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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대한민국
박상인 지음, 21세기북스 2022.
경제력 집중에서 벗어나야 한국이 산다
한국의 재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재벌 기업의 문제는 앞서 언급하긴 했으나 조금 더 깊게 다룰 필요가 있다. 우선 재벌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산발적으로 쓰이고 있다. 학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재벌은 특정 자연인 또는 가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제력 집중이 야기될 만큼 큰 기업 또는 기업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재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개인을 재벌 총수라고 부른다. 재벌의 조건을 만족하려면 우선 주체가 대규모 기업집단이어야 한다. ‘대규모’의 의미는 경제력 집중이 우려될 정도로 크다는 의미다.
재벌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가문에 의해서 지배되는 기업집단을 한자로 ‘재벌(財閥)’, 일본 발음으로 ‘자이바츠’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맥아더 군정에 의해 일본의 재벌은 해체됐다. 미군정 이후에 해체되었던 과거의 재벌 소속사들이 다시 기업집단을 형성했는데, 이때 기업집단을 일본에서는 ‘계열(系列)’, 일본 발음으로는 ‘게이레츠’라고 불렀다.
이처럼 일본은 재벌과 계열을 분리해서 이해한다. 계열과 재벌의 차이점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특정한 자연인이나 집안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계열은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 같은 존재가 없는 집단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업집단은 총수나 가문이 있는 재벌이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재벌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는데, 해방 이후 재벌이라는 말이 ‘부자’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부자를 가리켜 “너 재벌이니?”라고 묻곤 하는데 이 또한 여기서 연유한다. 그런데 이는 정확한 학술적 의미의 재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재벌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혹자는 일제강점기 이후 1950년대부터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1950~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업 중심 국가였다. 제조업의 비중이 크지 않았고 중화학공업이 아닌 경공업 중심의 나라였다. 그러므로 경제력 집중이 우려될 만큼 대규모 집단의 기업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집단의 순위 변동이 굉장히 심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박정희 개발 체제에 협력해 성공한 기업집단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들이 사실상 재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4대 재벌은 변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철옹성을 쌓게 된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에 이르면서 재벌 체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왜 문제인가
‘경제력 집중 현상Economic Power’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제일 먼저 사용했다. 간혹 이 말을 두고 경제학에 나오지도 않는 용어를 소위 경제학자가 쓴다고 트집을 잡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1960년 이후 경제학 교과서에는 ‘경제력 집중 현상’이라는 용어가 잘 나오지 않기는 한다. 하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다. 그 당시 뉴딜 기간을 거치면서 미국에서 경제력 집중 문제가 다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 용어 자체를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플랫폼 산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미국에서 다시 경제력 집중 문제와 뉴 브랜다이스 운동the New Brandieis Movement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은 거대 기업집단이 형성되면서 경제력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았다. 20세기 초 미국의 많은 사상가와 정치인들은 경제력의 존재Existence of Economic Power에 대해 우려를 했었다. 경제력 집중을 달리 표현하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경제적 가용자원의 상당 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경제 권력이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미국의 ‘진보 운동Progressive Movement’이었는데, 경제력 집중을 한마디로 ‘게이트 키퍼Gate Keeper’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게이트 키퍼는 사회의 의사결정을 사실상 결정하는 특정인을 의미한다.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경제 권력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특정인이나 가문이 사회의 많은 경제적 자원을 통제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를 다원주의에 기초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반체제적인 위협으로 보았다. 그래서 20세기 초 민주당과 공화당 개혁 세력이 연대해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다원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근본을 잡는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대표 인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였고 민주당 대표 인사는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었으며, 당시 연방대법원 판사인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embitz Brandeis도 참여했다. 이러한 선구자들이 나서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자는 운동을 벌였고,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라는 금권 트러스트Money Trust의 해체와 더불어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거치면서 미국 재벌의 해체가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록펠러와 모건이 석유 산업과 철도 수직계열화, 그리고 합병을 통해 산업 자체를 독점화시켰다. 특정인이 사회의 게이트 키퍼가 되는 것을 경계했던 대법원 판사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감히 누가 록펠러나 모건에게 토를 달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경제력 집중 규제fighting bigness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바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 안티-트러스트Anti-trust법, 이른바 경쟁법이 등장한다. 록펠러의 석유 산업과 모건의 철도 산업은 트러스트, 즉 신탁 구조였다. 신탁은 투자자에게 돈을 받아서 투자자에게는 수익만 배당하고 의사결정은 모두 자신이 하는 구조다. 당시 게이트 키퍼는 이러한 트러스트를 만들어서 주요 산업을 독점화했다.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미국의 노력
앞서 설명했듯이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꼽히는 록펠러는 1870년 ‘오하이오스탠더드석유회사’를 창설한 뒤 미국 내 정유소의 95퍼센트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했다. 이후 석유 사업에서 생긴 이윤으로 광산, 산림, 철도, 은행 등에 투자해 거대 자본을 형성해나갔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이를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개혁 세력들이 연대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이후 1911년 미국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을 받은 트러스트는 해체된다. 그래서 오늘날 쉐브론CVX, 엑슨모빌XOM 같은 회사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단 한 번에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자 특정 산업의 독점화가 사라지고 다각화된 여러 산업, 어떤 경우에는 특정 산업에서 지주회사 구조의 재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20~1930년대 일본 재벌과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계열 같은 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공황을 악화시킨 요인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 문제를 해소한 것은 뉴딜 정책이다. 뉴딜 정책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경제력 집중이 다시 생기는 것을 차단해 자본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뉴딜 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방임형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자본주의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뉴딜 정책이 대규모 공공투자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는 뉴딜에서 비교적 덜 중요한 부문이다. 뉴딜의 핵심은 당시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여러 기반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사실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당시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1938년 루스벨트의 의회 연설 내용이 그다음 해에 《아메리카이코노믹리뷰America Economic Review》라는 저널에 실린다. ‘개인적인 권력이 민주적 국가 자체보다 더 강해지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참으면 민주주의의 자유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루스벨트는 경제력 집중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위협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많은 정책을 통해 미국의 경제력 집중, 재벌 구조를 없애버리는 정책을 펴나갔고 그것이 바로 뉴딜 정책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도 재벌과 하도급 체제가 혁신형 경제로 이행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혁신형 경제와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재벌과 하도급 체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이것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력 집중의 주역인 재벌들이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이 체제의 사실상 정치 권력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보니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개혁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재벌 개혁 성공과 싶패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재벌 개혁은 가능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물론 역사적으로 재벌 개혁을 이룬 나라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이런 개혁을 하지 못해 퇴보했고 우리나라 역시 갈림길에 서 있다.
미국은 루스벨트 시대를 거치면서 개혁을 이루어냈다. 물론 지금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게이트 키퍼가 되어 과거 미국의 재벌들처럼 경제력 집중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운동 또한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를 지나 새로운 혁신형 경제에서 생긴 도전을 마주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심해서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바로잡자는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재벌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13년에 아주 체계적인 재벌 개혁을 시도했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외생적으로 개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군정에서 경제력 집중을 막도록 한 장치와 규제를 완화하면서 다시 계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맥아더 개혁은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나라는 대부분 재벌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중남미 지역의 나라들이다. 멕시코의 경우 1930년대 미국처럼 대공황이 찾아왔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벌의 기득권을 보호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재벌의 권력을 훨씬 더 강화하는 악법을 계속 만들어나갔다.
예를 들면, 증여세를 국세가 아닌 지방세로 돌렸다. 세금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다 보니 부패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증여세 자체를 없애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기업집단을 지배하기 위한 지주회사 지분을 후손들이 팔려고 할 때, 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팔도록 아예 법으로 정해버렸다.
멕시코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기를 쓰고 통과시키려던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도 도입되었다. 이로써 외국 자본의 위협도 사라졌다. 멕시코는 1960년도에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 배가량 높았지만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3분의 1로 급감한 상태다.
차등의결권 주식은 한 주에 한 개 이상의 의결권이 있는 복수의결권 주식과 의결권이 한 개 미만인 부분의결권 주식으로 구분되는데, 흔히 복수의결권 주식을 지칭한다. 차등의결권 주식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른바 ‘소유의 지배 괴리’를 증가시키는, 수단 중 하나다. 소유와 지배 괴리 증가는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와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세습을 용이하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2월 23일 비상장 벤처 기업에게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한국 재벌은 계열사 간 출자라는 수단을 이용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2020년 5월 기준 공시 대상 55개 재벌 총수일가들은 평균 3.6퍼센트의 지분율로 57퍼센트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자기자본에 비해 15배가 넘는 의결권을 이미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벤처 기업에 한정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한다는 법안이 내재하고 있는 허점과 문제점을 교묘히 악용해 만일 재벌들이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마저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도 1주에 150의결권의 행사가 가능해짐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재벌 총수일가는 철옹성을 쌓고, 차등의결권 주식을 활용해 세습마저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멕시코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와 동남아시아의 나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제력 집중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정체기를 맞을 뿐 아니라 퇴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경제력 집중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재벌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적 특혜다. 사회의 의사결정이 재벌 총수의 사익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력 집중의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우리의 사법 체계가 허용한 ‘3⋅5 법칙’, 즉 ‘재벌 총수는 어떤 죄를 지어도 1년 징역 5년 집행유예에 그칠 뿐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죄를 선고받아도 결국 사면되는 것을 또다시 지켜봐야만 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초래하는 문제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다원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의 진보 운동이 우려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또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데, 1997년 경제 위기 때 우리는 이를 목도했다.
2016년에 내가 펴낸 책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에서 삼성전자가 노키아처럼 어려워지면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적이 있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시스템 리스크가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개혁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책이다.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제목 탓에 혹자는 ‘삼성전자가 몰락해야 한국이 사는 길’이라고 해석하고서는 “왜 삼성전자가 몰락해야 하느냐?”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나 역시 삼성전자가 몰락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원히 살아남는 기업은 없다. 인간의 생이 유한하듯 기업도 성장하고 쇠퇴하는 사이클을 갖게 마련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렇게 되면 시스템 리스크에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혁신형 경제에도 맞지 않는다. 혁신형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누가, 무엇이 성공할지 사전에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좋은 전략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집단이 서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혁신형 경제도 성공할 수 있다.
하나의 특정 기업집단에 경제 전체가 의존한다면 결코 혁신형 경제를 이룰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 차원에서 진입과 퇴출 장벽이 생겨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궁극적으로 경쟁력이 저하되어 제조업에 위기가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재벌 문제는 기업 차원에서 ‘기업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의 무력화를 초래한다. 황제 경영과 일감 몰아주기, 소수주주의 이익 침해와 계열사 M&A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에 한국의 재벌 문제가 기업 거버넌스 문제로 둔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기업 거버넌스를 도입하면서 재벌의 정의를 대기업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재벌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다가 미국식 기업 거버넌스를 도입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소유지배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재벌 체제지만 미국은 뉴딜을 통해 재벌이 해체된 상태다. 따라서 이런 소유지배구조하에서 전문경영인과 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을 해소하기 위해 사외이사나 주주 소송 제도 등이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총수가 있는 재벌 체제이기 때문에 이해 상충의 문제는 총수로서 경영하는 기업의 대주주와 소수주주 사이에서 생기고 결국 소수주주 착취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를 하거나 계열사 간 M&A를 할 때 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등 대주주가 소수주주를 착취하는 이해 상충의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핵심은 소수주주 착취를 막기 위한 기업 거버넌스 기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외면하고 전문경영인과 주주의 이해 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식 제도만 들여와서 재벌을 미국식 대기업 취급하는 것을 20년 넘게 해왔다. 이런 잘못된 접근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벌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182-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