다
내마음
제일 어려운 평생의 숙제
죽기 전에 풀 수 있을까
새콤하다
새콤함이 좋아 제주에서 늘 노란색의
새콤달콤한 맛을 끼고 살았다
제주를 떠나온 뒤에는
제주도 푸른 바다가 아니라 새콤함이 먼저 떠오른다
한 송이
한 송이채 떨어진 동백꽃은 땅에서도 꽃을 피운다
붉디붉은 자태가 아름답고도 애처롭구나
매달린
실내 암벽의 홀더를 두발로 지탱하고 한 팔씩 매달려
한 칸 두 칸 옆으로 간다
몸을 지탱한 팔이 금방 피로해지면 다시 바꿔
피로를 빨리 없애기 위해 털어준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오롯이 집중하는 유일한 시간
고만고만하다
서로 자기가 크다고 키 재기 하는 친구를 보더니
키 큰 친구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도토리 키 재기 한다고
치킨
스치기만 해도 너무 강력한 유혹의 향기
누가 이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을까
같은 재료지만 백숙보다 치킨이 더 환대받는 것은
영어로 된 이름 때문일까
차갑다
얼음있는 강물에 식판을 담궈다 빼니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식판이 얼음 코팅이 되버렸다
식판은 닦지도 못하고 손은 차갑다 못해 얼음장이다
공손하다
공손이 지나치면 괜히 부담스럽다
서로 조금만 예의를 지키면
누구든 편한 친구인 것을
심장
“나대지 마라” 개콘의 유행어처럼
내 심장도 좀 나댔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가 그리 궁금한게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