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삶 / 전 3:1-15, 마 9:14-17
1995년 한 해를 보내고 96년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한 해를 돌아보면 언제나 남는 것은 아쉬움 뿐이다. 새해 첫날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마음다짐도 굳게 한다. 그런데 한해가 지나가고 나면 계획한 일이나 굳게 마음을 다진 일도 다 허사가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자체가 결코 목적 없는 항해와 같은 삶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목적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도 95년 새해를 맞이할 때 여러 가지 목적을 세우고 기도하면서 지난 한 해를 살아온 줄 믿는다. 우리들은 한해 어떤 일을 계획하였는가? 또 얼마만큼 노력하였는가?그래서 어떤 결과를 남겼나? 1995년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지난 한해를 점검해 보기 바란다. 그래고 새해에는 더욱 알차게 살아야겠다.
대체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물질, 권세, 명예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결코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여 경주하는 능동적인 삶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대체적인 목적은 소유지향적인 목적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다. 돈을 벌고,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누리는 이같은 목적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비록 돈은 적게 벌어도 온당하게 바르게 벌었느냐, 권력을 가져도 섬기기 위하여 가지는 것이냐 하는 사람됨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을 가질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 될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여러분, 누구나 다 누리기를 원하는 최고의 삶은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성자와 같은 삶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 공통적인 욕구일 것이다. 나쁜 일을 하면서도 그 마음 속에는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의 발상일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95년을 보내고 96년의 문턱을 넘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전 3장 말씀에 근거하여 최상의 삶, 곧 가장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삶은은 어떤 삶일까요?
1. 최상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깊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다.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고백하였다. 살아있는 인간은 누구나 다 장수하기를 원하며, 영원한 삶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곧 영원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라고 하였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은 곧 삶의 근본을, 우주의 근본을, 자신의 근본을 아는 일이다. 그러기에 칼빈은 사람에게는 두가지의 지식이 있는데, 사람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면 곧 자기자신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사실 자기자신을 독바로 알고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대단히 귀중한 일이다. 그러기에 F 난센이란 사람은 그의 일기에서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일은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군은 고독과 사색이 때때로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엄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자기를 안다는 것은 죄인인 내면의 자아를 알아야 하며 자기 분수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떨 때에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다.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삶의 지혜는 역시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여러분! 1996년, 성공적인 한해를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터 위에 여러분의 삶을 구축하기 바란다. 최상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싶은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2.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삶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12절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뻐하는 것, 곧 환희의 삶은 최상의 삶이 되는 것이다. 케플러라는 사상가는 ‘기쁨은 인생의 요소이며, 인생의 욕구이며, 인생의 힘이며, 인생의 가치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쁨에 대한 욕구를 갖고 기쁨을 요구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온전한 참 기쁨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부터 흘러나옴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로마 감옥에 갇혀서 곤혹을 당하면서도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다. 구원받은 자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기도의 결과가 곧 기쁨인 것이다. 이같은 기쁨이 우리들의 삶에 풍성할 때에 하나님의 현존을, 곧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융화가 가능한 것이다. 문호 괴테의 맟처럼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라고 하였다. 여러분, 폭넓은 기쁨의 발산을 통하여 신앙의 현실화를 누리는 한해가 되기 바란다. 최상의 삶은 기뻐하는 삶을 누릴 때에 가능하다.
3.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삶은 언제나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전도서 기자의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라는 표현은 그냥 지나쳐버릴 말씀이 결단코 아니다. 선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삶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였다. ‘선을 행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이란 ‘착하고 올바른 삶, 바른 이치를 따르고 양심이 있는 도덕’ 그리고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이라고 이희승 교수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이란 곧 바른생활을 실천하는 삶을 의미한다. 여러분, 한해 동안 진심으로 선을 추구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고 모든 음식이 맛을 내게하듯이 세상에서 소금처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길을 인도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안에서 빛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을 추구하는 삶이다. 96년, 밝아오는 새해에 소금과 빛으로 이 사회 속에서 선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결단코 맛잃은 소금이나 빛없는 등잔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겠다. 최상의 삶은 언제나 선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최상의 삶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최상의 삶이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삶이다. 최상의 삶이란 항상 기뻐하는 삶이다. 최상의 삶이란 항상 선을 추구하는 삶이다. 깊은 신앙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항상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굳게 믿고 최대의 노력을 함께 해기를 바란다. (1995-05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