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억에 남는 음식이, 없다.
“아~~~”
땅이 꺼질 듯 절로 긴 한숨이 난다.
큰 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의식을 치르며 성장하고 싶어서 신청한 글쓰기 수업.
그 두 번째 과제 앞에서 난 이렇게 긴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른다. 설거지를 하다가 ‘설거지만 수 천 번 일텐데, 기억엔 남는 음식이 없다니.’, 장을 보러 갔다가는 ‘자, 자, 음식을 떠올려보라고.’ 하며 닦달하고 내내 질문도 해보지만 ‘아하!’하고 딱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심지어 그렇게나 먹을 것을, 먹는 곳을, 먹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내가, 음식이라는 주제 앞에서 떠오르는 것이 없다니......
혹시, 그 일 때문일까?
초등학교 2학년 이전까지 부모님은 어린이날엔 ABC 과자를, 크리스마스에는 종합선물세트를 사주셨다. ABC 과자는 가로가 세로보다 좀 더 긴 네모 모양의, 알파벳이 잔뜩 적힌 종이 박스 안, 비닐 속에 있었다. 그 비닐 안에는 A부터 Z까지 알파벳 모양의 과자가 우유와 버터(?)를 듬뿍 머금고 기다리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는 그 순간, 진한 향과 함께 단조로움 없는 스물 여섯 개 각각의 모습(심지어 미국 글자라니)을 드러내는 것이 좋았다. 달력의 빨간 날인데도 부천에서 서울로 가게를 운영하러 나가시면서 사주시던 과자는 내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린 부모님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온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ABC 과자의 고급스런 맛과 경쟁적인 놀이에 취해 괘 즐거운 어린이날을 보냈다. 그 놀이는 나랑 동생이 마주보고 앉아 가운데 놓인 과자를 뜯으면서 시작된다. 과연 누가 빨리 알파벳 순으로 과자를 바닥에 늘어놓는가, 승자가 A부터 Z까지의 완벽한 알파벳을 만들어 스물 여섯 개의 과자를 순서대로 몽땅 입안에 넣으면, 상대의 과자는 봉지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된다. 늘 Q나 E, M이 부족해서 과자 한 봉지로 A부터 Z까지 온전히 맞출 수 있는 회수는 겨우 두세 번 정도. 무한정 반복할 수 없다는 한정성과 패자는 한 봉지에 한해서는 부스러기조차 입에 넣을 수 없다는 긴장감이 놀이의 몰입도를 높였고 한 살 어린 동생이 속상해서 울면, 저녁에 돌아오실 부모님께 고자질을 할까봐 남은 과자를 다 주고 마무리를 했다.
삼십년 후 내가 낳은 아이의 어린이날을 챙기던 때, 이불이 깔린 방 가득한 과자의 맛과 향, 나를 긴장하게 만들던 둘째의 울음과 뽀글파마의 막내가 놀이를 하고 싶다며 떼를 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 장면들이 몇 번 몽글거리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분 좋은 추억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과자의 시간을 나의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동네 곳곳에 있던 가게를 돌며 ABC 과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과자는 우연히 들른 이마트 유기농 매장의 유아 간식코너에 있었다. 크기는 좀 작아진 듯 했지만 네모 종이 박스에 알파벳이 적혀 있는 기본 디자인의 외양은 변하지 않은 채 세워져 있었다. 한 박스는 나를 위해, 한 박스는 유년 시절을 자랑하고 싶은 신랑과 아이를 위해 샀다. 기쁘면서도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과자는 빨간 날도 쉬지 않고 일하는 부모님이 세 딸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며 내민 선물이고, 맏딸인 내가 동생들이랑 ABC 놀이를 하며 부모님을 기다리던 하루였으며, 우리 세 자매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유년의 어린이 날인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 ABC를 입에 넣고 맹맹해서 ‘예전과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부천의 맛이 사라졌다. 서울 가게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이상하게도 아빠는 가정 경제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만큼 가게에 있는 시간을 늘려야 했다. 집에 와서 엄마가 하던 집안일의 일부를 나와 동생이 돕기 시작했으며 부모의 따뜻한 부재(不在) 맛을 지녔던 어린이날 과자는 인형으로 대체되었다. 식구들이 가던 일요일 나들이 대신 엄마는 다음 주를 위해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해 놓으며 보내야 했고, 우리 셋은 그 인형과 장난감으로 오래오래 놀았다.
유년의 ABC를 만난 순간, 알게 되었다.
내게 유년의 음식은 반드시 행복 이후의 시간까지 동반한다는 것을.
커다란 자주색 고무통에 둘러 앉아 혀가 퍼래질 때까지 먹던 포도, 텔레비전 앞 뜨거운 방바닥에 모여 앉아 먹던 차가웠던 귤, 동그란 꽃무늬 상에서 먹던 일요일 늦은 아침의 계란 후라이.
어떤 음식도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다섯 가족이 먹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기억에 있는 모든 음식에 무감각해지고 싶다는 것을.
첫댓글 저도 사실 기억에 나는 음식을 기억해 내는게 힘들었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헛헛하네요
어떤 마음인지, 재아님의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글쓰기 수업 전에는 마음 저기 어딘가에 있어서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가끔 울컥하면, 막 정리해버리고 정리해버리고는 해서 마음속이 늘 헝클어진 상자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이제 천천히 시작하면 시간은 오래 결러도 .... 좀 더 정리된 삶이 되겠죠?
읽기 전과 읽은 후 제목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어요. '기억에 있는 모든 음식에 무감각해지고 싶다는 것'을 이 글을 쓰기 전에 짐작하신 건지, 다 쓴 후 든 생각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콩스탕스님의 글을 읽고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사실 마지막 문장은 다른 문장이었고, 꽤 여러번 바꿨었거든요.
그리고 동시에 아!! 오래오래 생각해서 만들어낸 문장을 누군가가 알아봐주는구나 싶었어요.
뭐 대단한 명문은 아니지만 마지막 문장이 밟혀서 글을 계속 읽었었거든요.
글쓰기수업 후에는 부족한 문장에 대해서 계속 곱씹어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문장입니다.
기억은 수동이기도 능동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심심님의 글이 입체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느 한쪽만이 아닌 다른쪽까지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잘 읽었습니다
모든 것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걸 늘 듣잖아요.
어떤 말들은 너무 자주 들어서 제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굉장히 표피적일때가 많았는데
신랑이 많이 아파서 같이 병원에 지내다가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를 읽으며 너무 적절한 이야기에
아하~ 하고 이해한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 생각해요. 좋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싫다고 너무 싫어하지 말자. 어찌 될지 누가 알겠어? ㅎㅎ
처음에 ABC과자는 사랑의 과자였는데 쓰다보니 다른 글이 되어버렸어요.
심심님 첫째 딸로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셨던 것 같아요. 동생이 행여 울음이 터질까봐 남은 과자를 다 줬다는 대목에서 저는 왜 울컥 하는지..
부모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어서 늘 오후가 되면 급하게 잘 마무리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때 는 맏이로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것 같은데.
요새 글쓰기를 하면서 그 미안했던 마음들이 자꾸 떠올라서 동생들이 조금 섭섭하게 해도 그때 내가 너희한테 그랬었으니까...갚아야지 하는 마음이 종종 들어요.
제목부터 마지막 문단까지. 심심님이 된 듯, 그렇게 글을 따라 제 마음도 움직였네요.
얼마나 시간이 지나고 글을 써야
조금 성장할 수 있을까, 덤덤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