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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 호주 여행기
2013, 3, 8〜3. 17
1. 뉴질랜드를 돌아보고
2년 전 미국 여행을 갈 때는 내가 허리가 자유롭지 못해 조심스럽게 갔다 왔는데 이번엔 아내가 지난 해 12월 현관을 나서다 떨어진 고드름을 밟고 넘어져 어깨와 무릎을 다쳐 한,양방 종합병원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고 침을 맞느라 기력이 쇠한 채 한 보따리 약을 챙겨 싸들고 여행길에 나서게 되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억지 춘향으로 여행길에 나섰는데 나도 웬 치통까지 생겨 항생제를 먹으며 여행 동아리 15명과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려가 3월 8일 17시 KE 129편으로 뉴질랜드를 향하여 날아올라 현지시간 9일 08시20분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난 여행의 기쁨보다는 아내와 더불어 무사히 돌아보고 올 수 있기를 빌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현지 가이드를 만나 전용차량으로 2시간 넘게 달려 첫 관광지 와이토모 반딧불이 석회동굴로 갔다.와이토모(Waitomo)란 말은 원주민 마오리어로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이라 한다. 이곳은 약 3천만 년 전 바다 밑에 있던 석회암 암석층이 지진과 화산 활동으로 밀려올라와 그 균열 부분에 물이 흐르고 침식작용이 이루어지는 동안 종유석과 석순이 생겨 만들어진 동굴이라는데 그 경관은 우리나라 것과 유사하나 울진의 성류굴보다는 덜 경이로웠다.
다만 다르다면 굴 사이로 물이 흐르는데 원주민이 줄을 잡고 이동하는 쪽배를 타고 지나며 천정에 보이는 반딧불이 벌레의 은하수같이 반짝이는 불빛이었다. 이 빛은 거미 같은 빛을 내는 유충의 무리로 뉴질랜드에만 서식한다는 입이 없는 반디벌레 아라크노캄파 루미노사(일명 글로우웜)가 내는 것이라고 한다. 현지 가이드 말에 따르면 시끄러우면 스트레스를 받아 발광체에서 빛을 내지 않으니 조용히 눈으로만 보고 입은 닫고 관람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였다.
종유석(鐘乳石)에 반짝이는 반딧불이
보꾹을 하늘 삼아
은하수를 펼쳤구나.
밖 세상 소리란 소리
다 품어 빛을 빚어……
-와이토모 동굴-
뉴질랜드는 목축업이 성한 나라라서인지 점심에 소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식사 후 우리는 테푸이아[Te Puia] 마오리 민속촌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황 냄새를 물씬 풍기며 간간이 물을 10m이상 뿜어내는 간헐천, 땅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흙 열 탕이 있는 마오리 원시마을을 돌아보며 근처 돌을 만져보니 찜질방 바닥처럼 뜨거웠다.
주변엔 온통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 열기가 퍼져 있고, 지형도 울퉁불퉁해 독특한 화산지형의 특성을 느껴볼 수 있었다.
글쎄 아른거리기에 안개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푸우 푸우 내뱉는
땅의 입김
햇살에 눈을 맞추니 하얀 향 코를 메워
-뉴질랜드 포후투 간헐천-
이어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로토루아 호수를 관광하였다. 이 호수엔 부족 간 다툼이 치열했던 시절 아리족 추장의 딸 <히네모아Hinemoa>가 호숫가의 휘스타족 부족장 아들 <트타니카Tutanekai>의 피리 소리에 반하여 밤마다 호수를 헤엄쳐 건너갔다고 하는 눈물겨운 사랑의 전설이 서려 있었다. 이 전설은 이후 마오리족들의 민요로 전해 내려오다가 1914년 투모운(P.H. Tomoan)에 의해 편곡되어 포카레카레아나(Pokarekare Ana)라는 노래로 탄생하였다는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즐겨 부르는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이렇게 시작되는 연가로 6.25 때 참전했던 뉴질랜드병사들에 의하여 전파되었다고 한다. 새삼 우리나라의 운명을 건져준 뉴질랜드 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호텔에 여행의 첫 짐을 푼 우리는 간단한 수영복 차림으로 폴리네시아 풀에서 유황온천욕을 하였다. 이 온천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몸을 담그고 가서 일까. 유황내도 물 온도도 미적지근하여 야외온천 맛이 나지 않고 늦은 오후 한산한 동네 목욕탕에 들어와 있는 듯하였다. 여러 곳으로 탕을 마련해 놓았기에 일행 몇 명과 함께 이곳저곳 기웃대 보았지만 다 그 타령이었다. 저녁은 호텔식으로 하였는데 이곳 마오리족의 전통 요리로 커다란 돌을 뜨겁게 달군 다음 땅을 파고 지열을 이용해 구워낸다는 항이 디너(Hangi dinner)였다. 우리는 이걸 먹으며 마오리족의 전통 민속춤을 보았다. 전사들이 나름의 전통 악기를 치고 흔들며 추는 춤이었다. 한참을 보아도 특별한 것 없이 같은 몸짓으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 같아 호텔방으로 돌아와 내일을 준비하였다.
3월 10일 날이 밝자 일찌감치 밥을 먹고 레드우드(red wood)의 삼림욕에 나섰다. 레드우드는 2차 대전 때 뉴질랜드 참전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데 몇 아름이 될 듯한 메타스퀘어라는 나무들이 쭉쭉 자라올라 하늘을 괴고 있었다. 하늘을 가릴 듯 나무들이 가지를 빽빽히 뻗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그 나무 사이를 10여m는 넉넉히 될 야자수 같은 고사리나무들이 채우고 있었다. 가이드는 한국 고사리는 조그마해서 그냥 '고사리'인데 이곳 고사리는 너무 커서 '고오오사리'란다. 여기는 혹독한 겨울이 없고 비가 자주 내려 우리나라에선 50년 클 나무가 여기에선 일 년 내내 자라다 보니 23년이면 다 자란단다. 그래서 나이테가 흐릿하고 목질이 여물지 못하여 목재로는 쓸모가 적다고 한다.
레드우드를 나와 양 쇼가 펼쳐지는 아그로돔(Agrodome)농장 테마공원에서 양털 깎이쇼, 우유 짜기 쇼를 헤드셋을 끼고 한국어로 들으며 관람했다. 말은 영어로 하지만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도 동시 번역해 주고 있었다. 4개 국어로 동시 번역되는데 그 중에 우리말이 당당히 자리했다 생각하니 새삼 한국의 위상이 느껴져 흐뭇했다. 밖으로 나오니 목양견(牧羊犬)이 펼치는 양몰이 쇼가 펼쳐졌다. 한 마리 개가 한 떼의 양을 모는 것을 보며 참 훈련이 잘 된 개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선 남편보다 개를 더 중시한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그 우선순위가 첫째는 어린이, 둘째는 장애인, 셋째는 부인, 넷째는 개(애견), 다섯째가 남편이란다. 개의 필요성을 말하다 보니 참말 같은 이런 거짓말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 어떻든 이곳 남편들은 개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농(弄)이 진실이 되고 있단다. 다인승 트랙터를 타고 농장 안내원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매료되어 농장체험에 나섰다. 이곳에선 보통 농장 하나의 넓이가 40여만 평이 넘는다고 한다.
양, 소, 오리 농장을 거쳐 언덕바지에 올라 성질이 좀 괴팍하여 침을 뱉기도 한다는 알파카 목장에 들어가 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함께 사진 촬영도 하였다. 어찌나 이놈들이 우리 곁에 눌어붙는지 먹이를 쥔 손에 알파카 침이 묻어 끈적거렸다. 내려 오는데 타조들이 우리가 탄 트랙터를 따라 오다가 멈칫하고 돌아선다. 이어 언덕바지옆에 있는 키위농장엘 갔다. 키위 농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농장 간이건물에 가니 와인 한 잔에 안주로 키위와 아이스크림 막대기에 꿀을 찍어 나눠 주었다. 꿀이 찐득하고 맛이 있었다. 뉴질랜드에는 세 종류의 키위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누구나 아는 양다래라 불리는 과일 키위(kiwifruit )가 있고, 다른 하나는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부리가 길고 둥근 몸통을 가진 날지 못하는 새로 이 나라 국조(國鳥)가 된 키위(kiwibird)가 있는데 이놈은 겁이 많아 낮에는 나무 밑이나 땅굴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먹이를 찾는 야행성 동물로 뉴질랜드 1달러에도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놈을 보려고 하였으나 나무 뿌리 틈에 숨어 윤곽만 보여주고 나오지 않아 실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개는 뉴질랜드인을 애칭하는 키위(kiwi)라 한다.
자리를 옮겨 하늘인지 바다인지 숲인지 아스라이 수평과 지평이 겹쳐 있는 그 정경을 눈에 담으며 스카이라인 뷔페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우리는 스카이라인 곤돌라에 탑승하였다.
농고타하산(Mt Ngongotaha)정상에서 로토루아와 호수, 지열지대를 조망하는 재미는 쏠쏠하였다. 오클랜드 해안가로 이동하여 우리는 색색 장미가 아름답게 핀 미션 베이의 장미공원을 유람하듯 둘러보고 저만치 하늘에 걸터앉은 하버 브리지를 사진 속에 담았다. 미션 베이는 수영하는 이들, 카약, 보트를 타는 이들이 해안 따라 붐볐고, 더러는 해변 둘레 길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려 이 주변 해수 염도가 차츰 낮아지고 있단다. 지구촌의 매연과 오염으로 남극 하늘 오존층에 구멍이 뚫렸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 청정지역에 자외선이 강렬하고 바닷물 염도가 낮은 현상은 그 때문일까. 어쩜 인간을 깨우치려 재앙의 징조를 자연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아 지구촌의 미래가 어찌 될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맑은 공기,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이 그런 재앙의 근원지는 되지 않겠지.
3월 11일 오클랜드를 출발한 우리는 JQ299편에 몸을 싣고 퀸스타운으로 갔다. 퀸스타운에서 에로우 타운, 와카티푸 호수, 번지점프대를 보고 가든을 걸어 관광하였다. 지명이 여왕을 뜻하는 '퀸'이 들어가서 그런지 조용한 풍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퀸스타운에서 25분 거리에 에로우 타운이 있었다. 여기는 1862년부터 유럽인과 중국인이 몰려들어 노다지로 불리는 금(金)을 캐는 마을로 현성된 곳이란다. 그들이 당시 살던 집들이 띄엄띄엄 남아 눈길을 끌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돼지우리 비슷했다. 당시 그들이 열악하게 살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퀸스타운을 두르고 있는 와카티푸 호수는 아늑하고 고요했다. 호수의 푸른 물이 가슴을 훤히 틔워줄 듯 시원했다.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맑고 깨끗한 공기를 한껏 마셨다. 일행들은 속이 뚫리는 것 같다고 야단이었지만 난 그 공기의 맛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내의 발걸음에 이상이 생겨서 마음만 조마조마하여 애매한 가이드 탓만 하였다. 일행은 돌아와 주변 상가를 오가며 쇼핑을 즐겼지만 아내는 벤치에 넋 놓고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어야 했다. 거의 매일 밤 발에 쥐가 나 뼈가 돌아가는 아픔을 호소하던 아내이기에 난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주변만을 서성댔다.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3월 12일 고단한 몸을 일으켜 아침을 서둘러 먹고 이번엔 뉴질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하는 국립공원 밀포드 사운드를 향하여 4시간동안 달려갔다. 가면서 보니 남섬은 참 목장이 많음을 느꼈다. 가는 길옆으로 한도 끝도 없이 양, 소, 사슴이 수십 수백 마리씩 세상의 무심을 새기며 풀을 뜯고 있었다. 유달리 많은 것은 양떼였다. 이곳은 목축업과 양봉업이 특히 발달되어 있어 양털과 꿀이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다고 한다. 우리 교포도 적잖이 목장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 우리 교포가 기르는 양은 어떻게 부를까. 김 씨네 것은 김양이고, 이 씨네 것은 이양일까. 엉뚱한 우스개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가다보니 도로 옆으로 7m 정도의 소나무와 비슷한 마누카나무가 떼 지어 자라고 있었다. 이 나무는 천연항생물질을 배출하여 이 나무의 하얀 꽃에서 꿀벌들이 만든 꿀은 항생지수가 높아 헬리코박터균도 죽이는 명약의 꿀로 이름나 있다고 한다. 이곳 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이 나뭇잎을 따먹는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한참 들으며 가다 잠시 내린 곳은 거울호수였다. 50m정도의 나무다리를 따라 걸으며 협곡 사이에 펼쳐진 호수를 보는 코스이다. 호수엔 앞산과 구름이 대칭을 이루어 물속에 거꾸로 빠져 있었다. 풀포기 사이로 Mirror Lakes(거울호수)란 표지판 글씨가 물에 반사되어 관광객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곳 물이 좀 맑았으면 좋았을 텐데 물이끼, 물풀이 떠 있고 물이 흐려 영 거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리 설명을 들을 때는 수선화의 나르시스(Narcisse)같은 전설 서린 신비를 기대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 차를 타고 좀 더 지나니 에글린톤 계곡이 나타났다. 산과 산 사이에 노란 풀들이 평원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사진 촬영을 하고 다시 가다가 휴식을 취한 곳은 원숭이계곡(Monkey Creek)이었다. 여기에 흐르는 물을 원숭이들이 주로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한데 이물은 만년설이 녹아내려 흐른 빙하수로 지구촌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란다. 세상 잡티가 끼어 있지 않기에 이 물을 떠 마시면 10년은 젊어지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한다. 참 신기하여 일행은 앞 다투어 떠 마시고 병에 담으며 서로를 쳐다보고 애들이 되고 있다고 웃었다.
태초의 눈:물이 눈물로 흘러나려
먼 하늘 입김 담아
이 땅을 적시는
무량한 신이를 지닌
젊음의 개울물.
-원숭이계곡-
아마 이 물은 하늘이 빚은 은총의 물로 현대의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신이를 일으키는 약물인가 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긴 자갈 표면의 터널로 바위산을 수공으로 17년에 걸쳐 뚫었다는 길이 1270m의 호머터널에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서쪽을 올려다보니 만년설과 폭포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오늘 보는 경치의 절정은 밀포드 사운드였다. 이곳은 '피오르드(峡湾)'로 얼음조각이 조각해낸 U자형 절벽 계곡이다. 1만 2천 년 전 빙하에 의하여 형성된 절벽에서 폭포수가 힘차게 수백 미터를 내리뛰는 걸 보니, 여기 폭포는 꽤 나이 먹은 젊은 노인네에 해당하는가 보다. 태고의 숨결을 내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만든 걸작을 감상하는 홍복(洪福)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밀포드 사운드의 주봉을 마이터라 하는데 주교의 모자 'Mitre'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높이가 1,862m로 바다에서 수직 융기한 산 가운데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명승(名勝)을 배를 타고 탄성을 지르며 관광하였다. 우리 또래의 코 큰 이들도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우린 그들과 국적불문으로 어울려 우정을 나누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오늘은 두 시간의 구경을 위해 여덟 시간 자동차 행군을 한 셈이다.
그 누가 저 가슴을 움푹 뭉텅 후벼 팠나.
패인 데에 수천 타래 하얀 핏물 쏟아지니
해마다 상처 도져도 우리 눈엔 절경일레.
-밀포드 사운드-
자연의 힘은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운 능력을 가졌나 보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 침식작용으로 수천 킬로를 수백 길(丈)로 기기묘묘하게 조각하여 놓았더니 이 밀포드 사운드는 원시 빙하가 우리 눈으로는 감지 못할 크나큰 굴삭기를 몰고 다니며 저리도 후벼 파 수백 미터의 절벽을 만들고 그 안에 티 없이 푸른 바닷물을 채워 놓아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포드 사운드 해안 바위에는 물개가 올라와 앉아 잠을 자기도 하였다.
3월 13일 어느새 우리 관광도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에 안고 국립공원 마운틴 쿡으로 갔다. 이 산은 뉴질랜드의 최고봉으로 정식 명칭은 마오리족이 부르는 '구름의 봉오리'란 듯의 아오라키(Aoraki)가 앞에 붙은 아오라키 마운틴 쿡이라 한다. 오늘은 느릿느릿 마운틴 쿡 공원 숲길을 산책하며 숲이 뿜어내는 정기를 가슴에 담은 다음 푸카키 가든(Pukaki Garden)에서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생전 처음 연어 회를 먹었다. 연붉은 살의 쫄깃한 맛에 우리는 한 접시로는 부족하여 한 접시를 더 시켜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전용버스로 8시간을 달려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로 갔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에 들어선 우리는 에이번 강 굽이치는 물결에 눈을 씻으며 각종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시민 체육의 메카라 불리는 헤글리 공원을 둘러보았다. 이 공원은 남 공원, 북 공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에이번 강을 낀 공원 잔디밭엔 강줄기 따라 조깅과 산책하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넓고 평평한 땅에 곱게 잔디가 깔려 있어 그냥 뒹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하였다.
2. 호주를 돌아보고
3월 14일 자다가 말고 4시에 일어나 호주 시드니로 가기 위해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으로 달려가 07시 35분 JQ 150편에 몸을 실었다. 시드니 공항엔 현지시각 09시 05분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오랜만에 버스 같은 버스에 몸을 싣고 피곤을 재우며 호주 관광 첫날을 맞이했다. 뉴질랜드에서는 관광버스도 유치원 통학차 같고, 호텔도 우리나라 모텔만도 못하여 영 마음에 차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호텔(Novotel paramatta Hotel)도 호텔다워 일단 마음이 놓였다. 이 호텔에서 3일을 묵으며 시드니 주변 관광을 하였다.
뉴질랜드나 호주는 지구 위도로 볼 때 우리나라와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반부와 북반부로 갈려서 거의 대칭점으로 위치해 있다. 그래서 수만 리 떨어져 있지만 시차는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이들 나라는 서머타임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서머타임을 빼면 우리나라 시각과 뉴질랜드는 3시간, 호주는 1시간의 시차였기에 그다지 시차적응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서 첫 번째 찾아간 곳은 블루마운틴 공원이다. 공항에서 2시간 30분쯤 가는 거리에 있다.
가는 동안 잠이 와 고개를 젖힌 채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잤던 모양이다. 아내가 깨우며 나무랐다. 하지만 난 단잠을 잤다. 블루마운틴이란 이름은 1,000m 산맥을 뒤덮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증발해내는 유액이 햇빛에 얼비쳐 푸른 안개현상을 빚기에 그리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경사를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깎아지른 벼랑의 장관과 바위틈을 가르는 폭포 그리고 에코 포인트에 자리한 세자매봉을 감명 깊게 보았다. 특히 인상 남는 것은 절벽에 우뚝 솟은 세 줄기의 바위인 세자매봉인데 여기엔 마왕이 아리따운 세 자매를 차지하려다 이를 눈치 챈 세 자매가 주술사를 찾아가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잠깐 바위로 변하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이 사실을 안 마왕이 주술사를 죽이는 바람에 여태 제 모습으로 못 돌아가고 바위로 남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었다.
하늘 닿게 살을 맞대
서로 서로 끌어안고
입김을 안개로 아른아른 펼쳤는데
돌이 된 세 자매 가슴
맺힌 한은 언제 풀까.
-세자매봉-
세 자매봉은 서린 전설 때문인지 아스라이 솟아 있는 바위틈에 나무들이 매달려 붙어 자라고 있는 품이 세 자매의 애절한 사연을 닮은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세자매봉은 아직까지는 튼튼한 몸매를 자랑하면서 누리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언젠가는 숱한 세월이 비바람을 몰고 오가면 그 바위도 늙어 가리라 생각하니 그 빤한 섭리가 오히려 밉다. 여기서 돌아온 우리는 달링하버 입구에 위치한 세계3대 수족관 중 하나라는 시드니수족관에 갔다. 부산해운대 해양 수족관도 이곳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악어, 상어, 가오리, 거북, 펭귄 등 500여종 1만여 마리의 바다 동물이 유리벽 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으스스한 백상어가 머리 위에 떠다니는 수중터널도 볼 수 있었고 드공이라는 사람 머리와 비슷한 형상을 한 고래도 보았다. 특히 수조 속에서 너울거리는 색색의 산호초의 장관은 잊히지 않는다. 수중의 이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썼지만 모두 어둠속에 찍은 것이라 선명도가 형편없는 것뿐이었다. 이 수족관은 바다 속 신비를 실감나게 하기 위하여 바다 밑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3월 15일 우리는 바다와 사막이 공존한다는 포트스테판(Port stephens)으로 가 랩타일 파크(Reptile Park)의 야생 동물들을 만나보았다. 이 동물원은 호주 사람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동물원의 하나로 악어, 뱀, 카멜레온 등 파충류가 악어 입 모양의 건물 안에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전시되어 있었는데 3m쯤은 됨직한 누런 대형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밖의 울타리 안에는 호주의 상징동물인 캥거루와 코알라가 있었다.
코알라는 나무 사이에 찰싹 붙어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도 모르는 채 잠만 쿨쿨 자고 있었다. 코알라는 유일한 편식동물로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고 늘 취한 채 하루 24시간 중 4시간만 깨어 있고 20시간은 잠만 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알코올 중독자인 셈이다. 모양이 앙증맞고 귀엽지만 만지면 안 된다고 관리인이 신신당부하였다.
밖 잔디밭에는 캥거루가 여기저기 노닐었다. 우리는 먹이봉지를 하나씩 들고 들어가 그놈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졸졸 따라 다니며 잘도 받아먹는다. 이들과 어울려 먹이 먹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어찌나 와서 비비고 덤비는지 손자들이 와서 귀염 떠는 듯하였다.
호주는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기 와이너리 와인농장을 들렸다. 호주에는 이 와이너리가 수백 개나 있다 한다. 체험자동차를 타고 찾아간 곳은 포도농장 옆에 있는 와인시음장 겸 판매장이었다. 판매인인지 주인인지 모르지만 능숙하게 와인 잔에 도수가 다른 다섯 종류의 와인을 도수가 높은 순서로 따라서 시음(試飮)하게 하였다. 화이트와인부터 레드와인까지이다. 나는 둘째 잔까지만 입에 대고 그 다음은 친구에게 겹시음을 하게 하였다. 시음을 마친 나는 도수가 약한 화이트와인 한 병을 사서 휴대용 가방에 넣었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온 우리는 항구 넬슨베이에서 배를 타고 야생돌핀크루즈에 나섰다. 선상에서 돌고래가 펼치는 쇼의 재미를 느껴보려 했는데 돌고래들은 우리의 뜻은 아랑곳 않고 드문드문 시야 저쪽에서 숨바꼭질하듯 빠끔 보였다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추곤 하여 아쉬움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바다와 모래사막이 어우러진 시드니 북부의 휴양지인 포트스테판으로 갔다. 여기서 우리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모래언덕까지 이동하여 경사각도가 60~70도인 모래언덕에서 '샌드보딩'타기를 하였다. 끝없이 이어진 아나베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퇴적현상에 의해 형성된 모래사막은 고운 모래로 사구를 이루고 있었는데 하도 많은 사람이 썰매를 타고 오르내려 그런지 모래 언덕이 생각보다 경사면이 낮고 짧아 타는 재미가 덜 하였다. 몇 번을 오르내리며 탄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한 번만 탔다. 다리가 아파 남들이 타는 샌드보딩만 멍히 바라보는 아내와 함께 백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말로는 사막체험이라고 했지만 다른 해변에 비하여 모래가 많이 쌓였을 뿐 사막이라 하기는 무리였다.
3월 16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시드니 동부 본다이 비치, 더들리페이지, 캡팍, 오페라하우스, 시드니타워를 관광했다. 호주 원주민어로 '바위에 부서지는 흰 파도'란 뜻의 본다이 비치(Bondi Beach)는 시드니 해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말 그대로 파도가 높아 젊은이의 셔핑 명소였다. 그래 그런지 젊은이의 천국이었다. 상체를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누드비치란 별칭도 가지고 있단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무릎과 발목이 어찌 될까봐 고운 모래를 그냥 밟는 듯 마는 듯하고 아내와 함께 잔디밭에 와 일행이 백사장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동안 강한 자외선을 피해 해변 작은 공원벤치에 앉아 비둘기와 벗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태평양 하얀 포말(泡沫)
꽃이 되어 피어난다.
파아란 젊음이 누드로 출렁인다.
살 고운 모래톱 속엔
밀어가 촘촘하고
-본다이 비치-
저만치 깎아지른 듯한 언덕 위에 시드니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더들리페이지를 망연히 바라보며 해안이 비경이라고 서로 이야기만 나눴다. 원래 이 더들리페이지는 더들리페이지라는 사람이 소유하던 것인데 전망이 하도 기막혀 자기만 보기 아깝다고 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전망을 해치지 않게 언덕에 어떤 건물도 짓지 말라는 조건을 달아 시드니 시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다음에 간 곳은 캡팍(Gap Park)이다. 이곳은 오랜 세월 퇴적과 침식으로 형성된 절벽 바위에 수많은 틈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남태평양이 한눈에 내다뵈는 바위너덜이다. 절벽에 부딪혀 굽이치는 파도의 흰 포말이 장관을 이룬다.
난 둘레길 끝까지는 못 가고 중간쯤까지 가면서 경관을 구경하였다. 이곳은 호주 죄수들이 자살을 많이 하던 곳으로 영화 <빠삐용> 마지막 장면 촬영장이기도 하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점심을 먹고 호주를 대표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는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를 보러 갔다. 이 건축물은 1973년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 의해 정식 개관되었는데 덴마크 건축가 욤 우촌에 의해 탄생되었다 한다. 이 하우스의 모양이 특이한데 조개껍데기 모양을 형상화 했다고도 하고, 요트의 흰 닻을 형상화시킨 모양이라고도 하며, 오렌지 조각에 의해 창출된 디자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오렌지 조각설이 대세라고 한다. 오페라 하우스는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드라마 극장, 연극관의 4개 주 공연장을 비롯해 약 1천여 개의 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콘서트홀에는 1만5백 개의 파이프와 5단 건반으로 이루어진 오르간이 있는데, 기계로 작동되는 오르간 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앞문으로 들어가 휙 한번 돌아보고 옆구리 문으로 나왔다. 일정도 그렇지만 입장료도 곳곳마다 내야 하기 때문에 만만찮다고 하여 아쉬움을 안고 밖으로 나와 사진만 찍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시드니타워를 보기 위해 갔다. 높이가 305m로 남반구 최고를 자랑하는 타워라 한다. 1, 2층에는 360도 회전하며 시드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고, 4층은 전망대라 한다. 잠시 8분짜리 4D시네마로 시드니 명소를 체험하고 40초 만에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올라갔다. 시드니 전경이 바닷물과 건축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명화(名畵)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어 우리는 시드니 시민 건강의 심장이랄 수 있는 하이드파크에 들어섰다. 햇살이 환하게 내려앉은 잔디밭에 나무들이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곳곳의 꽃밭에선 붉고 노란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부분 나무들은 수령이 꽤나 된 듯 그 크기가 아름드리였다.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드문드문한데 하늘로 쳐다보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열 아름은 될 듯한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밑 몸통이 구불구불 파여 있었는데 그 파인 데에 들어가 안기면 부부가 백년해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여 우리 일행들은 교대로 들어가 보았다.
잔디 광장을 지나 찾은 곳은 ‘미세스 맥콰리 의자’이다. 호주 유형식민지 시대 총독의 부인이 항해에 나간 남편을 앉아 기다리던 바위로 된 의자라는데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를 바라보며 감상하기 아주 알맞은 곳이었다. 인근엔 고풍스런 고딕 양식으로 두 줄기 첨탑(尖塔)이 하늘로 나란히 솟아 있는, 시드니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는 세인트 매리 대성당(St. Mary's Cathedral)이 있었다. 우리는 우선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 위용에 감탄했다. 이 성당은 1821년 노트르담 사원을 본떠 지은 사암(砂巖) 건축물로 1865년 화마(火魔)로 소실된 것을 베데 폴딩(Bede Polding) 주교가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하여 1868년 새로이 주춧돌을 놓고 재건축을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길이만 해도 107m나 되는 웅장한 건축물이란다. 보기만 해도 숙연해진다. 성당 앞에선 대형 분수가 사람들의 신앙심을 용솟게 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만찬이다. 한식·중식·일식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로즈힐(ROSE HILL) 클럽 뷔페에서 식도락을 즐겼다. 모두들 홀가분하게 담화를 즐기며 주류파와 비주류파로 나뉘어 앉아 먹었다. 나는 철저한 비주류로 주로 소고기와 과일 종류를 먹었다. 내일이면 KE122편으로 시드니 국제공항을 떠나 11시간의 비행을 하여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딜 참이다. 사워하기 무섭게 짐을 챙겨놓고 밤을 걱정하며 잠을 청하였다. 3월 17일 오후 5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나와 아내는 관광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일행의 맨 뒤에 처져 따라다녔는데 아무 탈 없이 돌아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