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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가지 산해진미 우려낸 음식, 맛에 감동한 손님이 시 짓기도
외국 정상 만찬에 자주 올라… 중국의 경제대국 성장에 기여
불도장은 덩샤오핑과 주요 외국 정상의 만찬에 자주 등장한 요리다. 사진은 덩샤오핑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불도장이라는 고급 중국요리가 있다. 스님이 담 너머에서 풍기는 냄새에 식욕을 참지 못해 담장을 뛰어넘고 파계했다는 요리다. 이름이 부처 불(佛), 뛰어넘을 도(跳), 담장 장(墻)자를 써서 불도장이 된 유래다.
샥스핀·전복 등 산해진미로 만든 음식
불도장은 어떤 음식일까? 전통 방식대로 만들려면 서른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상어 지느러미 샥스핀, 말린 전복과 해삼, 사슴꼬리 등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산해진미와 겨울에는 벌레 여름에는 버섯이 된다는 동충하초, 말린 표고버섯과 죽순, 구기자 등을 중국 전통 명주인 소흥주 항아리에 넣고 밀봉한 후 하루 종일 고아 만든다.
불도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먹는 순서도 중요한데 먼저 뚜껑을 열어 냄새를 음미하는 것이 첫 번째다. 이 단계에서 벌써 스님이 파계를 했다는 것이니 그 맛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진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맛보는 것, 마지막이 갖가지 재료를 하나씩 꺼내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 스님이 파계했다는 불도장의 전설은 사실일까? 아니다. 맛에 감동한 손님이 지은 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창작이다.
“그릇 뚜껑 열자 맛있는 냄새 사방에 퍼지니/스님마저 참선을 포기하고 담장을 뛰어넘네.”
중국 남부에서 만든 지방 특선 요리
또 하나, 유명 호텔 중식당 등에서는 불도장을 청나라 황제가 즐겨 먹은 보양식이라고 선전하는데 사실 청나라 황제는 불도장을 먹기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이 음식은 역사가 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황제가 살던 시절 베이징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던 지방 특선요리에 불과했다.
불도장은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처음 만들었다. 청나라 말기 푸젠성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관청 감독관을 대접하려고 만든 음식이 불도장의 뿌리다. 속된 말로 감독관을 구워삶으려고 좋다는 재료는 모두 동원해 한번 맛보면 반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 만찬요리로 유명
이런 불도장이 중국에, 그리고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84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 요리로 차려지면서였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이듬해인 1979년 미국과 공식으로 국교를 수립한 이후 서방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3,4년 동안 모두 서른 차례 정상회담이 열렸을 정도다.
이 무렵 중국 외교의 특징은 만찬이었다. 중요한 외국 정상을 초청한 후 황제에 준하는 예우로 대접했다. 예를 들어 청나라 황제의 행궁인 조어대(釣魚臺)에서 최고의 요리로 만찬을 열거나 인민대회당에서 황제가 먹었다는 요리로 오찬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중요한 정상들의 만찬에 등장한 요리가 바로 불도장이었다. 예를 들면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그리고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을 불도장으로 대접했다.
미국과 영국 정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캄보디아 국왕은 왜 극진히 대접했을까? 당시 중국에게 캄보디아는 중요한 나라였다. 북한 김일성이 동쪽에서 미국을 막아주는 방파제였다면 시아누크 국왕은 서쪽에서 미국을 막고, 중국과 전쟁을 한 베트남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당시 베이징의 최고 요리사를 모두 제쳐놓고 푸젠성의 불도장 전문 음식점 요리사를 직접 베이징으로 불러와 만찬을 준비했다. 이렇게 지방의 특산요리와 요리사를 동원한 이유는 불도장이 황제조차도 먹어보지 못한 최고의 요리였기 때문이다. 서방 세계는 물론이고 중국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최고 보양식, 스님조차 식욕을 참지 못해 담장을 넘었다는 깜짝 놀랄 만한 요리로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반영돼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음식으로 손님 대접한 중국의 노력
지금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돼 큰소리를 치는 중국이지만 불과 30년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외자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로, 선전을 비롯한 네 곳에 경제특구를 만들었지만 외국 자본은 일부 화교자본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불도장을 처음 만들었다는 푸젠성 금융기관의 책임자처럼 열과 성을 다해 외국 손님을 대접하면서 투자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단지 거대한 시장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당시 중국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처절하게 노력했다. 그 흔적이 바로 불도장에 남아있는 것이다.
개혁개방을 통해 가난한 나라 중국을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킨 덩샤오핑의 식탁에는 어떻게 해서든 외국 투자자의 주머니를 열려는 지도자의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 불도장에 얽힌 또 다른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