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재주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 정희연
“너의 재주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저 먼 꿈처럼 느껴질 뿐이다. 운동에도 소질이 없고, 춤도, 노래도,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한다. 머리도 그다지 똑똑한 편이 아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내게는 그런 것들이 모두 별나라 이야기다.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축구를 하면 공격수로 뛰고, 노래로 사람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부럽다.
분쟁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바다에 떠 있는 얼음산을 보는 것처럼, 표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을 알 수 없다. 문제의 성격과 중요도에 따라 참여자의 범위도 결정된다. 작은 파도처럼 잔잔한 문제는 현장에서 스스로 처리할 수 있지만, 큰 폭풍처럼 커져 가는 것는 결국 모두가 나서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이성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모든 이가 한 배를 타고 함께 항해할 수 있도록, 동일한 정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공유되는 정보는 투명해야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이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중요한 정보가 마치 성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일부 전문가나 권한을 가진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법적 문턱도 낮아져, 민원을 간편하게 접수할 수 있어 ‘소송의 시대’라 할 만큼 분쟁이 많아졌다. 그 파도 속에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중립의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 이해가 다를 수 있으므로, 감정을 내려놓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000대교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시방서, 도면, 물량 내역서는 서로 일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계 단계에서 입찰자는 입찰서를 제출하기 전에 설계서와 관련 문서 간의 일치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공사 초기 단계에서도 오류도 검토한다. 자료의 양이 방대하다 보니 틀린 부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때 발견되지 않은 것은 시공 과정에서 돌부리처럼 불쑥 드러난다. 그것은 결국 분쟁의 씨앗이 된다.
도로를 놓으려면 수용되는 토지나 건물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승낙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난다. 더 받고 덜 받고 가 있기 마련일뿐더러 일부 수용과 일괄 수용의 차이도 생긴다. 그리고 공사 전부터 있던 건물의 균열이 공사 중 진동으로 생겼다고, 보상을 요구하며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상황은 참 암담하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자취를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듯, 독립적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날개도 있었지만, 그것만큼 많은 것을 혼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퍼즐도 함께 놓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한꺼번에 다가와 당황했고, 그동안 부모님이 대신해 주던 일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요리, 청소, 세탁, 돈 관리 등 많은 것이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엉망이 되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넘어야 할 커다란 장벽이 내 앞에 우뚝 섰다. 직장을 다니고 소득이 생기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또렷하게 드러났다.
굳이 나에게 재주를 말하라 한다면, 조율하는 역량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토목 공사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잡한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을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업무의 조율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하다. 문제의 근본적인 본질을 알고, 무엇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들여다보면 갈등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를 겪는다. 이 과정에서 배우게 되고, 그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법도 알게 된다. 겨울이 지나고 봄에 꽃이 피는 것처럼 분쟁 뒤에는 평화의 햇살이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봄을 맞으려면 차가운 겨울의 시련을 잘 견뎌야 한다.
첫댓글 재주가 대단하시네요.
문제를 조율하는 역량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잘 읽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내 놓을 재주가 없어 꺼낸 차선책 같은 것이었어요
정희연 선생님은 아무나 못하는 토목 공사를 잘하잖아요. 그것도 큰 재주입니다.
직업으로 하는 일을 재주로 내놓다니, 웃음이 나옵니다.
성실하고 가족을 잘 챙기고 직장 생활 열심히 하는 것, 다 재주겠지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평범한 것이라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선생님이 계신 현장은 항상 든든할 것 같습니다.
챙기긴 하는데 범위가 넓어서 어려움이 많고 외부에서 일하다 보니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곽주현 선생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성실하여 타지 생활하면서도 빠뜨리지 않고 글을 쓰고,
가정 잘 건사하고,
모임하면 솔선하여 운전하시고 등이 큰 장점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요.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역량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방면으로 다 잘하시고, 저는 직장 내 우물 안에서만 그렇습니다. 하하하.
전문적인 재주에 소소한 재주까지. 부럽습니다, 선생님.
모든 분들이 너무 글을 잘 쓰셔서 기가 살짝 죽을락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