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得之, 同於德者, 德亦得之, 同於失者, 失亦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임금은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를 없앤 채,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는 바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바를 일삼아야 한다. 따라서 세찬 바람은 아침나절을 마치지 못하고, 거친 비는 하루를 마치지 못한다. (그런데) 누가 (세찬 바람과 거친 비) 이것을 일삼는가? 하늘과 땅이다. (이렇듯) 하늘과 땅조차 (세찬 바람과 거친 비를) 오래 보여지게 할 수 없다. 하물며, 임금에게 있어서야! 따라서 (임금은) 도道를 따르고 일삼아야 한다. (따라서) 도道를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도道를 더불어 하게 되고,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덕스러움德을 더불어 하게 되며,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임금이) 도道를 더불어 하게 되면, 도道가 (백성에게) 얻어지게 되고, (임금이) 덕스러움德을 더불어 하게 되면, 덕스러움德이 (백성에게) 얻어지게 되며, (임금이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를 더불어 하게 되면,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가 (백성에게) 얻어지게 된다. (다스림에 있어, 임금이 백성의 저절로 그러한 바에 대해) 믿는 바가 부족하게 되면, (백성이 그것에 대해) 믿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希, 猶聽之不聞曰希之希. 希言, 則近於無言矣. 自然者, 物, 各付物, 而我, 無與焉, 卽所謂不言之敎.
희希는 (제14장의) “그것을 들어보지만,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데, (따라서) 이름 지어 불러 ‘희(希; 유위有爲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먼 바)’라고 한다”의 희希와 (더불어 뜻이) 같다. 희언希言은 따라서 (임금은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를 없애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자연自然은 백성이 각자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물건(物; 性·命·無爲·道·德)을 말미암게 한 채, 임금은 (유위有爲와) 더불어 하는 바를 없애야 한다는 말로서, (제2장의) “(임금은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는 바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바를 일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天地之, 有風雨, 猶人之, 有號令也. 發之, 太暴, 而行之, 太危. 雖天地, 猶不能久. 此, 君子, 所以因任自然而不以多言爲貴也.
천지가 바람을 불게 하고, 비를 내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것은 마치 임금이 (백성을) 부르고, (백성에게) 시키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바람과 비가) 피어나는 바가 (일부러 일삼아) 크게 사나워지게 되면, (불고 내리는 바가 하루 내내) 나아가는 바가 (일부러 일삼아) 크게 위태로워지게 된다. (따라서) 비록 천지일지라도 (불고 내리는 바람과 비를) 오래 보여지게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군자가 (백성의 본래)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道·性·無爲·德·命)를 말미암고, (그것을) 따른 채,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가 많은 바를 귀한 바로 삼지 않는 까닭이다.
道者以下, 不可强解, 盖亦物, 各付物之意爾. 吳幼淸曰, 有道有德者, 與我, 爲一, 無所容言矣. 失者, 雖失. 固亦有自然之是也, 豈可妄言, 以非之哉. 以我, 同之, 亦或悟我之公是, 則是, 亦以我同之, 而有得也.
도자동어도道者同於道 이하는 “(임금은)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로써, 가르치는 바를)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서, “(임금은) 백성이 각자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물건(物; 性·命·無爲·道·德)을 말미암게 해야 한다”(는 뜻)일 따름이다. (따라서 중국 원元나라 때) 오징(吳澄, 1249~1333)은 (『도덕진경주道德眞經註』 제20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이른바) 도道를 가지는 바가 있고,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과 더불어 하게 되고, (그러한 백성과) 하나되는 바를 일삼게 되며,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를 품어 안는 바가 없게 된다.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임금은 (그러한 백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道·德)를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이 어찌 (무위無爲를) 텅 비운 채,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를 품어 안는 바가 있)겠는가? 아닌가? 〔여기까지가 도자동어도道者同於道~실자동어실失者同於失에 대한 주석이다〕 이른바, 임금이 (도道와 덕스러움德) 그것과 더불어 하게 되면, (백성은) 누구나 임금이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따라서 그들은 임금(이 숨김없이 드러내는 도道와 덕스러움德) 그것을 더불어 하게 되며,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얻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여기까지가 동어도자同於道者~실역득지失亦得之에 대한 주석이다〕”
一本, 三亦下, 皆有樂字.
어떤 책은 (도역득지道亦得之, 덕역득지德亦得之, 실역득지失亦得之의) 세 역亦 자 다음이 모두 락樂 자를 가지는 바가 있다. 〔어떤 책에는 도역락득지道亦樂得之, 덕역락득지德亦樂得之, 실역락득지失亦樂得之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信不足焉以下, 反言多言之害. 其, 釋. 已見十七章.
신부족언信不足焉 이하는 (임금의 일부러 일삼아) 말하는 바가 많은 바의 해로움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것은 풀이되었다. 제17장을 살펴라.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