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랜드마크-콜로세움Colosseum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 ‘에펠탑’이라면 이탈리아와 로마의 상징은 바로 ‘콜로세움’이다.
페르미니 역에서 전철로 30분 이상.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 로마제국의 영광과 위대함을 느껴 본다. 그곳을 걸으며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과 전쟁을 상상해 보고. 그들의 건축 기술과 예술적 역량에 감탄했다.
현재의 원형경기장처럼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유흥거리를 제공하는 장소였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은 서기 80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매월 첫 주 일요일엔 무료로 입장한다고 한다.
콜로세움 내부는 크고 넓은 돌바닥으로 이루워졌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꼭 신어야 한다. 5만 명∽8만명 정도 수용 가능했으며, 콜로세움은 인간의 역사와 문명의 기념비로써 기나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었다.
서기 80년경 완공된 투기장은 원형극장으로 로마가 건축한 것 중 가장 큰 원형경기장이다. 원형극장은 콜로세움처럼 검투사 경기를 했던 곳과 서커스 관람을 하는 두 종류이다. 다른 건 원형극장은 좌석이 있어 희곡 연주 등을 하는 예술적 상영장인 검피시어터다. 원래는 황제의 일족 명을 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네로 황제의 동상이 ‘콜로서스’ 였으므로 ‘콜로세움’이란 이름으로 나중에 새겨졌다, 바티칸 박물관과 더불어 콜로세움 입장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 는 말처럼 로마의 페르미나 역은 노선이 많기로 유명하며 아탈리아 여행의 중심지이다.
자연과 예술의 결합 트래비 분수Trabby Fountain
‘트래비’란 세 개의 길이 만나는 광장이란 뜻이다. 교황들이 도시를 위해 복원하고 개축했던 로마 시대의 수로를 기념하고 교황들의 위상을 선전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스튜디오의 셋트처럼 앞면 만을 가지고 있다, 뒷면은 개선문의 형상, 개선문은 아취를 가진 문을 양쪽에 세우고, 벽이 있고 윗부분은 ‘아티카‘라는 교황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붙이고, 권력을 미화시켰다.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가 두 마리의 해맷이 끄는 조개를 타고 바다의 광풍을 몸에 안은 듯, 수염과 옷자락이 휘날리는 극적인 상황에서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앞엔 날뛰는 해마의 재갈을 잡고있는 두 명의 ’투리톤‘이 물의 형상을 띠고, 도시 한가운데로 개선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도시의 목줄에 시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을 개선 장면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자연이 빚어 놓은 것 같은 계단식 암산을 타고 흘러 내려온 물이 수조를 채운다. 물을 이용한 예술, 분수는 자연의 일부인 물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자연의 힘과 의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 속에 자연을 불러들여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쉼터로도 가능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예술이라 감탄스럽다.
스페인 광장의 ‘트래비 분수’ 에 동전을 한번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고, 두 번은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나게 되고, 세 번 던지면 연인과 헤어진다는 썰이 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루어진 사람도 행여 놓친 사랑을 다시 찾을까 하는 요행으로, 세계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백년이 걸려 지은 분수는 ‘애천’이란 영화로 인해 동전을 던지게 되었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 이 광장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 잡아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총 13개의 계단 수많은 사람들로 붐벼 북새통이 따로 없다.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이 계단에 앉아서 ‘젤라또’를 먹었던 장면 땜에 더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현재 계단에서 젤라또 먹으면 벌금 50유로- 25유로. 계단 앞 분수는 17세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가 만들었다. 테베가 강의 물이 범람하여 와인 운반선(바르카챠)이 떠 내려 온 것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와인 선이 아닌 노아의 방주 같았다. 스페인 계단 정면의 ’콘도더 거리‘는 세계의 명품 브랜드 샵이 가득, ’빠르크 레오나르도‘ 명품 아울렛, 우리를 매료시키고 눈을 즐겁게 한다. 카페 ’ 그레코”는 원래부터 수 많은 예술가들이 쉬어 가던 곳으로 발자크, 키츠, 셀리, 바그너등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아직도 괴테가 살았던 방이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한 때 키츠가 살았던 그 집에선 늘 전시회가 열린단다. 사소한 장소도 놓치지 않고 보존하고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 새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Slow-city 오르비에또.Orbietto
이탈리아 중부 팔리아 강과 키아라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며, 1999년 그레베 인 카엔티, 브라, 포지타노와 함께 세계 최초 ‘슬로시티’ 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현재 33개국 296개 도시가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만 15곳이 있다. 오르비에토란 ‘풍요로운 마을’이란 뜻이다. Slowcity 방문자들에게 느림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도시, 유유자적한 도시, 옛것을 기리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중세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통과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란 뜻이다. 오르비에또‘는 슬로시티답게 우뚝 솟은 고원 지대에 위치해 천혜의 요새 같았다. 도시 안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으며 이른 아침에는 가게 앞을 깨끗이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중간에 차에서 내려 ’푸니클라‘를 타고 다운 타운에서 내려 안개의 도시 오르비에또를 마주했다. 골목골목은 조용했고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놀부 영감처럼 으스대며 걸었다. 우린 시골 가면 이런 곳이 천진데∽ 지도자를 잘 만나야 돼, 씁쓰러움과 부러움을 안고 우린 느릿느릿 걸었다. 누오와 예배당’의 13세기 건축물로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주교관, 포폴로 궁전, 파피궁전을 관람하고 태양아래 펼쳐지는 여유로움을 가슴으로 만끽하였다. 1970년 침강의 산사태가 잇달아 도시의 건축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있었다. 농업 중심지이며 ‘백포도주’ 가 유명하다. 응회암 낭떠러지에서 익혀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맛이 좋은 전통 포도주이다. 그 외 믿고 마시는 ‘라바짜 ’커피, 연철 도자기가 유명하고, 수공업, 레이스, 가죽 제품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300년에 걸쳐 세워진 두오모 성당, 대성당 서쪽 정면은 화려한 다색 장식으로 유명하다. 1290 –1507 30년간 지었다. (3개의 박공벽) 사이사이 뾰쪽탑이 귀여웠다. 피피궁전은 시민 박물관으로‘에트루리아’ 인들의 고분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들을 소장해 뒀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했고, 아름답게 생활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유물에서 느낄 수 있었다. ( 볼세냐의 기적. ) 1263년 독일 사제 베드로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 무덤 위 성당에서 미사 도중, 성체 축성을 하자마자 피가 흘러내려 성체포를 적셨다. 교황 우르비노 4세는 성체와 성체포를 보존키 위해 1290년 11월 대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성당 안엔 르네상스 화가인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 ‘피에타’가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시뇨렐라의 ‘피에타’를 참고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