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찬가(愚淵讚歌)
우리나라는 고대사회부터 3(三)이라는 숫자를 지극히 신성한 수(數)로 인식했다. 그리하여 대표성을 띠는 인물이나 지리 등을 꼽을 때 3으로 압축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오산지(鰲山志)에도 우리 고장 청도의 대표적인 인물로 오산삼걸(鰲山三傑)을 적고 있는데 영헌 김지대(英憲 金之岱, 1190∼1266),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 선탄(禪坦) 스님(14세기 초 詩僧)이다.
또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 문중에서는 청도의 3현(三賢)으로 절효 김극일(節孝 金克一, 1382∼1456), 탁영 김일손(濯瓔 金馹孫, 1464∼1498), 삼족당 김대유(三足堂 金大有, 1479∼1551)를 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청도 산동 지역의 동창천(東倉川) 주변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을 유천강 삼현(楡川江 三賢)이라 부른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뽑았는지는 몰라도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逍遙堂 朴河淡, 1479∼1560), 수헌 이중경(壽軒 李重慶, 1599∼1678)을 들고 있다.
이 유천강 3현의 인물을 보면 동창천의 지리와 관련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김대유와 박하담은 조선 중기 인물로 김대유는 동창천의 매전면 금곡리 우연(愚淵) 위에 삼족대(三足臺)를 짓고 박하담은 금천면 신지리 눌연(訥淵) 위에 소요당(逍遙堂)을 각각 지어 후학들을 지도하며, 만년을 보냈다.
이중경은 위 두 분보다 한참 후의 인물로 청도의 종합지리지 오산지(鰲山志)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전면 구촌리 마전연(馬轉淵) 위 오대(梧臺)에 봉서정(鳳棲亭. 행정상 밀양시 상동면 매화리)을 짓고 그의 나이 49세~66세까지 학문에 전념하였다.
내가 사는 청도군 매전면에서 가볼 만한 곳 단 하나를 정하라면 삼족대(三足臺)와 우연(愚淵)을 뽑겠다. 면사무소가 있는 동창(동산리)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금천면으로 가다 보면 동쪽으로 매전교가 나온다. 굳이 삼족대까지 둘러가지 않아도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갓등산 끝자락의 절벽 위에 아슬하게 자리 잡은 삼족대 정사(精舍)가 동창천 깊고 푸른 우연에서 물그림자로 눈앞에 보여준다.
운문댐 준공 이후인 2002년 한국수자원공사 청도 운문댐관리단이 운문호 집수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동창천의 발원지를 탐사한 결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고헌산(高獻山. 해발 1034m) 북쪽 사면 8부 능선을 발원지로 확인하고 명비(銘碑)를 세운 적이 있다.
발원지에서 시작한 물은 경주시 산내면을 돌아 운문호(雲門湖)에서 운문천과 합류한다. 이 물은 다시 아래로 흘러 금천면 신지리 눌연(訥淵)을 지나 장장 40여km 달려와 여기 금곡리 삼족대 절벽 아래 우연에 머물면서 다리 아래쪽 새들보(洑)를 만나 넓은 소호(沼湖)를 이루고 있어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우연이라는 이름을 맨 처음 누가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김대유 선생의 삶과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대유 선생은 청도의 산서 지역인 화양읍 토평리 백곡 마을 출신으로 무오사화(戊午史禍)로 삼촌 김일손이 화를 당했을 때 부친과 함께 유배를 당했다가 풀려난 후 성균관 전적과 칠원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나, 다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삭탈관직당한 뒤 여기로 들어와 삼족대를 짓고, 시대의 학자들과 교우하며 후학을 가르쳤다. 또 소요당 박하담과 더불어 사창인 동창(東倉)을 창설하여 구휼(救恤) 사업에 매진하기도 했다.
선생의 호(號)를 삼족당(三足堂)이라 함에서 나이 육십을 넘었으니 수(壽)가 이미 족하고, 과거에 합격하여 현감의 벼슬을 지냈으니 영광(榮光)도 족하며, 사냥과 어렵으로 아침저녁 식사에 고기반찬이 끊이지 않으니 식생활도 족하다는 세 가지 만족(足)을 뜻하여 욕심 없이 여유작작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선생은 겨울이면 산에 올라 사냥을 하고, 이 우연의 물 위에 강정(江亭)도 띄워 낚시로 세월을 보내면서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1545년 인조 임금이 즉위하여 복직되자 벼슬길에 나서려고 상경하던 도중에 병이 나 다시 돌아와 운문산에서 살다가 갓등산 아래 묻혔으니 우(愚)의 의미를 더욱 짙게 한다.
다행히 요즘 같은 가뭄에도 우연의 물은 늘 푸르기만 하다. 나는 이 가뭄에 우연마저 마르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다가 우연 아래 든든한 새들보가 받치고 있는 것을 보고 한시름 놓았다.
마지막으로 ‘청도문헌고(淸道文獻考)’에서 우연을 시제로 한 선생의 한시 한 편을 찾아 소개한다.
愚淵 三足堂 金大有
訥淵之水達愚淵欲訥如愚聖所傳漁釣十年來往此愚於人事訥於言
卽山而獵卽溪漁漁獵非關獸與魚賸得溪山爲我有故憑漁獵送居諸
우연(愚淵)
삼족당 김대유(三足堂 金大有)
눌연(訥淵)의 물이 우연(愚淵)에 이르니
우연(愚淵)처럼 어눌(語訥) 하고자 함은 성인이 전한 바라
고기 낚으며 십 년을 오고 가니
인사에 어리석고 말에 어두워졌네.
산에 가면 사냥하고 물에 가면 고기를 잡노니
어렵(漁獵)이 짐승과 물고기에 관심 있음이 아니네.
물과 나를 위하여 있음을 아니
어렵(漁獵)에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노라. <박윤제 김태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