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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박병환 지음, 뿌쉬낀하우스 2023.
미국 패권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과 새로운 국제질서 도래
2차 대전 후 미·소 냉전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종식되고 1998년 러시아가 서방 선진국 협의체인 G7에 초대받아 G8의 일원이 되었으며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다. 이는 냉전 이후 국제 체제의 기본이 형성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냉전에서 적국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 체계에 진입하도록 허용함으로써 포용적이고 전 세계적인 체제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트럼프의 집권을 계기로 미국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대대적인 무역전쟁을 벌이며 봉쇄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미·중 사이에 이른바 ‘신냉전’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올해 러시아가 나토의 지속적인 동진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대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전례 없는 혹독한 제재를 가하고 그런 와중에 러·중이 더욱 밀착함으로써 세계가 또다시 진영 간 대립으로 갈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번 전쟁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끝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평등한 국제사회의 출현을 추동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과연 ‘신냉전’이 현실화될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어떤 양상을 띨 것인지 모두의 관심사이다. 이는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대규모 외국자본의 유입에 힘입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며 중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명목 GDP가 미국이 21조 4,395억 달러이고 중국이 14조 1,402억 달러이지만 구매력 평가 기준 GDP는 미국이 20조 2,900억 달러이고 중국은 27조 8,050억 달러로 미국을 추월하였다. 미국이 전반적으로는 아직 중국에 대해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는 미국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간의 경제성장에 자신감을 얻은 시진핑은 2012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을 주창하였고 2013년에는 세계 무역을 주도할 중국의 계획으로 ‘일대일로’를 발표하였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및 남유럽 국가들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패권 도전으로 인식하였고 일대일로와 관련하여 2013년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을 설립할 때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이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을 주고 있다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고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였고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제한 등 조치를 취하였으며 불법적인 기술 탈취를 이유로 중국인들의 미국 첨단기술연구기관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다.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 무시 및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인권 유린 등을 놓고도 양국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2020년 7월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스파이 소굴로 규정하고 폐쇄를 요구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2010년대부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미국이 주장하는 항행 자유 원칙이 충돌하면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중국 공군기의 대만 위협 비행에 대해 미국이 대응하는 등 미·중 사이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지 않았지만,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행사할 경우 대응조치를 할 것을 지속적으로 밝히며 대만에 대해 무기 지원을 늘리고 있다.
2021년 미국은 중국을 여러 방면에서 견제하기 위해 일본, 인도, 호주와 더불어 쿼드(QUAD)를, 또한 영국과 호주와 함께 군사 동맹 성격의 오커스(AUKUS)를 결성하였고, 올해는 인도·태평양 경제협력프레임워크(IPEF: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동남아 7개국, 뉴질랜드, 피지)를 발족시키는 등 대중 압박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올해 마드리드 나토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체계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한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함으로써 중국도 나토의 경계 대상에 포함하였다. 또한,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등 주요 핵심 부문에 있어 중국을 국제공급망으로부터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유럽연합이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으나 독일과 같이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막을 확실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군사력에서는 아직 중국이 미국의 상대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도발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미국의 움직임을 볼 때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통제하기 어려우나 군사적으로 손을 볼 구실을 만들기 위해 중국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중국의 위협을 빌미로 독립 움직임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미국 장관급 등 고위인사들의 대만방문이 이어졌으며 특히 8월로 예정되었던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그녀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연기되었으나 이에 관해서 시진핑이 바이든과의 통화에서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어쨌든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후 미국 고위인사들의 우크라이나 키예프 방문을 연상케 한다. 미국 측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경우를 가정하여 워게임(War Game) 시뮬레이션을 하여 보니 미국이 밀리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공개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자유무역의 챔피언을 자부하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보이고 다자주의적 국제무역질서를 훼손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등장할 국제질서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게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미 대립
우크라이나 사태는 사실상 러시아와 미국 간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사회주의권 군사 블록인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었음에도 서방의 군사동맹체인 나토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끌어들이고 병력과 전략무기를 배치하였다. 그 결과 이제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는 우크라이나만 남았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위치상 러시아에 적대적인 세력이 들어오게 되면 러시아에 대해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대로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토 가입을 희망하여 2019년에는 헌법에까지 나토 가입 목표를 규정하고 나토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런 동향에 불안을 느낀 러시아는 무력시위를 하며 미국과 나토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와 동유럽 내 나토 병력 및 무기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서방측은 러시아의 요구를 무시하였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해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이처럼 자신의 요구가 거부되자 러시아는 무력행사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자 관계 차원의 갈등요인도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 끝에 친러 정부가 무너지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섰다. 신정부가 강경한 반러 정책을 펴자 동부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이 분리 독립하겠다고 하여 내전이 발생하였다. 서방 언론은 당시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난 8년간 우크라이나군과 민병대가 반군 지역에 대해 ‘인종청소’ 수준의 군사 행동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러시아는 반군을 적극 지원해왔고 이번에 아예 분리 독립을 승인하였다.
그러면 이번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 어찌 되었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탈환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고 미국과 영국 등 나토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도록 무기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은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 하며 서방에 대해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쟁이 가까운 장래에 끝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군이 동남부 및 흑해 연안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중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나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 의사는 서방의 지원이 계속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전쟁 초기부터 전쟁이 길어지더라도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고자 하는 미국 및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의 타협을 선호하는 프랑스 및 독일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간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서방이 취한 대러시아 제재가 부메랑이 되어 서방에 큰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다. 에너지 및 곡물 가격의 급상승은 서방의 소비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서방 각국의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은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가중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방 국가들이 은밀하게 외교적 해법을 논의 중이라고 하고,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평화 중재를 위하여 푸틴 대통령 및 젤렌스키 대통령과 접촉을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평화를 향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경우 군사적 목표가 어디까지인지 현재로서는 확실치가 않다. 당초 서방은 러시아에 혹독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러시아에 경제난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러시아인들이 푸틴에 대해 반발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전쟁이 종식되는 것을 기대하였는데 러시아 내부 상황은 그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 서방에서는 ‘러시아는 너무 작아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Russia is too small to win a war against Ukraine)’라는 말도 나왔다. 최근 러시아의 명목 GDP 규모가 대한민국이나 미국 텍사스주와 비슷하다는 것을 가지고 한 말일 텐데 이는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 무궁무진한 자원 그리고 수준 높은 인적 자원을 망각하고 단순히 연간 명목소득만 가지고 러시아의 저력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원을 계속한다면 전쟁은 더 길어질 것이며 그 대가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 유럽연합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미국도 민주당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11월 중간 선거를 거치면서 정책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전쟁이 종결되더라도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와 서방 사이 소원한 관계가 고착될 것이며 세계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서방이 자신들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이 말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대리전을 계속한다면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면 중국에 대한 봉쇄 정책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혹독한 제재의 충격이 훨씬 크다고 본다. 미국 등 서방의 전방위적인 제재는 역설적으로 그간 서방이 구축해온 국제질서 특히 경제 질서를 사실상 허무는 효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 이후 그 제재가 계속되느냐가 중요하다. 1991년 이래 세계는 사실상 미국 일극 체제였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000년대까지 미국이 모든 면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었고 미국을 포함한 범서방권이 경제력이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중국은 물론 인도, 브라질 같은 비서구권의 비중이 커졌다. 중동 산유국들도 예전같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들도 냉전 시대처럼 어느 한 쪽에 줄을 서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선택하는 실용적인 노선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내 인권문제에 대해 비서방권은 그리 비판적이지 않다. 물론 가까운 장래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권이 러시아와 중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한다면 모를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으로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하였고 미국에게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경제력이 우월하다고 러시아가 그에 종속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더욱이 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추월한다고 해도 미국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신냉전이라고 할지라도 과거 냉전 시대처럼 소위 제3세계의 비중이 미미하여 사실상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 둘로 나뉘기보다는 세계가 느슨한 결집의 두 세 개 그룹과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대부분의 나라들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느슨하다’는 것은 이제 이념에 따른 구분은 있을 수 없고 미국이 주장하듯이 민주, 인권, 자유 등 가치 공유는 기준으로서 명확하지 않고, 또한 당시에는 상호의존이 거의 없었으나 현재와 같이 긴밀한 상호의존이 일시에 단절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주창하였고 실제로 진행되었던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경제 세계화는 미국 자신이 ‘탈 중국화’에 앞장서고 있듯이 서서히 퇴조할 것이며 이른바 제조업의 본국 귀환(on-shoring)현상이 대세를 이룰 것이다. 미국이 기축통화로서의 공공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달러를 다른 나라를 제재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함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달러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탈 달러화’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 세계 관리 체계의 약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만일 미국이 러시아의 우려를 존중하고 중국의 부상을 용인하는 정책을 편다면 전쟁의 위험을 피하면서 진영으로 갈라지더라도 미국의 권위는 상당기간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2-09 고우경제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