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만 울면 익은 여름이다. 또
어느 곳을 달려간다. 공북리 구룡리 대곡
리 동암리 범계리 수곡리 신기리 신전리 용봉리 용사리 죽정리 평 리로
구선된 곡성
목사동면이다.
이름부터서 친근감을 주는 물살이 휙 돌아가는 목사동면 다리를 건너 구룡
리 마을로 들어서면 고려건국 당시 왕건의 죽음을 대신한
의리의 사나이요
충신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모신 용산재가 있다. 그래서 왕건은 신숭
겸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지사사(智妙寺)를 세워 명복을
빌게했던 고려 개
국공신중에 한 사람이다.
그의 유적지로 목사동면(木寺洞面) 구룡리(九龍里)에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이
배향되었다.
고려 건국 이후 장군은 곡성의 성황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곡성의
선비인 옥천(玉川)인 조중태(趙重台)도 시를 통해 이렇게 기리고 있다.
흡사 빼어난 영기가 먼 허공에 있는 것 같구나 /
선비님들 이 산중에서
제를 올리네
새 정자의 풍경, 오늘 어찌할까 / 큰 의리는 동방에서 공이 홀로
지녔네
성주(星州)인 이교창(李敎昌
도 사당을 덕산(德山) 남쪽에 중건하였는데/산과 더불어 높고
물도
함께 길구나
부녀자․아이도 신공(申公)의 충절 아노니 /지금도 기둥의 현액이
천향(天香)을 받드네.
죽곡면
원달리의 장군단이나 장군천, 무예를 익혔다는 신유봉(申遊峰)
등 장군과 관계된 지명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도
선조 때부터 오곡면
덕산리에 덕양서원을 세워 장군의 학문과
충절을 기려왔다.
일대의 지식인들을 그를 흠모하는 시로 추모하고 있다. 남원인(南原人) 양홍(梁洪)의
시에서는
비래산(飛來山)아래 구룡리(九龍里) / 그 남은 터는 신태사(申太師)가
전해지는 곳
삼척의
제단(祭壇) 새로 소제한 곳에 / 쓸쓸한 선비의 풍의(風義)는
세상에 드문 기이함이네
신숭겸(?~ 927. 태조 10)은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이었으며 휘(諱)는
숭겸이요, 시효는
장절공이다.공의 선대는 전라도 곡성 사람으로 , 뒤에
평산으로 관향을 받았다.태어나면서 몸이 장대하고 무용이 있었다.
918년
6월에 장군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등,4명은 은밀히
모의하여 궁예왕의 포악성에 반기를 들어 궁예를 폐위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였다.
927년(태조10년)에 견훤 군사가 신라를 침공하여 항복을 받은후,
노략질과 갖은 만행을 저질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평소
동맹관계인
신라를 돕고자 정예 5,000기병을 이끌고 공산의 동수(桐藪)에서
기다렸다.
신라를 침공하여 신라의 경애왕을 도륙하고
평정한후 사기 충천하여
회군하는 견훤군을 만난 고려군사들은 노독과 장기간 강행군으로 지쳐,
싸웠으나 매복된 견훤군사에 포위되어 전멸 지경에
이르러, 왕건은
신장군과 용모,위용이 닮았으므로 신장군이 어의(御衣)와 어차(御車)
로 변장하고, 왕건을 피신시킨후 김락 부장과 함께 독전하다가
지금의
파군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를 기리는 고려가로 1120년 예종임금이 서경에 행차하였을 때
팔관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태조 왕건을 구출하고 전사한 개국공신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 두 장수 를 추모하는 인형극을 보고
지은 시가 전하고
있다.
임을 완전하게 하신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고
넋은 갔지만 /내려 주신 벼슬이야 또
대단했구나
主乙完乎白乎 心聞際天乙及昆 魂是去賜矣中 三烏賜敎職麻又欲
바라다 보면 알 것이다 /그 때의 두 공신이여
이미 오래 되었으나 /그 자취는 지금까지 나타나는구나
望彌阿里刺
及彼可二功臣良 久乃直隱 跡烏隱現乎賜丁-平山申氏壯節公遺事-
자가 도숙(道淑)이고 호(號)가 모당(慕堂)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자질과 품성이 순수하고 근신하며 사람을 예의로써 대하였던
모당(慕堂) 신복희(申福熙) 가ㅠ선조 장절공(壯節公)의 유허(遺墟)에서
느끼고 시를 읊었다.
빼어난 기상 어린 태산에서 생명을 받아 /우리 조상의 장엄한 자취
지금도 전하네
의로운 깃발로
임금님 모신 곳에서 솔선하고 /신묘한 화살로 기러기
나는 하늘에 쏘아 사람을 놀라게 했네
화천(華泉)의 기세에 가까우니 누가
대신할 수 있으랴 /기신(紀信)의
공을 논하니 서로 현격하지 않구나
고을의 선비들이 갱장(羹墻)의 추모함이 간절한데 /제단의 제사도
끝내
백대에 이어지기를 기약하리
또 이 지역 출신인 성주(星州)인 이교창(李敎昌)의 시에서 그를 기리고
있다.
오동 숲에
정일한 충성이 일월처럼 걸렸는데 / 한왕조[漢朝]의 기신
(紀信)을 배향하여 전하는가
한 구역의 고택에 강산의 기상이 있는데/왕의 도읍
지키어 온지
오백년이구나
신령한 기운이 엄정한데 계초(桂蕉)가 향기롭고 / 제를 파하고 단이
비어 느낌이 더욱 장대하네
구천의
님을 모셔오지 못해 긴 탄식하는데/이제 누가 다시 군왕을
대신하리오
후손인
양수(陽秀)도
옛터의 신사(神祠)가 덕양(德陽)을 의지했는데 /조상의 바른 기상이
하늘에 뻗어 길구나
상전벽해의 큰 세계에서 오늘은
어느 날인고 /백대에 항상 추모하니
서직(黍稷)이 향기롭네
후손 종희(宗熙)도
기신(紀信)이 형양(滎陽)에서 죽은 것을
생각하노니 /공과 비교하면
누가 더 길고 짧을까
후대의 유림들이 세사를 함께 하는데/천추토록 전하는 큰 절의에
성명이
향기롭구나
그에 대해 전하는 일화는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공신 모든 장수들과
함께 황해도 평주(지금의 평산)에 사냥을 갔다가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데, 기러기 세마리가 하늘 높이 맴돌고 있는것을 보고 태조가
'누가 저기러기를 쏘겠는가?하니 신장군이 나서서 '신이 쏘리다'
하였다.
태조가 활과 안마를 내리니 신장군이 '몇째 기러기를 쏘리까?'하니
태조가 '셋째 기러기 왠쪽 날개를 쏘라'하였다.신장군이
태조가
명한대로 셋째 기러기의 왠쪽 날개를 쏘아 맞히니 태조가 탄복하여
평산으로 관향을 삼게 하고 이곳에 궁위전(弓位田)을 하사 받았으며,
이자리에 태사사(太師祠)가 있고 서원 철폐령에도 전국 주요 47개
서원에 들어 있으며 이를 계기로 평산신씨 시조가 된다. 후손으로는
신립(申砬), 신위(申緯), 신재효(申在孝), 신익희(申翼熙) 등이 있다.
이교창(李敎昌)은 그를 기리기를
태사의 남은
터 이미 천년 세월 흘렀고 /빼어난 절의는 당당하여
사책(史策)에 전하네
의로운 형색은 삼안(三鴈) 밖에서 가을하늘처럼 높고 /위엄스런
혼령
구룡리 하늘에서 바람처럼 매섭네
황강(荒江)에 달 떨어지자 긴무지게 일어나고 /화악(華岳)에 구름이
개여 밝은 해가
걸렸네
산하에 고개돌려 보고 뜨거운 눈물을 떨구나니 /이제 나라의 복운이
누구를 의지하여 이어질까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한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백제군에게 어의와
두상마저도 탈취한 상태에서 유금필 장군이 알고
있는 신장군의 왠발 바닥에 북두칠성과같은 사마귀의 무늬가 있음을
알고 시신을 수습하여 지금의
단소에 임시로 안장한후 왕건의
능지(陵地)로 지정해둔 춘천 서면 방동리 산 816-1에 매장했다.
전사했던 장소에 원찰(願刹)을
창건하여 지묘사(智妙寺)라 하였고 공의
아우인 능길(能吉)과 아들인 보장(甫藏)을 원윤(元尹:고려 벼슬
이름)으로 삼아 공의 공훈에
보답했다.
일대에 있는 비래산(飛來山), 상질(尙質) 장진공(張鎭恭)은 이곳을
지나며 그를 기렸다.
높은 절개 천추토록 우리
동방에서 빼어나/제단의 송백(松柏)이 신령한
바람 두르고
한가닥 줄기 신공정(申公井)에 응함을 알겠는데 /원류가 화천에서 나와
물이
다하지 않는 도다.
서포(西浦)김민규(金珉圭)도 시를 남긴다.
욕천(浴川) 구룡리(九龍里)는 /태사의 조상 모신 고향이라
위대한
충성 일월(日月)처럼 빛나고 /전공은 깃발에 드러났구려
초목이 모두 광채를 내고 /샘물 또한 빼어난 향기 낸다
백성들이 제단 세운
곳에 /세사에 느낀 눈물 천줄기
성암(省菴) 이상호(李相浩)은
동성(桐城)에서 대신 목숨 바친 때를 생각하니 /훌륭한
왕조의 왕업
공을 의지해 전한다
황금머리 겹겹한 황천 땅에 묻히고 /풀의 형상 구중 하늘에 신령함
드러내었네
계마석(繫馬石)에
바람 울어 파도도 점차 거세고 /용탄(龍灘)의 구름
다하자 달 홀로 걸렸지
비래산(飛來山) 형색이 저렇게 고상한데 /영재(英才)를 내는
저 형세
꿈틀거려
도원(道源) 윤인섭(尹仁燮)도
장절공신숭겸유허시(壯節公申崇謙遺墟詩)로 그를 이렇게 기렸다.
큰
절의와 빼어난 공이 오백년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아울러
전하네
위험을 대하여 왕의 목숨도 피할 곳이 없었는데 /대신 죽은 충신은
하늘이 있음을 의지했다네
호해(湖海)에 자주 이는 풍랑도 고요해지고 /우주에는 천고토록 해와
별이 매달렸네
알겠도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능히 무용(武勇)을 이어 /먼 자손들이
더욱 뻗어가도록 보전하였네
문화.김은희
첫댓글 안녕하세요 ♡
행복이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