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13시 부로 우리집에 군사적 준비태세의 한 단계인 데프콘3가 발령되었다. 데프콘3는 군대에서 “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긴장 상태가 전개되거나 군사 개입 가능성이 있을 때” 내려진다. 우리집 창가에서 비둘기들의 중대 도발 징후가 포착되었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이미 적들이 에어컨 실외기 상단과 그 주변에 요새를 구축하고 똥을 싸서 덕지덕지 발라놓은 상태였다. 그냥 두면 그 자리에 알을 낳고 새끼를 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내는 똥으로 구축된 적들의 요새를 파괴하고 제거하려는, 작전명 “장대한 분노2”를 수행하느라 개고생을 했다. 본래 모든 요새라는 게 접근이 어려운 자리, 옹색한 위치에 설치되는 것이라서 그걸 제거하는 데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엉겨 붙어 말라서 굳은 똥으로 구축된 적 진지를 제거하는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다. 요새가 해체되었는데도 적들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밤낮없이 호시탐탐 재진입을 노리며 철제 구조물—우리의 주둔지가 있는 19층에는 창밖에 장식용 아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적들이 그걸 침투 경로로 이용한다—에 침투하여 후우~후우~하고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낸다. 이번 사태를 기화로 그 소리가 그렇게 재수 없는 소리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내는 적들의 요새 철거 작전을 마치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항구적인 퇴치 방법을 탐구했다. 우리와 같은 난관에 처한 사례가 인터넷에 많이 보고되어 있고 그 퇴치 방안도 다양했다. 그물을 설치하는 법, 뾰족한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법, 우산을 설치하는 법, 녀석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발산하는 계피를 망에 담아 걸어두는 것 등. 우리 진영에서는 그중 냄새 공격을 하는 화학전 방식과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공병대식 방어전을 선택했으나 그 두 가지 방안이 다 그다지 뾰족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뒷방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혹은 안방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 소리를 탐지하려고 청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다가 흐느끼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탐지되면 즉시 출동하여 창문을 열고 녀석을 퇴치해야 한다. 나와 적과의 거리가 불과 2m 정도이며, 내가 훠이 하고 위협적인 기합소리를 질러도 녀석은 전혀 놀라거나 도망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다. 슬쩍 흘겨보고는 묵묵히 서 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빈 물통을 두드려 대포소리 공격을 가하면 겨우 한두 걸음 옆으로 느릿느릿 옮겨 간다. 정말 얄밉고 겁대가리 없는 녀석이다.
창세기에서 노아가 기나긴 홍수가 끝나갈 무렵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까마귀를 방주에서 날려 보내고 이어서 비둘기를 두 차례 내보낸다. 노아가 왜 그렇게 이중 삼중으로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 다소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까마귀는 열심히 날아서 왔다갔다하다가 날아가 버렸고, 비둘기는 일단 올리브나무 잎사귀를 물어 오고 그런 다음에 다시 날렸더니 이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그 이야기에서 까마귀가 왜 등장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까마귀는 억울하게 불길한 이미지가 덧씌워진 새이고 비둘기는 평화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새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수많은 비둘기들이 종합운동장 하늘로 날려졌다. 하지만 당시에 그들 중 일부가 성화에 타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비둘기는 유해 조류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점잖고 유순하며, 인간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도시 친화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환경적응력과 번식력이 최고 수준인 것 같다. 그래서 개체수 과잉 상태를 이룬 비둘기 떼가 대도시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지나치게 번식한 놈들이 우리들 인간에게 야기하는 첫 번째 문제는 재산상 피해이다. 놈들의 강산성 배설물이 건물을 손상하고 낙수 홈통을 막히게 하며 심한 악취를 풍긴다. 그것들이 쌓이면 철재를 부식시키고, 석재나 벽돌의 표면을 손상한다. 두 번째 문제는 전기 설비에 튼 녀석들의 둥지가 화재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건 위생에도 해롭다. 놈들의 똥더미가 곰팡이나 박테리아, 병원균을 끌어들여 일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수십 년 전에도 이미 뉴욕과 같은 대도시는 녀석들을 퇴치하거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먹이에 피임약을 섞어 넣는 방안을 실행했다.
비둘기는 더 이상 평화의 상징도 아니다. 나는 비둘기 두 마리가 땅바닥에 있는 먹이를 두고 푸덕푸덕 날개깃을 쳐대며 부리로 서로 상대방을 쪼려고 맞부딪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 현재 곳곳에 전쟁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우리의 지구가 노아의 방주라면, 그리고 노아가 다시 한번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면 녀석이 과연 돌아오기는 할까? 돌아온다면 과연 생명 존중과 평화의 메시지를 물고 올까?
오늘날 유행하는 개념인 동물 복지라거나 생태주의라거나 혹은 그걸 넘어 심층생태주의라거나 하는 건 헛구호일 뿐이다. 절의 스님들은 여름철에 해우소 구더기도 함부로 죽이지 않고 ‘살생유택일’擇日 하여, 날 잡아서 박멸한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모든 생명에 대해 제아무리 철저한 신념을 가진, 실천적인 생태주의자라도 모기나 깔따구, 바퀴벌레나 진드기, 이나 벼룩이나 빈대, 병원균까지도 존중해야 할 생명체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내가 뉴욕시에 머물렀을 때 그곳은 1000만에 육박하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바퀴벌레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우리들 한국 학우들이 어쩌다 누구 집에 모여 모국어로 신나게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버릴 때, 주요 화젯거리 중 하나가 바퀴벌레 퇴치법과 그 실행 경험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중국 마트에서 팔았던 흰 분필 바퀴벌레 약과, 일반 마트에서 팔았던 비행접시 모양의 플라스틱 콤배트 세트 등을 사용하여 화학전을 감행하기도 했고, 손바닥으로 찰싹 쳐 죽이기나 발로 밟아 죽이는 육박전을 치르기도 했으며, 입구가 너른 유리병 속에 먹이를 넣고 유인하여 그 속에서 굶겨 죽이는 유인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하철 객차 안쪽 벽에는 “바퀴벌레는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에서도 살아남았다.”(Cockroaches survived the asteroid that led to the extinction of dinosaurs.)는 문구의 콤배트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바퀴벌레가 3억 년 전에 지구에 등장해서 지금까지 번성했다니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놈들은 대단히 영리하기까지 하다. 야행성인 놈들을 죽이려고 깜깜한 밤중에 전등을 켜면 방바닥에 나와 파티를 열고 있던 무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놈들을 몇 마리라도 때려죽이려면 미리 신문지를 말아 쥐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스위치를 켜는 동시에 바닥을 내려쳐야 한다. 그래도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정말 영리하고 기민한 놈들이다. 그래서 그때 우리 학우들이 내린 결론은 바퀴벌레가 인간 다음가는 영물이라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확대되어 비쳐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이 내 눈에 어찌나 흉측하고 사악해 보였던지. 우리들 인간이 다른 유기체에 대해 가진 인식이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는 자신에게 해로운, 그래서 퇴치하거나 박멸해야 할 다른 대상이나 종種을 적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이든, 다른 종이든 간에 우리가 일단 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 놈들이 악하고 흉측하고 추해 보인다. 반대로 우리 자신에게 이로운 대상으로 인식되면 선하고 멋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의 이기심과 인식이 그 반대로 상호작용하는 게 아니다.
첫댓글 어머나, 스님들에게 '살생유택일'이 있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