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5일 토요일 (흙날) 날씨는 맑았으나 미세먼지가 많고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붊
제목 : 공룡의 고장 고성을 다녀오다. (상족암2)
우리는 당항포 관광단지를 떠나 상족암으로 향했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부르고 난 뒤에야 흥이 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상족암으로 방향을 잡은 뒤 회화면을 걸쳤다. 그러고보니 회화면은 며느리가 처녀 시절에 근무하던 곳이 있다. 회화중학교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 사천성 중국집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식당이 넓고 쾌적하게 보였다. 음식도 깔끔했다. 난 마침 세트로 선보이는 1인용 탕수육과 짜장이다. 그리고 집사람은 새우해물볶음밥이다. 음식이 나왔는데 짜장도 손으로 직접 빚은 짜장이다. 일명 수타짜장이다. 그래서일까? 더 맛이 있다. 요즘은 중국집에 가더라도 다 기계로 빼니 면의 크기가 일률적이다. 그러나 손으로 빼면 대부분 일률적이지만 그래도 조금 굵고 가는게 나온다. 또한 더 쫄깃쫄깃하다. 1인용 탕수육도 10여 점이 넘었다. 집사람 양도 많았다. 더구나 덤으로 군만두를 주니 더욱 배가 불렀다. 우리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상족암으로 향했다. 상족암을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상족암을 『일명 '쌍발이'라고도 불리는데,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듯한 수성암 절벽이 우뚝 솟아 있어 마치 변산 반도의 채석강을 옮겨 놓은 것처럼 기묘하고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이 부근의 6km쯤에 이르는 바닷가에는 중생대 백악기(1억 4,000만∼6,500만 년 전) 무렵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과 새의 발자국이 3,000여 개나 남아 있다. 또한 상족암 부근의 동굴 바닥에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는데, 마치 공룡이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형태를 보여 준다. 이 발자국 화석은 지난 1982년 경북 대학교 양승영 교수 팀에 의해 처음 발견됐고, 그 뒤로 학계의 집중적인 연구에 힘입어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의 산지로 공인받았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이라고 했다. 상족암은 여러번 가본 곳이다. 제일 먼저 우리 가족과 아주 오래전에 간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바닷가 마을에 주차를 한 뒤 올라가서 구경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집사람이 끝나고 그리고 가보자고 해서 그 위치를 찾기도 했다. 거언 1시간 가량 걸려 상족암 군립공원에 들어섰다. 먼저 입장료는 없고 주차비만 1,000원을 지불한 뒤 우리는 공룡박물관으로 올랐지만 공룡박물관에는 들어가지 않고 바로 상족암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룡박물관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병풍바위가 눈에 띄었다. 병풍바위를 촬영하면서 우리는 상족암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역시 여러 모형의 재미있는 공룡들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공룡 모양을 한 미끄럼틀도 있었다. 상족암에 내려가니 정말 바닷색깔이 옥색으로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 우리들의 출입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이미 여러 명의 관광객들이 저마다 사진 찍느니라 줄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러번 왔지만 올때마다 자연의 섭리를 감탄하고 있다. 온 바위가 떡시루들이다. 어떻게 이런 형태의 바위들이 생성되었을까? 사람들이 아무리 건축술이 뛰어난다고 하더라고 이렇게는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 틈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촬영하고 데크길을 걷다가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공룡박물관으로 갔다. 하지만 입장 시간이 지났다고 입장을 거부당했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때가 5시 40분이니까 20여분 관람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입장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주차장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집사람이 옛날 가보던 곳에 한 번 가보자고 해서 그리 갔다. 그랬더니 그 당시 생각이 났다. 이제 바로 집으로 오는 길은 사천을 거쳐 곤양 IC로 진입 집에 왔다. 7시가 넘었다. 참 딸 덕분에 유익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