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2주기 기념미사 강론>
아물지 않은 광주사태
- 5․ 18 2주기 추도미사 강론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차라리 지워 버리고 싶은 가슴 아픈 추억인 광주사태를 오늘 어쩔 수 없이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2년 전 이날부터 열흘간에 걸쳐서 우리들이 겪어야 했던 그 비통한 참극은 아직도 그 후유증을 우리 가운데 깊이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사태의 상처가 다 아물어 버렸다면 우리는 좀 더 냉정한 마음으로 이 날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러 사람이 광주사태와 관련해서 구속돼 있고, 또는 법적 규제에 묶여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광주사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자 합니다. 광주사태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 민간이나 경찰과 군인 할 것 없이 모든 희생자들은, 우리 민족이 민주발전의 염원을구현해 보고자하는 역사적 과정과 시련 속에서 바쳐야 했던 희생제물 이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적 유대 속에서 그들의 희생의 의미를 헤아리도록 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사태로 부상을 입은 이들과 아직도 그 상처가 다 치유되지 못한채 병상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무심하게 지내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당국의 조치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각 본당이 이러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2년이나 지난 광주사태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못했다는 사실을, 광주사태 관련 구속자들에게서 뼈아프게 실감합니다. 또 구속사태를 면하고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복권 복직이 안돼서 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가슴 아프게 느낍니다. 우리는 이들 모두의 석방과 사면, 그리고 완전한 복권․복직을 당국에 거듭 호소하며 또 강력히 촉구합니다. 우리는 또 광주사태와 관련해서 최근에 구속이 된 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또 다른 사건과도 관련이 된 이들도 있지만, 원주 교구의 최기식 신부님은 광주사태에서 피해 온 김현장씨를 보호해 준 것 때문에 구속이 되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광주사태 후에, 사태 관련자라고 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무진고생을 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얼마나 억울하게 죄가 씌워지고 중벌이 가해졌는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혼란과 공포의 와중에서 피해 와서 보호를 청하는 사람을 사제의 양심으로 보살펴 주었다고 해서 , 최신부에게 지금 범인 은닉과 국가보안 사범의 협의가 씌워지고있는 것입니다
광주사태의 진상을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 당시 이 사태의 내막을 세상에 밝히려다가 옥고를 치러야 했던 여러 성직자․수도자들에게 큰 빛을 지고 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기식 신부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으로 그 고통에 동참하고, 그를 위해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광주사태의 상처를, 광주사태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부상자들과 구속자들, 그리고 아직 법에 묶여서 제대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현실의 아픔으로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응어리져 있는 심리적 상처는. 아직도 광주사태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사태에 대한 진정한 판단과 인식이 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광주사태를 회상하거나 거론하기를 꺼려하는 것이, 그것이 너무나 가슴 아픈 추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해할 만합니다. 또는 과거의 쓰라린 추억보다는 앞으로의 건설적 소망을 키워 나가자고 하는 뜻이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침묵과 망각이 진실을 끝내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것이라면, 그 결과가 대단히 염려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한 맺힌 응어리는, 진정한 민족적 참회와 용서를 구하면서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진실한 자세로써만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광주사태의 처참했던 구체적 사례들을 다 들춰 내지 않더라도, 사태진전의 발단과 과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당국이 사태의 책임을 시민들에게만 돌리고 있는 그릇된 사후처리를 용납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당국이 광주사태에 대한 모든 진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못할 정치적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처사는 언제나 또 다른 후환을 배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광주사태의 모든 진실이 결국은 다 밝혀지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선은 아픔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헤쳐진- 상처들을 하루속히 아물게 하자고 호소해 왔습니다. 즉 모든 구속자들을 다 석방하고, 모든 관련자에게 완전한 복권․복직을 이루어 주라는 것입니다.
혹시 당국의 판단으로는 사태동안에 용서 못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십만 시민들의 이유 있는 분노가 폭발된 전체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관대한 아량으로 다스려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대한 조치는 당시 정부의 책임자가 충분하게 언질을 주었던 것입니다
또 이러한 관대한 조치는 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당국이 사태발단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군인들의 잔학 행위를 전적으로 불문에 부친 것과 대응해서 , 형평의 원리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고려하고 받아들여야 할 조치인 것입니다
광주사태라는 민족적 시련에서 광주 시민들에게만 한 맺힌 응어리를 남겨 놓게 하는 그런 부당한 결과를 만들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주발전의 역사적 과정에서 우리 겨레가 겪어야 했던 이 시련에서 한 가지라도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실과 설득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적 힘이 아닌, 다만 물리적 힘만으로는 질서와 건설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폭력적인 경우에는 파괴와 혼란만을 가져 올 뿐이라는 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불안한 가슴을 안고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과연 이 어두운 현실의 진상을 알고 있는지 모두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처럼 뿌리 깊게 만연돼 있는 이 불신이 없어지고, 국민들이 서로 믿고 또 정부를 신뢰하게 되려면, 국민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고 비판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국민이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알 수 있고, 공동선에 관계된 요긴한 일들을 알 수 있게 되지 못하고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할 수가 없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이 오늘처럼 철저하게 통제돼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광주사태의 원만한 해결의 길과 또 그 시련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교훈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정부는 마땅히 진실과 설득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적 힘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과 정부가 국민의 민주주의적 소망을 수렴하고 구현하기 위한 진실한 노력을 조금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은폐하거나 외면하는 어떠한 강요된 침묵이나 망각도 진실한 해결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방법으로써는 많은 사람들의 한 맺힌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가 없고, 오히려 국민적 화합을 저해하는 독소를 더 깊이 심어 놓는 위험한 결과 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친애하는 형제ㆍ자매 여러분!
우리는 광주사태라는 큰 시련을 통해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과 복을 이끌어 내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 시련이 유난히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일수록, 거기에 하느님의 기묘한 섭리가 깃들어 있으리라는 기대를 더욱 크게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세계의 모든 고통이 인간의 죄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음으로 해서 고통의 의미는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고통을 오히려 구원의 방편으로 전환시켜 주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의식하고 있든지 의식하고 있지 못하든지 상관이 없이, 양심의 명령을 따라 하느님을 찾고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선에로 유도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와 구원을 통해서 이 세계에 이룩하시려는 진리와 정의, 자유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의 인간적 존엄을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각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노력은 헛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써 우리에게 완성해 주실 영원한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오늘날 이 땅에 건설해 나가는 현세적 세계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한 계획과 섭리 속에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우리 사회의 정의와 인권 문제의 한 사건을 위해서 기도드리는 것도 하느님의 뜻 안에 가납될 수 있는 것으로 믿으며, 이 모든 일을 자비와 사랑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위탁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고 여깁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여, 광주사태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당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며 그들의 모든 상처, 육신과 마음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소서. 주여 이 민족적 시련에서 우리 모두가 당신의 이끄심을 받으며, 용서와 화합을 이루고 당신이 주시는 교훈을 찾게 하여주소서! 그리고 우리 온 국민이 진리와 정의, 자유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이 세상 건설에 사심 없이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교구장 윤 공 희 대주교
<2주기 성명서>
광주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천주교 광주 대교구 사제단은 광주사태 2주기를 맞아 희생된 모든 영혼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며 유가족 및 구속자를 비롯한 모든 시민들의 한 맺힌 마음에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빌며 민족적 화해와 정의로운 민족의 앞날을 위해 다음과 같은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그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광주사태의 진상 규명과 그 책임 소재를 밝힐 것과 학생들의 복학, 시민들의 복직과 복권, 부상자와 학생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해 왔다. 이렇게 됨으로서만 이 민족적 비극이요 시련이었던 광주사태가 치유되고 진정한 민족 화합과 온 국민이 바라는 정의로운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 민족이 입은 상처는 또 다른 민족적 불행을 낳은 피맺힌 불씨로 작용할 수밖에 없음을 우려해 왔다.
최근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가 구속된 사건은 기실 그 뿌리가 광주사태에 있으며, 그 해결의 실마리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 관제 언론을 동원하여 사건의 본말을 전도하여 교회와 교회내 제 단체들을 음해하고 국민적 판단을 오도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의 양심을 속이려 하였다. 이것은 바로 광주사태를 은폐하고 왜곡한 책임전가가 당연한 관행으로서 정착하고 있는 증좌로서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최근에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대형 참화, 참살 사건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마땅이 보호되어야 할 국민의 생명이 천시되고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광주사태의 망령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경제생활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있는 장 여인 사건은 견제 받지 않은 권력 아래 도덕성을 결한 황금만능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로서 이 또한 민족의 앞날을 가로막는암초로서 작용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광주사태 2주기를 맞아 하느님께서 인간의 양심에 박아 주신 자유와 진실, 정의와 사랑은 어떠한 권세에 의해서도 말살될 수 없으며, 이의 실현만이 민족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광주사태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며 그 어느 누구도 억압받거나 권력의 수단으로서 이용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온전히 누리고 살수 있는 사회를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룩해 가기를 염원하며 다시 한번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 진실을 바탕으로 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광주사태의 진상과 그 책임소재를 규명하라.
- 진정한 민족적 화합을 이루기 위해 광주사태로 구속된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라.
- 공권력에 의해 국민의 생명이 천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광주사태 희생자와 부상자
에 대한 모든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라.
- 부당한 정치적 보복이 종식되기 위해 광주사태로 인해 퇴교 당한 학생의 복학과 시민들을 복직 및
복권시켜라.
-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과 최기식 신부 구속사건의 정확한 진상과
재판 절차를 공개하라
1982. 5. 18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