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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8년) 우리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3만달러(3천4백만원)를 넘었습니다.
김상배(59세)/근로자: 같이 살면 먹고 살기 힘들어요. 지금 현실이 그렇거든요.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못 살고 그래서 이게 전부 다 걱정입니다. 우리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영구임대 아파트를 연세민 임대 아파트를 해줬으면 참 좋겠어요.
성지영/기자(여): 안녕하세요 새롭게 시작하는 경제 프로그램, 보이는 경제 매거진의 진행을 맡은 성지영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인데요. 경제 그러면 막연히 어렵다. 모르겠다 하는 분들 많으시죠. 아는 만큼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경제 매거진에서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찾아보고 두드려 보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화려한 경제지표 뒤에 숨은 현실을 짚어볼텐데요. 88만원 시대 저자시죠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나오셨구요.
우석훈 경제학자/88만원시대책 저자: 안녕하세요.
성지영: 김주만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김주만/기자: 안녕하세요
성지영: 오늘 여기에 나와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김주만: 네, 이곳은 밤골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이구요. 저쪽 아파트 뒤쪽이 난곡마을입니다. (밤골/서울 관악구 신림동).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구요. 이곳 밤골은 재개발을 앞두고선 아직 재개발이 되지않은 곳과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지영: 그런데 박사님, 아까도 영상에서 나왔지만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고 하잖아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4인 가구 1억3천만원). 얼추 따져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평균 한 1억원 연봉이 훨씬 넘는다는 얘긴데 그런데 사실 내 통장은 그렇지 않다는 반응도 굉장히 많거든요.
우석훈: 국민소득이라고 편하게 쓰긴 하는데 정확하게는 국가소득이지요. 국가소득에는 개인도 들어가지만 정부공공 부문이 들어가고 대기업 민간부문이 들어갑니다. (1인당 국민소득=개인+정부+기업). 여기서 만들어진 전체 부가가치를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소득이 됩니다. 개인 몫으로 생각해 보면은 오히려 적지만 큰 정부, 대기업 이런데 몫이 크니까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돼죠. (정부-기업보다 가계소득은 적어). 정확하게 따지면은 가구당 평균소득은 연4천5백만원 정도돼요. 실제로 우리는 그 정도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거죠.
성지영: 그런데 김기자 오늘 저희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죠.
김주만: 네, 과거 엠비씨가 난곡마을을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20년이 됩니다. 당시 부인과 딸 셋을 둔 40대 가장을 인터뷰를 했는데요. 당시 국민소득이 1인당 만달러가 조금 넘었거든요. 지금은 3만 달러라는거 아닙니까. 과연 이 다섯 가족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저희가 그들의 20년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밤 11시(서울 관악구) 겨울 추위가 남아있는 3월 봉천동 주택가, 김상배씨가 일을 나섭니다. 헬스장에서 사용한 수건을 걷어 세탁을 하고 다시 배달하는 일입니다.
김상배: 3.1절 이라고 운동을 별로 안했나봐요. 이게 원래 10 자루는 되어야 하는데~ 기초 생활수급자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자활근로입니다.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에 헬스장 일곱곳, 밤새 서울시내를 돌고 나면 날이 샙니다. 남들과 밤낮이 바뀐 셈입니다.
김상배: 지금은 오히려 새벽에 하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다른 볼 일을 못봐서 그렇지.
김씨가 1주일에 6일을 일하고 받는 돈은 월 130만원,
김상배: 지금 이 일을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김상배씨가 이렇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상배: 그때는 막노동도 좀 다니고 또 고물 줍는 것도 하고 막노동을 많이 갔어요. 하루 가고 하루 안 가고 그랬으면 좀 괜찮은데 하루 가면 이틀, 삼일 정도를 못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먹고 살기가 힘들죠. 그래서 좀 궁핍했습니다. 다 했습니다.
기자: 힘 안드세요?
김상배: 힘 안들어요. 이거 하면 땀이 줄줄 나요 그래서 이렇게 흘리면 기분이 좋아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아직 어둠이 거치지 않았습니다.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20만원 짜리 지하방 아직 풀지 않은 살림살이가 절반입니다. 언제 또 이사를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자: 좁기는 좁네요. 다른 가족들이랑 살기는 쉽지 않겠어요.
김상배: 혼자서는 괜찮은데~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30년 동안 김씨는 성북구 길음동을 시작으로 이사만 26번을 다녔습니다. 변변한 재산이나 도와줄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사를 다닌 곳 대부분이 재개발 예정지역이었습니다.
김상배: 서울 방값이 좀 비싸잖아요. 여간 해서는 못 가잖아요. 그러니까 싼 데만 찾아 다닌 것 같아요.
김주만: 재개발지역 이런데요?
김상배: 네, 싼데. 지금 보면은 그런데도 없어요. 다 비싸고 방세도 쌌다고요 재개발 지역이 확실히 차이 나서~
20년전 김씨가 우연하게 MBC뉴스에 나온 것도 역시 재개발을 앞둔 서울 신림동 난곡 마을이었습니다.
무허가 벽돌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신림7동 세칭 난곡마을, 벽에 적힌 암호 같은 번호는 번지수입니다. 붉은 번호는 빈집, 사람이 살면 검은색입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2만원짜리 월세를 사는 김상배씨, 최근 딸까지 다치고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지만은 이 돈으로 다섯 식구가 몸을 부칠 곳은 이곳 말고는 없습니다.
김상배(당시 41세): 우리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영구임대 아파트를 영세민 임대 아파트를 해줬으면 참 좋겠어요.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지만 당시 40대 초반의 김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입니다. 형편이 남루하기는 이웃도 크게 다르지 않아 아이들도 부끄럼없이 자랐습니다.
김상배(59세-2001년)/난곡재개발 지역거주: 애들 크는 것도 보고 일하고 가면 반기는 게 그렇잖아요. ‘아빠’하고 반겨주면 힘들었던 게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참 좋았죠. 물론 애들한테 사주는 건 없었어요. 그냥 밥만 먹었어요. 그래도 애들이 하나도 투정안하고 ‘왜 이거 안사줘’라고 짜증도 안부리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때가 참 좋긴 좋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좋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런 생활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002년 난곡마을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김씨 가족이 살았던 난곡의 무허가 집들은 모두 철거됐고 그 자리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원래 살던 만3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소형 아파트 라도 분양을 받은 사람은 10% 가량, 대부분 당시 조금이라도 땅이 있던 집주인들이었습니다.
김상배: 개발하면 그런데 사는 사람들 따로 집을 하든지 해서 좀 싸게 주는 방향으로 하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잖아요. 들어가지 못하지 재개발하면~
달동네 이웃 사람들 대부분이 멀리 떠났다. 김씨 가족도 재개발이 미치지 않은 산 아래 반지하로 옮겼습니다.
김씨가 다시 TV 뉴스에 나온 건 난곡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朴 당선인, 난곡마을 방문 2012.12.24). 2012년 대통령 선거직후 박근혜 당선인의 이른바 첫 민생행보였습니다. 대통령 당선자가 대표적인 서민가구로 김상배씨 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박 당선인: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상배: 보통 도시가스 하고 전기세는 따로 되어 있는데요. 물세는 따로 안되어 있어요.
김씨는 동향인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김상배: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못살고~ 그래서 전부 걱정입니다.
박 당선인: 아, 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통령 당선인의 희망 섞인 약속이 뉴스를 채웠습니다. 다시 7년이 흘렀습니다. 김씨는 또 이사를 가야했습니다. 산아래 동네로 개발이 되면서 반지하 헐리고 그 자리에는 새 빌라가 들어섰습니다.
손명옥/당시 동네 주민: 아줌마도 참 순박하고 착하시고 보기에도 착하세요. 그분들 예쁘게 잘 살았어요. 애들도 되게 착 했어요. 그래서 애들이 예뻤어요. 요즘 애들하고 또 다르죠.
그리고 김씨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성지영: 위에서 보다가 여기 내려와서 보니까 느낌이 다른 거 같애요.
김주만: 네, 주택이 굉장히 허름하죠. 하지만 요즘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이런 무허가 건물들도 1~2억에 거래가 된데요.
성지영: 이곳이 개발이 되면 또 김상배씨 처럼 여기 살고 계신 분들은 떠나셔야 되네요.
우석훈/경제학자: 요즘 반지하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을 지옥고 라고 부르는데 사실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는게 더 힘들거든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이미 재건축이 돼서 밀려와서 또 살고 또 재건축이 돼서 또 밀려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여기 계신 분들이 다시 재건축으로 밀려난다고 하면은 이거는 명확하게 주거난민 이라고 봐야 합니다. 문제가 많죠.
성지영: 박사님, 김상배씨 보면 참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왜 형편은 달라지지 않은걸까요?
우석훈: 국민소득이라는 수치로 보면 많이 올랐죠. 그런데 평균의 문제는 그렇지 않은게 지난 20년 동안에 가난했던 사람들의 소득은 많이 오르지 않았어요. 하위 10% 63만(2003년)->80만(2018년), 부자들의 소득은 많이 올랐죠. 상위 10% 580만(2003년)->1130만(2018년), 예를 들어 보면은 연봉 3천쯤 되시는 분들이 맥주 마시고 있는데 거기에 빌게이츠가 와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변한게 없는데 평균 연봉은 수십억원이 되거든요. 아무것도 안변했는데 평균치가 변한 것, 이게 국민소득이 주는 역설적인 수치입니다.
성지영: 그런데, 김기자, 김상배씨 가족은 참 화목하고 사이가 좋았던 거 같던데 그런데 왜 헤어지게 된 거죠?
김주만: 간단하게 말하면 가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빈민층들이 겨우겨우 살 수 있는 정도는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급을 받게 되면 가족이 함께 살 수 없는 꼭 헤어져야만 되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난곡과 그 일대의 생활은 김씨에겐 행복한 기억입니다.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상배: 놀이기구는 못타도 그냥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 거 잖아요. 같이 구경만 해도 좋더라고요. 입장권 끊어서 놀이공원 안들어가도 원숭이도 구경하고 그렇게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하네. 그때가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못하니까~~
그런데 가족을 포기하는 건 김씨의 벌이만으로는 5식구의 생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00만원 남짓한 자신의 소득만으로 식구 전체를 먹여 살리는 것보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는게 낫은 형편에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한 겁니다.
김상배: 저는 처음에 굉장히 갈등을 많이 했어요. 왜냐면 이런 것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게 너무나 안타깝고 좀 그렇더라고요. 아마 그것 때문에 갈등을 많이 했는데~ 헤어진 뒤로 김상배씨 가족은 서로 연락이나 왕래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김상배: 처음에는 못견디겠더라고요. 눈물이 나고 진짜로 어색하더라고요. 애들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래서 저녁으로 한번씩 울고~
20년 가까운 동안 5명의 대통령이 희망을 약속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하지만 김씨의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내년(2020년) 나이 60이 되는 김상배씨는 오늘 다른 희망을 품습니다.
김상배: 추석하고 구정에는 찾아가야죠. 부인에게, 앞으로는
기자: 이번 가을에요?
김상배: 네, 삼결살도 사가고 피자도 사가고 애들 좋아하는 건 내가 다 알 잖아요. 잔치 좀 해 가지고 같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강지영: 이번 가을에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가겠다 김상배씨의 이 말이 참 여운이 남는데요. 혹시 취재과정에서 가족들을 찾으셨나요?
김주만: 네, 수소문 해서 어렵게 만나긴 했습니다. 셋 딸과 엄마가 지금도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걸 굉장히 힘들어 하셨구요. 저희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불편해 하셔서 저희가 취재는 여기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성지영: 그만큼 그 시절이 살기 어려웠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요. 박사님, 가난에서 탈출하는 길이 어려운 거 같애요.
우석훈: 98년도 IMF 경제위기 이후에 1999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라는 기본법이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그게 한계가 좀 있어요. 극빈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좀 막아주는데 (빈곤진입 7%), 거기서부터 가난을 탈출하는 것은 방법이 없거든요. 빈곤지속율이 86%이예요.(한국조세재정연구원/2007~2015). 예로 10집 중에 9집 가까이는 계속 가난한 거예요.
성지영: 저희가 김상배씨의 지난 20년을 따라가 봤는데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 시대 젊은 김상배씨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직접 만나 봤습니다.
올해 27살, 조은별씨,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입니다. 지체 장애인 엄마와 대학생인 여동생까지 세식구,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엄마까지 장애를 갖고 있다보니 은별씨는 일찍부터 가장이 되었습니다.
조은별(27세,여): 돈을 쓴다는 것 자체에 되게 부담이 있었거든요. 뭘하든 하고 싶은게 없고,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학원을 다닌다든가 취미생활을 한다든가 근데 돈 생각을 하면 그냥 안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원래 동생이 미술에 좀 재능이 있어서 학원에 계속 다녔었는데 근데 갑자기 학원비 50만원을 낼 수가 없잖아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생활보호 대상자이다 보니 자신의 적성이나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게 더 급했기 때문입니다.
김문길 연구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빈곤의 덫 이라고 얘기하는 그런 빈곤의 문화에 젖어 있으면서 사실은 자립이 어려워지는 구조적인 어려움에 빠져있는 경로가 있었고 그리고 당장 소득을 벌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 얘기가 소득의 상실은 공포로 다가온다고 얘기합니다.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죠.
은별씨 어머니 역시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자신이 겪은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가난을 그대로 딸에게 물려준 셈입니다.
이형숙/조은별 어머니: 지금 지나고 보면 어떻게 보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사실 없어요. 솔직히 제가 아이 둘을 낳아서 키웠지만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는 대단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는거죠. 사실 아직까지는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과 힘들었던 얘기를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애요.
은별씨는 2년전부터 한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은별(27세): 어떤 거예요? 지금 아니죠? 다람쥐 다람쥐 보여요? 다 눌러 보세요.
이곳에서 받는 급여는 한달 170만원,
조은별: 이 집 월세 30만원, 공과금 내고 집 전세금 대출 받은 것 또한 이자가 15~16 만원 정도 나가고 있고 휴대폰 요금 내고 나면, 사실 남는 돈은 없어요. 또 직장에 다니면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으니까 출퇴근 비용이랑 식비 이런 것들이 들어가니까.
그나마 은별씨를 빼고 엄마와 여동생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계비 76만원이 없으면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3년뒤입니다. 지금은 가족이 함께 살아도 엄마와 동생이 따로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지만 특례기간이 지나면 엄마와 여동생의 수급권은 탈락됩니다. 가족 가운데 한명인 은별씨가 직업을 갖고 소득이 생겼으니 장애인인 엄마와 여동생의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은별씨: 앞으로 수급자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그럼 정말 제 월급으로는 세명이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럼 생계는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이형숙/은별씨 모: 저는 진짜 아이들한테 짐 덩어리가 되는 거예요. 사실 그렇잖아요? 국가로부터 생계에 대한 보장은 일단 저의 1촌 가족인 아이들이 돌봐야 되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부담이 될 거고
두명의 기초생활수급자격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가족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용돈을 주는 것 같이 경제적으로 도와 주어서도 안됩니다. 기초수급을 받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거나 세대를 분리하는 편법을 막기 위해서 라는 게 이유입니다.
이형숙: 전화도 이제 통신도 확인하니까 안한다고 증거도 내보여야 하고, 통장은 기본이고 우리도포기각서를 써야 해요.
성지영: 딸과 연락 안한다? 서로 도움 안준다?
이형숙/은별씨 모: 도움 안준다 그런거죠.
가족 가운데 한명이 소득이 생기면 가족들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부담은 은별씨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기초생활 수급가정의 부양의무자는 자녀들 뿐 아니라 그 배우자자까지 포함됩니다. 부양 책임이 형이나 며느리까지 가다보니 자칫 아이들의 혼사길까지 막지 않을까 그게 엄마의 걱정입니다. 생계를 책임지라고 하면 사위나 며느리가 너무 어이가 없어할 거 아니예요. 우리 엄마가 생계가 어려운데 내가 결혼하면 우리 아이 같은 경우 결혼한 상대한테 아마 그게 재산이 잡혀서 아마 우리 엄마를 우리가 책임져야 할 거 같은데 동의 하겠냐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10%결혼 안할 거 같아요. 부담스러워서~~
우리나라는 국가가 국민 생활을 균등하게 향상시켜 주도록 헌법전문에 명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으로 목적으로 기초생활 수급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자신의 성공을 신화처럼 말하고 이를 발판으로 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명박 前대통령: 환경미화원 대선배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잖아요. 그렇죠?
이번 정부도 빈부의 격차가 세습되는 걸 막겠다고 약속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신년사/2019.1.10).
문재인 대통령: 함께 잘 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미래의 희망을 만들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지난해(2018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정부는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성지영: 박사님, 은별씨 월급에 엄마와 동생이 받는 기초생활 수급비까지 합하면 사실 액수가 한 240만원 정도 되는데요. 액수를 딱 들었을 때는, 아,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 같애요.
우석훈: 힘들지요. 일단은 서울이기 때문에 주거비가 비싼거고 월급 수준이 아무리 된다고 하더라도 여기가 비싼 동네 잖아요. 그런 걸 감안해야되고 제일 큰 문제는 이게 안정적으로 받는다 그러면 저축도 할 수 있는데 특례제도 때문에 월급도 받고 기초생활 보장비도 받고 그러지만 조금 있다가 끝날거거든요. 그러면 이 상태로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할꺼냐 그게 불안하니까 지금 저축하기도 그렇고 상당히 불안한 상태라고 보여져요.
성지영: 박사님,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쓰신지가 벌써 10년이 흘렀거든요. 10년이 흐른 지금 청년들의 현실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우석훈: 제도는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요. 10년전에는 우리나라가 5%, 6% 성장하던 시기였으니까 일자리도 많았고 상대적으로 정부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3%도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자리도 줄고 질도 나빠졌거든요.(성장률 하락+취업난, 적극적인 청년재정정책 절실). 이럴 때일수록 좀 도 적극적으로 재정정책 같은 것들이 청년들 한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알아서 하라 그러면 더 나빠지겠죠.
김주만: 과거 빈곤층 자녀들에 대한 연구조사자료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가난하지만 자녀들은 공부를 잘 하는 경우가 꽤 있었거든요. 이 사람들이 나중에 소득상위로 진입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더니 지금의 50대에서 60대들은 40% 정도가 그렇게 진입을 했습니다 (소득 상위진입비율/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5). 하지만 40대로 내려왔을 때 또 20대 30대로 내려가면 그럴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겁니다.
성지영: 개천에서 용 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네요.
김주안: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교육이 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지영: 그러니까 가난이 DNA 처럼 대물림되고 거기서 심지어 탈출하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상당히 인색한 반응들이 많아요. 그런데 돈 쓰는데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고~
우석훈: 가난 구체는 나라도 못구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잘사는 나라를 보니까 진짜 힘들어요. 스웨덴도 마찬가지고 영국도 2차 세계대전 끝나고나서 그때 복지를 적극 개입했거든요. 그런 나라들이 지금 잘 사는 거예요. 또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데 이럴 때 특히 아까 우리가 봤던 것처럼 결혼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여건이 안되고 제도가 안맞아 주는 사람들에게 복지를 충분히 제공한다고 한다면 사회적 활력도 생기고 사람들도 편안해지고 그게 지속 가능한 발전이 되는 겁니다.(어려울 때 복지에 힘써야 지속가능한 발전가능). 길은 있겠지요.
성지영: 우리 모두 함께 길을 찾아가야될 것 같습니다.
우석훈: 길은 아마 있을 겁니다.
성지영: 1인당 국민소득=개인+정부+기업). 여기서 만들어진 전체 부가가치를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소득이 됩니다. 오늘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끝. (MBC “보이는 경제매가진 1회”에서 인용발췌).
① 2018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3만달러(3천4백만원)를 넘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개인+정부+기업에서, 여기서 만들어진 전체 부가가치를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소득이 된다. 20년전 MBC가 난곡마을에 사는 부인과 딸 셋을 둔 김상배(40대 가장)씨와 인터뷰 했다. 당시 국민소득이 1인당 만달러가 조금 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을 추적해 보았다.
② 2019년 겨울 추위가 남아있는 3월 밤 11시 관악구 봉천동 주택가, 김상배씨가 일을 나선다. 헬스장에서 사용한 수건을 걷어 세탁을 하고 다시 배달하는 일이다. 김씨가 1주일에 6일을 일하고 받는 돈은 월 130만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어둠이 거치지 않았다.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20만원 짜리 지하방에 산다. 언제 또 이사를 가야할지 모른다.
③ 30년전 김씨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성북구 길음동을 시작으로 이사만 26번 다녔다. 변변한 재산이나 도와줄 친척도 없다 보니 이사를 다닌 곳 대부분이 재개발 예정지역이었다. 서울 방값이 비싸서 싼 데만 찾아 다녔다. 김씨가 다시 TV 뉴스에 나온 건 난곡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뒤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직후 박근혜 당선인이 첫 민생행보로 대표적인 서민가구로 난곡마을 김상배씨 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 당선인의 희망 섞인 약속이 뉴스를 채웠다. 다시 7년이 흘렀다. 김씨는 또 이사를 가야 했다. 산아래 동네로 개발이 되면서 반지하가 헐리고 그 자리에는 새 빌라가 들어섰다. 그리고 김씨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이별이었다. 가난 때문이다.
④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빈민층들이 겨우겨우 살 수 있는 정도,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되면 가족이 함께 살 수 없는 꼭 헤어져야만 되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다. 가족을 포기하는 건 김씨의 벌이만으로는 5식구의 생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0만원 남짓한 자신의 소득만으로 식구 전체를 먹여 살리는 것보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는게 낫은 형편에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한 거다.
⑤ 20년 가까운 동안 5명의 대통령이 희망을 약속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하지만 김씨의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2020년 나이 60이 되는 김상배씨는 오늘 다른 희망을 품는다. 그만큼 그 시절이 살기 어려웠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98년도 IMF 경제위기 이후에 1999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라는 기본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게 극빈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좀 막아주는데 (빈곤진입 7%), 가난을 탈출하는 것엔 방법이 없다. 빈곤 지속율이 86%(한국조세재정연구원/2007~2015). 일예로, 10집 중에 9집 가까이는 계속 가난하다.
⑥ 올해 27살, 조은별(여)씨,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 지체 장애인 엄마와 대학생인 여동생까지 세식구,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엄마까지 장애를 갖고 있다. 동생이 미술에 좀 재능이 있어서 학원에 계속 다녔었는데 근데 갑자기 학원비 50만원을 낼 수가 없다. 당장 먹고 사는게 더 급했기 때문, 빈곤의 덫 이라고 얘기하는 그런 빈곤의 문화에 젖어 있으면서 사실은 자립이 어려워지는 구조적인 어려움에 빠져있다. 당장 소득을 벌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소득의 상실은 공포로 다가온다.
⑦ 은별씨는 2년전부터 한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급여는 한달 170만원, 집 월세 30만원, 공과금 내고 집 전세금 대출 이자가 15~16 만원 정도 나가고 있고 휴대폰 요금 내고 나면, 사실 남는 돈은 없다. 또 직장에 다니면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으니까 출퇴근 비용이랑 식비 이런 것들이 들어가고, 은별씨를 빼고 엄마와 여동생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계비 76만원이 없으면 생활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3년뒤다. 지금은 가족이 함께 살아도 엄마와 동생이 따로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지만 특례기간이 지나면 엄마와 여동생의 수급권은 탈락된다. 가족 가운데 한명인 은별씨가 직업을 갖고 소득이 생겼으니 장애인인 엄마와 여동생의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⑧ 은별씨 월급으로는 세명이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럼 생계는 두명의 기초생활수급자격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가족관계를 끊어야 한다. 용돈을 주는 것 같이 경제적으로 도와 주어서도 안된다. 기초수급을 받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거나 세대를 분리하는 편법을 막기 위해서 라는게 이유이다. 전화도 통신도 확인하니까 안한다고 증거도 내보여야 하고, 통장은 기본이고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
⑨ 10년전에 우리나라가 5%, 6% 성장하던 시기에는 일자리도 많았고 상대적으로 정부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3%도 안된다. 일자리도 줄고 질도 나빠졌다.(성장률 하락+취업난, 적극적인 청년재정정책 절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적극적으로 청년들에게 재정정책을 펴야한다. 과거 빈곤층 자녀들에 대한 연구조사자료가 있다. 부모님들은 가난하지만 자녀들은 공부를 잘 한 경우가 있었다. 사람들이 나중에 소득상위로 진입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더니 지금의 50대에서 60대들은 40% 정도가 그렇게 진입을 했다 (소득 상위진입비율/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5). 하지만 40대로 내려왔을 때 또 20대 30대로 내려가면 그럴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⑩ 가난 구체는 나라도 못한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 잘사는 나라를 보면, 스웨덴도 마찬가지고 영국도 2차 세계대전 끝나고 나서 그때 당시 복지정책을 폈다. 그런 나라들이 지금 잘 산다. 또 지금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데 이럴 때 어려운 사람들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한다면 사회적 활력도 생기고 사람들도 편안해지고 그게 지속 가능한 발전이 된다.(어려울 때 복지에 힘써야 지속가능한 발전가능). 길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길을 찾아가야 되지 않을까.
⑪ 2019.6.10부터 MBC TV에서 위 다큐멘터리를 들으면서 받아 적기했는데 10여년전부터 이런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오른쪽 팔뚝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2주간 물리치료도 받고 안낫아서 한의원도 가서 2주간 침도 맞았다. 그동안 중단했다가 3개월이 지나서야 9.21에 통증이 완화되어 이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