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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
류인혜
* 파리의 저녁놀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꿈에 그리던 파리’라는 표현을 붙여야 하겠지만 파리는 누가 와서 자기를 보든지 상관하지 않는데 짝사랑이듯 나 혼자 그곳을 그리워했다는 게 걸린다. 기뻐서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그냥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도착한 듯 덤덤해지려고 애를 썼다.
비행기가 멈추자 어서 내리기에 바빠서 정확한 시간에 도착 되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드골’이라는 공항 이름도 나중에야 알았다. 화장실을 찾는 분이 있어, 비행기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 만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예비지식 속에 화장실은 보이는 대로 사용을 하라고 했기에 모두 번갈아 들락거리자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다른 승객들은 다 사라져버리고 우리 일행만 남아있었다.
새로 지은 공항이 눈에 설어 안내하는 분도 당황하여 전진하기에 급급해서 뛰다시피 따라가다가 밖에서 기다리다 못해 들어오는 현지 가이드(원예중 씨, 그림 공부하는 사람이다.)를 만났다. 짐을 찾으러 되돌아가라고 한다. 허겁지겁 되돌아 달려가서 우리 짐만 뺑뺑이를 돌고 있는 곳에서 가방들을 찾았다. 놀란 마음으로 짐을 챙기느라 모두 기운이 빠졌지만, 미국에서 혼자 떠나와서 일행과 합류하는 김영중 선생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이 자꾸 지체되자 가이드는 퇴근 시간으로 길이 막히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고 염려를 했다. 세관을 통관하고 나서 밖에 대기해 놓은 큰 버스에 올랐다. 열여섯 명의 일행이 타기에는 너무 넓어서 제각기 편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차창이 넓어 사진을 촬영하기 좋은 곳에 앉아서 공항을 빠져나가는 때부터 시작하여 낯선 광경들을 찍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파리’를 이야기한다. 파리는 사방 60km 반경이 수도권이다. 순환도로가 있어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어디에서 파리로 들어오던지 순환도로를 거쳐서 도심에 진입할 수 있다. 도시는 타원형으로 10km, 8km의 가로 세로 사방 거리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제1고속도로를 지나서 도시 순환도로로 들어선다. 처음 길이니 어디에서 연결되는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파리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길이 자주 막혀 진행이 어렵다. 어느 곳에서는 아예 멈추어 섰다. 버스가 진행하는 왼편 길 저편에 작은 차들이 2층으로 줄을 지어있다. 그 광경이 재미있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엷은 노을의 기미가 함께 잡혔다.
지나치는 공장지대에는 도로 옆에 작은 카페들이 있다. 실내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그곳을 들여다보니 건장한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가볍게 한잔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는 이제 시작인데 그곳에서는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다. 사실 여행자는 현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여 시차를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시계를 챙기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자세히 보자, 그리고 느끼자, 작정했다.
큰 건물이 왼편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이던 건물들과는 다른 현대식 건물이 인상적이라 그것도 찍었다. 가이드가 종합운동장이라고 했다. 육중한 운동장 건물은 어둑해지고 있는 주위로 더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잠시 후 벽면에 낙서가 요란한 터널을 통과했다. 그곳을 지나가자 저 멀리 도시 위로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달리는 버스 속은 조용하다. 모두 입을 다물고 우리가 다가가는 파리의 해지는 광경에 취해 있다. 예술의 도시인 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일몰의 때라니 얼마나 축복받은 여행인가! 같은 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오는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풍경이겠지만 우리를 위한 특별한 준비로 느껴진다.
붉게 물든 도시의 하늘은 아름답다. 지나치는 숲은 모습을 감추지만, 하늘은 더욱 붉어지며, 빛을 받아 투명해지는 구름마저 환상적이다. 먼저 숙지해간 예비지식이 낯선 도시를 친근히 대하게 한다. 저 멀리 몽마르트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샤크레 쾨르(성심성당)’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인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인다는 흰색의 건물이다. 유감스럽게도 금세 지나가 버려 사진을 찍지 못했다. 도심으로 가까워지자 어둠이 내린 거리의 불빛과 건물의 창에 켜지는 불빛,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의 불이 어울려 여행자의 마음을 밝힌다.
완전히 어두워진 도시 한가운데 에펠탑이 우뚝하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 속에는 아련한 불빛이 인화지 아래쪽으로 줄을 지어 반짝이는데 에펠탑은 희미한 자태로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 네 번째 식사
파리 시내로 들어가자 석조 건물이 비슷한 높이(6층)로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길이 좁으니 차들도 작은 포도주병을 보는 느낌을 준다. 세 번의 식사를 했으니 이제는 호텔로 가서 편히 잠을 자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란다. 예약한 식당을 찾아가느라고 길을 이리저리 달려가며 건물들을 구경한다. 창문에는 아랫부분에 갖가지 모양의 철망이 만들어져 있다. 그 안의 작은 공간에 꽃을 내어놓아서 아름답다. 그림으로만 보던 광경을 직접 대하면서 상상과 현상(現象)을 비교해 본다. 예술의 도시답게 우아하게 멋지다.
버스에서 내려 한국식당인 ‘진미’로 걸어가는 길에서 어린아이들의 물건을 파는 가게를 만났다. 진열해 놓은 작은 구두와 옷을 살펴보며 태어날 아들의 아이를 생각했다. 그러나 문을 닫아버렸기에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식당은 작고 아늑했다. 환영하는 듯 우리 일행을 위한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불고기 백반을 먹었다. 그런데 물이 귀한 나라에 와서 아까운 국물이 졸아든다. 가스불 조절이 잘 안 된다. 불을 꺼달라고 손짓을 하여도 바쁜 종업원이 돌아보지 않아서 “여기 보세요.”라고 소리쳤더니 다른 손님들까지 쳐다보았다. 결국 더 빨리 소리칠 것을 폼 잡는다고 망설이다가 고기만 짜게 먹었다. 밥은 설익어서 설컥인다. 하는 수 없어 된장을 아낀 묽은 된장국에 말아서 불려 먹었다.
시차 관계로 7시간(원래 우리나라와는 8시간의 시차이나 썸머 타임으로 10월 26일까지는 한 시간이 줄었다)을 더 벌어서 한 끼를 더 먹는 것이다. 오늘 날짜로 31시간을 살게 되었다. 우리가 돈을 주고 산 물이 아깝다고 들고 가라고 하니 주최 측에서 시키는 대로 식탁 위의 물병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서라면 200원어치 쯤 된다. 아이들 말로 ‘쪽팔리는 짓’을 한 것이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이동한다. 파리의 중심지에 있는 호텔로 가는 것이라 저절로 파리 시내를 구경한다. 파리는 중앙역이 없다. 나누어진 지역에 따라 6개의 역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생 자이레’ 역을 지나갔다. 잠시 후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길이 막힌다.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곳곳에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버스의 진행을 막아서 이리저리 길을 찾아가는 돌아가는 덕분에 도심의 야경을 마음껏 보았다.
지나치는 건물들이 제각기 멋을 지니고 있어 차장으로 사진을 찍었다. 잘 나올지는 의문이다. 건물 아래층의 가게는 규모가 작다. 슈퍼에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명한 콩코드 광장도 지나가는 길에 있었다. 관광 일정에 들어있기에 무심히 지나쳤지만, 나중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가보지 못했다.
오페라 하우스Opera de Paris Garnier
1862년 ‘나폴레옹 3세’가 파리를 시내 재정비하면서 파리의 중앙 부분에 남은 마름모꼴 땅에 ‘우아한 장소’에 ‘우아한 건물’을 주제로 설계 공모를 하여 171개의 작품 중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의 작품을 선정하여 13년간의 공사 끝에 1875년 완성하였다. 대리석 장식이 화려하다. 모든 건축 사조의 장점을 섞어서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1964년에 그린 ‘샤갈’의 천정화가 유명하다. 지금은 발레의 전당으로 사용한다. 회원들을 위한 특별입구 반대편에 나폴레옹 3세 부처를 위한 전용 입구가 특징이다. 구데타 또는 암살 기도를 염려하여 출입문으로 전용차가 들어오면 곧장 전용실로 가도록 설계하였으나 1870년 프러시아와 전쟁에서 패한 그는 한 번도 이 문을 이용하지 못했다.
첫댓글 삼총사의 나라 프랑스가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삼총사를 많이도 읽었습니다. 알렉산더 듀마 피에르의 삼총사
몬테크리스트 백작도 유명하지요. 감사합니다.
몽골이나 라오스도 한국과는 6시간 시차가 났습니다.