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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6의 새로운 해석을 찾아서
1. 서론
이 여자가 문제이다. 보통 여자가 아니다. 이 여자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 왔을 뿐만 아니라 죽음도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 여자는 다 름 아닌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 하와이다. 이 여자는 정말 인류의 죄 와 죽음의 책임자이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생명이라는 거창한 문제를 초래할 만큼 파워풀한 신적인 존재라도 되는 걸까? 우리가 이 여자에 대해서 이런 인상을 받은 것은 창세기 2-3장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창세기 3:16의 해석과 번역이 관건이다. 창세기 3:16에 대한 전 통적인 번역은 최초의 여자를 오해하게 하였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떠받 치는 핵심 구절로 이용되었다는 혐의가 짙다. 원문은 그다지 위계질서적이지 않은데 번역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원문이 이미 주종관계를 담고 있을까? 아니, 원문을 여러 가지로 번역할 가능성이 있는데 번역자나 주 석자의 관점 때문에 여성 억압적인 번역과 해석이 나온 것일까? 이렇게 본문 을 여러 각도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창세기 3:16에 대해 새로운 번역이나 해석을 통해서 오역 또는 오해를 벗기기 위한 노력을 했고, 그 노력 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의 의도는 창세기 3:16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번역을 제시하려는 것이 다.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수많은 번역들을 비교해보면 본문에 대한 단 하나 의 정확한 번역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해석,새로운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성서를 읽는 독자가 늘 달 라진다. 한글로 성서를 읽는 독자도 21세기에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가치관 을 갖고 있다.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성서 번역이 요청된다. 새로 운 번역을 위해서는 창세기 2-3장을 창조와 타락이라는 오랜 주제로 이미 세 뇌당한 우리의 전제를 내려놓고 색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창세기 2-3장을 다룬 접근은 하도 다양하고 많아서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의 목표와 연관된 접근만을 제한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먼저 전통적인 해석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런 다음 원문의 번역 문제를 다루고, 페미니스트 입장을 몇 가지 소개할 것이다. 그런 후에 우리의 새로운 번역과 해석을 다룰 것이다. 특히 창세기 3:16하반절의 뒤 행의 전통적인 번 역인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에 도전할 것이다. 이 말은 앞부분과 의미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여성을 억압하는 데 인용되어 왔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문맥과도 의미가 통하고 여성 억압적이지 않은 해석과 번역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창세기 3:16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창세기 3:16의 상세한 번역 문제는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우선 우리말 성서 는 이렇게 번역했다. 개역개정 은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 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 릴 것이니라.”로 번역했고, 새번역 은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 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로 번역했다. 이 구절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는 주변 맥락인 창세기 2-3장을 전통적으로 이해한 데서 나온다. 그 생각 은 이러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죄를 지어 타락하였고 그 결과 심 판과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자는 저주를 받았고,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여자가 겪는 이 고통은 남자가 땅을 파서 농사일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 는 고통보다 더 크다. 이것은 곧 여자의 죄가 더 크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남 자가 여자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규범 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주석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생각이 변천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구약성서 학자 몇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과 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의 해석은 창세기 2-3장을 전체적으로 죄와 벌이 라는 이해 안에 머물지만 여자에 관한 해석은 종종 주석자의 편견을 드러내 기도 하여 흥미롭다.
20세기 초에 창세기 주석을 쓴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은 창세기 2-3장을 인간의 죄와 타락 이야기라고 이해한다.1) 그리고 창세기 3:16을 하나님이 여자에게 내린 ‘저주’라고 본다. 궁켈이 볼 때, 여자는 모순적으로 행동한 다.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오히려 여자를 예속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볼 때 여자는 남편이 구입한 재산이다. 그렇다면 여자 는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고 싶어 한다. 궁켈은 이 구절이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한 성욕(libido)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본다. 여자는 유혹자로 여겨지 며, 이 저주는 죄의 결과이고, 여성의 불행한 삶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궁켈이 창세기 3:16을 원문보다 더 여성 억압적으로 풀었다면, 20세기 중 반에 나온 주석서인 The Interpreter’s Bible은 뜻밖에도 창세기 3:16의 여자에 대해 열려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2) 이 주석서의 “창세기” 부분을 지은 커트버 트 심슨과 월터 보위(Cuthbert Simpson & Walter Bowie)는 창세기 3:16상반절 이 출산의 고통에 대해 말한 것은 원인론적 설명이지, 규범적인 말이 아니라 고 한다. 하반절은 여자의 성적 욕망 또는 아이를 갖고 싶은 자연스런 욕망에 대해 말하고, 이 구절은 여자가 당시의 관습과 임의적인 대우를 견뎌야 할 정 도로 남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주석자가 보기에 야훼 기자 는 남자가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악하게 여긴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사랑과 존경의 상호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이지, 지배 관계가 아니다. 지배하려는 모든 시도는 무질서의 결과이고,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심슨과 보위는 아무래도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페미니스트 성서 해석의 숨은 선구자인 듯하다.
1970년대에 나온 게르하르트 폰라트(Gerhard von Rad)의 주석은 여전히 창 세기 3장의 제목을 ‘타락 이야기’로 붙인다.3) 폰라트는 여자와 남자는 저주받 지 않았다고 명시하지만, 여자의 삶에는 ‘심각한 괴로움과 가공스런 갈등’이 있고, 여자는 세 가지 요소 때문에 억압을 겪는다고 한다. 여자는 임신의 어려 움과 출산의 고통이 있고, 남자를 향한 깊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남자에게서 성취되지 않고 휴식이 없으며 굴욕적인 지배를 받는다. 폰라트는 이것이 원죄의 결과라고 한다.4)
페미니즘과 여성 시각의 성서 해석이 꽃을 피운 1980년대 이후에 나온 주 석들은 창세기 3:16의 여자에 대해 말할 때 페미니스트 시각을 배경에 두고 있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창세기 2-3장의 저자(‘J 기자’)가 여자라 고 주장한 적이 있다.5) R. E. 프리드만(R. E. Friedman)도 그 전에 J 기자의 성별이 분명치 않고 여성일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6) 그러나프리드만은블 룸의 주장에 반대해서 J가 여자라면 왜 하나님이 창세기 3:16의 저주를 여자 에게 두셨는지를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7) 이처럼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 은 남성 학자들도 창세기 3:16을 하나님이 여자에게 내린 ‘저주’라고 무심코 전제하기도 한다.
심지어 최근에 나온 주석도 창세기 3:16의 여자를 그리 배려하지 않는다.고든 웬함(Gordon Wenham)의 경우는 현대 학자치고는 창세기 3:16의 여자 를 꽤 고루하게 읽는다.8) 그는 여자의 종속을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 여자는 조력자로 지어졌고, 남자가 두 번이나 여자의 이름을 지었 기 때문에 남자가 이미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웬함이 볼 때 창세기 3:16에서의 ‘다스리다’는 가혹하고 착취적인 예속을 나타낸다. 여자는 ‘사모하는 데도 불구하고 지배당하는 것’으로 변했다. 웬함은 여자들이 남편을 향한 욕 망 때문에 이러한 착취를 허용하며, 성욕 때문에 남자의 비이성적인 요구를 따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기에 주석을 쓴 빅터 해밀턴(Victor Hamilton)은 창세기 3:16에서 하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실 때 여자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지 규범적으로 정 하는 것이 아니기를 ‘희망’한다.9) 해밀턴은 이것이 결혼관계를 삐딱하게 만 들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 적극적으로 창세기 3:16의 여자를 옹호하려고 하지 는 않는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현대 학자들 중에서 창세기 3:16의 여자를 가장 옹호하는 듯하다.10) 우선 그는 창세기 1-11장의 모든 이야기 가 어떤 식으로든 죄와 벌과 관련이 있고, 이것이 지배적인 주제라고 본다.11)그런데 창세기 3:16은 실제 처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 실존의 모 습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심판 선고는 범죄행위와 맞지 않는 다. 여자의 형벌인 임신과 출산의 수고는 그녀의 삶에 부과된 고통이다. 남자를 사모하는 것이나 남자가 그녀를 다스린다는 것은 신분상의 변화가 아니라 당시에 이해되던 고통스런 여자의 삶에 대한 한 설명일 뿐이다. 베스터만은 창세기 3:16은 남녀 사이의 한 측면만 다룰 뿐이라고 지적한다. 창세기2:21-24이 남녀관계에 대해 더 큰 그림을 제시하고, 남녀가 동등하며 어떠한 종속의 흔적도 없다.
지금까지 서양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았다면 한국의 학자들은 어떨까?천사무엘은 창세기 3:16하반절에 나오는 ‘여자의 욕망’을 ‘남편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려는 욕망’이라고 해석한다.12) 김회권도 이 ‘욕망’을 비슷하게 이해한다. “일부일처제 하의 남편에 대한 여성의 질투 어린 독점욕과 남편의 아내에 대한 지배를 반영한다.”13) 이러한 이해는 표 준, 새번역, 공동, 공동개정과맥을같이한다.
창세기 3:16에 대한 가장 여성 우호적인 해석은 「성서와 함께」 편집부가 낸 보시니참좋았다 에나온다.14) 이책은J기자가어머니로서누리는임 신과 출산의 기쁨과 축복이 왜 고통과 무거운 짐으로 바뀌었는지, 여자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불평등한 지배와 종속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원인 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여자의 고달픈 삶, 출산의 고통, 남존여비의 현실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범죄의 결과라는 것이 다. 그러나 이 해석조차 창세기 3:16에서 지배 곧 ‘남존여비’가 들어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학자들 사이에서 창세기 3:16의 여자는 진보하였다. 100여 년 전 에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고 싶어 하고 ... 남자보다 더 강한 성욕이 있다’(궁 켈)고 여겨지던 여자가 오늘날 ‘남편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자신에게 복종하 게 만들려는 욕망’을 가진 여자로 거듭났다(천사무엘). 동시에 여자는 여전히‘남편을 향한 욕망 때문에 착취를 허용하며, 성욕 때문에 남자의 비이성적인 요구를 따를 수 있다’고 한다(웬함). 다른 한편에 있는 학자들은 창세기 3:16이 남자의 지배를 언급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 이 아니라 실존 삶을 묘사하는 것뿐이라고 옹호한다. 여성 비하적으로 표현 하든 옹호하든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번역과 이해 안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 면 창세기 3:16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고 번역할 것인가?
1) Hermann Gunkel, Genesis, 19, 21, M. E. Biddle, trans.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1997);Genesis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01).
2) Cuthbert Simpson and Walter Bowie, “Genesis”, George Arthur Buttrick, ed., The Interpreter’s Bible, vol. 1 (Nashville: Abingdon,
1952), 510.
3) 게르하르트 폰라트, 창세기 , 국제성서주석 1, 박재순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1), 91; Gerhard von Rad, Das erste Buch Mose:
Genesis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2).
4) Ibid., 99-100.
5) Harold Bloom and D. Rosenberg, The Book of J (New York: Grove Press, 1990).
6) R. E. 프리드만, 누가 성서를 기록했는가 , 이사야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8), 112-113; R.
E.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San Francisco: Harper San Francisco, 1987).
7) R. E. Friedman, “Is Everybody a Bible Expert?”, Bible Review (April 1991), 16-18, 50-51.
8) 고든 웬함, 창세기 1-15 , 박영호 역 (서울: 솔로몬, 2001), 203; Gordon Wenham, Genesis
16-50, WBC 2 (Dallas: Word Publishing Company, 1994).
9) Victor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3), 201.
10) 클라우스 베스터만, 창세기 주석 , 강성열 역 (서울: 한들출판사, 1998), 47; Claus
Westermann, Genesis 12-36: A Commentary, John J. Scullion S. J., trans.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5).
11) Ibid., 51-53.
12) 천사무엘, 창세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99.
13) 김회권, “인간 창조와 하나님 나라의 좌절”, 「기독교사상」 531 (2003. 3.), 172. 14) 「성서와 함께」 편집부,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성서와 함께, 1988), 97.
3. 창세기 3:16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번역
창세기 3:16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אל-האשה אמר הרבה ארבה עצבונך והרנך בעצב תלדי בנים ואל-אישך תשוקתך והוא ימשל-בך:
이 본문을 어순에 따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여기서 ‘–’ 표시는 원문에서 한 어절임을 나타낸다.
“내가-늘리고 늘리겠다 너의-수고와 너의-임신을.진통하며 너는-출산할-것이다 아들들을.그리고-네 남자에게 네-욕망이 (있다).그리고-그가(그것이) 다스릴-것이다-너를.”
번역상의 문제, 특히 기존 번역이 문맥이 잘 통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몇 가 지 번역 성서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15)
개역개정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개역개정 은 여자가 고통 속에서 출산할 것이고, 여자가 남자를 원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지배할 것이라고 번역한다.16)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영어 성서도 그러하다. 상반절에서 논쟁이 되는 ‘임신하는 고통’ 등 의 문제와 하반절의 번역 문제는 아래에서 다룰 것이다. 우선 여기서는 대부 분의 번역이 하반절을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거나 지배한다(rule over, dominate)고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NRSV:
“I will greatly increase your pangs in childbearing;
in pain you shall bring forth children, yet your desire shall be for your husband,
and he shall rule over you.”
NJB:
“I shall give you intense pain in childbearing,
you will give birth to your children in pain. Your yearning will be for your husband,
and he will dominate you.”
위의 번역 성서들이 하반절을 “너의 욕망이 너의 남편에게 있을 것이다. 그 리고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로 번역하는데, 앞 행과 뒤 행의 연결이 매끄 럽지 않다. 남자가 자신을 사모하겠다는 여자를 지배한다는 말이 이상하다.그런데 창세기 3:16하반절의 번역과 이해는 새번역 과 공동개정 에서 현 저히 다르다.
새번역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공동개정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곧, 이들 번역 성서는 창세기 3:16하반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힘겨루기 가 있다고 이해한다.17) 여자가 먼저 이기려고 들지만 결국 남자가 이길 것이 라는 말이다. 흥미로운 번역이지만 이 번역은 상반절과 잘 연결되지 않는다.상반절은 여자가 임신과 출산을 많이 하고 출산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하는데, 하반절에서 갑자기 두 사람 사이의 세력 싸움이 나온다는 것이 이상하 다. 하반절은 무언가 여자의 임신과 연관이 되어야 할 듯하다.
15) 우리말 번역 성서를 가리킬 때, ‘개역’은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1961년)을, ‘개역개정’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998년)을, ‘표준
’은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1993년)을, ‘새번역’은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 (2001년)을, ‘공동’은 공동번역 성서 (1977년)을,
‘공동개정’은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1999년)을 가리킨다.
16) 개역도 ‘임신’을 ‘잉태’라고 할 뿐 개역개정 과 같다.
17) 창세기3:16의번역은 새번역 이 표준 과같고, 공동개정 이 공동과 같다
창세기 3:16의 번역과 관련된 논쟁점은 다음 몇 가지이다.
3.1. ‘너의 수고와 너의 임신’(עצבונך והרנך 이쯔보네크 베헤로네크)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개역개정 과 새번역 은 앞부분의 번역이 거의 같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다.”로 번역한다. 이는 ‘이짜본’(עצבון)을 바로 다음 행에 나오는 ‘에쩨브’(עצב)와 같은 어근에서 나와서 같은 의미(어려움, 수고, 고통, 슬)עצבונך והרנך(’픔)를 내포한 말로 본 듯하다.18) 그래서 ‘이쯔보네크 베헤로네크 를 ‘너의 고통과 너의 임신을’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 후 이것을 두 개의 표현 으로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는 중언법으로 보고 ‘임신하는 고통을’로 최종 번 역한것이다.19) 그래서이앞행,“내가너에게임신하는고통을크게더할것 이다.”는 뒤 행,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개역개정 ) 또는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새번역 )와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이 번역은 3:16상반절을 동의적 대구법으로 만든 셈이다. 공동개정 도 동의 적 대구법으로 보았지만 출산의 고통만을 표현하여 앞, 뒤 행을 거의 똑같이 반복하였다.
문제는 ‘이짜본’이 ‘에쩨브’(עצב)와 다른 형태이고, 성서에 3번밖에 나오지 않고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이 남자에게 선고를 내리실 때도 나오기 때문 에 적어도 이 세 군데에서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점이다(그 외에는 창5:29). 창세기 3:16상반절에서 ‘이짜본’(עצבון)을 ‘고통’으로 번역한 새번역 과 개역개정 은 3:17에서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 라”(개역개정)와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새번역)라고 하여 ‘고통’이 아닌 ‘수고’라고 번역하였다. 두 번역 성서가 같은 단어를 가지고 3:16에서는 ‘고통’이라고 하고 3:17에서는‘수고’라고 번역한 것이 단어 선정에 일관성이 없다.
여기서 ‘임신하는 고통’이라는 표현도 문제이다. ‘고통’은 출산 과정을 묘 사하는 데 적합하나 임신에는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물론 임신하면 결과적으로 출산의 고통을 겪겠지만 ‘임신하는 고통’이나 ‘잉태하는 고통’은 의미 가 통하지 않는다.20) 리브가가 임신 중에 힘들었다는 언급(창 25:22) 말고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임신을 고통스런 상태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짜본’(עצבון)을 ‘수고’(labor)로 번역하면서 바로 다 음에 선고를 받는 남자처럼 여자가 먹고 살기 위해 수고도 할 뿐만 아니라 출 산도 해야 하는 현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캐롤 마이어스(Carol Meyers)는 인 류학적이고 역사적인 자료를 사용하여 이 구절을 철기시대 이스라엘인들이 직면한 인구 감소 문제라는 관점에서 다룬다.21) 전염병, 전쟁, 높은 유아 사망 률 및 청소년 사망률, 가임기 여성 사망률 때문에 인구 증가가 필요했다. 그래 서 하나님은 가족과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의 임신을 증가시킨다.그런데 증가된 출생률 때문에 여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농사일은 물론 노동 을더많이해야한다. 고대에는집안의일과집밖의일이라는노동의분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은 오늘날 저개발국에서처럼 임신, 육아, 양육과 더불어 물리적인 노동도 병행해야 했다.
그래서 여자의 ‘이짜본’(עצבון)은 바로 뒤에 나 오는 남자의 ‘이짜본’(עצבון)처럼 수고스러운 농사일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창 세기 3:16의 ‘하르바 아르베 이쯔보네크 베헤로네크’(הרבה ארבה עצבונך והרנך 내 가-늘리고 늘리겠다 너의-수고를 그리고-너의-임신을)은 여자가 이제 농사일 에서 큰 짐을 져야 하고, 그렇다고 출산의 의무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하 나님이 말씀하신다고 본다. 우리의 번역도 이 견해를 따를 것이다. 사실 마이 어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이 구절이나 전체 이야기에 하와가 농사일을 했다는 것이 분명히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자는 농사나 가축 돌보기 등 물리적 노동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해는 창세기 3:16이 남녀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는 규범(prescriptive)이 아니라 삶의 현실을 서술한(descriptive) 것이라고 보고, 실존 모습을 설명하는 원인론적 이해이다.
아탈랴 브레너(Athalya Brenner)는 다른 학자들이 발표한 엔게디 무덤 발굴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마이어스의 입장을 지지한다.22) 이 보고서는 다섯 개의 무덤에서 164명의 유해를 다룬다. 이 유해 중 대부분의 남자는 25-40세에 죽 었는데, 여성의 가장 흔한 사망 연령은 20-25세였고, 극소수 여성만이 35세 이상 살았다. 이런 연령에 가장 흔히 죽었다는 것은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 육 아 등이 여성의 신체 자원을 심하게 고갈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의 또 다른 측면은 어린이의 72.7%가 6세 이전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 비율은 엄마 입장에서는 빈번한 임신과 출산으로 높은 위험을 겪어야 했다는 뜻이기 도 하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여성에게는 복잡한 축복이었다. 이스라엘 여성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치 절대적이었으나 이는 곧 이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짜본’이나 ‘에쩨브’(עצב)가 ‘수고’나 ‘고통’을 의미하는 어근(עצב 아짜브1)이 아니라 ‘형성’, ‘만들기’를 뜻하는 다른 어근(עצב 아짜브 2)에서 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쯔비 노빅(Tzvi Novick)은 두 어근이 생산이라는 개념에서 의미상 겹치지만, ‘아짜브’(1 )עצב은 일과 고통을 수반하는 반면, ‘아짜브’ ’2는 고통이나 문제와 무관하다고 관찰한다.23) 창세기 3:16의 ‘이짜본)עצב(야데카 이쯔ידך עצבוני(”.은 욥기 10:8의 “당신의 손이 나를 지었습니다)עצבון(부니)처럼 임신 후 자궁에서의 태아 형성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 세기 3:16의 ‘이쯔보네크 베헤로네크’(עצבונך והרנך)는 ‘네 임신의 형성’, 곧‘너의 임신 또는 너의 임신 기간에 따른 (태아의) 형성’을 뜻하는 중언법이다.하나님은 하와의 임신 기간을 길게 할 것이고, 그래서 출산의 고통 외에도 길 어진 임신을 견뎌야 할 것이다. 곧 긴 임신 기간 때문에 태아가 커질 것이고 출산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노빅은 3:17에서 ‘이짜본’(עצבון)이 남자에게 쓰인 경우도 ‘아짜브’(2 )עצב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래서 남자는 더 이상 땅에서 노 력하지 않고는 생계를 확보할 수 없고, 이제는 땅과 거기에서 나온 농산물을‘형성하고 만들어야’ 한다. 노빅은 이렇게 ‘이짜본’(עצבון)을 ‘형성’, ‘만들기’로 보면서 창세기 3:16이 전통적으로 출산의 ‘고통’을 강조하여 여성에 대한‘저주’로 이해한 것을 무디게 만든다.
15) 우리말 번역 성서를 가리킬 때, ‘개역’은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1961년)을, ‘개역개정’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998년)을, ‘표준’은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1993년)을, ‘새번역’은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 (2001년)을, ‘공동’은 공동번역 성서 (1977년)을, ‘공동개정’은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1999년)을 가리킨다. 16) 개역도 ‘임신’을 ‘잉태’라고 할 뿐 개역개정 과 같다.
18) Ludwig Koehler and Walter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M. E. J. Richardson, trans. (Leiden: E. J. Brill, 2001), 864-865.
19) 스파이저도 중언법으로 보았다. E. A. Speiser, Genesis, Anchor Bible 1 (Garden City: Doubleday, 1964), 24.
21) Carol Meyers, Discovering Eve: Ancient Israelite Women in Contex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112-121.
22) Athalya Brenner, The Intercourse of Knowledge: On Gendering Desire and ‘Sexuality’ in the Hebrew Bible (E. J. Brill, 1997), Ch. 4. 브레너는 이 보고서를 분석한다. B. Arensburg and A. Belfer-Cohen, “Preliminary Report on the Skeletal Remains form the En Gedi Tombs”, `Atiqot.12-14 ,)1994( 26
3.2. 창세기 3:16상반절과 출산의 고통 문제
창세기 3:16상반절에서 뒤 행의 문자적인 번역은 “진통하며 너는-출산할-것이다 아들들을”이다. 앞 행의 ‘이짜본’(עצבון)과 뒤 행의 ‘에쩨브’(עצב)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면 힘들게 애써야 하는 모습, 슬픔, 고통과 수고를 의미한다.그래서 대부분의 번역 성서들은 이 구절을 노동의 수고가 아니라 임신과 출 산과 관련된 고통으로 번역하였다. 개역개정 은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다”로, 새번역 은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로,공동개정 은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로 하였다. 우리말 번 역 성서는 새로운 번역 성서를 낼 때에도 이전 번역을 그대로 두었다. 이 상반 절에서 우리의 질문은 번역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출산의 고통을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과 규범으로 받아들일 때 생기는 문제이다. 이것은 3:16하반절에 서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를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얽혀 있다.
린다 쉬어링(Linda Schearing)은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창세기 3:16이 얼 마나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출산의 고통과 관련하여 소개한다.24) 한 국은 19세기 말의 기독교의 모습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전에 있던 이러한 논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한국이 기독교 문화권이 아니어서 이 구절이 여 성에게 끼친 폐해(?)는 서구만큼 크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쉬어링의 연구 를 여기 간략히 소개하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 서구인들은 창세기 3:16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때문에 출산이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오랫동안 전제하였 다. 하나님이 하와를 ‘저주’하셨기 때문에 출산은 당연히 고통스러워야 한다 고 본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화학적 마취를 사용하면서 논 쟁이 생겼다. 출산할 때도 마취를 해서 고통을 줄이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이 것이 마치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25) 의사들은 이 점에 대해 주석가처럼 성경 번역과 해석을 다루며 찬반 논쟁을 했다. 여성의 출산에 마취를 사용한 의사는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고 괘씸하고 이단적 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한 의사는 마취제 사용에 반대하며 이렇게 썼다. “...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여자가 출산하며 겪는 고통은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의 사랑 속에 있는 가장 강한 요소 중 하나 이다. 나는 이 발견(마취)의 도덕적 결과가 환자와 의사 양측에 미치는 영향 이 두렵다.” 이 의사는 창세기 3:16을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로 본 수많은 사람 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고통 없는 분만 운동을 한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그랜틀리 리드(Grantly Read)는 출산의 고통은 여자에 대한 미신이나 문화적 기대에서 오는 두려움 과 불안의 결과라고 주장했다.26) 그는 출산이 고통스럽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여성의 몸과 마음에 근육 긴장을 초래하고, 고통 없는 분만을 막는다고 보았 다. 그리고는 여러 번역 성서를 비교한 후에 창세기 3:16상반절의 번역이 번 역자의 의학적 가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흥미롭게도 리드는 고통 을 낮추는 기술이 발견되기 전에 번역된 성서가 후대의 과학적 진전을 반영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이 한 예이다. “내가 너의 슬픔과 임신을 크게 늘리겠다. 너는 슬픔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 이다.”(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children.)27) 이 번역은 출산을 불행, 고통, 슬픔과 자동적으로 연관시킨다. 그리고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신의 섭리로 믿었 다. 오늘날 현대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출산 때의 고통을 없애지는 못하 고 있다. 출산의 고통을 신의 명령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지만 창 세기 3:16을 전통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여성 비하적인 생각은 출산의 고통처럼 건재한 듯하다.
23) Tzvi Novick, “Pain and Production in Eden: Some Philological Reflections on Genesis 3:16”,Vetus Testamentum 58 (2008), 235-244.
24) Linda S. Schearing, “Parturition (childbirth), Pain, and Piety: Physicians and Genesis 3:16a”, Cheryl A. Kirk-Duggan and Tina Pippin, eds., Mother Goose, Mother Jones, Mommie Dearest: Biblical Mothers and Their Children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9), 85-96
25) 토마스키즈는1846년12월19일에영국에서수술의고통을줄이기위해마취를처음사용 했고, 한달 후 스코틀랜드 의사인 제임스 영 심슨(James Young Simpson)이 출산 때 마취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Thomas E. Keys, The History of Surgical Anesthesia (Park Ridge, Ill.: Wood Library, Museum of Anesthesiology, 1945); Schearing, “Parturition (childbirth), Pain, and Piety”, 88.
26) Grantly Dick Read, Childbirth without Fear: The Original Approach to Natural Childbirth, 5th ed. (New York: Harper & Row, 1984); Schearing, “Parturition (childbirth), Pain, and Piety”, .93
27) NKJV는 뒤 행에서 KJV의 ‘in sorrow’(슬픔 속에서)를 ‘in pain’(고통 속에서)으로 바꾸었고 나머지는 똑같다.
3.3.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욕망하나, 남자는 그녀를 지배한다?
창세기 3:16하반절은 상반절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문자적인 번역은 이러하다. “그리고-네-남자에게 네-욕망이 (있다). 그리고-그가(그것이) 다스 릴-것이다-너를.” 도대체 무슨 말일까? 첫째 행은 여자가 성적인 욕망이 있어 서 남자를 원한다는데, 둘째 행은 ‘그가(그것이) 여자를 다스릴 것’이라고 한 다.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다스린다는 말도 남자가 여자의 욕망을 다스리 는 것인지, 여성의 삶 전반을 ‘지배’한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둘째 행의 주 어인 ‘후’(הוא)가 정말 인칭대명사로서 선행한 ‘남자’를 가리키는지도 물을 수 있다. 이 구절이 상반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체 창세기 1-3장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 여러 질문을 가지고 학자들이 견해를 쏟아놓았다.
먼저 이 구절에서 남자의 지배와 위계질서가 들어 있다고 인정한 채 페미 니스트 해석을 펼친 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창세기 2-3장에 대해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 해석을 가장 먼저 시작한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수 사비평을 가지고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주제로 읽는다.28) 이것은 전통적인 해석 틀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는 똑같이 불순종하였고, 결과 에 대한 책임도 같이 진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옛 해석과 다르다. 트리블은 여 자는 저주를 받은 적이 없고 여자에게 내린 판결이 가장 심하다는 주장은 말 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하나님이 뱀에게 “너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시고, 남자와 관련해서는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 셨을 뿐이다. 저주는 여자에 대한 판결에서는 언급되지도 않는다. 저주는 뱀 과 땅이 받았고, 인간은 받지 않았다.
트리블은 창세기 3:16하반절을 “네 남자(אישך)가 네 욕망이지만,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로 번역한다. 트리블에게 이것은 불순종 때문에 생겨난 타락 의 모습이다. 여자는 노예가 되는 것으로 타락하고, 남자는 주인이 되는 것으 로 타락했다. 두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원래 둘 사이에 있던 상호관계(동등성,상호성)가 사라지고 대신 위계질서, 지배가 생겨났다.29) 전통적인 해석이 이 구절을 사회에서 여성의 부차적인 지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트리블 은 창세기 3장 이야기를 남성중심적 사회에 대한 비평으로 읽었고, 전통적인 해석을 도발적으로 비튼 것이다.
필리스 버드(Phyllis Bird)는 역사비평을 써서 창세기 1-3장을 다룬다.30) 버 드는 창세기 1:1-2:4상반절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자료와 비교할 때 인간 에게 보통 고대 중동의 왕족이나 신들에게 주어진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면에 서 급진적이라고 관찰한다. 그러나 이 사제문서는 남녀의 생물학적 관계를 다루지만 당대의 사회적 역할이나 규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버드에 의하면 창세기 2:4하반절-3:24의 야훼문서는 섹슈얼리티를 심리사회적으로 다루고 남녀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준다. 버드는 이 두 문서 모두 형식과 관점이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한다.31) 그러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의 대 등한 사회적 관계, 동반자 관계였다고 본다.32) 버드도 트리블처럼 창세기 3장 에서 지배와 종속이 생겨났다고 본다.
트리블과 버드와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마이어스도 같은 세대 페미니스트 그룹에 속한다. 마이어스는 앞에서 창세기 3:16상반절의 원인론적인 배경으 로서 왜 여성이 출산을 많이 해야 했는지를 인류학과 고고학 측면에서 설명 했다. 마이어스는 임신이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의 위험 때문에 여성이 임신을 꺼렸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 자신의 성적인 욕망과 남편의 통 제 때문에 극복된다. 그러나 통제란 여성의 복종과 열등함의 문제가 아니다.여성의 성적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집단과 가족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이것 은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위해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것과 남성의 에고를 만 족시키기 위해 통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마이어스는 창세기3:16을 이렇게 번역한다.33) “내가 너의 수고와 임신을 크게 늘릴 것이다. 진통 하며 너는 아이를 낳을 것이다. 너의 남자에게 네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 고 그가 네게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predominate).” 이 해석은 16절 상반절과 하반절을 자연스레 연결시킬 수 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번역 및 전통적 해석에 도전한다.
린 벡텔(Lyn Bechtel)은 마이어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왜 여자의 욕망 을 통제해야 하는지를 묻는다.34) 여자는 생명을 낳는 성적인 힘을 갖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여자는 남자를 향한 성적 욕망과 집단의 생계 활동에 물리적 인 노동(이짜본 עצבון)으로 기여한다. 벡텔은 ‘그가 너를 지배한다’(ימשל-בך)는 번역을 받아들이면서 본문은 전체 여성의 삶을 지배한다는 말이 아니라, 여 자의 성적인 욕망만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여성의 성적인 힘은 생명이나 죽음을 낳을 수 있으므로 잘 돌보고 존중해야 한다. 둘째, 집단 중심의 사회에서는 집단과 가족이 정체성과 돌봄의 근원이다. 여성의 힘이 가족과 사회를 세우므로 집 단과 가족의 경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트리블 이후 세대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창세기 3:16을 해석할 때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애드리언 블레드스틴(Adrian Bledstein)은 창세기 3:16하반절을 “너는 네 남편에게 강력하게 매력 적이다. 그러나 그가 너를 다스릴 수 있다.”(You are powerfully attractive to your husband, but he can rule over you.)로 번역한다.35) 야훼는 여자에게 말할 때, 여자는 책임적인 존재이고, 그녀의 에로틱한 매혹이 파워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여자는 ‘욕망’ 때문에 남자의 발밑에 던져지지 않는다. 실은 에덴 밖의 삶에 대해 주의를 듣는 것이다. 곧 여자의 매력이 남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고대 세계의 전설과 신화에서 남자가 여자의 매력 에 넘어가서 운명이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다.
블레드스틴은 이 해석을 창세기 4:7과 비교해서 도출한다. 하나님이 아벨 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셔서 가인은 화가 났다. 그 때 하 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말씀 중에 “...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 죄의 욕구가 너 에게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릴 것이다.”(창 4:7)고 하셨다. 블레드스틴은 여 자와 남자의 관계가 죄와 가인의 관계와 같다고 본다. 가인은 죄의 유혹을 이 기고 죄를 지배할 것이다. 이처럼 남자는 여자의 매력이 강할지라도 그 매력 에 넘어가지 말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곧 창세기 3:16은 인간이 자 신의 욕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할 권위를 준다는 말이 아니다.
새번역 이나 공동개정 이번역한것처럼최초의남녀가이제서로힘겨 루기를 하며 살 것이라는 이해도 새로이 대두되었다. 해밀턴은 블레드스틴처 럼 창세기 3:16의 ‘테슈카’(תשוקה 욕망)가 가인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죄의 욕 망(창 4:7)과 비슷하다고 본다.36) 그러나 결론은 다르다. 해밀턴에게 이 욕망 은 ‘동등한 관계를 깨고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만들려는 욕망’이고, ‘죄 많은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폭군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다. 이제 두 사람은 하나 님의 창조를 동등하게 통치할 수 없고, 서로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는 치열한 분쟁을 한다.
김정우는 이 본문에 들어 있는 생략을 통한 이중 효과를 가지고 비슷한 이 해를 제시한다.37) 창세기 3:16하반절의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개역)는 상반절에 나오는 출산의 고통과 어울리지 않으므 로 히브리 시의 평행법의 관점에서 다루고, 특히 핵심 용어(테슈카 תשוקה, 마 샬 משל)와 구문구조가 비슷한 창세기 4:7과 비교하여 다룬다. 창세기 4:7의 앞 행에서 의미상의 주어는 ‘죄’(하타트 חטאת)이므로 ‘죄’를 삽입하여, “죄의 소”)משל은 너를 향한다.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마샬)תשוקה원(테슈카 로 번역한다.
여기에는 생략법이 있으므로, 단어를 재배열하여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죄가 너를 [다스리기를] 사모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도록 [사모하 여야 한다].” 곧 죄와 가인은 서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김정우는 이것을 창세 기 3:16에 적용하여, “너는 남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고(테슈카 תשוקה), 남 편은 너를 다스리기를(마샬 משל) [사모할 것이다].”로 번역한다.38) 결국 김정우는 최초의 여자와 남자는 서로 지배하려는 욕망을 갖고 살게 되고, 이것이 타락의 결과라고 본다. 이 결론은 히브리어 구문과 문법상 하나의 가능한 해 석이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권력투쟁이나 가정에서의 부부싸움이 신의 명 령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 번역은 상반절에 나오는 다산 과 고통 속의 출산이라는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 듯하다.
수잔 포(Susan Foh)도 이 구절을 여자와 남자와 힘겨루기로 보고, 그 투쟁 의 결과는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9) 그래서 여자의 욕 망은 남자에 대한 성적인 욕망이 아니라 독립을 위한 욕망, 곧 남편을 지배하 려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 또한 창세기 4:7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죄의 욕망이 가인에게 있으나 가인은 이 욕망을 다스리고 죄를 극복해야 한다. 가 인이 죄를 극복했는지 그 결과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타락 때문에 남자는 여 자를 쉽게 지배하지 못한다. 가인이 죄와 싸우듯, 남자도 여자와의 관계에서 주권을 잡으려고 싸워야 한다. “네가 통제하려는 욕망이 네 남편을 향해 있지 만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 포는 인칭대명사 ‘후’(הוא)가 강조 용법으로 쓰 였고 남자의 지배를 강조한다고 본다.
28) 필리스 트리블,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 , 유연희 역 (안양: 태초, 1996), 199-203;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 (Philadelphia: Fortress), 1978.
29) 트리블은 수사비평을 가지고 어떻게 아가가 이 두 사람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 , 제5장
30) Phyllis Bird, Missing Persons and Mistaken Identities: Women and Gender in Ancient Israel(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7), 138, 144.
31) Ibid., 166
32) Phyllis Bird,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Gen. 1:27b in the Context of the Priestly Account of Creation”, Harvard Theological Review (1981), 153.
33) C. Meyers, Discovering Eve, 118.
34) Lyn Bechtel, “Interpretation of Genesis 2:4b-3:24”, A Feminist Companion to Genesis,
Athalya Brenner, ed. (Sheffield: Sheffield, 1993), 104.
35) Adrien Bledstein, “Are Women Cursed in Genesis 3:16?”, A Feminist Companion to Genesis,
Athalya Brenner, ed. (Sheffield: Sheffield, 1993), 141-145
36) V.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202.
37) 김정우, “히브리 시의 평행법과 성경 번역의 문제: 제2부, 실례들”, 「성경원문연구」 20
.7-29 ,)2007(
38) 그래서 김정우는 창세기 3:16과 4:7에 나오는 ‘테슈카’(תשוקה)가 울릿이 말하는 ‘이성을 향
한 성적인 욕망’이 아니고(L. Ouellette, “Woman’s Doom in Genesis 3:16”, Catholical Biblical Quarterly 12 [1950], 389-399), 버즈닛이 말하는 ‘남성과의 친밀성을 나누려는 심리 적 필요성’도 아니라고 본다(I. A. Busenitz, “Woman’s Desire for Man. Genesis 3:16
Reconsidered”, Grace Theological Journal 7 [1986], 203-212). 또한 ‘마샬’(משל)도 데이빗슨 처럼 ‘잘 보살피다’로 볼 수 없고, ‘권위를 행사하다, 지배하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김정우, “히브리 시의 평행법과 성경 번역의 문제”, 12
39) Susan Foh, “What Is the Woman’s Desire?”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1974/75), .376-383
3.4. ‘후’(הוא)를 테슈카로 보거나 앞 행 전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기: “네욕망이너를다스릴것이다”또는“네욕망이네남자를 향해 있다는 것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이 입장은 우리가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 구절에서 흔히 ‘후’(הוא)를 남성 인칭대명사 ‘그’로 해석했지만, ‘후’(הוא)는 지시대명사 ‘그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나온 ‘너의 욕망’을 가리킬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 다. ‘욕망’은 여성형이고 ‘후’(הוא)는 남성형이지만, ‘후’(הוא)가 선행하는 여 성 명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40) 나는 이 생각을 떠올리고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나보다 앞서 이 생각을 제안한 경우를 발견했다.41) 그리고 한 발 나아가 ‘후’(הוא)가 바로 앞의 행이 진술한 사실 전체를 가리킬 수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이 견해를 구문 상으로 뒷받침한 후 거기에 ‘마샬’(משל 다스리다, 지배하다)의 다른 의미를 보태어 “그것(너의 욕망)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또는 “네 욕망이 네 남자를 향해 있다는 것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의 새로운 이해를 다루고자 한다.
라벗 배숄즈(Robert I. Vasholz)는 창세기 3:16하반절을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he will rule over you)가 아니라 “그것(너의 욕망)이 너를 다스릴 것이)הוא(’다”(that will rule you)라고 번역한다. 역시 위에서 언급한 이유, 곧 ‘후 가 여성 명사를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 ‘후’(הוא)는 오경에서 흔히 지시 대 상과 문법적인 성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42) 문법학자들도 이 현상에 대해 만족스런 설명을 찾지 못했다. 현재 본문은 ‘후’(הוא) 뒤에 남성형 동사 가 나온다. 이럴 경우에 여성형 동사가 ‘후’(הוא)를 받는 경우를 찾는다면 우리 의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 해주겠지만 그런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후’(הוא)가 ‘테슈카’(תשוקה)를 받을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이 끝나기 전에 다시금 이 최초의 여자는 남성 인칭대명 사 ‘후’(הוא)로 지칭된다. 창세기 3:20하반절, “그녀가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의 원문에는 ‘그녀는’이 별도의 주어로 강조되어 나온 다. 이 때 ‘그녀는’이 여성 인칭대명사 ‘히’(הוא)ִ가 아니라 남성 인칭대명사‘후’(הוא)이다. 모음 부호가 ‘히’(הוא)ִ로 되어 있기는 해도 앞의 3:16처럼 이‘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남성형을 받는다는 것은 창세기 3:16을 상기시킨다. ‘후’(הוא)가 선행하는 여성 명사를 가리키는 경우에 마소라 학자들은 종종 모 음부호를 ‘히’(הוא)ִ로 붙여놓았다. 문맥이 확실히 여성을 가리킨다고 판단한)הוא(’로 붙여놓았다. 그러나 창세기 3:16하반절의 경우에 ‘후ִ)הוא(’경우에 ‘히 가 남자를 가리킨다는 학자들의 가부장적 전제 때문에 ‘히’(הוא)ִ로 바꾸지 않 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구문상 ‘후’(הוא)가 앞의 진술 전체를 지시할 수 있다.43) 삼인칭 인칭 대명사는 중성으로 사용되어 방금 말한 행동이나 상황 등을 가리키기도 한 다. 신명기 4:6, “(규칙과 규정을) 지키고 실천하십시오. 그것이 이 모든 규칙 을 듣는 민족들 눈에 여러분의 지혜와 분별력으로 보일 것입니다.”에서 하반 절의 ‘후’(הוא 그것)는 바로 앞에서 말한 진술 전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창세 기 3:16하반절을 “너의 남자를 향해 너의 욕망이 있다. 바로 그 점이 너를 다 스 릴 것 이 다 ” 로 볼 수 있 다 . 곧 여ִ 자 는 남 자 를 향 해 성 적 인 욕 망 을 갖 고 있 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 번역은 상반절과도 의미가 통한다. 여자의 통제 하지 못하는 성적인 욕망 때문에 임신이 많아질 것이다.
‘욕구’, ‘욕망’을 뜻하는 ‘테슈카’(תשוקה)는 아가 7:11에도 나오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네. 그리고 나를 향해 그의 욕망이 있다네.”라고 말한다. 아가 본문에서는 ‘테슈카’(תשוקה)가 성적인 욕망, 사랑 의 욕구를 가리킨다는 것이 더 분명히 나타난다. 창세기 3:16과 아가에서 욕 망하는 주체는 사람이고, 둘 다 여자이다. 창세기 3:16에서 ‘너의 욕망’은 자 신의 남자를 향한 여자의 욕망이다. 여자가 남자를 욕망하기 때문에 임신을 할 것이고, 출산이 고통스럽지만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라는 뜻으로 본 다. 곧남자를향한여자의욕망, 욕구가이길힘을준다는것이다.
이렇게번역할때다음과같은유익이있다. 우선이번역은상반절에서나 온 출산의 고통과 잘 연결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인을 보호하기 위해 표를 찍어주신 것처럼(창 4:15) 여자에 대한 심판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자애 로우신 하나님은 여자에게 견딜 힘을 주신다. 이 번역은 여자를 승리자로 묘 사한다. 여자는 역경을 극복하고 이길 것이다. 여자의 사랑하는 힘이 앞으로 의 고난을 이겨내게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창세기 2-3장에 묘사된 여자의 모습과 일관성이 있다. 트리블이 관찰한 바와 같이 여자는 대표성을 갖고서 뱀과 지 적이고 심미적이고 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44) 여자는 선악과를 먹는 것을 선택했고 옆에 있던 남자에게도 주었다. 여자는 이제 그 결과도 책임질 것이 다. 에덴 밖의 척박한 삶에서 여자는 책임적이고 힘이 있는 존재로 살 것이다.그녀는 남자를 향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그 욕망의 결과에 책임을 질 것 이다.
그런데 욕망의 다스림을 받거나 지배를 받는다고 해서 여자가 욕망의 노예 가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동사 ‘마샬’(משל)에 창세기 1장에서의 쓰임새를 적 용할 수 있다. 하나님은 두 개의 큰 빛을 만드시고 큰 빛은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은 밤과 별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렇게 빛나는 것들이 낮과 밤 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16, 18). 그런데 똑같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남רדה(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는데 동사가 다르다 라다; 창 1:26, 28).
루드빅 쾰러와 발터 바움가르트너(Koehler and Baumgartner)의 사전은 ‘라다’(רדה)가 억압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 다.45) 인간이 다른 생물을 다스릴(רדה 라다) 때 지배와 피지배 개념이 있다면,큰 빛과 작은 빛이 낮과 밤을 다스릴(משל 마샬) 때는 시적이다. 이 다스림은 주종관계나 예속관계라고 볼 수 없다. 큰 빛이 낮을 다스리듯, 작은 빛이 밤을 다스리듯 욕망이 나를 다스릴 것이다.
데이빗슨(R. M. Davidson)이 관찰하듯 이 ‘마샬’(משל)은 성서의 여러 구절에서 돌보고 위로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46) 몇 가지 예로, 이사야 40:10의 “만군의 주 하 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와 사무엘하 23:3의 “...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왕은... 아침 햇살과 같다.”를 들 수 있다. 단어는 동일하지만 내용은 지배와 예속이 아니다. 그래서 “너의 욕망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또는 “너의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는 자신의 욕망에 압도되는 한 여자의 모습이다.
설사 ‘후’(הוא)를 남자 ‘그’로 받는다고 해도 앞 행과 연관해서는 지배와 예 속으로 보기 어렵다. 앞 행이 “너의 남자를 향해 너의 욕망이 (있다).”고 했는 데 뒤에서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로 번역하면 앞뒤의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원하는 여자의 바람을 무시하고 그냥 지배한다는 말처럼 들 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 행의 ‘욕망’의 뉘앙스를 뒤에서도 살리자면 ‘그가 너 를 이끌어갈 것이다’도 좋을 것이다. 곧 “너의 남자를 향해 너의 욕망이 있지 만 그가 너를 이끌어갈 것이다”가 된다. 이 이해는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 남 자가 적극 주도하던 문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쨌든 적어도 이 이해 는 여자와 남자 사이에 지배와 예속은 아니고, 임신과 출산을 말하는 창세기3:16상반절과 문맥이 통한다. 최초의 번역자들 이래로 창세기 3:16하반절의 앞 행과 뒤 행을 성적인 욕망의 맥락으로 연결하여 번역하지 않은 것은 어쩌 면 번역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욕망을 배제하고 거룩하게 번역하려고 했기 때 문일 수 있다.
이제 ‘후’(הוא)를 ‘너의 욕망’으로 보거나 앞 행의 진술 전체를 받는다고 하 는 우리의 이해를 가지고 창세기 3:16의 최종 번역을 두 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다. 상반절의 ‘이짜본’(עצבון)은 노동의 수고를 가리킨다고 번역할 것이다.그래서 노동의 수고와 잦은 임신을 별도로 표현할 것이다. 하반절만 두 가지 로 다르게 번역할 것이다.
첫째는 하반절의 뒤 행에서 ‘후’(הוא)를 앞의 ‘너의 욕망’으로 보는 번역이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수고도 많이 하고 임신도 많이 할 것이다.
너는 진통하며 아이를 낳을 것이다.네 욕망이 네 남자를 향해 있다.
그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둘째는 하반절의 뒤 행에서 ‘후’(הוא)를 앞 행 전체를 받는다고 보는 번역이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수고도 많이 하고 임신도 많이 할 것이다.
너는 진통하며 아이를 낳을 것이다.네 욕망이 네 남자를 향해 있다.
너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이 번역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나 둘 사이에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신의 당위인양 표현하는 것에서는 일단 탈피했 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의 틀 안에 있다는 점이다. 여자는 여전히 생존을 위해 노동하고 수고하며,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출산을 한다. 그러면 서도 자신의 남자를 욕망하고 그 욕망에 압도된다. 브레너가 지적한 대로 창 세기 1-3장에서 성과 재생산에 관한 성서의 관점은 이미 편향되어 있다.47) 재 생산의 의무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비대칭적으로 짐을 지운다. 그래서 상 대를 그리워하는 것조차 여자에게 의무로 지워진다. 이것이 여자가 자신을 더 그리워해주기를 바라는 가부장적인 남성 화자의 환상을 반영한다고 하더 라도 그렇다.
40) 라벗 배숄즈는 창세기 안에서 ‘후’가 선행하는 여성 명사를 가리키는 경우를 찾아놓았다.창 3:20; 4:22; 7:2; 10:12; 12:14, 18, 19; 14:17; 19:20, 38; 20:35; 22:24; 23:2, 15, 19; 24:44; 25:21; 26:9; 27:38; 29:25; 34:14; 35:6, 19, 20, 27; 37:2; 38:14, 16; 43:32; 47:6; 48:7. Robert I. Vasholz, “‘He (?) Will Rule Over You’: A Thought on Genesis 3:16”, Presbyterion 20:1 .51 ,)1994(
41) R. Vasholz, “‘He (?) Will Rule Over You’”, 51-52. 배숄즈는 ‘후’가 여성 명사 ‘욕망’을 가리 킨다고 주장하면서 흥미롭게도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창 4:7에서 남성 대명사 어미가 ‘욕 망’을 가리키는 것(תמשל-בו 팀샬-보, ‘너는 그것을 지배할 것이다’)을 관찰한다. 또한 창 4:7에서 여성 명사 ‘하타트’(חטאת 죄)가 구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여기서 남성 명사처럼 다루어 진 것도 관찰한다(אליך תשוקתו 엘레카 테슈카토, ‘너에게 그[죄]의 욕망이 있다’). 주 2.
42) Andrew B. Davidson, Introductory Hebrew Grammar: Syntax, 3rd ed. (Edinburgh: T & T Clark, 1985), 2; B. K. Waltke and M. O’Connor, A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 Syntax(Winona Lake: Eisenbrauns, 1990), 302도 ‘후’(הוא)가 자주 이렇게 쓰인다고 한다.
43) John C. L. Gibson, Davidson’s Introductory Hebrew Grammar: Syntax (Edinburgh: T. & T. Clark, 1994), 3.
44) 필리스 트리블,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 , 4장.
45) Ludwig Koehler and Walter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2 (Leiden: Brill, 2001), 1190.
46) R. M. Davidson, “The Theology of Sexuality in the Beginning: Genesis 3”, Andrew University Seminary Studies 26 (1988), 121-131.
47) Athalya Brenner, The Intercourse of Knowledge, 4장.
4. 결론
우리는 위에서 같은 성경 구절인 창세기 3:16에 대해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원문도 여러 번역의 여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함께 다루었다. 이 구절에 대한 많은 전통적인 번역들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할 것이다”를 포함하였다.
우리는 한글 번역 성서들이 새로운 번역이 나왔지만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번역을 담고 있고 게다가 상반절과도 문맥 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본문의 어휘와 문법과 표현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새로운 번역의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문맥도 통하면서 덜 여성 억압적인 우리말 번역을 시도하였다.
우리의 번역인 “너는 수고도 많이 하고 임신도 많이 할 것이다. 너는 진통 하며 아이를 낳을 것이다. 네 욕망이 네 남자를 향해 있다. 그 욕망이 너를 지 배할 것이다” 또는 “너는 수고도 많이 하고 임신도 많이 할 것이다. 너는 진통 하며 아이를 낳을 것이다. 네 욕망이 네 남자를 향해 있다. 너는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속의 여자는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양육하고 남자를 사랑 한다.
우리가 이 번역을 가지고 최초의 여자가 죄와 죽음에 책임이 있는 신적인 존재라는 혐의(?)를 벗겨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의 번역이 결국 이 여자를 자신의 남자를 사랑하여 기꺼이 임신을 하고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보통 여자의 위치로 전락(?)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자신의 남자를 향한 꾸준하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희생된 최초의 로맨티스트로 등극시켰는지 모른다. 그 또한 성서 화자가 여자에 대해 가진 바람이나 편견을 배제하지 못한 번역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남자와 여자의 지배나 힘겨루기는 배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번역자는 새 시대의 독자를 위해 새 본문과 새 언어를 창조한다. 성서 번역은 다른 문학 번역처럼 창의적이고 예술적일 수밖에 없다.
<주요어>(Keywords)
.)הוא(창세기 3:16, 하와, 번역, 페미니스트 해석, 히브리어 지시대명사 후Genesis 3:16, Eve, Translation, Feminist Interpretation, Hebrew Demonstrative Pronoun hû’.
(투고 일자: 2014년 2월 13일, 심사 일자: 2014년 2월 21일, 게재 확정 일자: 2014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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