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목적으로 행한 행동이라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설 '우상의 눈문'에서는 반아이들이 선생님이 말한 기표의 사정을 듣고 선의의 도움을 행하지만, 기표에게는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3가지 근거를 들어 ‘선한 목적의 도움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찬성합니다.
첫 째,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목적이 어떠하든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고, 본인은 그 책임을 감수해야 합니다. 선의의 행동은 결과를 예측한 뒤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행동으로 옮기기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생명이 위급한 긴박한 상황이거나 당연히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 상황에서 조차도 부정적 결과를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모든 사건에는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자는 당연히 부정적 결과의 원인제공자입니다. 최근, 2019년 4월 16일 오후 1시 50분,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의 한 빵집에서 출입문을 열지 못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문을 열다가 할머니를 넘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한 남성이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남성은 선의의 목적으로 문을 열었던 것이지만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이는 의도하지 않아도 사망사고의 원인을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를 통해 법에서조차도 선의의 목적으로 초래한 결과라도 그 책임은 행동의 주체가 져야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초래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책임도 져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째, ‘우상의 눈문’에서 반아이들은 도움 받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반 아이들은 기표의 사정을 듣고 가볍게 행한 도움과 배려였겠지만, 이것은 기표에게는 또 다른 폭력과 억압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선행의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 행동들이 기표를 괴롭혔던 원인이고 반 아이들은 그 원인 제공자 중 하나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도움받는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한 것이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특히나 선생님과 반장 형우가 기표의 개인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모두에게 알리고 그러한 정보가 언론사를 통해 퍼지기까지 했음에도 반 아이들은 아무도 의문과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그런 불법적 수단이 이용되고 있다는 점과 언론사에 함부로 퍼져도 될지에 대해 몰랐다고 가정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반 아이들이 기표의 사정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기표의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형우와 선생님의 선의라는 명분하의 합법적 폭력에 협조하고 방관한 것은, 결국 반 아이들이 선행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과 합리화를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셋 째, 알지 못하는 것이 책임을 회피할 수단이 될수는 없습니다.
‘우상의 눈물’에서 반 아이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선생님과 형우에게 이용당한 것뿐 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급우들에겐 책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과정과 수단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기표를 돕기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자신이 초래한 결과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측에서 유대인을 가스실에 보내거나 노역을 시키던 교도관이 재판에 입소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교도관과 그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도관은 나치의 상부의 명령에 불복할 수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교도관은 자신이 가스실로 보낸 유대인들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고, 목적이 성실한 직무수행이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결과를 초래했었기에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이 경우와 소설에서의 다른 점이라고는 반 아이들이 기표의 정보를 동의 없이 유출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있다는 점 뿐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 가정이 맞더라도 책임을 지는 것은 도움중 수단의 불법성과 선생님과 형우의 목적을 몰랐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 아이들에게도 책임은 있으며, 무지는 책임을 회피할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반 아이들이 과정에 대해서 잘 몰랐을 수도 있다는 가정보다는 기표에게 가해진 보이지 않는 폭력에 가담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합니다.
선의의 목적으로 도움을 행하더라도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나, 결국 그 결과 또한 자신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특히 ‘우상의 눈물’에서는 그 도움의 과정에서 불법적 수단까지 등장했으며, 반 아이들이 몰랐을 수도 있다는 가정과는 상관없이 기태에게 가해진 폭력과 억압에 협조하고 방관하였습니다. 반 아이들이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위와 같은 3가지 근거를 들어, ‘선의의 목적으로 행한 도움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을 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하여 찬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