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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우회 천안 아우내장터와 유관순 추모각 답사 (2019.3.1.)
오늘은 3.1절!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와 문화, 충절의 고장 천안! 기미년 3월 1일의 독립선언서 선포식를 계기로 4월 1일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꽃다운 나이에 유관순 열사는 김구응, 조인원, 이백하, 김교선 등과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여 3,000여명의 주민과 함께 일제의 총칼에 맞서 앞장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00주년 행사를 위해 천안 역에서 독립기념관을 가는 길은 평소와 다르게 많은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뤄 50분이면 족히 갈수 있는 길을 오후 3시경에 아우내 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치 1919년 그날을 상상하며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몰려오는 만세행렬 같았다. 오후 3시 늦은 시간임에도 아우네 옛날 순대 집은 3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곳곳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병천 순대로 명성이 자자한 국밥과 옛날 순대의 맛을 보니 잡채대신 야채와 선지가 많이 들어있고 순대의 길이도 길어 맛도 좋았다. 식사 후 매봉산 기슭의 유관순 추모각을 가는 열사의 거리에도 다양한 상징조형물과 이 고장의 역사적인 인물을 비롯하여 일제시대 우리 조상의 핍박과 수난사를 사진으로 게시해 놓았다. 추모각에 참배객들이 모여들고 그 아래쪽의 유관순 기념관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미세먼지로 온통 산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고 도로도 정체로 막혀있지만 오늘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 이기에 모든 불편을 감수 할 수 있었으며 조상들의 애국애족과 자주독립 정신을 보면서 많은 반성과 깨우침을 갖는 기회가 되었다.
**************************************** <유관순 열사의 묘비 내용을 소개한다.>
★유관순열사의 기도와 유언
3월이 오면 우리의 마음이 숙연해지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3.1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이 보여준 나라 사랑의 커다란 울림이다. 3.1절하면 유관순 열사(1902~1920년)가 생각난다. 당시 이화학당 재학생으로 천안 병천 아우내 장터로 내려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독립만세운동 중에 일본 순사의 총탄에 부모를 잃고, 유관순 열사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도 불의에 항거하다가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신실한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은 유관순 열사. 그의 묘비에 새겨진 기도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병천면 매봉산 자락에 있는 묘비에는 유관순의 기도문이 적혀 있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일본을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만세! 철저한 기독교 신앙교육 아래 다져진 그의 믿음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기도문이다. 나라를 위하여 흘린 순교의 피가 스며든 이땅은 거룩한 성지가 되어 열방 가운데 우뚝서리라 믿는다. 그의 유언을 보며 가슴이 져려온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옮긴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