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걸음 / 이남옥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새벽이었다. 미리 갈 길을 알아두지 못해 방향타 없는 조각배를 탄 것 같았다.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문밖으로 나가면 800킬로미터 대장정이 시작될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디로 떠나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 시간, 세상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적막을 깨고 비장한 각오만으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문을 밀치고 나가는 기분은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무런 절차도 없이 그저 간다고 했으니 나가야 했다. 프랑스 국경에 있는 마을 한 귀퉁이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낯선 세상으로 순례자라 부르는 첫걸음을 그렇게 뗐다.
파리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노조 파업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거리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위험해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낌새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얼어붙었다. 숙소를 찾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쭉쭉 뻗은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었다. 드골 공항에서 어렵게 지하철을 탔는데 또 갈아타는 것이 두려워 그냥 걸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관심있게 지켜보았더라면 영락없는 얼뜨기라 여겼을 터였다. 그런데 잘 아는 길을 가는 척 지나가는 사람이나 건물을 곁눈질로 살필 뿐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갔다.
처음으로 스마트폰 구글맵을 이용했다.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지만, 호텔이 몽파르나스역 부근에 있어 그곳까지 가는 데 크게 헤매지는 않았다. 얼마나 유용한 앱인지 여행 내내 고마웠다. 몽파르나스 묘지를 지날 때였다. 하필이면 날씨가 폭우로 변했다. 너무 많이 내려서 비를 피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곳이 없어서 한참 억센 비를 맞아야 했다.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뻤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팽팽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화르르 풀렸다. 다른 건 다 잊혀 가는데 여기가 우리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랐던 그때의 심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파리에서 이틀을 머물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시작점인 생장피드포르로 떠났다. 몽파르나스역에서 고속철도인 떼제베를 타고 네 시간 걸려서 바욘역에 도착했다. 철도 파업으로 언제 교통이 멈출지 알 수 없었던 파리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그곳에서 내려 완행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표를 끊느라 우물쭈물하다 기차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미 우리를 지켜본 한국인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순례길에서 들었다. 왜 저 사람들이 타지 않는 건지 궁금했단다. 다음 기차는 다섯 시간 후에야 탈 수 있다고 했다. 생장피드포르로 가는 열차는 하루에 세 번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때만큼의 막막함은 다시는 없었던 것 같다. 마을에 가면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도착한 대로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여권(크레덴샬)과 지도를 받고 여러 가지 조언을 들어야 했다. 순례길의 오랜 관문인 마을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새벽에 나설 길의 방향을 미리 알아두었어야 했다. 그런 계획이 한순간에 일그러져 버렸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게 인생사인 모양이다. 바욘 역에는 집시 같은 사람들만 몇 명 남아 있었다.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맨바닥에 기대 편하게 앉아 있었고 비둘기들은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거의 순례객들이었다. 일본인 모리씨를 제일 먼저 만났다. 그는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미국에서 왔다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서로 소개하며 떠듬떠듬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예닐곱 명의 지구인이 모여들었다. 유럽에서 온 사람이 가장 많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고 역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커다란 바게트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바욘 시내를 구경했다.
바다로 흘러드는 강이 있고 나지막한 건물들이 평화롭게 들어서 있는 그곳은 내가 사는 도시 순천을 닮았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가니 포근했다. 파리에서 느꼈던 긴장감 없이 편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역사가 깊은 바욘이지만 흥망성쇠를 겪으며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멀리 바욘 대성당이 보였다. 뾰족한 첨탑을 찾아 오래된 골목길을 들어서니 금방 만날 수 있었다. 사순절이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축 기부함도 보였다. 우리도 무사히 순례길을 마칠 수 있도록 은총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기부금도 넣었다. 성당을 구경하던 중에 남편이 바욘에도 순례자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곳을 찾으려는데 또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강물은 금세 불어나 물이 넘실거렸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비가 잦아들자 다시 길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성당 부근이라 쉽게 발견할 줄 알았는데 이 골목 저 골목 헤맸다. 결국 주민이 말한 곳으로 갔는데 몇 번 지나친 곳이었다. 출입문이 빨갛다. 옛날 마구간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이곳에서 크레덴샬과 순례자를 뜻하는 조개껍데기를 받았다. 대부분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는데 우린 이곳부터 첫 세요(순례 도장)를 찍으면서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꿩 대신 닭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시 바욘 역으로 돌아갔더니 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드디어 생장피드포르에 도착했다. 어느새 캄캄해진 마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모든 가게 문도 닫혀 있었다. 순례객들은 알베르게를 찾아 어디론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도 예약한 곳을 찾아갔다. 너무 늦게 도착한 바람에 투숙객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이층 침대로 한 방에서 여덟 명이 자는 곳이었다. 방해될까 봐 불도 켜지 못하고 더듬더듬 짐을 풀었다. 바욘에서 사 온 빵으로 저녁 대신 먹고 겨우 세수만 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꿈만 같은 하루를 되짚어보다 새벽에 떠날 걱정을 안은 채 침낭을 펴고 누에고치처럼 잠이 들었다.
첫댓글 걱정, 두려움, 설렘이 한꺼번에 몰려 왔겠어요. 그래도 용기가 대단합니다.
여행은 어긋나야 제맛이라고 했던가요? 첫날부터 가슴 조이는 경험을 하셨군요.
앞으로의 여행기 더 기대됩니다.
시작부터 몰입하게 되는 글이네요. 정말 앞으로의 여행 더 기대되요. 글도 여행도 대단하세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기대하지 마세요. 걷기만 해서 쓸게 없답니다
하하하. 너무 솔직하시네요. 계속 써 주세요. 독자 생각하셔서요.
정말 몰입하게 되네요. 다음 이야기 기대됩니다.
우와! 단숨에 읽었습니다.
같이 낯선 곳을 여행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낯선 곳을 여행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의 설렘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용기와 열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 길 위에 서 보리라
또 다짐합니다.
참 부럽습니다.
용기와 열정이
그 길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